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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포크송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포크송(folksong)이란 한국어의 '민요'에 해당하는 말이나,
뉘앙스가 좀 다르다. 보통 포크송이라 하는 경우에는 러시아 민요,
앵글로색슨 국가의 민요를 가리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 미국이나 캐나다 원주민들의 음악은 제외한다.
이러한 음악은 월드뮤직이지 포크가 아니다.
잉글랜드 민요가 미국 민요에 영향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민요도 포함하는 것이다. 비영어권 국가의 민요는
월드뮤직으로 분류한다. 그것도 전승적인 옛 민요와
새로운 창작민요를 모두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포크송(folksong)이란 한국어의 '민요'에 해당하는 말이나,
뉘앙스가 좀 다르다. 보통 포크송이라 하는 경우에는 러시아 민요,
앵글로색슨 국가의 민요를 가리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 미국이나 캐나다 원주민들의 음악은 제외한다.
이러한 음악은 월드뮤직이지 포크가 아니다.
잉글랜드 민요가 미국 민요에 영향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민요도 포함하는 것이다. 비영어권 국가의 민요는
월드뮤직으로 분류한다. 그것도 전승적인 옛 민요와
새로운 창작민요를 모두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목차
종류[편집]
트래디셔널송[편집]
포크송 가운데서 민중의 입과 귀로 전해 내려오는
작자 불명의 것을 '트래디셔널 포크송' 또는
'트래디셔널송'(Traditional song)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선 '전승민요(傳承民謠)'라 한다.
민요란 말을 엄밀한 뜻으로 쓸 때에는
'트래디셔널송'과 같은 뜻이 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중 하나가 발라드이다.
발라드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문체로 되어 있는 고전 포크송을 뜻한다.
미국에서 가장 트래디셔널 포크송을 풍부하게 전하고 있는 곳이
애팔래치아 산맥 지방의 남반부인데, 일반적으로 이 지역을 '서던 마운틴'(Southern Mountain)이라 부르고 있다. 주 이름으로 말하면 켄터키 주와 테네시 주의 동부와 버지니아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서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서북단, 조지아 주의 북단이 포함된다. 또 캔자스 주와 오클라호마 주에 걸치는 오자크 대지를 서던 마운틴에 넣는 사람도 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개발이 늦은 농촌지대로서 이른바 '푸어 화이트'(Poor white)의 집합소로 변하고 있으나, 이 곳 주민들은 초기에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이민해 와서 이 산악지대에 대대로 정착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게다가 교통이 불편하여 외부와의 접촉이 적기 때문에 조상이 유럽에서 가져온 민요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는 예가 종종 발견된다. 대표하는 곡은 다음과 같다. 한글 발음-뜻-알파벳 표기-국적 순으로 나열했다.
- 셰넌도아-셰넌도아-Shennandoah-미국
- 블로 이 윈즈-바람아, 불어라-Blow, Ye Winds-미국
- 홀 어웨이 조-당겨라, 조야-Haul Away Joe-미국
- 문샤이너-밀수 업자-Moonshiner-미국
- 양키 두들-미국인 하찮은 것-Yankee Doodle-미국
- 블랙 이즈 더 컬러 어브 마이 러브스 헤어-내 사랑의 머리카락 색깔은 검은색이다-Black is the Color of My Loves Hair-미국[1]
- 페기 고든-페기 고든-Peggy Gordon-캐나다[2]
- 뱅크스 어브 뉴펀들랜드-뉴펀들랜드의 둑-Banks of Newfoundland-캐나다
- 그린슬리브즈-초록빛 소매-Greensleeves-잉글랜드
- 리빙 어브 리버풀-리버풀 떠나기-Leaving of Liverpool-잉글랜드
- 더 워터 이즈 와이드-바다가 넓다-The Water is Wide-잉글랜드
- 스카보로 페어-스카보로 시장-Scarborough Fair-잉글랜드
- 머메이드-인어-Mermaid-잉글랜드
- 뱅크스 어브 더 스위트 프림로지스-향기로운 앵초가 핀 둑-Banks of the Sweet Primroses-잉글랜드
- 로즈 어브 알렌데일-알렌데일의 장미꽃-Rose of Allendale-잉글랜드(찰스 제프리스(Charles Jeffreys) 작사, 시드니 넬슨(Sidney Nelson) 작곡)
- 올 퍼 미 그로그-모두 내 그로그(칵테일 종류)를 위해-All for me Grog-잉글랜드
- 이즌 잇 그랜드 보이스-소년들이여, 대단하지 않은가?-Isn't it grand, Boys?-잉글랜드
- 대니 보이-소년 대니-Danny Boy-잉글랜드(프레드릭 웨덜리 작사, 전통 가락)
- 월칭 마틸다-왈츠를 추는 마틸다-Waltzing Matilda-호주(밴조 패터슨)[3]
-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남 호주-South Australia-호주
포크송 가운데서 민중의 입과 귀로 전해 내려오는
작자 불명의 것을 '트래디셔널 포크송' 또는
'트래디셔널송'(Traditional song)이라 한다.
우리 나라에선 '전승민요(傳承民謠)'라 한다.
민요란 말을 엄밀한 뜻으로 쓸 때에는
'트래디셔널송'과 같은 뜻이 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중 하나가 발라드이다.
발라드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문체로 되어 있는 고전 포크송을 뜻한다.
미국에서 가장 트래디셔널 포크송을 풍부하게 전하고 있는 곳이
애팔래치아 산맥 지방의 남반부인데, 일반적으로 이 지역을 '서던 마운틴'(Southern Mountain)이라 부르고 있다. 주 이름으로 말하면 켄터키 주와 테네시 주의 동부와 버지니아 주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서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서북단, 조지아 주의 북단이 포함된다. 또 캔자스 주와 오클라호마 주에 걸치는 오자크 대지를 서던 마운틴에 넣는 사람도 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개발이 늦은 농촌지대로서 이른바 '푸어 화이트'(Poor white)의 집합소로 변하고 있으나, 이 곳 주민들은 초기에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이민해 와서 이 산악지대에 대대로 정착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게다가 교통이 불편하여 외부와의 접촉이 적기 때문에 조상이 유럽에서 가져온 민요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는 예가 종종 발견된다. 대표하는 곡은 다음과 같다. 한글 발음-뜻-알파벳 표기-국적 순으로 나열했다.
- 셰넌도아-셰넌도아-Shennandoah-미국
- 블로 이 윈즈-바람아, 불어라-Blow, Ye Winds-미국
- 홀 어웨이 조-당겨라, 조야-Haul Away Joe-미국
- 문샤이너-밀수 업자-Moonshiner-미국
- 양키 두들-미국인 하찮은 것-Yankee Doodle-미국
- 블랙 이즈 더 컬러 어브 마이 러브스 헤어-내 사랑의 머리카락 색깔은 검은색이다-Black is the Color of My Loves Hair-미국[1]
- 페기 고든-페기 고든-Peggy Gordon-캐나다[2]
- 뱅크스 어브 뉴펀들랜드-뉴펀들랜드의 둑-Banks of Newfoundland-캐나다
- 그린슬리브즈-초록빛 소매-Greensleeves-잉글랜드
- 리빙 어브 리버풀-리버풀 떠나기-Leaving of Liverpool-잉글랜드
- 더 워터 이즈 와이드-바다가 넓다-The Water is Wide-잉글랜드
- 스카보로 페어-스카보로 시장-Scarborough Fair-잉글랜드
- 머메이드-인어-Mermaid-잉글랜드
- 뱅크스 어브 더 스위트 프림로지스-향기로운 앵초가 핀 둑-Banks of the Sweet Primroses-잉글랜드
- 로즈 어브 알렌데일-알렌데일의 장미꽃-Rose of Allendale-잉글랜드(찰스 제프리스(Charles Jeffreys) 작사, 시드니 넬슨(Sidney Nelson) 작곡)
- 올 퍼 미 그로그-모두 내 그로그(칵테일 종류)를 위해-All for me Grog-잉글랜드
- 이즌 잇 그랜드 보이스-소년들이여, 대단하지 않은가?-Isn't it grand, Boys?-잉글랜드
- 대니 보이-소년 대니-Danny Boy-잉글랜드(프레드릭 웨덜리 작사, 전통 가락)
- 월칭 마틸다-왈츠를 추는 마틸다-Waltzing Matilda-호주(밴조 패터슨)[3]
-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남 호주-South Australia-호주
셀틱 포크송[편집]
켈트족 국가인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포크 음악이다. 그냥 '포크' 라고 하는 경우에는 미국, 캐나다, 잉글랜드 등, 앵글로색슨 문화가 강세인 지역의 고전 포크송을 가리킨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도 영어권 국가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의 포크 음악은 포크로 분류한다. 그러나 민족이 켈트족으로 완전히 다르고, 따라서 '켈트 문화권' 이라는 한 문화권을 형성하기 때문에 별도로 아일랜드 포크, 스코틀랜드 포크로 분류한다. 그러나 같은 켈트 문화권이라도,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와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는 언어가 영어가 아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켈트 음악은 월드뮤직으로 분류한다. 민족적 성격이 강하며, 미국 포크에서 사용되는 악기 가운데 리코더는 틴 휘슬로, 드럼은 보란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자세한 내용은 스코틀랜드의 포크 음악, 아일랜드의 포크 음악 참조.
