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기우기
유무동의 Blues Time - 블루스 이야기 ③
Classic Female Blues의
전성기에서 부기우기의 탄생까지(1)
1920년대 Classic Female Blues와 Country Blues - 블루스의 어머니, 블루스의 여왕의 등장
Robert Johnson에 의해서 그 형식이 완성된 Mississippi Delta Blues는 멤피스를 비롯한 중소 도시나 남부지역에서 유행 하였고 동시대에 시카고를 중심으로 대도시에서는 흑인 여성들의 보컬을 특징으로 한 Classic Female Blues가 전성기를 맞이한다.
여성 블루스 보컬리스트 1호는 Mamie Smith이고, 블루스의 어머니라 불리우는 Ma Rainey, 블루스의 여왕이라 추앙받던 Bessie Smith가 있다.
대부분의 여성 블루스 주자들은 Vaudeville (민스트럴 쇼와 영국식 극장 쇼를 결합한 형태)이나 유랑극단의 텐트 쇼 등에서 노래하던 사람들이었다. 주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고 간혹 대규모 밴드를 배경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그 내용은 주로 가난, 학대, 파경, 삶의 고뇌, 성적 표현 등 초기노동요의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블루스의 여왕, Bessie Smith의 비극적인 죽음
당시 이들은 선택받은 소수의 흑인이었지만 몇몇 여성 보컬리스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블루스 주자들은 거칠고 빈곤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었다. 당대의 블루스는 주로 시골이나 도시빈민으로 살아가는 흑인들을 위한 음악이었다. 여전히 백인들에게 블루스는 여전히 저속하고 상스러운 음악이었고 블루스 연주자들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일례로 Bessie Smith의 1923년도 앨범이 80만장 정도 판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공연을 위해 미시시피로 가는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고, 백인들만 응급차에 구조되고 단지 흑인 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치료가 거부되어 끝내 출혈과다로 숨지게 된다. 이와 같은 사실도 20년이 지난 후에 밝혀진다.
이처럼 백인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던 블루스가 1930년대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부기우기, 피아노 블루스의 출현이다.
1930년대 부기우기의 출현 - 경제공황기의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다
부기우기(boogie woogie)는 1920년대 중후반 흑인 피아니스트들이 고안한 피아노 블루스의 특이한 주법으로, 베이스 리듬을 1마디에 8박으로 잡고, 반복하는 펼침 화음을 타고 오른손으로 자유로이 애드립하는 형태, 4/4박자인데 8박자로 들리는 빠른 템포의 음악으로 블루스 화성진행을 토대로 한 피아노의 반복적인 왼손 베이스가 특징인, 즉, 빠르고 흥겨운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외치는 듯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블루스의 한 장르이다.
1930년대에 전축과 라디오의 일반적인 보급으로 재즈와 백인들의 팝이 중흥기를 맞이하며 블루스는 일시적인 침체기로 접어들 때 새로운 형식의 블루스가 출현하는데 그것이 바로 부기우기이다. 부기우기는 1920년대 중반 주로 싸구려 술집(Honk-Tonk)에서 연주되던 컨트리 블루스의 일종이었는데 1920년대 말에 도시에 전파되고 음반으로도 제작되어 점차 일반인과 백인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경제공황기인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재즈를 연주하는 빅밴드보다 저비용이라는 이점을 안고 널리 백인사회에도 유행하게 된다. 부기우기는 그 음악이 갖고 있는 특징처럼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일신하며 1940년대까지 유행하며 이후 백인들의 대표음악으로 자리매김하는 로큰롤 (Rock-흔들다, Roll-구르다 1920년대 초반 컨트리블루스와 클래식 여성 블루스에서 널리 쓰이던 블루스 용어로서 로큰롤은 한 때 백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합성어였다.)에 널리 도입된다. (다음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글 유무동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사무국장 / 음악평론가
유무동의 Blues Time - 블루스 이야기④
부기우기를 말하다(2)
글 유무동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사무국장 / 음악평론가
부기우기, 록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다
흔히 부기우기를 Barrelhouse Music이라고 한다. 즉 흑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던 통나무로 만든 싸구려 술집 음악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부기우기의 등장은 블루스뿐 아니라 재즈, 당시의 대중음악에 크나큰 전환점을 마련한다. 