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2013. 8. 13. 18:23





 카림보는 느슨하게 풀린 옷과 , 둥근 치마 그리고 섹시한 댄스 



   둥근 치마를 입은 여성댄서에 의한 측면 움직임과 많은 스핀 , 그리고 엉덩이의 움직임이


 포인트다  , 카림보 음악은 대개 카림보 드럼의 비트 [패턴]안에  있다  



  여자가 그녀의 손수건을 바닥에 던지면 , 그녀의 남성 파트너는 입으로 손수건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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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8. 1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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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8. 13. 18:08

나폴리민요 [canzone Napoletana] : 이탈리아의 나폴리방언의 시에 곡을 붙인 대중가곡의 총칭.



이탈리아에서 나폴리는 방언으로 유명합니다.

 

이탈리아 사람중에서도 잘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사람이 제주도 방언을 말하면 알아 듣기 어려운 것과

같으며 아래 독음은 나폴리 사람이 말하는 것에 가장

근접하도록 기록하였습니다.

 

Torna a Surriento

돌아오라 소렌토로

 

Vide 'o mare quant'e bello

비데 오 마레 꽌떼 벨로
Spira tantu sentimento

스피라 딴뚜 쎈띠멘또
Comme tu a chi tiene mente

꼼메    뚜  아 끼 티에네 멘떼
Ca scetato 'o faje sunna

까 쉐따또   오  파이에 쑨나
Guarda, gua, chistu ciardino,

과르다  과   끼스뚜   치아르디노
Siente, sie sti sciure arance

씨엔떼  씨에 스티 쉬우레 아란체
Nu prufumo accussi fino

누 프로푸모  아꾸씨 피노
Dinto 'o core se ne va

딘또 오 꼬레  쎄 네 바
E tu dice I'parto, addio

에 뚜 디체 이빠르또 아디오
T'alluntane da stu core

딸룬따네   다  스뚜 꼬레
Da la terra da l'ammore

다 라 떼라   다 람모레
Tiene 'o core 'e nun turna

티에네 오 꼬레 에 눈 뚜르나
Ma nun me lassa

마 눈 메 라싸
Nun darme stu turmiento

눈  다르메 스뚜 뚜르미엔또
Torna a Surriento, Famme camp

토르나 아 쑤리엔또  팜메  깜프
Vide 'o mare de Surriento,

비데 오 마레  데 쑤리엔또
Che tesoro tene 'nfunno

께  떼쏘로  떼넨푼노
Chi ha girato tutto 'o munno

끼 아  지라또  뚜또  오 문노
Nun l'ha visto comm'a cca

눈  라 비스또  꼼마 까
Guarda attuorno sti sserene,

과르도  아뚜오르노 스띠 쎄레네
Ca te guardano 'ncantate

까 떼 과르다논깐따떼
E te vonno tantu bene

에 떼 본노  딴뚜  베네
Te vulessero vasa

떼 불레쎄로 바싸
E tu dice I'parto, addio

에 뚜 디체 이빠르또 아디오
T'alluntane da stu core

딸룬따네   다  스뚜 꼬레
Da la terra da l'ammore

다 라 떼라  다 람모레
Tiene 'o core 'e nun turna

티에네 오 꼬레  에 눈 뚜루나
Ma nun me lassa

마 눈 메  라싸
Nun darme stu turmiento

눈 다르메 스뚜  뚜루미엔또
Torna a Surriento, Famme campa

토르나  아 쑤리엔또 팜메    깜빠

 

햇빛은 바다 위에서 춤추고
부드러운 상념이 일어난다
나는 밤에 꿈 속에서 그
대의 눈을 보곤 했다
공기속에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갈 때
내 마음은 꿈에서 깨어나고
부서지기 시작한다.
 
그대는 내게 굿바이라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슬픔에
잠기는 일밖에 없다.
그대는 잊을 수 있는가?
내 마음이 다시 살아나도록
소렌토에 돌아오길..
돌아오라 소렌토로.
Surriento(나폴리 방언) = Sorrento(이탈리아 표준어)
소리만 다를 뿐 의미는 "소렌토"(소렌토로)라는 의미

 

작곡가:Ernesto De Curtis(1875년 10월 4일~1937년 10월31일)이탈리아 나폴리 태생

작곡가, 피아노 전공으로 나폴리 산 피에뜨로 마이엘라 음악원을 졸업하였다.

그는 장남으로 태어났으며,그의 동생은 시인으로 잠바띠스타 데 쿠르티스이며

이 동생이 작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보면 된다.

 

아울러 그는 화가로 또는 시인으로 많이 알려졌으며 형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곡으로 유명한 곡은 "토르나 수리엔토"(돌아오라 소렌토로)이다.

 

1900년과 1930년사이 100여곡을 작곡하였으며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은

"돌아오라 소렌토로"이다

 

그외 유명한 곡은 "Tu ca nun chiagne" 와  Non ti scordar di me" (물망초)

그리고"Ti voglio tanto bene" 가 있다.

이 세 곡이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잇는 유명한 곡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그외

"Voce 'e notte"  

"Mandulinata"

"Duorme Carmé'"

"Mala Femmina" 가 있다.

 

 

 참고사항(에피소드)

데 쿠르티스 형제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인기에 힘입어 1905년에 소렌토를 주제로 사랑을

노래하는 제 2탄 "소렌토의 아가씨('A sorrentina)"라는 노래를 발표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이 노래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잊혀지고 말았다.

 

작곡가 에르네스토는 형 외에도 다른 유명한 시인들과 협력하면서 1937년 12월 31일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특히 세계적인 테너 질리(B.Gigli)의 피아노 반주자가

되면서 질리와 함께 전 세계를 돌며 순회연주를 가졌다.

