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4. 6. 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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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알앤비) 리듬앤블루스.


R&B(알앤비) 리듬앤블루스에 대해 다들 알고있을거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R&B(알앤비)를 사전적으로 알고있는것외에 R&B(알앤비)에 대해 생각하고

결론내리기란 쉽지않다  한국의 가수들중 R&B(알앤비)의 대표적가수로 불리는 사람은

김조한 박정현 박화요비등이 있었다. 그런데 세사람은 창법이 다 다르고 확연한 차이가 있다.

어떠한 점에서 이들을 R&B(알앤비)가수라고 하겠는가?

 

 

 

R&B(알앤비)즉 리듬앤블루스로 알려진 이 장르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인 1940년대 말 1950년대 

 블루스와 리듬감이 짙은 스윙 등의 댄스풍 재즈가 섞여 만들어지게된 흑인음악의 장르이다.

어제 포스팅했던 블루스보다 댄스비트가 강하고 리듬멜로디역시 대중적이며 블루스에 비해

밝고 쾌락적인 가사들이 많은것이 R&B(알앤비)라는것이다.

 

 

 

R&B(알앤비)라고 하면 끈적끈적한 느낌의 다양한 기교와 바이브들이 들어간곡을 떠올리는데

말그대로 리듬블루스의 합성어 이니만큼 두요소가 가미된 장르라고 볼수있겠다.

미국백인 음악의 모태는 흑인음악에서 파생된것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러한 R&B(알앤비)가

나중에 1960년대의 백인 록밴드나 모던록들에 굉장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백인 록밴드 영국록밴드의 시초이자 모델인 비틀즈 롤링스톤즈 등이 그러한 R&B(알앤비) 리듬앤블루스장르에 영향을 받았고 그러한 음악이 나중에 본조비같은 뮤지션을 탄생시키게 되니말이다. R&B(알앤비)가

백인음악에 더해지며  컨트리나 로큰롤 (락앤롤)을 만들어 내는 시초가 되니 위에 말한대로 백인음악의

 모태가 되는것은 흑인음악이 될수밖에없는것이다.

 

다시 R&B(알앤비)로 돌아와 
리듬 앤 블루스(Rhythm and Blues; 'R&B')는 흑인의 생활 양식에 맞도록 녹음 된 블루스

보컬이나 밴드 연주의 레코드를 총칭한다.

나른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가성을 많이 섞어 부르기도 하는데

R&B(알앤비)의 정석은 역시 흑인음악. 흑인 뮤지션을 통해 느낌을 느끼는것이 가장중요한것같다.

R&B(알앤비)의 특징적인것으로 보자면 즉흥성 (Feel) 애드리브등을 꼽을수 있고, 엇박과 싱코페이션등이

많다고 볼수있다 이는 위에 말한 즉흥성 즉 느낌에 충실한 곡과 리듬감을 중요시하는것이

R&B 라는 장르의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R&B(알앤비)가수는 많다고 하는데 우리에 맞게 변형되고 음악은 사전적지식으로

가능한것이 아닌 몸으로 재해석해서 나타내는것이기때문에 당연히 흑인음악본연의

 R&B(알앤비)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수도 있다.

음악은 느끼는것이지 머리로 계산할수 있는것이 아니기때문!!

요즘은 워낙 소울틱하고 R&B(알앤비)틱한 가수들이 많아 우리도 생소한 장르는 아닌것이 바로 R&B(알앤비)이지만  대체적이고 정통틱한 R&B(알앤비)가 듣고싶다면 흑인정통R&B(알앤비)를 추천한다.

 

 

 

흑인음악성이야 영화 시스터액트등에서 서도 많이 나타나고 

시스터액트2였나?  에서 로린힐도 출연하니 느낌충만..

로린힐은 소울가수로도 유명하지만 리듬앤블루스 알앤비의 느낌에 더 충실한 여가수이다!!

 

 

 추천해줄만한 느낌이 있다면  국내가수 THE RAY (더레이)의 R&B(알앤비)편곡 둘리를 들어보는것도

재미있을듯.THE RAY (더레이)는 원체 친한녀석인데 이녀석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현했을 당시 둘리를 R&B(알앤비)버젼으로 불러서 나도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음.