부기우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 마침내 빅밴드에서 부기우기와 점프 스타일의 블루스를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마침내 그 Jump Blues는 록큰롤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백인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록큰롤(원래 섹스용어였음)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대중음악의 형성과정에 있어서 블루스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록의 탄생’에 관여한 것이었다. 1950년대 후반, 록큰롤이 유행하면서 백인들이 블루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블루스 음악을 백인들의 취향에 맞게 가공하면서 록음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블루스 리바이벌과 록음악의 탄생이 이뤄진 곳은 블루스의 발상지인 미국이 아닌 대서양 건너 영국 땅 이었다. Cyril Davies, Alexis Korner, John Mayall과 같은 백인 블루스 뮤지션들이 블루스 음악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Rolling Stones, Beatles, Pretty Things같은 밴드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우상이 흑인 블루스맨들과 그들의 음악임을 밝혔고, “브리티시 리듬 앤 블루스”로 불리는 영국 특유의 블루스 음악이 록으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당대에도 블루스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에서 성행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독일을 중심으로 중북부유럽에서 블루스 페스티발, 콘서트 등이 미주보다 자주 열리며 성행하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영국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모여든 히피들이 포크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른바 Acid Rock이라는 음악과 Texas를 중심으로 태동한 Country Music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Janis Joplin이 등장하면서 포크에 국한 되어있던 히피들의 관심은 블루스 음악으로 확장되었고 B.B. King, Luther Allison, Buddy Guy같이 블루스맨들이 대중에게 평가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블루스는 재즈에 속한 장르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록큰롤의 탄생과 함께 블루스는 독자적인 기원과 형식 그리고 발전과정을 가진, 재즈와는 별개의 장르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가장 오래된 대중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천대 받던 블루스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24년의 짧은 삶, 그러나 위대한 부기우기 연주자 Pinetop Smith
부기우기 스타일을 완성한 것은 Clarence Pinetop Smith(1904~1929)라는 설과 Charlie Cow Cow Davenport(1894~1955)라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두 가지 설이 있다. 분명한 것은 부기우기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Pinetop Smith라는 것이 지론이다. 후에 출현하는 Robert Johnson이 델타블루스 스타일을 완성하면서 블루스 전반에 공헌을 했다면 Pinetop Smith는 Piano Blues, Boogie Woogie라는 블루스 장르를 세상에 알리고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한 공로자이다.
본명 Clarence Smith, 그는 1904년 6월 11일 Alabama Troy에서 태어나고 Birmingham에서 자랐다. 그의 닉네임 Pinetop은 어릴 적 그가 즐겨 올랐던 나무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920년 그는 17살에 T.O.B.A.(Theater Owners Booking Association) Vaudeville에서 피아니스트뿐만 아니라 싱어,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면서 블루스의 어머니라 불리던 Ma Rainey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1928년에 녹음을 위해 시카고로 이주하는데 당대 가장 유명했던 피아노 연주자인 Albert Ammons, Meade Lux Lewis와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녹음을 준비한다. 드디어 동년 12월 29일 피아노 블루스의 역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곡을 녹음하는데 그 곡이 바로 Pine Top's Boogie Woogie이다. Smith는 이듬해 다른 녹음 스케줄을 준비하는 과정에 시카고의 작은 댄스홀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총상을 입고 24년의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그는 부기우기 주자 Albert Ammons와 Pete Johnson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고, 1938년 Tommy Dorsey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그의 곡 Boogie Woogie를 다시 정리해 녹음한다. 이 앨범이 2차 세계대전 이후 400만장 이상 팔리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고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게 된다.
아쉽게도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여 그의 앨범 자켓이나 사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참여예정 뮤지션이 추천하는 블루스 명반
성명 Rodrigo Eberienos 나이 34 국적 Brasil
직업 Professional Harmonica Player,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참여예정 뮤지션
========
Jump Blues
글 유무동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사무국장 / 음악평론가
점프 블루스, ‘Rock & Roll’을 탄생시키다
점프 블루스란 도약을 나타내는 ‘점프’라는 타이틀을 가진 블루스인데, 말 그대로 활기찬 리듬이 두드러진 블루스이다.