 

질리는 에르네스토의 곡을 즐겨 불렀는데, 그 중에서 1935년에 도메니코 푸르노의 이탈리아어 시에

부쳐 작곡한 "날 잊지 말아라(Non ti scorder di me)"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에 이어 세계적인

명곡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곡들은 오늘날까지도 감상의 늪으로 빠질 듯하면서도 높은

서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게 순회연주 중에도 종종 두 형제 간에는 형이 시를 적어 우편으로 보내면 동생이 곡을 만들어

악보로 답장하는 식으로 공동작업을 했는데, 마지막 공동작업은 나폴리와 아르헨티나 사이 이역 만리

거리를 두고 이루어졌다. 동생이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곡이 1926년 1월 15일에 나폴리에 도착했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바로 그 때 형은 봉투를 뜯어보지도 못 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림:소렌토로

일반적으로 노랫말을 쓴 사람보다는 작곡가를 더 중요시한다. 그러데 이상하게도 소렌토시는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탄생한 지 80년 후에 가사를 쓴 형의 동상만 세웠을 뿐, 정작 이 불멸의

선율을 작곡한 동생을 위해서는 그 흔한 기념패조차도 헌정하지 않았다.


소렌토시는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반쪽'만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웃지 못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데 쿠르티스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동상의 얼굴이 잠밧티스타가 아니고

그의 얼굴과 비슷한 다른 작곡가 발렌테라고 불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데 쿠르티스

형제 기념사업을 둘러싸고 담당자들과 이해 당사자들 간에 불화와 잡음이 심한 모양이다.


소렌토의 거리에는 소렌토의 절경과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악보가 있는 엽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념품들이 팔리고 있다. 그 중에서 만돌린 모양의 조잡스러운 플라스틱 기념품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특히 많이 끈다. 태엽을 돌리면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곡조가 마치

시레나의 유혹하는 노래처럼 흘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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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ai.it/dl/portaleRadio/Page-f089dd82-1513-4849-aa98-4c759191be51.html#slider-1-1



https://www.facebook.com/pages/Musica-napoletana/105836176123457?rf=108396605851376


http://it.wikipedia.org/wiki/Canzone_napoletana


http://www.discogs.com/Various-Canzone-Napoletana-N-10/release/1207887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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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8. 13. 14:21

g people’s psyche, combined with his artistic talents, that allowed him to capture the hard work and fun times of everyday life through music and film.
광동팝의 기초를 세운 허관걸(Sam Hui Koon Kit)은 70년대 중반에 대중의 마음에 든 최초의 광동음악의 작곡가 이자 작사가 이자 가수였다.  그는 서양의 팝히트곡을 노래하는 그룹으로 시작했지만, 74년 솔로독립 이후로는 거의 혼자서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자신의 기타반주로 노래를 하는 식으로 광동팝을 창조해냈고, 그의 음악적인 재능은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다수의 서양히트곡을 광동어 가사로 다시 썻고 자신과 다른 가수를 위해서 여러곡을 작곡했다.  허관걸은 처음으로 대형컨서트이벤트를 열었고 높은 앨범판매량을 유지하면서도 배우겸 감독으로 영화의 박스오피스 기록을 깻다. 그는 노동자계급이였고 매우 현실적인 남자였지만, 홍콩인들의 내면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줄 아는 그의 재능은 그에게 영화와 음악을 통해서 열심히 일하고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While Sam was crooning away about the Eiffel Tower, the habits of Hong Kong girls and the arrival of wealth gods, he was paving the way for others. Paula Tsui Siu Fung released her first album in 1970 and was quickly making her way into this new genre of music. Her early career consisted mostly of Mandarin hits and contemporary Cantonese opera, but as Cantopop evolved, her collaborations with the likes of Joseph Koo, Wong Jim and other renowned composers and songwriters of the time helped her became a major force in the industry. Paula’s uniqueness exuded from her elegant sense of style paired with a delicate yet strong singing technique, ranging in style from poetic love ballads to ballroom dance tunes to movie theme songs.
Poula Tsui Siu Fung(서소봉)은 1970년에 그녀의 첫번째 앨범을 발표한 직후 이 새로운 장르의 음악에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다.  그녀의 전반기이력의 대부분은 만다린 히트곡들과 당시의 광동오페라(경극)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광동팝이 출현하자, Joseph Koo라던가. Wong Jim, 그외에 다른 명성있는 작사가들과 당대의 작곡가들과의 협력으로 인해서 그녀는 광동팝업계의 주도세력이 될 수 있었다.  Poula만의 독창성은 시적인 러브발라드에서부터 사교댄스의 음률까지 그리고 영화주제곡까지 섭렵해 내는 섬세하면서도 강하게 노래하는 테크닉과  그녀만의 우아한 센스에서 비롯된다.

 

As Hong Kong's major television studio, TVB, started producing dramatic television series, theme songs became one of the staples of Cantopop towards the end of the 1970s. Some of the series embodied legends in a time of emperors, dynasties and martial arts, and the music that accompanied them was bold and upbeat with lyrics about adventure, heroism, courage, perseverance and loyalty. Each series had at least one major theme song and many sub-songs as part of the soundtrack. Traditional Chinese instruments were used, giving the songs a more classical Chinese sound. The most prominent singers who contributed to the theme song genre included Roman Tam Lo Man, Jenny Tseng Yan Nei, Adam Cheng Sui Chow, Francis Yip Lai Yee, Teresa Cheung Dak Laan, Susanna Kwan Gook Ying and Michael Kwan Jing Kit.
홍콩의 주요방송사인 TVB는 1970년대 말 경부터 tv시리즈물과 함께, 광동팝의 주요산물이 되는 시리즈 주제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 시리즈물은 당대의 황제들,왕조들 그리고 호전적인 무용담들을 전설로 구체화 시켰고, 그에 따른 음악은 모험 영웅주의 용기 인내 그리고 충성심에 대한 가사로써 그들을 대담하고 흥분하게 만들었다.  각 시리즈는 최소한 하나의 주 테마송과 사운드트랙의 파트로서 많은 부 테마송을 가졌다.  의례히  고전적이고 중국적인 사운드와 고전적인 악기가 주로 사용되었다.  테마송 장르에서 가장 유명했던 가수로는Roman Tam(나문) Jenny Tseng(견니) Adam Cheng(정소추) Francis YIp(엽래이) Teresa Cheung(등려군) Susanna Kwan 그리고 Michael Kwan(관정걸)이다.