켈트족 국가인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포크 음악이다. 그냥 '포크' 라고 하는 경우에는 미국, 캐나다, 잉글랜드 등, 앵글로색슨 문화가 강세인 지역의 고전 포크송을 가리킨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도 영어권 국가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의 포크 음악은 포크로 분류한다. 그러나 민족이 켈트족으로 완전히 다르고, 따라서 '켈트 문화권' 이라는 한 문화권을 형성하기 때문에 별도로 아일랜드 포크, 스코틀랜드 포크로 분류한다. 그러나 같은 켈트 문화권이라도,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와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는 언어가 영어가 아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켈트 음악은 월드뮤직으로 분류한다. 민족적 성격이 강하며, 미국 포크에서 사용되는 악기 가운데 리코더는 틴 휘슬로, 드럼은 보란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자세한 내용은 스코틀랜드의 포크 음악, 아일랜드의 포크 음악 참조.
모던 포크송[편집]
모던 포크송(Modern Folksong)은 '트래디셔널송'에 대하여 민요풍인 창작곡을 가리키는 말이다. 트래디셔널송을 편곡하여 새로운 감각으로 처리한 것도 포함하는 수가 많다. 신작 민요나 새 감각으로 편곡된 민요를 전문으로 노래하는 사람을 '모던 포크 싱어'라 부르고 있으며, 피트 시거, 존 바에즈, 밥 딜런 등등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대표하는 곡은 다음과 같다. 한글 발음-뜻-알파벳 표기-국적(작곡자) 순으로 나열했다.
- 웨어 해브 올 더 플라워스 건-꽃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미국(피트 시거, 조 하이커슨)
- 이프 아이 해드 어 해머-만일 내가 망치를 갖고 있다면-If I Had a Hammer-미국(피트 시거, 리 헤이스)
- 웬 더 십 컴스 인-배가 들어올 때에-When the Ship Comes In-미국(밥 딜런)
- 램블링 갬블링 윌리-떠돌아다니며 도박하는 윌리-Rambling, Gambling Willie-미국(밥 딜런)[4]
- 레스틀리스 페어웰-쉴 틈 없는 이별-Restless Farewell-미국(밥 딜런)[5]
- 블로잉 인 더 윈드-부는 바람-Blowing in the Wind-미국(밥 딜런)
- 다이아몬즈 앤 러스트-다이아몬드와 녹슨 철-Diamonds and Rust-미국(존 바에즈)
- 더치맨-네덜란드 사람-Dutchman-미국(마이클 피터 스미스)
- 위 섈 오버컴-우리는 극복할 것이다-We Shall Overcome-미국(찰스 앨버트 틴들리(Charles Albert Tindley)의 원곡을 약간 변형)
- 스트레인지스트 드림-가장 이상한 꿈-Strangest Dream-미국(에드 맥커디(Ed McCurdy))
- 어 플레이스 인 더 콰이어-합창단의 한 자리-A Place In The Choir-미국(빌 스테인스(Bill Staines))
- 로저빌 페어-로저빌 시장-Roseville Fair-미국(빌 스테인스)
- 앤 더 밴드 플레이드 월칭 마틸다-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호주(에릭 보글(Eric Bogle))
- 노 맨스 랜드/그린 필즈 어브 프랜스/윌리 맥브라이드-No Man's Land/Green Fields of France/Willie McBride-아무도 없는 땅/프랑스의 푸른 벌판/윌리 맥브라이드-호주(에릭 보글)[6]
- 스트리츠 어브 런던-런던 거리-Streets of London-잉글랜드(랄프 맥텔(Ralph McTell)
- 피들러스 그린-천국-Fiddler's Green(존 코놀리(John Conolly))
- 바레츠 프라이비티어스-바렛의 사나포선-Barret's Privateers-캐나다(스탠 로저스(Stan Rogers))
- 메리 엘렌 카터-메리 엘렌 카터-Mary Ellen Carter-캐나다(스탠 로저스)
- 얼리 모닝 레인-이른 아침 비-Early Morning Rain-캐나다(고든 라이트풋)
- 토크 투 미 어브 멘도시노-멘도시노에게 내 얘기를 해 줘요-Talk to me of Mendocino-캐나다(케이트 맥가리글(Kate McGarrigle))
모던 포크송(Modern Folksong)은 '트래디셔널송'에 대하여 민요풍인 창작곡을 가리키는 말이다. 트래디셔널송을 편곡하여 새로운 감각으로 처리한 것도 포함하는 수가 많다. 신작 민요나 새 감각으로 편곡된 민요를 전문으로 노래하는 사람을 '모던 포크 싱어'라 부르고 있으며, 피트 시거, 존 바에즈, 밥 딜런 등등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대표하는 곡은 다음과 같다. 한글 발음-뜻-알파벳 표기-국적(작곡자) 순으로 나열했다.
- 웨어 해브 올 더 플라워스 건-꽃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미국(피트 시거, 조 하이커슨)
- 이프 아이 해드 어 해머-만일 내가 망치를 갖고 있다면-If I Had a Hammer-미국(피트 시거, 리 헤이스)
- 웬 더 십 컴스 인-배가 들어올 때에-When the Ship Comes In-미국(밥 딜런)
- 램블링 갬블링 윌리-떠돌아다니며 도박하는 윌리-Rambling, Gambling Willie-미국(밥 딜런)[4]
- 레스틀리스 페어웰-쉴 틈 없는 이별-Restless Farewell-미국(밥 딜런)[5]
- 블로잉 인 더 윈드-부는 바람-Blowing in the Wind-미국(밥 딜런)
- 다이아몬즈 앤 러스트-다이아몬드와 녹슨 철-Diamonds and Rust-미국(존 바에즈)
- 더치맨-네덜란드 사람-Dutchman-미국(마이클 피터 스미스)
- 위 섈 오버컴-우리는 극복할 것이다-We Shall Overcome-미국(찰스 앨버트 틴들리(Charles Albert Tindley)의 원곡을 약간 변형)
- 스트레인지스트 드림-가장 이상한 꿈-Strangest Dream-미국(에드 맥커디(Ed McCurdy))
- 어 플레이스 인 더 콰이어-합창단의 한 자리-A Place In The Choir-미국(빌 스테인스(Bill Staines))
- 로저빌 페어-로저빌 시장-Roseville Fair-미국(빌 스테인스)
- 앤 더 밴드 플레이드 월칭 마틸다-And the Band Played Waltzing Matilda-호주(에릭 보글(Eric Bogle))
- 노 맨스 랜드/그린 필즈 어브 프랜스/윌리 맥브라이드-No Man's Land/Green Fields of France/Willie McBride-아무도 없는 땅/프랑스의 푸른 벌판/윌리 맥브라이드-호주(에릭 보글)[6]
- 스트리츠 어브 런던-런던 거리-Streets of London-잉글랜드(랄프 맥텔(Ralph McTell)
- 피들러스 그린-천국-Fiddler's Green(존 코놀리(John Conolly))
- 바레츠 프라이비티어스-바렛의 사나포선-Barret's Privateers-캐나다(스탠 로저스(Stan Rogers))
- 메리 엘렌 카터-메리 엘렌 카터-Mary Ellen Carter-캐나다(스탠 로저스)
- 얼리 모닝 레인-이른 아침 비-Early Morning Rain-캐나다(고든 라이트풋)
- 토크 투 미 어브 멘도시노-멘도시노에게 내 얘기를 해 줘요-Talk to me of Mendocino-캐나다(케이트 맥가리글(Kate McGarrigle))
프로테스트송[편집]
프로테스트송(Protest song)은 사회적인 문제를 들어 항의하는 노래, 전쟁 반대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노래로부터 물가인상에 항의하는 노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표현방법도 항의의사를 그대로 표명하는 연설조의 것에서부터 유머 감각으로 넌지시 공격하는 풍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이다. 또 사회악과 싸우는 결의를 표명한 노래도 보통 프로테스트 송에 들어 있다. 대표적인 곡들은 모던 포크송 리스트에 함께 나열되어 있다.
프로테스트송(Protest song)은 사회적인 문제를 들어 항의하는 노래, 전쟁 반대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노래로부터 물가인상에 항의하는 노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표현방법도 항의의사를 그대로 표명하는 연설조의 것에서부터 유머 감각으로 넌지시 공격하는 풍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이다. 또 사회악과 싸우는 결의를 표명한 노래도 보통 프로테스트 송에 들어 있다. 대표적인 곡들은 모던 포크송 리스트에 함께 나열되어 있다.
포크록[편집]
포크록(Folkrock)은 포크송 적인 감각을 가진 로큰롤을 말한다. 1965년에 <미스터 탬버린 맨>이 히트한 이래, 이러한 스타일이 널리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보통 포크는 기타, 밴조, 리코더, 하모니카, 콘서티나, 아코디언, 만돌린, 바이올린, 세트 형태가 아닌 한 개의드럼을 사용하는 반면, 포크록은 전기 기타, 베이스 기타, 신시사이저를 쓰고 드럼 세트로 록 비트를 붙인다. 1967년경부터 사이케데릭 사운드 등 여러 가지 신종 록의 움직임이 왕성해짐에 따라 포크록도 그 안에 흡수된 것 같으며, 그 뒤로 이 말은 그리 쓰이지 않게 되었다.
