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느린 노래와 춤 같은 몸동작이 특징인 가가쿠(雅樂, ががく)는 일본의 전통 공연 예술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궁중 연회나 행사 때, 그리고 일본 전역에 있는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다음 3가지의 예술적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특징적인 고대 일본의 노래에 공후(箜篌, くご, 하프와 비슷한 동양의 옛 악기)나 피리를 이용해 부분적으로 반주를 하고 간단한 춤사위가 들어가는 국풍가무(國風歌舞, くにぶりのうたまい), 둘째 아시아 대륙에서 발달해서 훗날 일본의 예술가들에 의해서 발달한 기악(특히 관악기)과 의식 춤, 셋째 가사에 일본의 민요와 한시(漢詩)가 들어간 가창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우타모노(歌物, うたもの)이다.
가가쿠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하는 동안 여러 시대의 정치 및 문화에 영향을 받았으며, 일본 궁내청(宮內廳)의 악부(樂部)에 소속된 거장들이 견습생들에게 지속적으로 전승해왔다. 그중 상당수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가문의 후손들이다. 가가쿠는 일본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문화이자 일본 사회·역사의 정수이며, 오랜 세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재탄생의 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문화적 전통이 하나의 고유한 유산 속에 융합된 발전 과정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지역 정보
일본 전역에서 연행된다. 가가쿠는 궁중 행사나 연회에서 주로 공연한다. 아울러 국립극장(國立劇場)이나 다른 공연 무대에서도 요청이 있을 때마다 공연하고 있으므로 일반 대중도 가가쿠를 즐길 수 있다.
본문
가가쿠는 악기 연주와 매우 길고 느린 노래 및 춤이 함께 표현되는 일본 공연 예술의 일종으로, 일본 황궁의 행사나 연회 또는 도쿄의 국립극장과 같은 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가가쿠는 국풍가무, 아시아 대륙에서 유래되어 일본화 된 춤과 음악, 우타모노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역사 및 문화 속에서 창조된 그 내용과 레퍼토리는 매우 고유하다.
‘국풍가무’는 외래의 악기와 음악이 수입된 15세기 훨씬 이전인 약 10세기경에 원래의 일본 노래와 춤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대륙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 온 춤과 음악이 기악 반주만 이용하는 반면, 국풍가무는 주로 노래로 구성되며, 반주는 부분적으로 일본식 공후와 가쿠라부에(神楽笛, かぐら ふえ, 피리와 같은 관악기)만을 이용해서 연주한다. 국풍가무의 춤사위는 소박하지만 우아하고 장중한 멋이 있다.
‘대륙에서 유래되어 일본화 된 춤과 음악’이란 5세기~9세기 사이, 약 400년 동안 고대 중국 및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도래한 아시아의 음악과 춤에서 발달한 기악곡인 강겐(かんげん, 管弦)을 말하는 것으로, 이 음악은 대륙으로부터 건너온 음악이 일본의 역사 및 문화로 변화·발전되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남았다. 강겐의 곡조에 맞추어 추는 의식무용인 부가쿠(舞樂, ぶがく)가 있다.
일본화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말한다. 중국, 중앙아시아, 인도로부터 유래한 것, 한반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성된 연행을 재편성한 것을 말한다. 즉 외래 악기를 선택하고 규모가 작은 합주단을 구성하는데 여기에서 사용되는 악기로는 쇼오(笙, 생황), 히치리키(篳篥, ひちりき, 피리의 일종), 후에(笛, ふえ, 피리)와 같은 관악기, 비와(琵琶, びわ, 비파)와 같은 현악기, 타악기 등이 있다.
‘우타모노(歌物, うたもの)’는 해외에서 들어온 음악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10세기경에 새롭게 형성된 가창 음악이다. 가사 중 일부는 일본의 민요이고, 일부는 고대 한시(漢詩)이다.