 

Among them, Adam Cheng Siu Chow stood out as being one of the only singers who also starred in many of these TVB period series. Hailed as the "evergreen" of the Hong Kong entertainment industry, Adam has been a celebrated actor and recording artist who has produced over 40 albums in 25 years - many which have enjoyed platinum and triple-platinum sales. Always playing the hero or the good guy, his charismatic style, handsome looks and natural talent for singing and acting made him a favorite male star in many of the early TVB series from the 1970s, which included “Luk Siu Fung”, “Cho Lau Heung”, “Legend of the Book and Sword” and “Sai Yu Yup Do Saan”.
그들 가운데 정소추는 TVB의 많은 시리즈에 출연한 유일한 가수였다.  홍콩연예업계의 'evergreen'의 결과로 정소추는 유명한 배우이면서 25년간 다수의 플래티넘이거나 트리플 플래티넘이 된 40 여 장 이상의 앨범을 만들어 내었다. 언제나 영웅 또는 호남자를 연기하는 그의 카리스마틱한 스타일은 잘생긴 용모와 노래 혹은 연기에 있어 자연스런 그의 재능과 함께, 그를 '육소봉' '초류향' '진가락' 'sai yu yup do saan'같은 1970년대 초기의 다수의 TVB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자스타가 되게 하였다.

 

A Cantopop pioneer and fixture in the Hong Kong entertainment industry since 1976, Roman Tam entertained Chinese audiences the world over with ballads, TV theme songs and lively concert performances. A prolific singer-songwriter, his catchy, sentimental tunes about life's struggles struck a chord with ordinary Hong Kongers and he was credited with transforming the style of Canto-pop. He performed at the Royal Albert Hall in London in 1979, and at New York's Carnegie Hall in 1987, both firsts for a Hong Kong singer. Fans who are older than 35 will remember such late-1970s hits as "Below The Lion Rock" and "Romantic Swordsman," while those a little younger will know him for the theme songs from TVB's “Legend of the Condor Heroes” trilogy. Later in his career, he acted as a mentor for singers Ekin Cheng Yi Kin, Joey Yung Tso Yi, Charlene Choi Cheuk Yin and Gillian Chung Yan Tung.
1976년 이래 홍콩연예업계의 광동팝선구자이며 고정배역인 Roman Tam(나문)은 라이브 컨서트와 TV시리즈 주제곡과 발라드로 폭넓게 중국의 청중을 즐겁게 했다.  다산성의 작사가이자 가수인 그가 만드는, 고된 일상에 관한 쉬우면서도 감상적인 그의 곡조는 일반 홍콩인에게 잘 조화되었고 그는 광동팝 스타일의 변형을 가져왔다고 신뢰 받는다.  그는 1979년 런던의 왕립 알버트 홀과 1987년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공연했다. 둘 다 홍콩가수로서는 처음이다.  35세 이상의 팬들은 그를 'below the lion rock'이나 'romantic swordwman'과 같은 1970년대 후기의 히트곡으로서 기억할 것이고, 그보다 젊은이들은 TVB의 3부작 '사조영웅전(Legend of the Condor Heroes)'의 테마송으로 그를 알 것이다.  그는 후에 가수 'Ekin Cheng(정이건)' Joey Yung Tso YI, Chalene Choi(채탁연) Gillian Chung Yan Tung(종한동)을 길러냈다. 

 

A favorite singing partner of Roman’s was Jenny Tseng Yan Nei. With her powerful yet angelic voice, and their obvious chemistry together, they quickly became the dynamic duo of Cantopop as their collection of theme song duets became classics. Besides Hong Kong pop music, Jenny was already an established pop singer among the Chinese population all over Asia, with many Mandarin hits such as “Plum Blossom.”
나문이 즐겨 노래하던 파트너는 강력하지만 섬세한 두가지 목소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견니(Jenny Tseng Yan Nei)였고, 그들이 부르는 듀엣테마송이 고전이 될 정도로 광동팝의 강력한 듀오가 되었다. 홍콩팝음악 이외에도 견니(Jenny)는 이미 모든 아시아권 중국대중에게  인기있는 'Plum Blossom'같은 만다린 히트곡들을 부른 뛰어난 팝가수였다.

 

As an alternative to the theme song genre, the 1970s was also the start of boy bands, in particular The Wynners, a quintet of young male singers and musicians, one of who would make unexpected transformations in the Hong Kong music industry in the following decade. Hong Kong's fabulous five consisted of lead vocalist Alan Tam, vocalists and guitarists Kenny B and Bennett Pang, drummer Antony Chan and bass player Danny Yip. Their early albums were mostly English cover songs, and it wasn't until the early 1980s that they started singing more Cantopop tunes to stay in line with the rest of the booming industry. The Wynners appeared in several films during the late 1970s, and were all the rage to mobs of teenyboppers.
테마송 장르에 대체되는 것으로 1970년대에 boy-band의 출현이 있다. 5인조 젊은남자뮤지션으로 이루어진 wynners는 향후 십여 년 간 홍콩 음악계의 예기치 않은 변화를 만든 사람중의 하나였다.  홍콩의 전설적인 5인조는 리드보컬인 담영린(Alan Tom)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종진도(Kenny B)와 Bennett Pang, 드러머 Antony Chan 그리고 베이스기타인 Danny Yip 으로 이루어졌다.  그들이 초기앨범은 대부분 영어로 된 cover-song이였지만, 이것은 그들이 좀더 광동팝적인 곡조를 노래하기시작한 80년대 초기까지 계속되지는 않았다.(이후에는 주로 광동팝만을 노래했다?)  1970년대에 Wynners는 유행에 열광하는 십대 대중이 좋아할 만한 몇몇의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One female singer, Teresa Teng, was one of the first commercial singers to break through the “bamboo curtain” into Mainland China, creating a stir for the “Little Teng.” A popular phrase of the time was “By day, Deng Xiaoping rules Mainland China, but by night, Teresa Teng rules!” She was Asia’s most beloved sweetheart during the 1970s, with her sweet voice, natural beauty and girl-next-door image, and mesmerized the Asian music industry with her ability to sing fluently in multiple languages (Mandarin, Taiwanese, Cantonese, Japanese and English). During the peak of her career, one could always hear her popular tunes being played on the radio in a taxi, the back of a mom and pop store, beauty salons, restaurants and private homes across all of Asia. Some of these songs include “Sweetness”, “The Moon Represents My Heart”, “When Will He Return”, “Goodbye, My Love” and “Story of a Small Town.”
또 한명의 여성가수 등려군(Teresa Teng)은 'Little Teng'이라는 신드롬을 만들면서 중국 본토의 '죽의 장막(bamboo curtain)'을 꿰뚫은 첫번째 상업적인 가수 중의 한 명이 되었다.  당시에 사람들은 '낮에는 등소평이 중국을 지배하고 밤에는 등려군이 지배한다' 라고 했다.  그녀는 달콤한 목소리와 이웃집 소녀같은 자연스런 아름다움으로 1970년대 가장 사랑받는 아시아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여러나라의 언어(만다린 대만어 광동어 일본어 영어)로 능숙하게 노래할 수 있는 그녀의능력으로 아시아의 음악계를 매혹시켰다.  그녀의 전성기에는 사람들은 전 아시아를 통틀어 라디오에서 택시에서 엄마의 등에 업혀서 레코드점에서 미용실에서 식당에서 그리고 자기집에서 그녀의 유행하는 멜로디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 노래들은 '첨밀밀(Sweetness) 윌량대표아적심(The Moon represents my heart) 하일군재래(When will he return) 재견아적애인(Goodbye my love) 그리고 소성고사(Story of a small town) 등이다.  