R&B(알앤비)장르로 보자면 이녀석도 노래좀 하는녀석이니 ^^ 웃으며 보실수있을듯!!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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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13. 10:09


 스윙재즈(Swing Jazz)

'스윙'은 흔들거리다라는 뜻입니다. 스윙재즈는 재즈리듬을 규칙적으로 되풀이 되면서도 경쾌한 리듬감으로 일종의 댄스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윙재즈는 1930년대 뉴욕의 경제 대 공황이 끝나감에 따라 어두운 사회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밝고 경쾌한 리듬이 인기를 얻으며 탄생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계2차대전이 시작됨에 따라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게 되고 경쾌한 스윙재즈를 즐기기 보다는 모던 재즈로 사람들이 관심과 분위기를 전환하였습니다.

스윙재즈를 떠올리면 빼 놓을 수 없는 것, 바로 '빅밴드(Big band)'인데요. 스윙재즈를 연주하기 위한 빅밴드는 10명내외로 구성되며 트럼펫, 트롬본, 클라리넷, 색소폰, 피아노, 기타, 드럼등의 악기로 이루어집니다. 리듬과 브라스, 리드의 3개의 섹션이 조화를 이루어 원곡을 편곡하면서 자유롭게 재즈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스윙재즈인데요.

스윙재즈와 다른 재즈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리듬'이 아닐까 싶어요. 스윙재즈의 경우 춤을 추기 위한 장르이기에 율동감을 살린 당기는 박자를 선호하는데요. 예를 들면 '원 투 쓰리 포'의 정박자를 '원 - 투 - 쓰리 - 포'로 연결하게 됩니다.

 

스윙재즈 뮤지션 

대표적인 스윙재즈 뮤지션으로는 베니굿맨, 글렌밀러, 듀크 엘링턴등이 있습니다. ​처음 스윙재즈를 접하는 분들에게 강력추천하고 싶은 노래 바로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입니다. 들어보시면 아하! 하면서 김연아 에어콘 CF광고가 생각나실텐데요. 이처럼 광고 음악 및 OST등으로 스윙재즈 음악을 편곡하여 삽인한 노래들이 참 많기에 조금은 더 친숙하게 느끼지 않으실까 싶어요.

Kpop에서도 스윙재즈 장르를 선보인 가수의 노래는 아이유 <분홍신>, 동방신기 <Something>이 있는데요. 스윙재즈를 가미한 노래들을 선보이는 뮤지션들이 많기에 들어보시면 스윙재즈에 대한 어려움이 없으실 것 같아요.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들썩 거리는 매력에 빠지게 되는 스윙재즈에 한번 빠져보셨으면 해요.

p.s ​

이외에도 스윙재즈를 좀더 쉽고 재미있게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일본영화 <스윙걸즈>를 보셨으면 합니다. 스윙재즈를 알고 있었지만 스윙재즈의 매력은 <스윙걸즈>를 보면서 푹빠지게 되었거든요. 여고생들의 빅밴드 도전기! 정말 흥미로우실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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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ng Swing Swing
재즈는 게토 (Chetto, 흑인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인종을 초월한 음악으로 발돋움해 나가며 1910년 대, 뉴올리언즈 재즈란 이름으로 정착 했고 1920년 중반까지 시카고로 자리를 옮겨 그 전성기를 맞이 했으며 1930년 다시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음악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다. 시카고의 재즈 음악인들이 뉴욕으로 옮겨 간 결정적인 요인은 전기와 마이크의 발명에 따른 방송의 발달 이였다. 대부분의 방송국이 뉴욕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고정적인 방송 출연을 통해 미래를 보장 받았다.1930년 대에 뉴욕에서 융성한 스윙 재즈를 이야기 하기 전에 1920년대 뉴욕에서 연주 됐던 할렘 스트라이드란 음악도 중요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할렘 스트라이드 (Harlem Stride)
 
"랙타임"에서 언급 했듯이 1910년 이후에 새로 만들어진 랙타임을 찾아 볼 수 없지만 그 흔적은 1920 년 초에 형성된 할렘 스트라이드란 음악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스트라이드는 AABBACCDD 의 랙타임과 같은 형식을 가지고 왼손과 오른손의 연주도 랙타임의 연주 방식에 기초를 둔 피아노 솔로 곡이었다. 랙타임을 재즈로 인정하지 않는 반면 스트라이드 음악은 즉흥연주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이유에서 재즈의 한 양식으로 포함 하고 있다. 스트라이드는 랙타임 보다는 스윙 같은 현재의 재즈와 더 많이 닮아 있다. 스트라이드를 처음 시작 한 피아니스트는 제임스 프라이스 존슨(James Price Johnson)이고 스트라이드를 완성 시켰다고 평가 받는 토마스 팻츠 윌 러(Thomas Fats WAller)가 있다. 그 들의 스트라이드 스타일의 연주는 후세 연주자들에게 기술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James P. Johnson – "Carolina Shout"
 