1930년대 말 생겨난 이것은
기존의 블루스에 부기우기와 셔플리듬의 약동적이고 리드미컬한 요소가 첨가되어 활달하고 경쾌하다. 즉 스윙재즈, 부기우기, 블루스가 믹스되어 신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흡사 스윙재즈처럼 들리기도 한다. 당시 재즈의 스윙 영향을 받아 엔터테이너적인 요소가 두드러지고, 익살맞은 내용과 음악 분위기를 연출하는 댄스용 음악이기도 하다. 연주 시에는 색소폰과 같은 관악기와 혼 섹션이 첨가되어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블루스가 재즈에서 파생됐다고 오해를 받게 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점프 블루스는 40년대 중반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초창기 R&B의 이전 단계라 할 수 있다. R&B로 이름이 바뀐 점프 블루스는 이후 인종에 관계없이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게 되며, 백인들의 음악적 영감을 상당히 자극시키게 된다. 이 R&B는 많은 백인 뮤지션들이 커버하게 되고, 급기야 ‘Rock & Roll’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초창기의 R&B는 작금의 R&B와는 음악적으로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초창기 백인 로큰 롤러들의 출신 지역이 블루스가 유행하던 내쉬빌 이남의 남부 지역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Rock & Roll’의 최초 주자는 재즈 뮤지션 Louis Jordan
부기우기, 점프블루스가 ‘Rock & Roll’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과연 최초의 ‘Rock & Roll’은 누가 만들었을까?
Louis Jordan(1906-1975), 빅밴드에서 섹소폰 주자로 활동하던 재즈 뮤지션이었다.
왜, 재즈뮤지션이 로큰롤의 최초 주자였을까? 그의 태생과 성장배경을 보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루이스는 아칸사스 브링클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남쪽에 재즈의 메카 뉴올리언스, 동쪽으로 델타블루스의 성지라 불리는 미시시피, 동북쪽으로는 컨트리 음악의 중심지 내슈빌, 서쪽은 텍사스, 더군다나 그의 부친은 음악가였다. 집안과 주변의 환경이 그에게 음악적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것이다.
30년대 초 뉴욕으로 진출, 36년 그 유명한 Ella Fitzgerald가 메인싱어로 있던 Savoy Ballroom 오케스트라에 가입한다. 그는 밴드에서 연주뿐 아니라 노래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인다. 드디어 30년대 후반 자신의 밴드 Louis Jordan and Tympany Five를 결성하더니 40년대 초반 ‘You’re My Meat.’라는 곡을 발표하며 히트를 한다. 이어 1945년 발표한 ‘Caldonia’는 대히트를 기록한다. 이 ‘Caldonia’(B.B. King의 원곡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라는 곡이 최초의 Rock & Roll이다.
원래 재즈뮤지션이었으나 최초의 크로스오버 아티스트이며 로큰롤의 모든 요소를 만들었다.
가장 큰 그의 공로는 당대 백인들에게 Race Music이라고 불리며 천대받던 블루스를 40년대 후반부터 리듬앤블루스(당대의 리듬앤블루스와 다름) 라고 불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50년대 중반까지 블루스를 리듬앤블루스라 불렀다.
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블루스라는 음악에 인종차별적 요소는 거의 없어진다.
Blues Festival For Peace In Korea
해외 조직위원이 추천하는 블루스 명반
성명 Ken Koll 국적 미국 나이 58
직업 플로리다 항만 총감독, 블루스음반 수집가
E-Mail kkoll20@yahoo.com
David Landon - I Like It Too Much (2012) Mr. Landon is once again joined in the studio by his blues lover’s dream band featuring Steve Evans on bass (Ray Manzarek, Roy Rodgers), Randy Hayes on drums (Chris Cain, Coco Montoya) and Tony Stead on organ (Sly Stone, Tommy Castro). Special guests include Melvin Seals (Jerry Garcia Band), Steve Willis (Elvin Bishop) and Alvon Johnson, as well as a 4-piece horn section made up of the bay area’s best players.
Jack Derwin - Covered All In Blue (2013) Australian contemporary musician, delivers a blend of his own blues/jazz/roots and acoustic compositions, plus standards with originality.