 

Fashion in the early Cantopop culture was relatively conservative, as many of the fans consisted of a more mature audience. Paula Tsui, Francis Yip, Jenny Tseng and Teresa Teng all dressed elegantly in western style gowns or formal Chinese “cheong saam” in their concert performances, and the Sam Hui and Adam Cheng wore suits or casual western styles. However, Roman opened the fashion runway for future singers, such as Leslie Cheung Kwok Wing, by performing in drag and in a very controversial move, posing nude for a magazine in 1983. His flamboyant costumes were always glitzy, eye catching and something to talk about after a concert. The Wynners made an impact on the younger generation with their long, shaggy hairstyles, tank tops and bellbottoms, T-shirts and blue jeans, which became the standard uniform of the contemporary Hong Kong teenager of the 1970s.
초기 광동팝문화의 경향은 팬층의 대다수가 좀더 나이든 청중들이였기 때문에 비교적 보수적이었다.  Paula Tsui, Francis Yip, Jenny Tseng, Teresa Teng 등은 모두 서양식의 우아한 복장을 했고, 그들의 컨서트에서는 전통적인 중국식 'Cheong Saam'을 입었다.  그리고 Sam Hui, Adam Cheng 등은 슈트(양복정장)나 서양식의 캐주얼을 입었다.  그러나 1983년에 Roman Tam은 치마형태의 옷을 입는다거나 매우 논쟁의 여지가 될만한 영화에 나온다거나 잡지에서 누드를 취한다거나 함으로써 Leslie Cheung 과 같은 뒷세대의 가수들을 위해서(?) 유행에서 벗어나 오픈되어 있었다.  그의 이채로운 복장은 항상 현란스러웠고 이목을 사로잡았으며 컨서트 후에는 항상 논쟁거리를 만들곤 했다.  Wynners는 그들의 길고 shaggy풍 헤어스타일(비틀즈풍의 긴 바람머리)과 Tank Top 그리고 Bellbottom 또한 1970년대 홍콩 십대들의 기본복장이 되어버린 티셔츠와 블루진으로서 당시의 젊은 세대에게 인상을 남겼다.

 

The 1970s was for Hong Kong pop music like the big bang theory was for the beginning of the universe. It was as if there was a major explosion and all the stars fell into the sky, shining brilliantly. It was through these artists’ talent, dedication and love of music that allowed them to lay the foundation for the future of Cantopop.
1970년대는 홍콩 팝 뮤직계에서 우주태동의 빅뱅이론과 같다.  그것은 마치 대폭팔과 같았고, 밝게 빛나는 스타들이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렸다. 이들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대한 헌신과 사랑은 이들의 재능을 통하여 그들이 광동팝의 미래를 위한 기초를 닦아 놓게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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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ockinchina.com/w/Roman_Tam


http://zh.wikipedia.org/wiki/%E7%94%84%E5%A6%AE




jjjjjjjjjjj http://mojim.com/]

 http://www.kkbox.com/ ]

 http://www.yesasia.com/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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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8. 13. 13:48

포르투칼 알렌테주에 뿌리를 둔 칸토 리브레는 

 70년대 음악

가사는  정치적인 메세지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던 좌파적이고 자유로운 음악이었다



ㅏㅏㅏㅏㅏㅏㅏㅏ




 

아르헨티나의 로스 파불로소스 캐딜락스Los Fabulosos Cadillacs, 파나마 출신의 살사 가수로 직접 90년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한 루벤 블라데스Rub n Blades, 뉴욕 출신의 위에 꼴론Willie Col n 등등의 밴드와 가수는 대중적인 살사에 체제를 비판하고 현실을 고발하는 노랫말로 정치성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시대는 그들의 가사나 메시지보다 멜로디와 리듬, 즉 사운드를 선호하고있고, 창조적인 예술 세계를 벗어난 현실정치에서 미약한 지지기반과 가난한 다수의 민중과 이반된 그들의 삶은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자 이제 혁명의 70년대를 중심으로 남미 대중 음악 세계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자.(안타깝지만 안데스 민속음악은 지면관계상 다루지 못했다.)
남미는 전형적인 제 3세계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가진 국가군의 지역이다. 즉, 군부 쿠데타에 의한 독재권력의 장기집권, 극심한 빈부격차, 유럽계 이민과 크리오요(Criollo) 중심 사회인 것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 관료의 부패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고 치안공백 사이로 마약 수입같은 지하경제가 여전히 바나나 공화국의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범죄는 줄어들기는커녕 선량한 사람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는데, 경제적 불안정에도 부정축재 한 몫 잡은 관료들과 검은 돈을 챙긴 기업가는 외채를 탕감하고 외제차를 끌고다니며 삶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여전히 그들의 눈에 가난한 사람들은 무능력하고 게으르게만 보이는 것일까?
'가난한 사람은 왜 평생 가난해야만 하는가?'라는 비올레따 빠라(Violeta Parra)의 40년전의 울분섞인 물음에 왜 여전히 할 말을 잃고 마는 걸까? 

