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ry music
미국 백인 민요라고 할 컨트리 음악은 과거 70년대
국내 가요에 주종을 이룰 만큼
당시에는 커다란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컨트리 뮤직은 촌사람들의 음악, 시골음악이란 뜻이지만
대중음악분야에서는 구체적으로 미국 백인들의 전통음악을 말한다.
20세기 100년 동안 미국 백인들이 주도한 음악으로는 '스탠더드 팝'과
본래는 흑인 연주음악이나 백인들이 더 강세를 보인 '재즈'가 있다.
하지만 두 음악은 결코 민초들의 구전(口傳)에 의한 음악
이를테면 민요라고 할 수 없다.
스탠더드 팝과 재즈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후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이주민들 가운데서
공식적으로 음악교육을 받았거나 클래식 음악의
연주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반면 컨트리 뮤직은 백인 이주민들 가운데
하층계급이나 민초들에 의해
미국이란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정착된 것이다.
말하자면 백인민요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컨트리 뮤직은 미국 흑인민요인
블루스와 인종적으로 정반대에 위치한다.
18세기에 스코트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그리고
영국 등지에서 이주해온 궁핍한 백인들은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동부의 대도시로 정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주로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 주변에 모여 살았고
따라서 컨트리는 처음에는 유럽에서 그들이 불렀던 것과 유사하다고 해서
'친숙한 노래'(familiar tunes) 또는
산(山)지역사람들의 노래라고 해서
'마운틴 뮤직'(mountain music)으로 통했다.
이 용어는 19세기 말에 와서 힐빌리(hill-billy)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때까지는 아직 매스 미디어와 대량복제기술(음반)이 가해지지 않은
전형적인 민요의 상태였다.
그러나 1920년대 들어서는 마침내 미국 전역에 라디오와 음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음악으로 변모했다.
이 무렵 랄프 피어(Ralph Peer)라는 이름의 음반제작자는
'민요 컨트리'가 '대중음악 컨트리'로 탈바꿈하는데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블루 요들'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지미 로저스(Jimmie Rodgers)와
미국형의 새로운 컨트리를 연주한 카터 패밀리(Carter Family) 등
컨트리 음악의 전설을 발굴했다.
여기서 요들(yodel)이란 용어가 말해주듯
유럽의 민초들이 즐겨 불렀던 요들이
미국으로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현악(string)밴드의 성격이 강했던 컨트리의 주요악기가
피들, 하프, 루트(옛 기타)등 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의 토속악기라는 것도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나중에는 여기에 밴조, 도브로(기타의 일종), 만돌린, 그리고 스틸 기타가 더해져
오늘날의 특징적인 컨트리 음악 사운드가 만들어졌다.
민초들의 바이올린이라고 할 수 있는 피들(fiddle)은
빠르게 줄을 켜면서 컨트리 특유의 흥을 내며,
역기 컨트리 음악에서 자주 들리는 '우는 듯한' 기타소리는
앉아서 연주하는 좌판형의 스틸 기타(steel guitar)의 몫이다.
'두 악기가 없다면 컨트리도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피들과 스틸 기타는
요즘에도 컨트리 사운드의 색깔을 띠는데 필수적인 악기로 통한다.
1930년대 후반에 컨트리라는 용어가 정착되었고 음악의 종류도 많아졌다.
빌 몬로를 선조로 하는 전기 증폭음 이전의
남부지역의 블루그래스(Bluegrass),
스윙재즈와 결합한 스타일로
캐나다 남부 아카디아 지방사람들의 웨스턴 스윙(Western swing),
남부 루이지애나의 프랑스어를 구사한 사람들에 의해 정착된 케이준(Cajun),
'컨트리 앤 웨스턴'이란 말을 낳으며
1940년대 영화까지 석권한 카우보이 송(Cowboy song)
술집과 무도장에서 유행한 일렉트릭 기타 주도의
빠른 홍키통크(honky-tonk) 등
지역과 풍속에 따라 여러 갈래를 치며 대중들에게 파고들었다.