 
 
Fats Waller- I Ain't got nobody
 
 
 
Fats Waller- Ain't Misbehavin'
 
 
 
 
스윙과 시대적 배경
 
 
1920년 대 중반에 시카고 음악인들이 뉴욕으로 건너갔으나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을 맞아서 2천만명에 가까운 실업자가 발생 했고 음악인들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주요 음악인들은 이 시기에 유럽 등지로 여행을 가거나 음악계를 잠시떠나 있었고 1933년에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1930년 중반에 경제적인 회복기에 접어 들었다.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며 즐기는 시간이 늘어 나면서 이때 부터 춤곡인 스윙이 대중 들에게 어필 하기 시작 하였던 것이다. 1930년 후반부터 스윙이 많이 연주 되던 곳은 댄스 홀이였다. 뉴올리언즈의 스토리빌과 같이 술, 춤, 음악이 공존 했던 퇴페적인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지만 뉴욕의 댄스홀은 중상층 이상이 즐기던 자본이 모여 들던 곳이였다. 그 당시에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밖에서는 많은 젊은 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지만 미국 내의 경제는 비정상적인 호황을 누리며 춤과 여흥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스윙 재즈가 대중에게 어필 할 수 있었던 다른 이유로 방송의 발달을 들 수 있다. 방송국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스윙 음악인들을 동원해 다양한 쇼를 기획하게 되는데 빅밴드가 그런 요구에 부응 하고 있었다. 쇼가 인기를 끌면서 클럽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과 함께 스윙 밴드의 연주와 코메디언의 만담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스윙의 대중화에 큰 역활을 하게 되는데 공황을 겪은 대중들은 밝고 희망적인 음악을 필요로 했고 스윙이 바로 그런 음악이였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수 있었던 것이다.
 
 
 
Big Band
 
스윙 재즈가 대중성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 요소로 루이암스트롱의 활약과 빅밴드의 융성을 꼽을 수 있다. 루이암스트롱의 전성기는 시카고에서 활동 했을 때였다. 뉴욕에서의 그의 활동은 상업적인 활동이 주를 이뤘으나  스윙이 '춤곡'으로 확실히 자리 잡는데 지대한 역활을 한 인물임은 확실하다.
빅밴드의 형태의 시도는 1920년대 플랫처 핸더슨에 의해 시작되었다. 빅밴드는 악단 편성, 편곡 구성 및 방식을 의미하는 말로 피아노와 각종 리듬악기, 그리고 관악기 위주로 구성된다. 중간 이상의 음역을 맡는 악기 파트(트럼펫, 클라니넷, 알토 색소폰, 소프라노 색소폰, 플룻 등)와 중간 이하의 음역을 맡는 악기 파트(테너 색소폰, 바리톤 색소폰, 트롬본, 베이스 클라니넷 등) 로 구분 된다. 보통 일반적인 재즈의 곡 구조를 그대로 연주 하는데 몇개의 리드 악기나 전체 빅 밴드가 주제 (Head)를 연주 하고 몇 명의 주요 멤버가 솔로 부분을 연주 한다.  일반적으로 빅밴드에는 리더가 존재 하고 그 리더는 그 빅밴드를 지휘하면서 연주까지 참여 한다. 플렛처 핸더슨, 듀크 엘링턴, 베니 모튼, 카운트 베이스 등은 모두 자신의 빅밴드를 이끈 연주자들이다.
 