.... 몇몇만 부자로 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린다. 피로 물든 대지는 그들에게 수탈당한다네.... 광부가 캐낸 돈은 고스란히 이방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네.... 이 나라를 한가로이 여행하는 양반님들은 가난을 보지 못하네. 그들이 돈을 뿌릴 때 민중은 굶주려 죽는 판에.... 칠레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 n; 새로운 노래)의 창시자 비올레따 빠라의 노래 가운데서 

먼저 남미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브라질을 살펴보자. 브라질 역시 1964년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노래운동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고 기존의 관념적 노래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면서 펼쳐졌다. 브라질 대중문화운동인 뜨로피깔리아(Tropic lia)에서 음악분부문의 선두주자는 질베르뚜 질(Gilberto Gil)과 까에따노 벨로수(Caetano Veloso)였다. 이들은 TV와 라디오를 적극 활용하였고 대중음악운동 MPB(M sica Popular Brasilrera)의 물꼬를 터주었다. 치코 부아르께(Chico Buarque), 마리아 베따냐(Maria Beth nia), 갈 꼬스타(Gal Costa) 등과 같은 가수의 노래는 군부의 검열을 피할 수 없었고 반정부적인 가사로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엘리스 헤지나(Elis Regina)는 군부의 압력으로 대중 앞에 동원돼야 했고, 더욱이 그녀는 민정이양이 이뤄지기 3년전 1982년 사망해 이력상의 오점을 씻어내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이들의 업적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음악적 역량이다. 바투카다(Batucada), 깐돔블레(Candombl ), 쇼로(Ch ro) 등과 같은 전통음악에서부터 삼바(Samba), 보사노바(Bosa Nova)까지의 여러 스타일에 록Rock과 펑크Funk 요소를 결합해 오늘날의 리듬 천국을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것이다. 

칠레는 형식과 실제에 있어 민주적 방식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했다.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의 해방이 식민지 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한 크리오요의 의지였다면, 빅토르 하라(Victor Jara)를 비롯한 일반 대중이 염원한 민중정부의 수립은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의미했다. 인디오의 피가 흐르는 메스티소는 더 이상 백인 사회에 편입될 수 없었고 인디오들처럼 대농장 아시엔다의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기껏해야 척박한 노동현실 속에서 도시빈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1970년 메스티소와 인디오가 결집된 민중세력이 크리오요의 과두체제-대지주?외국자본과 결탁한 독점자본?교회?보수우익-를 깨뜨리고 민주적 혁명정부를 수립하였다. 실로 1810년이래 160년 만에 실질적인 해방을 맞이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좌파 아옌데(Salvodor Allende) 정부의 무리한 국유화와 퍼주기식 복지정책으로 자국의 경제상황을 악화시켰고 기득권층과 보수우익의 정치적 공세에 밀려 1000일간의 해방구는 군부의 쿠데타로 강제 폐쇄되고 말았다.
하지만 1,000일의 해방구에선 입장권이 없어도, 클럽에서 즐길만한 여유가 없어도 되었다. 가수들은 민중의 열망에 부흥하며 노래 속에 민중을 위한 이념을 실어 민중과 함께 노래했다. 지난 시절, 선택의 여지없이 들어야만 했던 관제 가요와 미국의 팝송들은 철저하게 친미, 친자본, 친정부적인 노래들로 결코 민중의 정서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실을 변혁시키고자 하는 믿음과 실천에서 노래는 마침내 무기가 되었다.
누에바 깐시온의 음악적 영향은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군에 대항해 싸운 공화국군의 노래,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권력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노래를 부르거나 그것을 모체로 저항가요를 만들었다. 또한 이 시대의 노래는 예술가의 현실참여에서부터 민간에 전승된 토착민요와 묻혀진 선주민 인디오의 신화와 전설을 발굴해내는 작업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빅토르 하라는 73년 쿠데타로 산화했지만 그의 재단이 부인 조안(Joan Jara)에 의해 운영되고 있고 매년 추모공연에 인띠 이이마니(Inti Illimani; 이이마니山의 태양), 낄라빠윤(Quilapay n; 수염기른 세 사람), 야뿌(Illapu; 천둥) 같은 후배 그룹들이 누에바 깐시온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후배 밴드 오르티가(Ortiga), 바로꼬 안디노(Barroco Andino), 엔뜨라마(Entrama), 트란시엔떼(Transiente), 꼰그레소(Congreso) 등의 그룹들에 의해 온전히 계승되었고 보다 클래식적 기법과 폴크로레(Folklore)의 토속적 선율과 리듬을 결합해 음악적 완성도나 연주력은 높아졌다.
쿠바에선 누에바 뜨로바(Nueva Trova), 즉 새로운 음유시운동이 있었다. 혁명정부는 사회주의 정권의 문화예술 창작집단인 '아메리카의 집(Casa De las Am ricas)'과 같은 국책지원을 바탕으로 1959년 혁명정신과 전체 대중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음유시는 혁명 이전까지 미국의 환락가인 쿠바내 클럽의 라틴재즈에 비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파블로 밀라네스(Pablo Milanes),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 노엘 니꼴라(Noel Nicola) 등과 같은 음유시인들은 자국내 '아메리카의 집'을 통해 민족정신의 자양분을 100년의 역사가 넘는 트로바에서 찾았다. 이들의 노래는 멕시코에서부터 볼리비아, 칠레에 이르기까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환영받고 있다.
한편 독재자 바띠스타와 함께 쿠바를 떠난 것은 대중음악에서도 나왔다. 손(Son), 살사(Salsa), 맘보(Mambo) 등과 같은 소위 아프로-쿠바 재즈 스타일의 중미 대표적 댄스음악이 쿠바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반(反)카스트로적인 살사의 여왕 셀리아 크루스나(Celia Cruz)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 같은 미국 국적의 쿠바출신 가수들은 쿠바의 유화적 제스처에도 쿠바 입국공연을 거부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내 쿠바 사회집단의 정치적 보수성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미국과의 국교단절과 미국의 금수조치로 음악적 다양성이 쿠바 내에서 현저하게 줄어든 점도 문화예술의 교류에 대해서도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우루과이의 1970년대 정치상황 또한 동시대적 고통을 말해주고 있었다. 칠레 누에바 깐시온에도 참여한 바 있던 다니엘 비글리에티(Daniel Viglietti)는 그룹 로스 올리마레뇨스(Los Olimare os)나 가수 알프레도 시타로사(Alfredo Zitarrosa)와 함께 군부 쿠데타의 비민주성을 비판하고 독재정권의 반민중적인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한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지대했던 알프레도 시타로사는 1976년 군부에 의해 추방당한 뒤 아르헨티나, 스페인, 멕시코 등지를 전전하다 비로소 민정이양이 약속된 1984년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시타로사는 1989년 사망) 
탱고의 나라로 알려진 아르헨티나는 현실참여의 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체제를 비판하는 가운데 민중 속에서 지지를 획득하며 성장한 노래가 있다.
유빵끼(Atahualpa Yupanqui, 1908-1992)는 메스티소(Mestizo)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고 유럽의 강권적 문화유산의 틀을 깨고자 인디오의 길(Camino Del Indio)을 선택하였다. 자신의 이름 또한 본명인 엑또르 로베르또 차베로(Hector Roberto Chavero) 대신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에 맞서 싸운 옛 잉카제국의 역대 왕의 이름에서 차용했다. 주로 대지와 바람, 그리고 인디오의 삶을 노래한 유빵끼의 노래는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로 살아있다. 
비록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노래는 1940-50년대 페로니즘의 수혜를 입고 성장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은 바 있지만, 페론의 시대가 끝나고 군부독재 기간 중 탄압을 받는다. 체제 비판적인 좌파 지식인, 노동자, 학생들에게 감금과 고문, 의문의 실종 등 국면이 7년여에 걸쳐 일어났고, 레온 히에꼬(Le n Gieco)는 이 군부의 더러운 전쟁(La Guerra Sucia) 기간중 아르헨티나 누에바 깐시온의 기수로 등장해 그 저항의 목소리는 결코 낮추질 않았다. 