가가쿠의 역사는 1,000년이 넘는다. 701년에 제정된 법령에 의거해서 만들어진 가가쿠료(雅樂寮, ががく りょう)가 가가쿠 담당 국가 기관이다. 황궁은 율령국가(律令国家, りつりょう こっか)라는 성문 법령에 따라 중앙 집권적인 국가를 수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역사가들은 가가쿠가 공식 행사의 핵심으로서 국가체계 내에 편입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752년 가가쿠 공연 예술은 도다이지(東大寺, 1998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에서 대불개안(大佛開眼) 의식(불상이나 불화, 불탑, 불단 등을 새로 마련하여 봉안하면서 행하는 의식)을 할 때 공연된 바 있다.
10세기에 아시아 대륙에서 온 공연 예술은 일본으로 와서 보다 정교하게 발전되고 일본화 되는 사이, 새로운 우타모노와 부가쿠의 레퍼토리가 해외의 공연 예술에 영향을 받아 작곡되었고, 오늘날의 가가쿠 형식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이와 함께 연기 스타일과 공연 공간도 그 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가가쿠의 전승을 책임지는 궁내청 악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주로 가업으로 직위를 승계받은 특정 가문의 후손들이다. 가가쿠의 후원자였던 일본 황실과 귀족 계층의 쇠락과 정치적 혼란 및 갈등으로 인해 가가쿠의 전통 역시 몇 차례 난관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나라(奈良)의 특정 가문이 오늘날까지 가가쿠의 전통을 유지하고 지켜왔다. 18세기 후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던 음악가들을 모아 궁내청의 악부를 설립했다.
악부의 구성원들은 가가쿠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1955년에 가가쿠가 일본의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로 지정됨에 따라, 일본인들에게 매우 귀중한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문화유산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가가쿠는 일본의 전통적인 공연 예술 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전통이다. 이와 함께 궁내청 악부는 본 전통의 진정한 전승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가가쿠의 전승자들은 가가쿠를 일본 내에서나 전 세계적으로 다른 어느 음악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문화로서 인정하고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가가쿠의 전승 및 공연은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지속성을 함양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가가쿠는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어 왔고, 각 시대의 정치와 환경에 대응하여 발전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재탄생되어 왔다.
가가쿠의 역사는 일본이 해외에서 들어온 문화를 얼마나 능숙하게 변형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의 일부로서 정교하게 다듬어 왔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오늘날 전승된 공연 예술은 고대 일본에서 유래된 것에서 해외에서 들어온 후 일본화하고 정교하게 발전된 것까지 다양하다. 이런 점에서 가가쿠는 일본의 사회와 역사가 창조한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1955년 가가쿠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인정을 받아 일본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가가쿠는 일본인들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문화적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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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개버 (Gabber) ¶
3.2.1. 올드스쿨 개버 (Oldskool Gabber) ¶
3.2.2. 메인스트림 하드코어 (Mainstream Hardcore) ¶
3.2.3. 스피드코어 (Speedcore) ¶
타밀족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스리랑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그 원종(原種)은 최고(最古)의 수메르 문명을 형성한 아르메노이드와 지중해 인종과의 혼혈로, BC 1세기경 남부 인도에서 이주해 왔다고 하는 스리랑카 타밀인(人)과 그 후 영국식민시대에 농원노동자로 흘러 들어온 인도 타밀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는 힌두교를 주로 믿고 있으며 타밀어(語)를 사용한다. 오늘날 그 대부분은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스리랑카 사회의 최하층을 구성하고 있다. 타밀어는 드라비다어(語) 중 가장 오래 되고 또 가장 유력한 방언으로, BC 6세기경 이미 내왕하고 있던 신할리족(族)과의 거듭된 종족항쟁(種族抗爭)도 최근에는 특히 언어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1956년 신할리어의 공용어화(公用語化)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두 종족간에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 1958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1966년 1월 동부(東部) 및 북부의 제주(諸州)에서 타밀어를 공용어로 하는 조례(條例)가 성립된 뒤에도 폭동이 일어났다.
스리랑카 정권은 다수민족인 신할리족에 의해 장악되고 있으나 타밀족을 대표하는 정당인 타밀통일해방전선은 1977년 총선거에서 제1야당이 되어, 타밀인 거주지구의 자치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공용어화 운동도 그 일환에 속한다. 두 종족의 융화통일은 스리랑카 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