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3. 9. 24. 12:39

러시아의 바르드는 차스뚜쉬까(chastushka)라고 불리는 러시아 농촌의 민요를 발전시켰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비소쯔끼가 발굴해 낸 것은 차스뚜쉬까 중에서도 블라뜨나야 무지까(blatnaia muzyka)라는 전통이었다. 영어로 'criminal song', 'delinquent song'으로 번역되는 노래 형식이다. 말하자면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러시아의 농촌을 여기저기 전전하던 불한당들이 부르던 노래들이다. 비딸리 까네프스끼(Vitaly Kanevsky)의 영화 <Zamri, Umri, Voskresni(Freeze-Die-Come to Life)>(한국어 '의역': '얼지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에서 중년의 술주정뱅이가 술병을 들고 흥얼거리는 노래가 블라뜨나야 무지까의 원형에 가깝다.

이런 노래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비소쯔끼의 작품이 소외되고 주변화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술과 섹스, 감옥의 생활, 거리의 패싸움 등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노래가 당국을 불편하게 한 것도 자연스럽다. 그의 목소리는 단지 저항의 이념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장을 파고드는 '진실의 전달자'였다. 그래서 그는 "내 노래의 멜로디는 음계의 단순합보다도 단순하다. 하지만 내가 진실의 어조를 잃는 그 순간부터 마이크는 채찍이 되어 내 얼굴에 흉터를 남긴다"고 말할 수 있었던 듯하다.

비소쯔끼는 러시아의 록 커뮤니티와 직접적 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1970~1980년대 러시안 록의 주역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했던 러시안 록은 비소쯔끼 같은 바르드의 기타 시가(詩歌)가 없었으면 태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러시아의 마지막 영웅' 빅또르 쪼이와 그의 그룹 끼노(Kino)뿐만 아니라 그보다 연배가 높은 보리스 그레벤쉬꼬프(Boris Grebenshikov)와 유리 셰브추끄(Yuri Shevchuk)에 이르기까지.

비소쯔끼를 포함하여 이들의 이름은 1980년대라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간 러시아인들에게는 매우 소중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역으로 러시아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계급 없는 사회'에도 부정의와 억압이 남아 있음을 치열하게 고발한 영웅들의 업적은 시장의 냉혹한 명령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건 아이러니인가, 필연인가.


//////////////



posted by 人心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