노래에 담긴 내용이 아무리 진보적이고 개혁적이고 숭고함을 내포한다고 해도 정작 음악성이 없다면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노래(Canto Nuevo)는 특정 계급이나 인종의 노래가 아닌 메스티소와 인디오, 그리고 아프리카의 후손들이 연대할 수 있는 노래였다. 국경과 인종, 계급을 뛰어넘어 노동자와 농민이 호응할 수 있는 쉬운 노래인 것이다. 끝으로 레온 히에꼬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보자.

Le n Gieco의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Solo le pido a Dios)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괴로움 때문에 무관심해지지 않고
아무것도 못하고 외로이 방황하다 죽게되지 않도록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
내가 고통 때문에 무관심해지지 않고
무서운 발톱이 나의 행운을 할퀸 다음에야
다른 얼굴의 상처를 그리지 않도록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
전쟁 때문에 무관심해지지 않고
모든 가난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짓밟지 않도록

단지 신에게 바라는 것은
남아있는 날 때문에 무관심하지 않고
비록 몇몇에 지나지 않는 반역일지라도
쉽사리 그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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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정복되기 시작한 이래로 지주, 교회, 군부의 강압과 착취,

강대국에의 종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문화 역시 저항적인 메시지를 담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ón: 새로운 노래)'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주로 원주민의 애환이나 민중의 열망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한편, 음악적인 면에서도 인디오적 색채를 가미하는 등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가 있었는데요.

 

특히 칠레의 경우에는 빅또르 하라, 이사벨 빠라, 비올레따 빠라, 세르히오 오르떼가 등의 뮤지션들이 아옌데의 인민연합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많은 사회적 파급력을 지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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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iscogs.com/explore?style=Nueva+Cancion



http://www.cancioneros.com/cn/0/0/cancioneros-y-discografias

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3. 5. 15. 21:58

http://www.youtube.com/watch?v=3jKkNURwcrw

http://www.youtube.com/watch?v=Ps36wgvL5ks
 

http://www.museudofado.pt/personalidades/detalhes.php?id=279



http://fado-today.blogspot.kr/


http://defado.blogspot.kr/



http://lisboanoguiness.blogs.sapo.pt/


http://guitarrasdelisboa.blogspot.kr/


http://www.fadosdofad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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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ortaldofado.net/eng/




파두(Fado)를 듣고 보지 않으면  





 포르투칼 여행의 반 이상을 놓친거라 생각한다.

 파두는  프랑스의 샹송이나 이탈리아의 칸소네 처럼 
 포르투칼을 대표하는  운명 또는 숙명(Fatum)의 뜻을 가진 민속음악으로,
 브라질 작곡가 빌라 로보스가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영역보다 지역이나
 토양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고 했듯이,
 파두는 포르투칼의 고단한 역사와 더불어 시우다드라 불리우는  
 갈망, 동경, 향수, 슬픔과 외로움의 포르투칼적 특유의 한을 
 즉석에서 읊는 운문조의 노래이다.

 파두는 리스본 파두와 꼬임브라 파두로 대별되는데,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포르투칼 파두는 위와 같은  리스본 파두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그 대표이고,
 꼬임브라 파두는 사랑의 세레나데, 사랑의 헌정가이다. 

 파두를 부르는 파디스따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기타하"라고 불리우는 12줄의 포르투칼 기타의 반주에 맞추어  
 몇 명의 가수가 저마다 개성이 있는 주제와 창법으로 돌려 부르며,
 그 노래를 듣는 동안 청중은 고요히 집중하고  파두에 빠져들고
 노래가 끝나면 더 없이 열광한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인생사를, 듣고 말하는 것처럼 
 진지하구도  온 맘을 열어 노래하고 듣는다.

 이런 파두를 위해, 심지어 그 작은 선술집 주인은 
 연주가 시작되어도  친구들과 떠드는 젊은이들에게 조용하라고 엄하게 표정짓고 다닌다.
 그 곳에선 모두 그 주인의 말에 복종하며 
 다시 숨을 죽이고 다음 파두 음악에 또 열중한다.
 정말 남의 말을 찬찬히 정성껏 듣는 모습과도 같다.
 밤이 새도록 이 파두는 계속되고 새벽녁에야 끝난다고 한다.