포크록(Folkrock)은 포크송 적인 감각을 가진 로큰롤을 말한다. 1965년에 <미스터 탬버린 맨>이 히트한 이래, 이러한 스타일이 널리 시도되기에 이르렀다. 보통 포크는 기타, 밴조, 리코더, 하모니카, 콘서티나, 아코디언, 만돌린, 바이올린, 세트 형태가 아닌 한 개의드럼을 사용하는 반면, 포크록은 전기 기타, 베이스 기타, 신시사이저를 쓰고 드럼 세트로 록 비트를 붙인다. 1967년경부터 사이케데릭 사운드 등 여러 가지 신종 록의 움직임이 왕성해짐에 따라 포크록도 그 안에 흡수된 것 같으며, 그 뒤로 이 말은 그리 쓰이지 않게 되었다.
포크송과 관련된 미국의 음악[편집]
발라드[편집]
블루스[편집]
흑인영가[편집]
이른바 '니그로 스피리추얼(Negro spirituals)'을 말한다. 미국 흑인의 포크송 중 기독교 신앙을 노래한 것이다.
이른바 '니그로 스피리추얼(Negro spirituals)'을 말한다. 미국 흑인의 포크송 중 기독교 신앙을 노래한 것이다.
가스펠 송[편집]
백인의 종교가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흑인영가의 일종을 의미한다. 1940년대에 일어난 새로운 형의 흑인영가로서, 재즈적 리듬을 가진 부르짖는 듯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일이 많다.
백인의 종교가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흑인영가의 일종을 의미한다. 1940년대에 일어난 새로운 형의 흑인영가로서, 재즈적 리듬을 가진 부르짖는 듯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일이 많다.
후테나니[편집]
후테나니(Hootenanny)는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즐기는 단란한 느낌의 포크송 집회를 말한다. 또 305종 하나하나에 차일드가 붙인 정리번호는 '차일드 번호'라 하여 지금도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유명한 <바바라 알렌>은 차일드 84번이다.
후테나니(Hootenanny)는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즐기는 단란한 느낌의 포크송 집회를 말한다. 또 305종 하나하나에 차일드가 붙인 정리번호는 '차일드 번호'라 하여 지금도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유명한 <바바라 알렌>은 차일드 84번이다.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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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편집]
- ↑ 스코틀랜드계 미국 민요로 추정된다.
- ↑ 스코틀랜드계 캐나다 민요로 추정된다.
- ↑ 과거에는 호주의 비공식 국가였다.
- ↑ 아일랜드 고전 포크송 브레넌 온 더 모어를 미국 버전으로 패러디한 곡이다. 밥 딜런은 더 클랜시 브라더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 ↑ 아일랜드 고전 포크송 파팅 글래스를 패러디한 곡이다.
- ↑ 에릭 보글의 앨범에는 노 맨스 랜드, 더 코리스와 더 퓨리스(The Fureys), 더 클랜시 브라더스의 앨범에는 그린 필즈 어브 프랑스, 그리고 메이컴 앤드 클랜시의 앨범에는 윌리 맥브라이드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 ↑ 스코틀랜드계 미국 민요로 추정된다.
- ↑ 스코틀랜드계 캐나다 민요로 추정된다.
- ↑ 과거에는 호주의 비공식 국가였다.
- ↑ 아일랜드 고전 포크송 브레넌 온 더 모어를 미국 버전으로 패러디한 곡이다. 밥 딜런은 더 클랜시 브라더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 ↑ 아일랜드 고전 포크송 파팅 글래스를 패러디한 곡이다.
- ↑ 에릭 보글의 앨범에는 노 맨스 랜드, 더 코리스와 더 퓨리스(The Fureys), 더 클랜시 브라더스의 앨범에는 그린 필즈 어브 프랑스, 그리고 메이컴 앤드 클랜시의 앨범에는 윌리 맥브라이드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바깥 링크[편집]
- (영어) Folk Fringes 포크 음악 100순위
- (영어) Folk Fringes 포크 음악 100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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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
피트 시거를 위한 변명 혹은 추모
2011년 싸늘한 뉴욕의 10월 밤 백발의 한 노인이 기타를 손에 들고 맨해튼의 무대에 올랐다. 무대 주위에는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거하여 ‘월가 점령’을 외치며 몰려든 시민들로 가득했다.
그 노인은 늙고 가녀린 손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하지만 그의 노쇠한 성대는 이미 이전과 같은 강렬하고도 섬세한 진동을 밖으로 뿜어내지 못한 채, 금세 젊은이들의 노래 소리에 묻히고 만다.
그래도, 힘찬 기타의 울림만은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무대에 서겠다는 노장의 의지를 뜨겁게 전하고 있다. 그의 노래 소리는 아마도 추운 밤, 앞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투쟁에 지쳐있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온기를 전했음이 틀림없다.
이 할아버지는, 바로 며칠 전 길고 긴 인생길의 마지막을 접고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대표적 포크 가수인 피트 시거(Pete Seeger, 1919-2014)이다.
그의 길고 긴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노동운동, 공민권운동에서 베트남 반전운동, 환경운동을 거쳐 월가 점령 시위까지 현대 미국의 민중저항사는 그의 노래를 통해 기억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민요를 연구하고 이를 도시민들에게 소개하던 이 포크 가수는 왜 저항가요 운동의 상징이 되었을까. 시거에 의해서 대중화된 오랜 가스펠송 <We Shall Overcome>은 왜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20세기 초두에 미국에서 개시되었고 이후 세계 각지의 민중가요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 ‘포크 리바이벌’ 운동 즉 민요 부흥 운동이 있었다.
포크 리바이벌 운동은 본래 미국 북동부에 전해지는 영국에서 기원하는 민요 같은 전통가요를 발굴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 전통가요의 레퍼토리나 스타일을 공민권운동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과 결합시키려는 운동이었다.
운동 초기의 가수로는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1912-1967)를 들 수 있고, 1950년대 후반 이후 운동의 고양기와 상업적인 성공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는 피트 시거나 존 바에즈(Joan Baez, 1941-), 혹은 나중에 록으로 전환하여 포크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밥 딜런(Bob Dylan, 1941-) 등이 있다.
이들은 어쿠스틱 기타나 전통악기만을 사용하는 연주법을 고집하여 전자악기의 사용에 저항했으며, 민요를 발굴하고 연구하기도 했던 관계로, 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체현하는 운동으로 오해되어, 특히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꺼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애국자’의 길을 걷지 않았으며, 그들의 운동도 민족이나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 형성을 목표로 ‘포클로어’(Folklore)에 주목한 19세기식 국민적 낭만주의 열풍과는 상당히 달랐다.
우선 그들이 주로 소개한 민요들은 체제가 주목하지 않거나 혹은 체제가 억압했던, 정치적 권위에 저항하고 전쟁을 비판하고, 농촌의 피폐상을 노래한 곡들이었다. 그들은 권력에 대한 민중 저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림으로써 새로운 정치운동의 기점을 마련해 갔으며, 계급적 시각의 노동운동과도 연계하여 사회변혁운동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급진적 노동운동 조직으로 유명한 세계산업노동조합(IWW)의 운동가요집 Little Red Songbook 수록곡들은 그들이 애창했던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이렇게 민요의 주체로서 민중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전통성 못지않게 정치성을 부활시켰다는 점은, 이전의 국수주의적인 민요부흥운동과 이들의 음악운동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피트 시거 자신도 40년대에 미국공산당(CPUSA)의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로 인해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에 소환되기도 하여 오랫동안 미디어의 기피대상이 되었으며, 평생 반공세력으로부터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국수주의적 민요부흥운동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레퍼토리에 왕성하게 추가되었던 것이 미국이나 영국 태생의 곡 못지않게 타문화권의 전통가요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2009년의 인터뷰에서 시거가 “내 직업은,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많이 있고 그것이 잘 활용된다면 세상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민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그들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 약자나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노래로 대변함으로써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존 바에즈가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도나 도나(Donna Donna)>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의 운명을 노래한 동구 유대인들의 이디쉬(Yiddish) 노래에서 기원한 곡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시거가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민요에는 쿠바의 농민가요인 <관타나메라(Guantanamera)>가 있다. 이것은 시인이자 쿠바 독립운동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의 시를 대입하여 호세이토 페르난데스(Joseíto Fernández, 1908-1979)가 편곡한 버전이다.
가사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con los pobres de la tierra) 나는 나의 운명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다.
시거가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1963년은 마침 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 직후였으며,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이 쿠바혁명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간섭에 대항하여 일체감을 추구하던 당시 지식인들의 지향은 마르티의 사상과 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거는 쿠바의 민중가요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적극적으로 추가하면서 반제, 반전평화 운동을 노래로써 확산시켰던 것이다.
혹은 시거의 대표곡이자 대표적인 반전가라고 할 수 있는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1961)는, 소련 작가 숄로호프(Mikhail Sholokhov, 1905-1984)의 소설 [고요한 돈강]에 인용된 코사크 민요 “꽃은 다 어디로 갔나? 소녀들이 다 꺾었지/ 그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녀들은 다 결혼했지/ 그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들은 다 군대에 갔지”라는 가사에 촉발되어 만들어 진 것이다. 마침 베트남 전쟁이 확대되어 “언제쯤이면 그들은, 우리들은 (전쟁의 어리석음을) 깨달을까”라는 메시지를 가진 반전가로 세계적으로 퍼져갔다.