Kevin Selfe - Long Walk Home (2013)Kevin Selfe is a man who has dedicated his life to the blues. For more than a decade, he has been sharing that love and dedication with audiences from coast to coast, building a loyal following wherever his energetic mix of traditional and contemporary blues is heard.
<셔플> ~~~~~~~~~~~~~~~~~ <스트레이트 >
반대 개념
- 셔플
- 스트레이트
동해안 블루스
A) 스타일. - 애팔래치아 산맥을 둘러싼 전 지역(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켄터키, (동)테네시, 조지아)에서는 매우 특이한 블루스가 발달했다. 이 블루스는 델타의 드라마틱하고 신랄한 블루스보다 훨씬 가벼운 것이었다. 비록 그 구조는 동일하지만, 델타의 엇박자 리듬이 여기서는 번갈아 이어지는 베이스음의 규칙적인 효과로 대체되었다. 이것은 무사태평하고 느긋한 인상을 만들어냈고, 래그타임이라고 불리는 매우 특이한 기타 스타일을 창조한 대부분의 뮤지션들의 뛰어난 악기 솜씨에 의해 그러한 인상은 더욱더 드러났다. 그리고 이러한 기타 스타일의 먼 기원은 아마도 플로리다를 따라 이어지는 카리브 해의 섬들에서 비롯된 것 같다.
어쨌든 남부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이 지역에서 인종차별과 인종분리는 덜 강했기에 흑인들에게는 보다 평온한 삶의 조건이 창출되었으며, 이는 음악에도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초의 음반 녹음들에서부터 샘 맥 기(Sam Mac Gee)(Depot blues)와 같은 백인 뮤지션들의 스타일과 블라인드 블레이크(Blind Blake)와 같은 흑인 뮤지션들의 스타일을 구분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로 봐서 근거가 있다. 마찬가지로, 1925년부터 흑인 하모니카연주자인 드 포드 베일리(De Ford Bailey)는 내쉬빌에서부터 방송된 컨트리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인 <그랜드 올드 오프리>(Grand Old Opry)의 스타였다. 이런 일은 델타 지역이나 텍사스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백인들과 흑인들에게 공통된 음악 레퍼토리를 발견한다고 놀랄 필요가 없다. 이들의 레퍼토리는 블루스와 래그타임의 코드에 기초를 두며, 자주 앵글로 색슨의 발라드 전통에서 자유롭게 끌어낸 이야기를 자주 노래하고, 중심 주제는 실패한 사랑이었다. 기타 솔로(그리고 때때로 하모니카, 바이올린, 만돌린 솔로)는 각 뮤지션이 자신의 솜씨를 증명할 기회였다.
오늘날 동해안의 이 음악 전통의 여러 곡들은 미국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민속음악에 속한다.
---
동해안 블루스의 주요 창시자들: a) 블라인드 블레이크(Blind Blake)
a) 블라인드 블레이크(Blind Blake, 1890-1935년경)
블라인드 블레이크는 1926년과 1932년 사이에 많은 음반을 녹음했으나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래그타임 기타의 진정한 선구자이며, 그의 오른손 연주의 섬세함과 능란함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그토록 대중화된 이 기타 스타일의 많은 추종자들에게 아직도 경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블라인드 블레이크는 동해안의 백인음악과 흑인음악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발휘했다. (곡들로는 Southern rag, No dough blues, Rope stranger blues)
-----
동해안 블루스의 주요 창시자들. b) 블라인드 윌리 맥텔(Blind Willie McTell)
b) 블라인드 윌리 맥텔(Blind Willie McTell, 1901-1959)
(애틀랜타의 한 호텔방에서 녹음하는 맥텔. 당시에 존 로맥스John Lomax가 블루스맨들을 찾아다니며 녹음을 한 것은 유명하다)
블라인드 윌리 맥텔 또한 주목할만한 기타리스트로서 매우 어려운 12줄 기타의 전문가였다. 애틀랜타 주변에서 매우 유명했던 그는 맹인 뮤지션으로서 행인들의 요구에 따라 길이나 시장, 혹은 주차장 주위에서 노래하고 연주했다. 맥텔은 1927년에서 1956년 사이에 많은 음반을 녹음했으며, 맑고 높은 목소리, 악기 연주 솜씨, 그리고 폭넓은 레퍼토리는 그로 하여금 블루스 역사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확보하게 해주었다. (곡들: Love changin' blues, Savannah blues, Southern can is mine, Stateboro blues)
------------
동해안 블루스의 주요 창시자들. c) 레버런드 게리 데이비스(Reverend Gary Davis, 1896-1972)
c) 레버런드 게리 데이비스(Reverend Gary Davis, 1896-1972)
우선 블라인드 블레이크의 영향을 받았던 게리 데이비스는 자신의 시력을 앗아간 사고 이후 종교로 전향했다. 그래서 뉴욕 거리의 설교자가 된 그는 기타연주에 종교적 노래들을 적용함으로써, 60년대의 <포크> 기타리스트 세대(스테판 그로스만Stefan Grossman, 데이브 반 론크Dave Van Ronk) 전체에 대단한 영향을 준 멜로디 스타일을 완성했다.