이들 컨트리 음악 중에서 서부개척을 상징하는
말달리는 카우보이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도
컨트리 뮤직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용어이다.
컨트리의 본향(本鄕)이라고 할 내시빌 지역의 방송국인 WSM의 프로그램으로
주말이면 컨트리 가수가 다수 출연하는 공개방송무대를 갖는다.
1925년에 시작되어 카터 패밀리, 어네스트 텁, 행크 윌리암스 등 컨트리의 역사를
수놓은 모든 스타들이 이 프로를 거쳐간 명실상부한 컨트리 스타의 산실이다.
공연 분위기는 우리의 '가요무대'를 연상하면 된다.
그랜드 올 오프리는 방송혜택이 전무했던 블루스와 달리
백인음악이란 덕분에 컨트리가 미디어를 통해
일찍이 대중화 상업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부언하면 그랜드 올 오프리에 의해 컨트리는
시골의 민요에서 벗어나 도시의 대중음악으로 뻗어간 것이다.
아울러 그랜드 올 오프리를 컨트리와 동격으로 만들어낸
내시빌에 대한 지역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곳에는 컨트리의 명예전당, 공연장, 전문 레코드사,
스튜디오, 음악협회 등 컨트리의 모든 것이 집결해 있다.
내시빌 현지에서 만난 컨트리음악협회의 홍보이사 제프 그린은
컨트리 음악에서 내시빌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도시 중에서 바로 음악을 연상시키는 도시가 어디 있습니까?
뉴욕이나 시카고도 역사적으로 음악이 강한 도시지만
사람들은 먼저 거대도시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계인 누구에게도 내시빌하면 '아, 컨트리 음악!'하며
바로 컨트리를 떠올리지요.
내시빌과 컨트리는 이제 같은 말이 됐습니다."
내시빌을 중심으로 확산된 컨트리 음악은
1950년대 등장한 로큰롤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폭발적인 로큰롤의 기세에 눌려 한때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재빨리 로큰롤과 팝의 요소들을 받아들이면서 추세를 따라잡아
대중음악 전선에서 퇴각을 당한 적은 없다.
1970년대에는 로레타 린, 태미 와이네트, 멀 해거드 등
불세출의 컨트리 스타들이 나와
대중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으며
1980년대 초반에도 케니 로저스,돌리 파튼, 에디 래비트, 알라바마 등이
활약하여 다시 전성기를 누렸다.
근래에도 '컨트리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가스 브룩스,
'컨트리의 스파이스 걸'격인 딕시 칙스,
백스트리트 보이스보다도 더 많은 앨범 판매고를 수립한 샤니아 트웨인 등
슈퍼스타가 잇따라 출현해
또다시 중흥기를 맞고 있다.
백인의 전통음악이라는 유리함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잊혀질 때면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나 위력을 뽐내고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컨트리는 어떠한가. 지금은 컨트리 색채가 있는 음악을
좀처럼 듣지 않으려고 하지만
과거에는 가요의 맹주역할을 했다.
그만큼 컨트리는 국내 가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포크시대였다는 1970년대에도 통기타로 연주되었을 뿐
실은 포크보다도 컨트리 스타일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조영남이 불러 유명한 '내 고향 충청도',
윤항기의 '노래하는 곳에',서수남 하청일의 '서울 구경'은
모두 미국 컨트리 송을 번안해 부른 노래였다.
트위스트로 알려진 1961년 한명숙의 '노란 셔츠의 사나이'의 전주도
피들이 주도하는 컨트리음악 형식을 취하고 있을 정도다.
가요관계자들은
"포크는 단순한 가사의 나열로
멜로디가 부각되지 않는 반면
컨트리는 경쾌하고 낭만적인 선율패턴과 리듬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훨씬 한국인의 정서에 맞았다"고 설명하고있다.
[출처] country music의 어원|작성자 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