특히 독일어 버전이 유명했으며, 피트 시거의 영향은 독일의 68년 ‘성난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된 포크 리바이벌 운동에도 미쳤다. 피트 시거 자신도 동서독을 오가면서 음악가들과 교류했으며, 나치의 양심수 수용소에서 만들어진 저항가인 <늪지의 병사들(Die Moorsoldaten)>을 불러 국제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그런데 특히 한국에서 피트 시거하면, <아리랑(Ariran)>(1953 혹은 1954)을 부른 서구의 가수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미국의 포크가수가 <아리랑>을 불렀다는 사실에만 경탄하고 의미부여를 하지만, 정작 그가 부른 그 <아리랑>이 어떤 <아리랑>이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아니다. 그것은 3.1운동 직후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공산당의 혁명운동과 조선 민족해방운동을 결합시키고자 진력하다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처형당한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이 님 웨일즈와 함께 작성한 자신의 회고록 [아리랑: 조선이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1941)의 서두에서 소개한 그 <아리랑>이다.
시거는 이 책에 기초하여 <아리랑>이 조선 왕조의 폭정이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죽음으로써 저항하는 희생정신의 노래라는 걸 소개하며 분단의 역사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김산의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김산과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 한국에서는 오래도록 금서로 있다가 1984년에 비로소 번역소개된 것을 떠올리면, 시거가 저항가요로서의 <아리랑>을 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일부 국내 언론이 시거가 한국전쟁 참전시에 <아리랑>을 들었다고 한 것은 오보이다).
이렇게 보면, 그가 추구한 ‘포크 리바이벌’이라는 것은, 다양성과 정치성을 추구하며 위로부터의 전통에 저항하는 ‘민중의 전통’ 구축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반제, 반전, 반자본적 계급 지향성이 뚜렷했으며, 시거는 “모든 해방운동과 함께했던 노래”를 민중운동 속에서 계승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권력과의 긴장관계이며, 그것이 느슨해지는 순간, 그는 하염없이 ‘애국자’의 길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시거가 만년에 국가로부터의 각종 표창을 받고 오바마 대통령 취임 콘서트에서 노래했을 때, 그는 허드슨 강의 정화운동에 헌신하고 전통을 사랑하고 전쟁을 미워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에 항거한 ‘진정한 미국인’으로서 기억될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를 국민의 역사 속으로 회수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가 포크 리바이벌 운동을 탈환하고자 한다면, 시거가 일관되게 견지했던 탈국가적 계급 지향성을 다시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환경적 정의는 경제적 정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 환경주의자 시거의 “말”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가 부른 <이 땅은 당신의 땅(This Land Is Your Land)>이 조국 찬미의 노래가 아니라 경제적 평등을 읊은 곡이었다는 그의 “노래 정신”이 묻히지 않도록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결국에 믿었던 것은 “노래는 모든 해방운동과 함께 했다”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 20century 60's 초
포우크 송에는 작자불명의 옛 민요*와, 그 소박한 가곡형식과 정신을 근거로 삼은 현대의 포우크 송이 있으며, 여기서는 미국의 후자, 이른바 모던 포우크 송, 컨템퍼러리 포우크를 가리킨다. 신대륙으로의 이민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이 나라에는 영국을 주로 한 유럽 각국 민요의 가사를 바꾼 발라드나 흑인이 비참한 생활을 호소한 것 등이 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레코드의 보급과 함께 흑인의 블루스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취입이 매출되는 동시에 존 및 앨런 로맥스 등에 의한 조사 채집도 실시되고, 거기에 자극받아 민요연구가 · 가수의 소박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피트 시거는 흑인 포우크 블루스 가수 레드베리와 불황시대의 미국을 노래한 우디 거슬리 등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자작곡에 의해 우경화(右傾化) 해 온 미국정부며 인종차별에의 저항,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박해를 받았지만 포우크 운동에 정진, 196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항의나 시민권운동과도 결부된 포우크 운동의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존 바에즈를 비롯, 로크 이디엄을 살린 봅 딜런은 그 대표적인 가수, 싱거=송 라이터이다
http://maeihelpyou.tistory.com/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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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aeihelpyou.tistory.com/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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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 빌보드지의 기자 클로드 홀(Claude Hall)이 뉴욕의 한 라디오 방송이 성인 취향의 음악을 중점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명칭이 지어졌다. 이러한 방송이 인기를 얻으면서 3, 40대 청취자를 타깃으로 한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지 리스닝 방송들은 청취자들의 편안한 음악 감상을 위해 연주곡을 주요 레퍼토리로 구성했으며, 광고를 최소한으로 편성했다. 관현악단의 재즈 연주, 영화 주제가 등의 시끄럽지 않은 기악곡을 비롯해 차분한 팝 스탠더드 등이 이지 리스닝에 포함된다.
대표 아티스트로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 폴 모리아(Paul Mauriat),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등이 꼽힌다. 대표곡으로는 퍼시 페이스(Percy Faith)의 <심 프럼 어 서머 플레이스(Theme From A Summer Place)>(1960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 헨리 맨시니의 <문 리버(Moon River)>(1961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1위), 배리 매닐로우의 <맨디(Mandy)>(1974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지 리스닝 [easy listening] (두산백과)
힙합에 있어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구분은 바로 East Coast와 West Coast간의구분 일 것이다.
음악적으로서의 East Coast Rap 과 West Coast Rap의 차이는 그 시작에서부터 존재해왔고 모든 랩은 크게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진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남부랩 Southern Rap도있고 중부랩Midwest, Mideast Rap까지
동부힙합의 근원은 New York이다..
뉴욕할렘가등 도시적이고 황량한 지역환경탓에 동부의 음악은 다소 무겁다..
음악적으로 East Coast의 랩은 비트에 있어서 베이스가 무겁고 샘플링에 크게 의존한다.
샘플한 루프를 별다른 변화 없이 계속 돌리기때문에, 비트가 매우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동부랩에서는 비트보다도 가사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편이며 때문에 랩에 있어서 별다른 기교 없이도 깊은내용과 메세지에 중점을 두고 가사를 읊는 경우가 많아 처음 듣는 이에게는 "지루하다"는 느낌을 줄 수있다. 대표적인 래퍼로는 비기,우탱클랜,맙딥,나스,라킴,갱스타등이 있다..
대중성보단 음악적 무게감이 깊어 뛰어난 앨범이 많다..
대표앨범으로 동부의 3대명반으로 불리는..
나스1집 illmatic, 맙딥2집 infamous, 우탱1집 Enter The Wu-tang이 있다..
동부대표곡
Nas - N.Y State Of Mind
mobb deep - Shook Ones Pt II
Wu-tang clan - c.r.e.a.m
★서부힙합★ West Coast의 힙합은 동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사보다 비트에 더 신경을 쓴다.
서부힙합의 근원은 L.A다
뉴욕에 비해 상대적으로 야자수가 가득한 따뜻한 지역에 영향을 받은 탓에 음악이 동부에 비해 한껏 친숙하고 접하기 쉽다....
전체적으로 파티풍의 분위기가 많고 춤을 추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랩스타일도 멜로디나 리듬을 타는 듯이 하는 경우가 많아 힙합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친숙한 호감을 주기도 한다.
음악전체적으론 가사보단 비트에 더 중점을 두고있다..
국내에 소개되는 랩도 대체로 West Coast스타일인 경우가 많다.
한국사람은 영어를 이해하기어렵기때문에 아무래도 메세지에 중점을 두는 동부보단 비트가 역동적인 서부힙합을 이해하기가 쉬워서일것이다.. 서부랩의 전성기는 N.W.A.와 같은 그룹으로 절정을 맞은 갱스터랩(GangsterRap)으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에, 흔히 G Funk나 갱스터랩을 West Coast힙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투팍,닥터드레,스눕독,워렌지등이 있다..
대표적인 앨범은 G Funk의 창시자 Dr.dre의 첫앨범이자 G Funk의 시작을 알리는 The Chronic
G Funk의 완성을 알리는 Snoop Dogg1집앨범 Doggystyle
웨스트의 거장 2pac의 All eyex on me앨범이 유명합니다..
서부대표곡
Snoop Dogg - Serial Killa
Dr.dre - forgot about dre
2pac - California Love
예로 서부를 대표하던 음악이 G Funk였다면 남부는 Dirty south를 표방한음악이 대세를 이룬다
가장 클럽튠음악에 가깝다고 볼수있다..
Dirty south로 대표되는 남부 클럽튠음악이라 가사가 대체적으로 즐기자, 자기자랑, 여자, 마약 이런형식으로 가볍고 상스러운면이 있으며 랩스킬보단 랩간지나 비트를 중요시한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써 scarface,outkast,goodie mob,ludacris,nelly,chingy,j-kwon 가 있다
Ying Yang Twins - Naggin
Lil Jon & The Eastside Boys - Get Low
Outkast - Rosa P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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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부는 미국의 중부와 뉴욕을 제외한 미국 동부에 위치한 도시들, 그리고 서부라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위치의 도시들의 힙합음악을 얘기하는 건데 비트는 개인적으로 그들만의 특징이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랩에서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죠. 중서부의 래퍼들은 주로 텅 트위스팅을 이용한 빠른 랩을 구사해요.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Eminem, Slaughterhouse, Twista, J Dilla a.k.a. Jay Dee 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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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역사
본토 힙합 신화 Chapter 1 "HipHop Begins"
"What I try to do is just capture certain moments that stick in my head, certain moments that need to stick in brothers' heads. So it's a little of hip-hop history." - Rakim
“주변 사람들이나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잡아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야.