(크로스로드 콘서트에서 에릭 클랩튼과 함께한 스테판 그로스만, 그의 기타교재는 여러권 있다)
(얼클루와 스테판 그로스만)
(데이브 반 론크)
비록 게리 데이비스는 블루스 역사에서 다소 부차적 인물로 나타나지만, 낭독조의 노래와 악기연주 솜씨를 통해 그의 작품은 진정으로 뛰어난 독창적 작품이 되었다. 그는 말년에 많은 음반 녹음을 하기도 했다.(곡들: Death don't have mercy, Motherless children, Lord, I'll be always with you)
(Durham, North Carolina: 게리 데이비스가 이주했던 곳
---------
동해안 블루스의 주요 창시자들. d) 블라인드 보이 풀러(Blind Boy Fuller, 1903-1940)
d) 블라인드 보이 풀러(Blind Boy Fuller, 1903-1940)
블라인드 보이 풀러는 비록 앞에 언급된 세 사람, 블라인드 블레이크, 블라인드 윌리 맥텔, 레버런드 게리 데이비스보다 기타 솜씨가 훨씬 떨어졌지만, 동해안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흑인 뮤지션이었다. 때때로 그는 동해안 스타일의 진정한 창시자로 간주되는데, 이는 블레이크와 데이비스로부터 영감을 받고, 베이스를 과장되게 연주함으로써 이들을 단순화한 그의 기타 연주와 유머로 가득한 것이 많은 그의 독창적인 레퍼토리(Step it up and go, 1000 women, Truckin' little women)가 1940년 이후에 동해안 지역의 거의 모든 블루스맨들에게서 다시 발견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영향은 끊임없이 담배 재배 지역(버지니아, 캐롤라이나)의 모든 도시들을 두루 돌아다닌 그의 큰 기동성과 제작자인 제이 비 롱(J. B. Long)의 상업 감각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될 수도 있겠다.
(버지니아의 담배밭)
여러 뮤지션들이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이후에 블라인드 보이 풀러의 명성을 계속 이어갔고, 브라우니 맥 기(Brownie Mac Ghee) 같은 이는 얼마 동안 그의 이름을 쓰기까지 했다.
(블라인드 보이 풀러의 추도 비석)
------
동해안 블루스의 주요 창시자들. e) 조쉬 화이트(Josh White, 1908-1969)
e) 조쉬 화이트(Josh White, 1908-1969)
(1935년의 조쉬 화이트)
조쉬 화이트 역시 래그타임 기타의 위대한 명인이
었다. 비록 코드들을 끊어서 한 음 한 음을 교차로
하여 멜로디 라인을 연주하는 그의 스타일에 절충
적인 로니 존슨의 영향이 보이기는 해도 말이다.
