(시카고 하우스)
1979년 시카고에서 벌어진 디스코 데몰리션 나이트 이후 디스코는 점점 위세가 하락하게 된다. 디스코 앨범의 발매는 점차 뜸해졌으나 시카고의 나이트클럽과 WBMX-FM같은 라디오 채널은 아직까지 디스코 음악을 현역으로 틀어주고 있었다. 시카고 라디오의 DJ였던 마샬 재퍼슨, 론 하디, 프랭키 넉클즈는 크라프트베르크,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와 같은 일렉트로 팝과 댄스뮤직, 올드 디스코, 이탈로 디스코와 힙합, 일렉트로 펑크 등의 음악을 틀었고 그 중 일부는 릴-투-릴 테이프에 자신이 좋아하는 곡의 에디트 버전을 넣었는데, 이는 이펙터를 추가하거나 드럼머신, 다른 리듬 악기 등으로 비트를 추가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디트 버전은 대개 개인 비닐 레코드로 발매되거나 믹스테이프에 추가되는 식이었다.
최초의 하우스 트랙으로 전해내려오는 것은 1984년 시카고 DJ인 제시 샌더슨과 빈스 로렌스가 발매한 트랙 'On and On'을 들 수 있다. 이는 롤랜드 TB 303 신디사이저와 TR 808 드럼머신, 그리고 미니멀 보컬과 Kong Poly-61 신디사이저를 활용하여 만들어졌으며 1979년 발매된 Player One의 디스코 트랙 Space Invaders의 샘플을 활용하였다. On and On의 성공 이후 많은 프로듀서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트랙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값싸게 입수 가능한 전자악기를 이용하여 디스코와 댄스 음악에 영향을 받은, 하지만 좀 다른 음악들을 생산해내었다.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1985년 레코드의 발매로 인해 '하우스 뮤직'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후 Mr. Finger의 Mystery Of Love, Can You Feel It 같은 딥하우스, Phuture의 Acid Tracks애시드 하우스 등의 하위 장르가 빠르게 생겨남으로써 장르는 부흥하게 된다.
이후 하우스 음악은 론 하디, 릴 루이스와 같은 DJ에 의해 클럽에서 재생되고, 이는 지역 레코드 샵과 라디오, 그리고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의 음악가들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된다. Trax Records와 D.J. International Records는 시카고 외 지역에 하우스 음악을 널리 전파시켰으며 1987년 영국으로 건너간 하우스 음악은 스티브 헐리, 팔리 잭마스터 펑크, 래리 허드, 데릭 메이와 케빈 샌더슨 등의 음악을 발매하여 UK 차트에 오르게 한다.
초기 하우스 음악은 또한 사회의 빈곤계층을 위한 정치적 메세지를 담기도 했다. 특히 이것은 미국의 흑인 남성을 비롯한 소외계층에게 인기를 끌었다. 프랭키 넉클스는 이를 말하기를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라고 했으며, 마샬 재퍼슨 또한 “사람들이 행복과 절규를 얻기 위한 오랜 종교의 방식”이라고 하였다. 딥하우스의 메세지는 여러 흑인 커뮤니티의 자유를 향한 메세지와 유사하기도 하다.
용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일반적으로는 시카고에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있었던 장소 '더 웨어하우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곳은 주로 흑인과 라틴 계열의 사람들이 자주 찾았으며, '하우스 음악의 대부'로 불리는 프랭키 넉클스가 이 곳의 레지던트 DJ로써 활동하였다. 한편 Mr. Fingers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서 전자 악기를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