그건 바로 힙합 역사의 일부지.“ - 라킴
☞ 배트맨도 이미 다시 시작되었고 (Batman Begins) 슈퍼맨도 조만간 또 올 것 같은 지금 이 시점에서 힙합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힙합 문화의 4요소 중 하나로서의 'Rap/MCing'을 중심으로 힙합의 시작부터 어깨에 힘 빼고 탐구해보자.
힙합의 4요소는 알려진 대로 'B-Boyin'/DJing/Graffiti art/MCing'이다. 각 요소가 매우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에 어느 요소가 힙합을 결정적으로 이끌어왔다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연재되는 본 사이트는 음악을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는 곳이므로 아쉬운 마음을 머금고 이야기의 핵심을 MCing과 DJing에 두기로한다. 랩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사실상 없다고 본다. 다만 자메이카의 Toasting(토스팅, 자메이카 특유의 억양으로 재주를 부리는 보컬 기술)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는데 비교적 정확한 근원은 ‘리듬의 성지’인 아프리카의 부족 사회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 당시 통신 수단은 오직 사람의 입. 한 사람이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최근의 '뉴스'를 알렸다. 그 사람이 어느 마을에 도착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 곳에 모였고 마을의 음악인들은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메신저(messenger)는 그 비트에 맞춰 소식을 전하였다.” - 출처를 알 수 없던 어떤 자료 중 발췌
옆집 록산느하고 뒷집 음보마가 사하라 사막 중심에 온도계를 꽂았을 때 측정될만한 ‘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였다는 얘기가 왠지 봉고 드럼일 것 같은 타악기의 비트를 통해 전해졌다는 추측이다. 결국 랩은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또 그것을 나누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태동하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랩의 시작을 확실히 밝히기 위한 집착은 이쯤 하고 좀 더 속도를 내보자. ‘공식적인 랩음악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빌보드지에 의한 공식적인 최초의 랩음악은 80년초, 팻백 밴드(Fatback Band)가 녹음한 <King Tim III (Personality Jock)>와 슈거힐 갱(Sugarhill Gang)이 녹음한 <Rapper's Delight>이다. 이 역사적인 녹음 작업은 오늘날의 랩음악과는 달리 실제 라이브 뮤지션들을 이용한 밴드들의 연주로 반주가 녹음되었다.”
-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중 발췌 (이하 Hot Music 1997)
마침 존경받는 분들이라 영상 클립을 구할 수 있다. 이야기쟁이는 이럴 때 기쁨을 느낀다. 긴 얘기 짧게 할 수 있는 기쁨, 뭐 그런 것. 일단 감상하자.
누군가가 이 영상을 보고 촌스럽다 어쩌고 하면서 웃었는데 Sugarhill Gang은 힙합 역사에서 매우 명확한 ‘역사적인 팀’이다. 영상에서 보이는 스타일도 그 당시에는 매우 ‘첨단의 트렌드’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른바 Groove가 시대를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쓰고 있는 본인의 취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상당히 신나고 흥겨운 트랙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Rapper's Delight”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시적인 ‘최초의 공식적 랩음악’이다.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은 그 시작을 간접적으로 목격하셨다. 기뻐하시길.
개론 형식의 첫 글이기에 요약하며 마무리할까 한다. 힙합뮤직의 시작은 아프리카에서 봉고 드럼 비트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뒷담화를 하면서 이루어졌다. 아니 이런 요약은 무책임한 것이기에 다시 얘기하자면 이야기를 음악적 표현, 특히 율동(Rhythm)을 극대화한 표현을 빌려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그 욕망을 오늘날의 우리가 HipHop Music으로 이어받아 이리도 명랑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 계속 -
본토 힙합 신화 Chapter 2 "Kool 'DJ' Herc Is In The House"
["KOOL HERC (THE STORY)" - CHANNEL 4 BOOKS]
"Every Jamaican record has a dub side to it. So I just tried to apply that.…(중략)…I could have a couple more records got the same break in it - I wonder, how it be if I put them all together and I told them: "I'm going to try something new tonight. I'm going to call it a merry-go-round." The B-Boys, as I call it, the energetic person, they're waiting just to release this energy when this break comes in.' Herc saw a ready-made audience for his 'breakdowns'."
“모든 Jamaican 음반에는 dub(드럼 비트가 강한 리듬 부분)이 있다. 난 그걸 적용해 보려고 했다.…(중략)…나에게는 비슷한 Break을 가지고 있는 음반이 몇 장 더 있었다. 만약에 이 '특정 부분을 모아서 그 부분만 튼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댄서들에게 난 '오늘 밤에는 새로운 것을 선사하겠다. 그것을 Merry-go-round1)라고 부르겠다." 라고 말했다. 내가 "B-Boy"라 부르는 그들, 이 열정적인 사람들은 이 break에서 자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하기만을 기다렸다. Herc는 그의 "Breakdown"을 기다리는 이미 준비된 관중을 보았다."
- Alex Ogg & David Upshal, 1999
Copyright ⓒ Channel 4 Books
※ 1) Merry-go-round : 회전목마. 여기에서는 Kool 'DJ' Herc가 개발한 두 개의 Breakbeat 부분을 한데 섞어서 트는 형식을 말함.
☞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the Founding Fathers)를 상당히 존경한다. 익히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 등이 해당되겠다. 이들에 대한 존경은 오늘날 미국 화폐인 "Dollar"에 이어지는데 Dollar에서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역시 돈이 최고!…는 아니고, 힙합 문화에도 역시 창시자인 '아버지'가 계신다. Kool 'DJ' Herc, 그를 얘기한다.
(Herc 옹께서 자신이 개발한 "Merry-go-round"를 선보이는 동영상)
Kool 'DJ' Herc는 1955년생으로 뉴욕의 브롱스(Bronx) 지역에서 힙합 음악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는 파티를 주관하는 DJ로서 James Brown으로 대표되는 하드 펑크 계열의 음반을 주로 틀었다. 이는 당시 브롱스 지역의 분위기와 태동하기 시작하는 70년대 Disco 음악의 반영이었다. 파티를 주관하며 Herc는 그의 댄서들의 반응을 보고 그들을 위해 하나의 Break에서 다른 Break으로 옮겨가는 방식을 개발한다. 이것은 음반의 드럼 비트를 강조하기 위해 반주 부분만을 택해 플레이하는 방식으로 그의 독창성이 드러난 부분이다. 이는 힙합 음악의 최초 형태가 된다.
두 개의 턴테이블을 사용해 같은 음반을 동시에 플레이하여 Break 부분을 연장하는 Herc의 스타일은 Breakbeat의 형식을 창조한다. 이 Breakbeat는 hard funk, rock, Latin 타악기가 연주된 음반등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힙합음악의 기초가 된다. Herc는 중간 중간 각운(Rhyme)이 맞는 문장을 외치며 댄서들과 흥겨운 앙상블을 만들어 냈는데, "Put Yo' Hands In The Air and Wave'em Like You Just Don't Care"와 같은 형태의 이러한 문구는 오늘날의 Rap의 초기 형태에 해당한다. 또한 그는 그의 파티와 함께하는 댄서를 "Break-Boys", "Break-Girls"라고 불렀다. "B-Boys", "B-Girls"는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Herc의 DJing 스타일은 Afrika Bambaataa, Grandmaster Flash 등의 유능한 후발 주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초창기 힙합 음악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Herc는 그의 후발 주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음악적 업적을 굳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힙합의 시조(始祖)라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큰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Kool Herc의 큰 업적을 정리하는 한편으로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힙합의 역사를 정리하다 보니 혼자 보기 아까운 자료가 있어서 인용의 형식으로 옮겨본다.
「 "이 당시 클럽에서 활동하던 DJ들은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을 미리 알았는데, 음악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중단하고는 'Yo This is Kool Herc In The Joint-Ski Saying My Mellow-Ski Marky D Is In The House'와 같이 외쳤다. 참석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행위는모든 파티 참여자들이 함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형태로 변형되었는데, 차츰 발전하여 미약하나마 각운을 가진 'Davey D Is In The House, An He'll Turn It Out Without A Doubt'와 같은 형태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 문구는 나중에 많이 사용하는 'Throw Yo Hands In The Air, AndWave'Em Like Just Don't Care'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짧은 형태의 라임들은 차츰 복잡해지고 길이가 길어지더니 다양하고 긴 형태의 라임들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당시엔 랩이라 부르지 않았고 엠씽(Emceeing)이라고 불렀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래퍼를 MC라고 부른다) 이러한 긴 구문을 가진 랩은 Signifying, Testifying, Shining Of The Titanic, The Dozens, School Yard Rhymes, Prison 'Jail House' Rhymes, Double Dutch Jump Rope Rhymes와 같은 용어로 불린 다양한 형태로 행해졌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형태의 래핑은 일종의 게임과 같은 형태였는데, 소위 말하는 배틀(Battle Rap)이란 형태로 흑인의 거리문화를 이끌어 갔었다. 이 배틀랩이란건, 말 그대로 하나의 주제를 놓고 정해진 시간 내에 랩을 통해 상대를 이기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논리적인 언어구사를 통해 상대를 꼼짝못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배틀랩은 돈을 걸어 도박을 하듯 진행되었는데, 오늘날 랩 가사에서 래핑을 게임(Game)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랩의 발전에 힘입어, 마침내 쿨 허크는 자신의 DJ 테크닉을 바탕으로 코크 라록(Coke La Rock), 클락 켄트(Clark Kent)라 불린 두 MC를 영입하여 마이크를 잡게 하고 팀을 만들었다. 바로 이 팀이 랩 음악 역사상 최초의 Emcee팀 쿨 허크 앤 더 허클로이즈(Kool Herc And The Herculoids)인 것이다." 」
-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중 발췌 인용
(Kool 'DJ' Herc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시 한 번 Kool Herc의 업적을 정리하며 공부도 많이 되었고, 새삼 놀라웠다. 힙합 음악의 창작 방법(DJing), 각운을 활용하여 분위기를 돋구는 문구 외침(MCing/Rapping), 심지어 힙합 문화에 있어서의 댄서의 정의(B-Boying)까지. 그의 새로운 것에 대한 진보적인 연구와 의욕은 오늘날 우리에게 'HipHop'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남겨주었다. 이러한 사실에 꺼내라고 있는 단어 "Respect"이 아닐는지. Kool Herc, 오늘날에도 종종 이분의 모습을 뵐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기쁨이다. 그에게서 시작되어 우리의 오늘을 흥겹게 하는 모든 힙합 뮤지션들의 유산. HipHopMusic. 고마웠고 고맙고 고마울 것이다.