 
 
 
 
Sing Sing Sing
 
 
베니 굿맨(Benny Goodman) 
1930년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음악인은 베니 굿맨 이다. 베니 굿맨이 발표한 'Sing Sing Sing'은 대중적인 성공을 대변한다. 쇼맨쉽과 대중의 기호와 취양을 꿰뚫는 감각을 타고난 그는 훌륭한 연주자이고 재즈 역사상 처음으로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는 기록도 세웠다
 

 

benny goodman -"Sing sing sing"
 
 
 
베니 굿맨와 함께 연주 했던 연주인 중에 가장 중요하게 거론 되었던 음악인은 그가 트리오 활동을 할때 영입 한  테디 윌슨과 진 크루파이다. 테디 윌슨은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연주한 경험을 갖고 있었고 얼 하인즈 이후에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얼 하인트가 정열적인 연주로 루이 암스트롱과 조화를 이루었다면  테디 윌슨은 안정적이고 감미로운 연주로 베니 굿맨과 조화를 이루며 베니 굿맨이 음악적으로 성공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진 크루파는 처음 거론되는 의미있는 드럼 연주자로 드럼은 밴드 내에 박자를 맞춰 주는 역활을 한다는 틀을 깨고 드럼 연주자도 빅밴드 전면에 부각 될 수 있는 '스타'가 될 수 있음을 증명 해 보였고 단순히 뛰어난 드럼 연주자를 넘어서서 자신의 빅밴드도 이끌며 의미있는 활동을 보여 줬다.
 
 
 
Benny goodman , Teddy Wilson, Gene Grupa – "Body and Soul"
 
 

 

듀크 엘링톤(Duke Ellingtone)
 
1899년 워싱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공부 했으며 23세에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뉴욕에 진출했다. 그는 백인만이 손님으로 출입하던 할렘의 카튼 클럽(Cotton Club)에 음악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음악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40년 이상 자신의 빅밴드를 이끌었다.  1974년 세상을 떠날때까지 자신의 색채를 고유한채 스윙을 기초로 한 음악에 전념하였으나 정체 되지 않는 탐구적인 자세로 음악의 수준을 20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악적 특징
 
1)  단조의 곡 – 스윙 재즈에서 많이 찾아 볼수 없는 단조의 곡이 등장한다.
2)  음색의 전환  – 기존의 악기들이 맡았던 음색을 전환 시켜서 엘링톤 사운드를 만든다. (예. 높음 음색을 맡는 악기가 낮은 음
                         색을 맡도록 한다)
3)  코드의 전용-  예를 들어 C7이란 코드를 C-E-G-Bb 이 아닌 E- G – Bb- C 등으로 바꿔서 연주하여 코드의 색채를 바꿔 준
                         다.
4)  브라스 연주자들의  [Plunge] 사용   – 연주자가 직접 오른손으로 조작하여 내는 연주 방법
5) 조곡의 형식 -  조곡은 고전음악에서 생겨난 것으로 하나의 큰 주제 아래 여러 소품들을 만들어 전체가 하나의 큰 대곡의 형식
                        을  갖추게 되는 형식을 뜻한다.
 
 
 
 
[대표곡 메들리]
 
I'm Beginning to See the Light
Sophisticated Lady
Caravan (Valve Trombone: John Sanders)
I Got It Bad (Alto Sax: Johnny Hod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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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 Ellington-  "Such sweet  thunder"  [조곡] 
 
참고 자료: iTunes U의  Jazz Insight, 김현준의 재즈 파일, History of Jazz: Revised and Updated Edition by Alyn Shipton,  The History of Jazz by Ted Gio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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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wikipedia.org/wiki/Swing_jazz


http://history.just-the-swing.com/swing-history/first-swing-dance

http://www.swingmusic.net/Barnet_Charlie.html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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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13. 09:44
본디는 미국 흑인들의 음악으로 블루 노트[1]
 <음계 중 3도, 5도, 7도음을 반음 내린 것. 블루스 노트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Blue note>
 와 블루스 코드[2] 블루 노트를 사용한 코드들로 주로 7도음을 반음 내린 세븐스(seventh; 7) 코드, 3도음과 7도음을 반음 내린 마이너 세븐스(minor seventh; m7) 코드, 3도음과 5도음을 반음 내린 디미니쉬(diminish; dim) 코드가 있다>