 파두를 보러가기 위해 트램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마드리드 젊은 아가씨들--넷이 똘똘 뭉쳐 다니는 친구들인데
 넘 재밌고 개성들이 확실하다.
 예쁘고도 코미디언 같은 모니카,
 이름 좋은 메르세데스,
 가장 우두머리 역할을 하던 친구 이름은 잊었지만,
 시시한 남자한텐 절대로 지지않고 싸워대는 호전적 아가씨,
 성격 좋아보이는 또 한명,
 이들을 우연히 만난 행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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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3. 5. 15. 16:06



Cantigas de Santa Maria




아! 아름다우신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의 위대함 


http://www.youtube.com/watch?v=GtYOx37bX6g

http://blog.naver.com/nenia21?Redirect=Log&logNo=13012909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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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antigasdesantamaria.com/



칸티가 (cantiga) 

 


서양 중세 음악사가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칸티가는 시 문학과 음악 장르에서 예술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13세기 스페인의 단선 선율의 성악곡이다. 대부분 성모 마리아를 예찬하고 있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형식은 주로 비를레와 비슷하며, 가사로 보면 거의 동시대 이탈리아의 라우다와 비슷하다. 칸티가의 기원은 트루바두르의 노래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좁은 의미로는 중세에 이베리아 반도에서 널리 불려진 포르투갈어에 의한 서정적 가요를 가리킨다. 알폰소 10세(13세기) 편 ≪성모 마리아 송가집(頌歌集) Cantigas de Santa Maria≫은 갈리시아 지방어(포르투갈어에 가깝다) 가사를 가진 단선율 가곡이 400여곡이나 수록되어 있는 필사본으로 유명하다.

 

1252년부터 1284년까지 까스틸랴(Castilla)와 레온 지방의 현왕으로 추앙받은 문예(文藝)를 사랑했던 알퐁소 10세(1221-1284)는 그의 왕실 전속 음악가들과 아랍 음유 시인 및 세파르디(유대교) 음악가들까지 총동원하여 칸티가를 집대성했다. 그의 성모 찬가 총 420여 곡은 성모님의 기적과 자비로운 사랑의 업적을 노래하는 신앙심 깊은 곡들이다. 이 칸티가는 성모 마리아를 찬미하는 칸티가(Cantigas de loor de Santa Maria)와 성모 마리아가 행한 기적을 길게 서술한 칸티가(Cantigas de milagres de Santa Maria)로 나뉜다. 성모 마리아 칸티가집은 단순히 이베리아 반도의 경계를 넘어서 "중세 음악의 가장 위대한 기념비중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단선율로서 여러 개의 절로 나누어져 있고 각 절마다 후렴구가 되풀이되어 마치 민요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선율은 단순하면서도 경쾌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서기 8세기경(711년)에는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로부터 지중해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하였다. 스페인 회교국을 꿈꾸는 이들에 의해 알-안달루시문명이 찬란히 꽃피우게 된다. 스페인이 14세기에 이르러 회교도들로부터 국토를 수복할 수 있었던 열쇠는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이었다. 역사적으로 이베리아 반도 내의 신앙의 발자취는 대단한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스페인에서 형성된 것은 기원 초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성전, 참배소, 경당(Santuarios)들마다 예배의 목적으로 쓰인 곡들이 오늘날까지 필사본으로 전해진다. 그 예로 야곱 성인의 묘소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별이 흐르는 강)의 대성전에서는 코덱스 칼리스티누스(Codex Calixtinus) 전집이 현대까지 전해오는데 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3성부(聲部)로 작곡된 필사본이다. 이 전집의 일부는 12세기에 이르러 성모 마리아 찬가 칸티가에 포함되었다.

 

 

 

cantiga 1 "Des oge mais quer' eu trobar" , http://youtu.be/KI4YaAlbywo

Cantiga 7 "Santa Maria amar", http://youtu.be/hWG6yOjqHLA

Cantiga 26 "Non é gran cousa" , http://youtu.be/fUulhKon0CE

Cantiga 159 "Non sofre Santa Maria" , http://youtu.be/dyrGsG46Gcw

CANTIGA 295 (Que por al non devess) , http://youtu.be/JX-B9Pd8G3k

Cantiga 353 "Quen a omagen da Virgen" http://youtu.be/RKwHf898TLk

Cantiga de Santa Maria 403: Aver non poderia, http://youtu.be/QB6qPsqy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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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시오의 칸티가
아랍세력의 점령에 의해 형성되었던 중세 스페인의 아라보-안달루시아 문화는 13세기 톨레도의 왕 알폰소 10세에 이르러 마지막 황금기를 맞았는데 아랍의 음악전통과 스페인 고유의 문화 그리고 기독교의 전통이 묘하게 혼재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 가운데 동방의 선교사들의 찬가를 중심으로 선곡된 작품집으로 그 내용에 어울리는 성화들을 컬러화보와 함께 수록하여 더욱 찬란하게 작품의 의미를 빛내는 음반이다.

 

 

 

 

카탈루냐의 칸티가
파니아구아의 알폰소 10세 음악 시리즈는 중세 스페인 음악의 진정한 모습을 찾은 가장 중요한 음반들로 많은 음악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카탈루냐의 칸티가는 그 가운데서도 몽세라트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불렸던 시에 음악을 넣거나 이를 소재로한 음악들로 적막한 수도원의 자연풍광과 성모에 대한 찬미가 공존하는 노래들이다. 본 시리즈가운데서도 가장 정갈한 음악성이 빛난다. 

 

 

잉글랜드의 칸티가
위대한 현명왕 톨레도의 알폰소 10세는 거대한 정치력으로 많은 유럽 왕족과의 정략적 혈통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많은 외교적 인사들과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가운데는 현재 영국계 인사들의 외교적 만남을 위해 영국 수도사들의 이야기와 시를 바탕으로 만든 시와 음악을 담고 있는 음반이다. 특히 <몽생미셀의 불>은 알폰소 10세의 음악 시리즈 가운데 켈트 문화와 프랑스적 전통까지 혼재한 가장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칸티가
에두아르도 파니아구아가 이끄는 뮤지카 안티구아의 알폰소 10세의 칸티가 시리즈는 중세 유럽의 음악적 전통을 아라보-안달루시아 문화를 중심으로 재현하는 중요한 작품집이다. 그 가운데 프랑스의 아름다운 전통이 반영된 음반이다. 화려한 장식구 보다는 순수한 시어를 담아낸 정갈한 선율이 더욱 매력을 더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칸티가
현재 이탈리아로 불리고 있는 곳은 오랫동안 그리스에 점령되어 기독교적 사상 아래서 다양한 음악적 문화가 혼재된 또 다른 비잔티움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파니아구아가 이끄는 뮤지카 안티구아의 연주와 노래로 감상하는 알폰소 10세의 작품가운데 이 비잔티움 문화를 반영하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담고 있는 음반이다. 중세 플루트와 비후엘라 등 고악기와 어우러진 신선한 중세음악집이다.