![사진](http://farm3.static.flickr.com/2525/4058255785_5df7165118.jpg)
대미를 장식할 영상 클립은 "DJ Kool Herc b-boy boogie(MERA)"라고 하는 클립이다. 솔직히 놀랐다. 진정한 Groove는 시대를 뛰어넘는가 하는 생각에. 같이 즐기며 이번 챕터를 마칠까 한다. 사랑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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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2 끝, To Be Continued -
[오늘의 힙합 역사 한 토막]
1969 많은 힙합 뮤지션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제임스 브라운이 '킹 레코드'를 통해 "Say It Loud - I'm Black And Proud!"를 발매하였다. 그리고 이 앨범은 힙합 역사상 가장 드럼 샘플링이 잘된 앨범으로 뒤에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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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본토 힙합 신화 Chapter 3
본토 힙합 신화 Chapter 3 "New Bloodz for Old Skool"
"In New York, they've already been through all the gang stuff, all the bragging about cars, girls, and gold. Now, there's a cutural awareness that's happening in the East, and it's stretching across the country. It's just taking a longer time for L.A. to become aware."
-Afrika Bambaataa
“뉴욕은 이미, 갱도 한번 휩쓸고 지나갔고, 자동차나, 여자들이나, 돈 따위를 으스대는 짓거리들도 다 지나갔어. 이젠 새로운 문화적 자각이 동부에서 시작돼서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지. 이젠 천천히 L.A.가 정신차리기를 기다려 보자구."
- 아프리카 밤바타
☞ DJ Kool Herc에서 비롯된 힙합 뮤직은 의욕적이고 뜨거운 후발 주자로 인해 더욱 그 꽃을 화려하게 피게 된다. 이번 장에서는 Kool Herc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은 후배들의 이야기를 다뤄보기로 한다. Afrika Bambaataa (And the Soulsonic Force)와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가 그들이다. 7-80년대 힙합의 태동기에 묵직하고 패기있는 출사표를 던지고 초기 힙합 음악의 사운드적인 기초를 쌓는데 큰 기여를 한 "New Bloodz for Old Skool",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즐겨보자.
[Afrika Bambaataa - <Planet Rock>]
언제나 이 "본토 힙합 신화"에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 이 "본토 힙합 신화"가 가능하게 한 위대한 자료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에서 소중한 기록을 빌려온다.
「 "초기 동부 랩을 정착시킨 인물
1960년 생인 그는 그랜드 마스터 플래쉬와 더불어 초창기 동부 랩을 정착시킨 인물이다. 1977-1985년까지, DJ와 MC 그리고 심지어 브레이크댄서로서도 명성을 날린 그는 1986년 그의 첫 앨범인 [Planet Rock-The Album]을 내놓게 된다. 물론 그 이전인 1983년 그가 만든 그룹 줄루 네이션(Zulu Nation)의 앨범도 있다. 그는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인 존 라이든(John Lydon)이나 흑인음악의 대부인 제임스 브라운과도 함께 작업하였으며, 새로운 신세대 DJ들이 나오기 시작한 80년대 후반까지 힙합계의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특히 그는 70년대 후반의 흑인 갱이나 불량 청소년들을 음악이나 춤으로 빠져들게 함으로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
-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중 발췌 인용
[Afrika Bambaataa - <Freestyle> : 나이키 광고 관련하여 작업한 것으로 기억하며, "무서운 영화 2"에도 패러디되었다]
Break-beat deejaying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서 Afrika Bambaataa는 특히 Electro Funk Sound의 아버지로서도 존경받는다. 초창기의 힙합 사운드의 '기계적', '기능적' 형태를 매만졌던 선구자들이었는데 Kool Herc에 이어 후발주자에 이르러서는 좀 더 정교한 형태로 발전한다. 이는 마치 팝음악계의 전설적인 존재인 "The Beatles"가 스튜디오 레코딩에만 집중했던 시절 녹음기술이나 여타 음향기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것에 비견할만 하다. 세상은 어찌 보면 이렇게 신념을 가지고 몰입하는 천재들에 의해 발전하는 것 같다. 이러한 천재들은 마음가짐도 올곧았던 듯. Afrika Bambaataa의 가장 큰 업적은 '인종차별의 가장 큰 피해자'인 Afro-American의 젊은 세대가 마약과 갱 조직의 유혹에서 벗어나 춤과 음악에 끌리게 했다는 점이다. 음악이 인간을 구원한다면 이러한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Afrika Bambaataa의 성장기는 역시나 뛰어난 뮤지션의 일반적인 그것과 같았다. 흑인 자유 운동 활동가였던 어머니와 삼촌의 영향 하에서 그의 어머니가 제공한 풍부한 음반 컬렉션이 그의 성장을 도와주었다. 그는 자신의 동네에서 지배적인 힘을 갖는 무리 "The Savage Seven"의 지도자가 되는데 그 동네의 '법' 자체가 되는 무리이면서 지역 건강 프로그램을 돕기도 하는 등 특이한 성격을 가진 집단이었던 것 같다. 그의 지도자적 역량이 참 뛰어났던 듯 싶고 그 무리(The Savage Seven)은 상당한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후에 규모가 커진 집단은 The Black Spades로 이름을 바꾼다.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적으로 바뀐 일이 생기는데, 수필 대회에서 입상을 하였고 그 결과로 아프리카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그는 영화 "Zulu" 또한 보게 되는데 Zulu족의 단결과 공동체 의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Zulu족의 추장이었던 Bhambatha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Stage Name인 Afrika Bambaataa Aasim을 만든다. 자신이 속해있던 모든 조직도 정리하여 흑인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한다. 그의 선배인 DJ Kool Herc와 Kool DJ Dee의 영향으로 파티를 주관하는 DJ로서의 커리어도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그의 명성은 더한층 높아진다. 이후의 그의 힙합 음악 역사상의 활약은 쓸 공간이 부족하여 생략한다. Afrika Bambaataa and Soulsonic Force의 그룹으로서 힙합 음악의 기술적 진보, 이른바 하이테크적인 사운드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Afrika Bambaataa와 그를 돕는 사람들의 가장 큰 업적인 The Zulu Nation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The Zulu Nation은 90년대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Wu-Tang Clan", 현재의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Odd Future (Wolf Gang Kill Them All, OFWGKTA)를 연상하면 될 1973년 11월 12일 탄생한 '최초의 힙합 집단, 무리'였다고 전해진다. 많은 수의 B-Boy와 MC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간지가 나는' 집단이었다는 기록. Bambaataa의 Universal Zulu Nation에 대한 구상은 소외된 흑인 청소년, 후세대의 Afro-American이 좀 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시각'을 갖도록 돕는 집단, 또는 그러한 역량을 가진 집단을 길러내는 것이었다. 역시 큰 그릇은 생각을 하는 것도 규모가 다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음악을 통해 폭력과 마약의 위협에서 후세대의 흑인 공동체를 구해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세계에 힙합 문화를 확산하게 한 큰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저 Respect. 쓰다 보니 더욱 Respect.
[Can't Nobody Hold Me Down - Puff Daddy And Mase]
이 곡을 기억하는가? 한 때는 글을 쓰는 본인도 참 '좋아했던' 이제는 그냥 Diddy인 아저씨의 작품이다. 당시의 빌보드 차트를 뒤흔들었었다. 이 때는 Ma$e도 날라다녔는데 요즘은 뭐 하나?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 곡의 원곡이 바로 이 곡.
[Grandmaster Flash - <The Message>]
가끔 7-80년대 힙합 트랙을 들으면서 놀라는데 당시의 패션이나 분위기는 '당시에는 첨단인데'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는 - 본인은 그런데 이런 시각이 좀 우습다. 지금 유행하는 것을 후세대가 보면 안 비웃을 것 같나? Respect을 좀 갖자. 언제나 온고이지신, 옛것을 Respect하면서 오늘의 진보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 촌스럽고 개그의 소재가 되겠지만, 그 사운드만은 절대 촌스럽거나 고리타분하지가 않다. The Sugarhill Gang의 <Rapper's Delight>이 그렇고 이 <The Message>가 그렇다.