(1945년)
1945년 이후에 뉴욕의 <포크>계에 동화되고 이때
부터 점점 더 작위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성
향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1932년과 1936년 사이에
녹음된 그의 음반들(Ball and chain, Delia, Jim Crow
train, Silicosis blues)의 탁월성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1955년)
[출-------처] 블루스 역사 34. 동해안 블루스|작성자 스윙맨
f) 소니 테리(Sonny Terry, 1911-1986)
(브라우니 맥 기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가 있는 소니 테리는 매
우 허스키하고 빈정거리는 듯한 목소리의 가수이
며, 여기에 애팔래치아 지역의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둔 하모니카 명인의 스타일이 더해졌다. 그의 하
모니카 스타일은 백인 음악과 흑인 음악의 중간 단
계이다. 소니 테리는 처음에는 게리 데이비스와 블
라인드 보이 풀러의 반주를 해주다가, 자연스럽게
브라우니 맥 기와 함께했다.
그는 브라우니 맥 기와 함께 블루스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래 지속된 듀오들 가운데 하나를 만들어냈
다. 맥 기와 함께 테리가 녹음한 몇몇 곡들(Train
blues, Whoopin' the blues, Pick a bale of cotton)은
잊을 수 없는 곡들이며, 미국과 특히 유럽의 많은
하모니카 연주자들에게 미친 그의 영향은 매우 컸다.
래그타임 Rag time
Rag란 ‘일그러졌다’ 라는 뜻이며, Time이란 악보의 한 마디를 뜻하는 것이다.
즉, 리듬이 엉망이라는 뜻으로 래그타임을 쉽게 이야기한다.
단순히 래그라고도 한다. 재즈를 낳은 여러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 미시시피와 미주리 강 유역에서 활동한 홍키 통크(Honkytonk :
원래 싸구려 술지브 연예장을 뜻하는 흑인 속어이며 그곳에서 연주하던 소박하고
즉흥적인 음악양식을 말함)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순회극단 쇼의 노래, 흑인 밴조(기타와 비슷한 미국의 재즈 및 민속악기) 음악,
케이크워크(CakeWalk : 19세기말 미국에서 발생해서 유럽에까지 유행한 사교춤)의
당김음 리듬, 유럽 음악 요소 등의 영향을 받았다.
Classic Banjo
래그타임은 형식적 구성감이 있는 피아노 곡을 통해 특유의 표현을 이루었고,
왼손으로는 4/4박자나 2/4박지와 같이 규칙적 리듬을 치는 한편, 오른손으로는
빠르고 힘찬 당김음 선율로 앞으로 나가려는 추진력을 표현했다.
곡은 유럽의 오락 음악인 마치, 폴카, 카드리유 따위 형식의 것이 많고,
즉흥연주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1900년경부터는 흑인 및 백인의 밴드 연주도 이것을 도입하고,
뉴올리안즈의 마칭 밴드에도 들어 있어서 재즈의 한 원류가 되었다.
Jazz도 초기에는 래그타임이라 불린 적이 있다. 양장의 커다란 차이는,
래그타임이 작곡된 악보대로 연주했던 것에 대해 재즈는 암보로 자기류로
분해(分解)해서 연주하고, 나중에는 즉흥연주에 의한 독주를 중시하게 된 점이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스캇 조플린(Scott Joplin 1868-1917,
미국 텍사스‘래그타임의 왕’)과 젤리 롤 모턴(Jelly Roll Morton)이다.
예로써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스팅의 주제가 ‘The Entertaner’를 들을 수 있다.
1899년 초기 래그타임 작품 중 가장 성공적인 <The Maple Leaf Rag>를 발표했다.
그는 래그타임을 고전음악의 영원하고도 진지한 한갈래로 간주했으며
이 양식으로 수백 곡의 소품, 연습곡,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밖에 중요한 연주가 중
세인트루이스에서 활동한 인물로 루이스 쇼빈,
토머스 M. 터핀(세인트루이스 래그타임의 아버지)을 들 수 있고, 뉴올리언스에서
활동한 인물로 토니 잭슨이 있다.
20세기 후반에 테리 월도의 <이것이 래그타임 This is Ragtime>(1976)은
초창기의 래그타임과 20세기 후반 래그타임의 부활을 다 같이 다루고 있다.
[출처] ★래그타임-Ragtime★ (1870)|작성자 Body N Soul
----------------------------------------------------------------
피드몬트 블루스
피드몬트 블루스(Piedmont Blues, 아파라치안 산맥 기슭에서 백인 포크, 컨트리와 혼합된 블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