를 이용한다. 또한 전통적으로 발단-전개-절정으로 진행되는 12마디 형식을 사용한다.[3]  메탈, 재즈까지 음악계에 있어서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음악 장르이다. 이름이 블루스인 이유는 처음 블루스가 등장했을 때 분위기가 우울한 가사가 많아 슬프다라는 의미로 블루스가 되었다(서양에서 푸른색은 우울함을 나타내는 색이다). 흑인 영가 재즈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립되었고, 약간 처지고 우울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원 형태였으나 펑크(Funk) 음악의 성립과 함께 리듬 앤 블루스가 출현하면서 다양한 분위기의 블루스 곡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쪽의 본좌라면 델타 블루스의 대가로 불리는 로버트 존슨B.B. King리드벨리존 메이욜(John Mayall) 등이 있다. 좀 더 현대적이고 테크니컬한 블루스라면 스티비 레이 본의 후예라 불리는 존 메이어가 있다.(존 메이어는 팝 블루스가 정확하다)

록커 중 상당수가 나이를 먹으면서 블루스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다. 에릭 클랩튼[4]이 대표적이며, 게리 무어나 제프 벡[5] 같은 사례도 많다. 록 음악이 블루스에서 출발한 것이라 60-70년대에 활동한 록커들은 어린 시절부터 초기 록 음악과 블루스를 같이 들었고, 그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흑인들에 대한 차별에 심할 때에 등장한 음악이라 백인들 중엔 블루스가 퇴폐적이라고 비판한 사람이 꽤 있는데 한국의 블루스에 대한 편견도 여기에 영향 받은듯 하다. 퇴폐적이라 불린 이유는 흑인음악 자체가 하류층 문화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리듬 앤 블루스의 시대가 오면서 제임스 브라운 등이 섹스같은 세속적인 것을 노래해서 그렇기도 하다. 흑인들 중에도 영가는 신성하지만 리듬은 퇴폐적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영화 레이에서 레이의 부인이 그런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1.2 한국의 블루스 

한국에서는 '부루스'라는 국적 불명의 춤 때문에 카바레에서나 들을 법한 퇴폐적인 장르이라는 인상을 준다(예: 사모님, 부루스 한 곡 땡기실까요).

한국에서 블루스라는 장르 자체가 대세가 된 적은 없지만 사실 한국 가요계의 상당부분을 점하고 있는 발라드R&B트로트[6] 모두 블루스의 후예라는 점을 감안하면 루트 음악으로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블루스의 뿌리는 매우 오래 되었으며, 특히 6~70년대 신중현 등 미8군 출신 뮤지션들은 모두 블루스에 음악적 정체성을 두고 있다. 이들은 이나 사이키델릭 음악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고, 뮤지션들이 대마초 파동 때 된서리를 맞을 때 블루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복성[7] 같은 전설적 재즈 드러머가 나온 것도 이 시기인데, 블루스나 라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80년대 신촌블루스는 아예 밴드 이름에 블루스라는 이름을 넣을 정도로 대표적인 블루스 밴드. 당시 히트곡도 상당히 많았다. 김현식한영애 등은 신촌블루스에서 나온 후 솔로 가수로도 성공했는데, 신촌블루스 시절부터 부르던 노래로도 활동했다. 이 외에 사랑과 평화봄여름가을겨울 등의 걸출한 밴드 역시 블루스 밴드로 볼 수 있다. 90년대 중반에 나온 강산에나 윤도현 등의 록커들도 블루스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또 앞서 말한대로 댄스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가요는 블루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블루스 음악가라면 김목경이나 서울불루즈의 김마스타, 하헌진[8]이 있다. 김태춘이나 씨 없는 수박 김대중 등의 인물들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편이다.

2012년 한국의 블루스는 10월에 발매된 블루스 더, Blues를 들으면 좋다.

대한민국의 재즈 1세대들은 실연등의 슬픈 일이 있을때마다 난 이제 블루스를 더 잘 연주할 수 있게 된거야라면서 위안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재능만이 아니라 인생의 경험이 녹아드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상당수의 록커들이 루트 음악을 추구하면서 블루스를 추앙하는 모습을 보이는데,[9] 임재범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가수다 시절, 바비 킴이 술자리에서 음악이야기를 하다가 임재범에게 '형이 블루스에 대해서 뭘 알어?"라고 했다가 임재범의 표정을 보고 아차 했다는 일화를 스스로 밝힌 바 있다.

1.2.1 미디어 


한영애의 리메이크 버젼으로 더 유명한 윤명운의 누구없소.

1.3 세부 장르 

  • 더브
  • 델타 블루스
  • 부기우기
  • 일렉트릭 블루스
  • 점프 블루스
  • 컨트리 블루스
  • 피아노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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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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