King Grandmaster Flash로 많이 알려진 Joseph Saddler는 1958년 1월 1일 Barbados의 Bridgetown에서 태어난다. 힙합뮤지션이자 DJ로, 특히 Hip-Hop DJing, cutting, mixing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매우 잘 알려졌다. 그는 Samuel Gompers High School에 입학하는데 그는 그곳에서 전자 장비를 어떻게 수리하고 만지는지 배운다. 역시나 그의 부모님이 그의 음악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그의 부모님은 Barbados 출생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Caribbean과 미국 흑인 음악 음반의 열성적인 수집가였다. 아이 때부터 그는 아버지의 수집 음반에 매료되었다. Saddler, Grandmaster Flash의 DJing에 대한 이른 관심은 그의 아버지의 영향도 컸으나 그의 어머니의 '그가 전자장비에 관련된 공부를 하기 바라는 마음'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초창기 New York DJ scene에 참여하게 되고 여러 파티에 참석하며 DJing을 한다. 그리고 선구자적인 전문가로서 명성을 날린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전 복싱 페더급 세계 챔피언 Sandy Saddler의 조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DJing skill이 잽을 날리듯 날카로운 것일까?
그의 DJ로서의 활약은 수많은 실험적인 DJing skill의 연습에서 비롯된다. 10대 때부터 그의 침실에서 그는 DJ 장비를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적인 연구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획기적인 3가지의 DJing Skill을 발전시키고 마스터한다. 이 스킬들은 DJing 테크닉의 정석으로 오늘날에도 널리 알려져있다. Backspin Technique ("Quick-Mix Theory"), Punch Phrasing ("Clock Theory"), Scratching이 그것인데 참 재미있으니 이 글을 읽은 후 한 번 정보를 찾아보도록.
그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력있는 랩퍼들과 함께 슈퍼 그룹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1978년 New York City의 South Bronx에서 결성된 이 그룹은 One DJ (Grandmaster Flash) 그리고 5명의 랩퍼 Melle Mel, Kidd Creole, Cowboy, Mr. Ness/Scorpio, Rahiem로 구성된 그룹이다. 이 그룹의 턴테이블리즘의 활용, break-beat deejaying은 초창기 힙합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 초반에 이들은 성공한 싱글 "Freedom"으로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싱글 "The Message"가 이들을 힙합씬에서 두드러진 그룹으로 알려지게 한다. 후에 멤버간의 갈등도 있었지만 다시 재결합하여 뚜렷한 음악적 성과를 남겼다. 결과적으로 이 그룹은 4년간의 활동 속에서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 2007년도에 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는 명예로운 최초의 힙합/랩 아티스트로서 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올라간다.
이번 챕터는 특히나 힘들었다. 나 개인의 '글을 쓰는데 있어서의 막힘'이 오기도 했고 도대체가 이 두 팀은 자료가 방대하여 요지만 전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다 전달한 듯 하여 다행이다. 좀 더 궁금한 점은 글을 쓴 본인이 키워드나 개략적인 정보를 던졌으니 꼭 찾아보기를 바란다. 이 New Bloodz for Old Skool, "Afrika Bambaataa"와 "Grandmaster Flash"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두 힙합 음악의 대가가 닮은 듯 다르다는 점이다. 힙합 음악 초창기의 전문가라는 점과 어렸을 적 음악을 매우 좋아하고 그에 걸맞는 음반 컬렉션을 가진 부모를 두었다는 점은 매우 닮았지만 한 명(Afrika Bambaataa)는 운동가나 조직의 리더로서의 역량이 강했고 한 명(Grandmaster Flash)는 기술적 테크니션의 역량이 강했다는 점이다. 이 둘의 특성이 섞여서 오늘날의 '힙합 음악'이 단조롭지 않고 거대한 '즐거움의 음악'이 되지 않았나 싶다. 두 대가에게 무한한 Respect의 마음을 올리며 이만 Chapter 3을 마감할까 한다.
사랑과 평화.
2011. 4. 14. Mr. TExt
- Chapter 3 끝, To Be Continued -
[오늘의 힙합 역사 한 토막]
1970 힙합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더 래스트 포잇 레코드사(The Last Poets Record)가 자사의 이름으로 LP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이 앨범에는 재즈 드러밍과 함께 여러 연주음악들과 사람의 목소리들이 믹싱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자료와 기사에서 인용과 발췌가 있었습니다>
▣ 주요 인용 Source
1.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 오늘의 힙합 역사 한 토막 및 사실 관계
확인, 발췌, 인용.
2. 주요 역사적 사실 인용 : http://en.wikipedia.org/wiki/Afrika_Bambaat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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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본토 힙합 신화 Chapter 4
It was twelve o'clock one Friday nightI was rocking to the beat and feeling all rightEverybody was dancing on the floorDoing all the things they never did before
어느 금요일 밤의 12시가 무르익고 있었어나는 비트에 맞춰 흔들었고 아주 신 났지모두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었어이전에 전혀 해보지 못한 것을 하면서 말이야
- The Sugarhill Gang “Rapper's Delight” (1979)
자기 세계를 고집스럽게 구현하는 밴드슈거힐 갱은 “Rapper's Delight”이라는 곡을 발표한 것만으로도 힙합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마스터 지(Master Gee), 원더 마이크(Wonder Mike), 빅 뱅크 행크 (Big Bank Hank)의 3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79년 첫 싱글을 발표하고, 80년 초 해체되기 전까지 비록 활동한 시기는 짧으나 힙합 역사의 장을 연 장본인들이다. …(중략)…, 빅 뱅크 행크는 90년대 초, 쓰레기 청소부로 일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는 요즘 한 곡만 히트를 해도 온몸에 금과 다이아몬드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 아티스트들과 비교할 때, 그 당시 얼마나 힙합이 대중성이라는 것과는 격리되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
- The Sugarhill Gang - “Rapper's Delight”
1. 각각 14:37 (12인치 long version), 6:30 (12인치 short version)와 4:55 (7인치 shortened single version)의 3가지 버전이 존재한다고 한다.2. 최초 배포가 된 지 10년 후, 벤 리브랜트(Ben Liebrand)를 통해, "Rapper's Delight '89"라는 제목으로 공식 리믹스 버전을 공개했다고 한다.3. U.S. 팝 차트에서 36위, U.S. R&B 차트에서 4위, Canadian 싱글 차트에서 1위, Dutch Top 40에서 1위, UK 싱글 차트에서 3위 등 그야말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4. 미국 레코드 공업협회(RIAA)의 공인은 없지만, 최소 500만 장에서 최대 800만 장에 달하는 판매량을 보였다고 한다. 다이아몬드를 달성하였다고. 일개 독립 레이블이 달성한 기록임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5. 롤링 스톤 매거진 (The Rolling Stone magazine)의 '위대한 곡 500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목록에서 251위를 했고, About.com과 VH1의 ‘위대한 힙합곡 100(100 Greatest Hip-Hop Songs)’ 목록에서 각각 2위를 했다.
[오늘의 힙합 역사 한 토막]1973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Living For The City"가 정치적인 메시지와 거리에서 들리는 버스들과 자동차 소리, 사람들의 소리, 사이렌 등 랩 음반에서 많이 쓰이는 요소들을 포함하여 발매된 앨범으로는 최초로 히트를 하였다.자메이컨 그룹인 더 인크레더블 봉고 밴드(The Incredible Bongo Band)가 [Apache]라는 앨범을 통해 이제껏 나온 것 중 최상의 샘플링된 비트들을 사용한 앨범으로 후에 인정받게 되었다.(「랩 대해부 What is Rap?」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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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본토 힙합 신화 Chapter 5
![bonto05_whodini_main_hiphople.jpg](http://hiphople.com/files/attach/images/398/136/121/001/c1d6aa270083790811003094bec3e2ff.jpg)
And now you're kinda cold to the people you meet
Cause of something that was done to you by some creep
But nevertheless, I'll say it again
That these are the people that we call friends
이제 너, 만나는 사람에게 차갑게 구는구나
못된 녀석들에게 당했던 일 때문에 그렇겠지
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말할게
그 사람들이 우리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 Whodini “Friends” from [Escape(1984)] 中
☞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힙합은 여러 가지 사운드적인 진보와 스타일에서의 혁신을 이룬다.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와 그랜드마스터 플래쉬(Grandmaster Flash)의 ‘소리의 혁신’은 새로운 후발 주자들이 좀 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만한 견고한 배경을 제공했다. 이번 챕터에서는 힙합 음악이 라디오 방송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좀 더 대중의 취향 안으로 들어오는 데에 큰 기여를 했던 후디니(Whodini)에 관해 다루고자 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탈출 묘기의 장인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에게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이름의 이 그룹은, ‘소리의 마법’ 같은 좋은 유산을 많이 남겼다. 이들의 마술 공연 같은 커리어를 따라가 보자.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 (이하 「랩 대해부 What is Rap?」) 에서는 후디니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의 시각임을 고려하며 함께 읽자.
록과 랩을 접목해 랩을 대중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림
초기 랩의 선구자로서 그들의 그룹 결성은 83년으로 뒤돌아 간다. 저릴 허친스(Jalil Hutchins)와 엑스터시(Ecstasy), 그리고 턴테이블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로 불리는 그랜드마스터 디(Grandmaster Dee), 이상 3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미흡하기는 했지만, 록과 랩을 접목한 최초의 힙합 그룹이자 당시만 해도 일부 흑인에게만 인기 있던 랩뮤직을 어느 정도 상업적인 장르로 끌어올린 장본인들이다. 1983년 그들은 자이브(Jive)사 최초의 랩 싱글이자 최초로 뮤직비디오로도 만들어진 랩 노래인 "Magic's Wand"를 발표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최초로 전문 댄서를 포함한 랩 그룹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83년과 84년 전국적인 투어를 가진 그들은 86년이 되던 해, 뉴욕시의 지원을 받아 마약 퇴치 비디오인 "Growing Up"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 후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면서 3장의 앨범을 내놓기는 했으나 모두 상업적인 실패를 맛보았다. 하지만 초기 힙합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이들이 없었다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메이저 장르로 정착한 지금의 힙합은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 Hot Music 1997. 10월호 「랩 대해부 What is Rap?」
- Whodini - “Magic's Wand”
뉴욕의 브룩클린(Brooklyn, New York)을 기반으로 하는 이 트리오는 1981년에 결성되었다. 위에서 언급되었다시피 저릴 허친스, 조로(Zorro) 스타일의 모자를 즐겨 썼던 존 플레쳐(John Fletcher, 예명: 엑스터시), 턴테이블 아티스트였던 DJ 드류 카터(DJ Drew Carter), 그랜드마스터 디가 그 멤버였다. 후디니는 미 전역에 걸친 힙합 음악의 인기를 이끌고, 이 음악이 라디오 방송국으로 진입하는 데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그들은 팻 보이즈(The Fat Boys)나 그랜드마스터 플래쉬 앤 더 퓨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and the Furious Five),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 등과 동시대에 힙합 음악을 이끌며 어깨를 나란히 한 그룹이다. 이들은 런 디엠씨(Run-DMC)의 조셉 "런" 시먼스(Joseph “Run” Simmons)의 형제인 러셀 시먼스(Russell Simmons)의 매니지먼트 하에 음반 레이블 자이브 레코즈(Jive Records)와 1982년에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이들의 음악은 지역 어반/알앤비 라디오 방송국을 위주로 인기를 끄는데, 많은 곡을 베이스 연주자이자 런 디엠씨의 초기 작업을 많이 주도했던 래리 스미스(Larry Smith)가 맡는다.
1983년 이들은 그룹의 이름을 딴 첫 번째 앨범 [Whodini]를 발매한다. 이들의 최초 싱글 "Haunted House Of Rock"은 할로윈을 주제로 한 곡으로, 오늘날의 클럽에서도 플레이가 된다고 한다. 또한, 신스팝(Synthpop)의 선구자였던 토마스 돌비(Thomas Dolby)가 또 다른 싱글에 참여하는데, 그것이 바로 "Magic’s Wand"이다. 이 곡은 이후 많은 후배들이 샘플링하게 된다.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끼친 곡이었다.
- Whodini - "Friends"
1984년 이들은 두 번째 앨범 [Escape]를 발표하는데, 이 앨범에는 "Five Minutes Of Funk", "The Freaks Come Out At Night"과 특히 인기를 많이 끌었던 "Friends"가 수록되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은 힙합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각각의 곡은 그 독특한 이야기가 사랑받으며 미국 전역에 울려 퍼졌다. 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는 이 앨범의 탁월함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후 "Five Minutes Of Funk"의 인스트루멘탈 버전은 당시에 영향력이 컸던 WNYC의 TV쇼 <Video Music Box>의 테마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들의 성공은 1986년에 발매된 세 번째 앨범 [Back In Black]까지 이어지는데, 1982년에서 1986년까지 이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그 당시 제일 잘 나가던 런 디엠씨와 엘엘 쿨 제이(LL Cool J), 팻 보이즈와 투어를 함께 했고, 최초의 힙합 투어 격인 'Fresh Fest Tour'에도 참여한다. 1986년 7월경에는 필라델피아의 18,000여 명 관중 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영국과 유럽 등지에서 최초로 랩과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는 투어를 한 팀으로 기록된다.
1987년 발매한 [Open Sesame]부터는 시대의 조류에 호응하여, 뉴 스쿨(New School) 스타일로까지 이들의 음악적 색채를 확장한다. 하지만 이때즈음 이들의 하락세는 뚜렷해졌고, 1991년에 발표한 [Bag-a-Trix]와 1996년에 발표한 [Six] 앨범은 별다른 주목을 못 받으며 상업적인 실패를 맛본다. 이후 많은 컴백 시도에도 전성기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후디니는 여전히 요즘에도 투어를 하고 있고, 아직도 그들의 지난 앨범들은 많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대중 문화에 전반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GTA(Grand Theft Auto: Vice City)>라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비디오 게임에 그들의 노래인 "Magic's Wand", "The Freaks Come Out At Night"가 삽입되어 있기도 하고 (게임 속의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들을 수 있다), <Everybody Hates Chris>라는 유명 흑인 가족 시트콤을 제작한 코미디언 크리스 락(Chris Rock)은 공공연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 후디니라고 밝혔으며, 시트콤 내에서도 후디니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 Nas - “If I Ruled The World (Imagine That)”
앞서 언급했듯 이들의 음악은 후배들에게 엄청나게 많이 샘플링이 되는데, "Five Minutes Of Funk"도 그렇지만 특히 "Friends"는 투팍(2Pac)의 "Troublesome '96"를 포함,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15곡이 넘는 트랙에 샘플링된다. 나스(Nas)의 “If I Ruled The World (Imagine That)” 또한 "Friends"를 샘플링한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이다.
자, 이렇게 80년대에 멋지게 빛나며, 힙합 음악의 대중화에 기여한 후디니에 대하여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저런 영화의 OST에 삽입되기도 하고, 게임 속에서도 들을 수 있고, 후디니의 음악은 정말 마법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자신들이 힙합 음악의 라디오 방송국 진입을 주도했고, 아직도 방송국 DJ들의 플레이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이들. 개인적으로 후디니의 곡을 샘플링한 - 후디니 자신도 샘플링을 잘 활용하기도 했다. - 트랙들이 여러분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또 참 좋은 곡들이기 때문에 꼭 찾아서 비교하며 듣기를 권장한다. 내가 즐거웠듯 여러분도 즐거운 시간이었기를 빌며, 이만 Chapter 5를 마감할까 한다.
사랑과 평화.
- Chapter 5 끝, To Be Continued -
[오늘의 힙합 역사 한 토막]
1974-80 자메이카계 미국인들이 추구하는 레게 스타일의 음악이 뉴욕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보스트(Boast)라고 불리는 일종의 주절거림을 자신들의 음악 위에서 했다.
(「랩 대해부 What is Rap?」에서)
★ 출처 - 흑인음악 매거진 '힙합엘이' ( http://HiphopLE.com ) (무단으로 출처 삭제,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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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본토 힙합 신화 Chapter 6
![bonto_6_main_grandmaster.jpg](http://hiphople.com/files/attach/images/398/556/754/001/a6b406762a2c05d6fd7370e60a076a3d.jpg)
Rats in the front room, roaches in the backJunkie's in the alley with a baseball batI tried to get away, but I couldn't get far'Cause a man with a tow-truck repossessed my car앞방에 쥐들이 들끓어, 뒷방에는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야구 방망이를 든 약에 쩔은 녀석이 골목에 있군도망가려고 발악을 했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어견인차를 모는 녀석이 이미 내 차를 가져갔거든-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 "The Message" (1982)
1. 그래미 상(Grammy Award)을 탄 최초의 랩 아티스트이다. 샤카 칸(Chaka Khan)의 무서운 히트곡 "I Feel For You"에 랩으로 참여해 곡을 한층 더 빛낸 것이다. 이 곡은 'Record of the Year'를 수상했고, 주류 알앤비 신에 힙합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후,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Back On The Block]과 [Q - The Autobiography of Quincy Jones]에 참여해 두 개의 그래미 상을 더 거머쥔다.2. 유명 TV쇼인 <Miami Vice>의 사운드트랙에 "Step Off", "Pump Me Up", "King Of The Streets", "Vice" 등의 곡을 올리며 힙합 음악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3. "Jesse"라는 곡을 발표해 사람들이 당시의 영향력 있는 흑인 공동체 지도자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제시 잭슨(Jesse Jackson)에게 투표하도록 권장했다.4. 더 킹 드림 코러스(The King Dream Chorus), 할리데이 크루(Holiday Crew)와 'King Holiday'에서 협연했다. 역시 흑인 공동체의 위대한 지도자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Dr. Martin Luther King Jr.)의 생일을 국경일로 선언하자는 운동의 일환이었다.5. 그는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에 반대하는 움직임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예술인(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 운동에 참여한다. "Sun City"는 이 운동의 대표곡이 되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포기할 때까지 공연되었다고 한다.6. 2007년 1월 30일, 멜리 멜은 드디어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 [Muscles]을 공개한다. 최초의 싱글이고 뮤직 비디오가 공개된 곡이 바로 "M3 - The New Message".7. 2007년 3월 12일, 멜리 멜과 더 퓨리어스 파이브, 그리고 이 당시에 다시 합류한 그랜드마스터 플래시(DJ Grandmaster Flash)까지, 랩 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록앤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올라간다. 멜리 멜은 연설에서 폭력의 문화가 아니라 힙합 본연의 문화성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오늘의 힙합 역사 한 토막]1974-80 디스코(Disco)라 불리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라디오 방송과 클럽 등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랩 대해부 What is Rap?」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