 

 

 

톨레도의 칸티가
아라보-안달루시아 문화의 후반기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했던 위대한 톨레도의 왕 알폰소 10세의 수많은 작품을 오늘날에 이어준 에두아르도 파니아구아의 음반 시리즈, 그 전설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음반이다. 모두 네 개의 사본을 통해 전해오는 426개의 시와 노래(칸티가) 가운데 성모를 찬양한 작품을 중심으로 선곡된 음반이다.  
 

 

 

아토차의 성모(마드리드의 칸티가)
 “아토차의 성모”라는 것은 마드리드 사원에 있는 성모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11세기에 이르러 톨레도 왕국에 의해 기독교도의 세력에 마침내 해방된 마드리드를 상징한다. 파니아구아의 알폰소 10세 칸티가 시리즈 가운데 지역적으로 그리고 성모에 대한 찬가로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작품집으로 그 상징성과 음악적 완성도의 정점에 있는 음반이다. 

 

 

카스티야와 레온의 칸티가
위대한 아라보-안날루시아 음악의 역사적 전통을 우리에게 남긴 알폰소 10세의 칸티가(노래) 가운데 10% 이상이 카스티야와 레온 왕국의 전통에 의한 것일 정도로 당시 그 문화적 영향력은 거대한 것이었다. 바로 그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곡된 음반으로 중세 아라보-안달루시아 음악의 위대한 해석가 파니아구아의 연주이기에 더욱 갚진 음반이다. 

 

 

산타 마리아 델 푸에르토 1집
위대한 현명왕 톨레도의 알폰소 10세의 역사적 사본 가운데 <산타 마리아 델 푸에르토>에 담긴 작품 전곡을 재현하기 위한 특별한 작품집이다. 이 사본은 특히 그 아름다운 시어와 음악적 요소로 파니아구아의 알폰소 10세 칸티가 시리즈로 일부가 녹음 되었지만 그 전체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재현하기 위해 전 작품을 녹음하기에 이르렀다. 매력적 보컬들과 특히 파니아구아의 리코더 연주는 전곡에 걸쳐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산뜻함을 전한다. 

 

 

카스티야와 라 만차의 칸티가
톨레도 왕국의 확장을 통해 무슬림 세력에 지배 받아온 스페인을 점차 독립시킨 위대한 알폰소 왕가의 알폰소 10세는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날 이 아랍의 영향으로 형성된 아라보-안달루시아 문화를 오늘날에 전해지게 한 위대한 사본들을 만들어내었다. 파니아구아가 재현한 위대한 알폰소 10세의 음악 시리즈 가운데 여기에는 이처럼 톨레도 왕국에 의해 비교적 후기에 해방된 라 만챠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담긴 작품들을 중심으로 선곡되었다.

 

 

치유의 음악
아라보-안달루시아 음악의 위대한 해석가 에두아르도 파니아구아의 가장 큰 업적은 현명왕 알폰소 10세의 방대한 칸티가 전곡 녹음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한 작품집으로 영혼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작품들을 담고 있다. 음악이 영혼의 치유에 큰 역할을 한다는 정서적 영향에 중점을 둔 것으로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민요 선율을 도입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켈트의 칸티가
유럽 곳곳에 미친 켈틱 문화의 광범위한 영향은 스페인의 카스티유와 안달루시아 지방에까지 이르렀다. 언뜻 생각하기에 켈틱과 중세 스페인 노래를 말하는 칸티가라는 두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듯하나 그 넓은 영향력으로 가능했고 여기에서 이를 재현하고 있다. 휘슬, 백파이프, 하프 등 켈트 문화 특유의 악기와 스페인 노래의 아름다운 조화는 오디오파일급 녹음으로 더욱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진다.

 

 

 

기사의 음악
중세음악을 이끌었던 중요한 계층은 왕의 곁에서 호위했던 기사계급으로 그들은 평시에는 왕의 유흥을 돕는 역할도 했기에 세간에 떠도는 시와 노래로 왕을 즐겁게 하였다. 스페인어로는 카바예로스, 프랑스에는 슈발리에 등으로 불렸던 이들은 또한 사랑과 명예의 상징으로 많은 노래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알폰소 10세의 위대한 사본들 가운데 이러한 기사들의 전통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여기에 담겨있다.

 

 

동물에 대한 칸티가
“동물이 없는 낙원은 없다”라고 할 정도로 성서에는 많은 동물에 관한 상징과 우화를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이방인을 때로는 천사를, 또는 성령을 의미하는 많은 동물 우화를 바탕으로 한 알폰소 10세의 작품들을 담은 것으로, 파니아구아의 아라보-안달루시아 음악 시리즈 가운데 파니아구아의 기교가 특히 빛나며 가장 뛰어난 오디오파일급 녹음을 들려준다.

 

 

 

 

관악기와 탬보르
중세 기악음악의 중심을 이루었던 관악기와 탐보르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음반이다. 중세의 관악기에는 다양한 리코더 형태의 플루트와, 백파이프 등이 있었는데 여기에 리듬악기인 작은북 형태의 탐보르가 널리 애용되었다. 민속음악과 교회에서의 세속음악 반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 악기들의 다양한 음색과 쓰임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음반으로 그 선명한 녹음 또한 일품이다.

 

 

 

디시인사이드에 칸티가 음반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자료가 있어서 옮겨왔다.




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3. 5. 15. 15:28




Alegrías는 12박자로 구성된 대표적인 플라멩고 장르로서, 스페인 안달루시아 서

남부 항구 도시 까디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legrías가 까디스에

서 시작된 시기는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하던 시기인 1810년경으로, 스페인 

북동부 Zaragoza(싸라고사)의 수도인 아라곤에서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Alegrías

는 영어로는 joys, 또는 public rejoicing, festivities 등으로 해석되는데, 여러 사람

들이 함께 느끼는 기쁨, 또는 축제를 뜻합니다. Solea(또는 Soleares)와 같은 12

박자에 강약 구성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느낌을 전하는 Solea에 비해 가

볍고 발랄한 색깔을 보여줍니다. Alegrías의 기본 박자는 < [12] 1 2 [3] 4 5 [6]

 7 [8] 9 [10] 11 > ([ ] 강) 입니다. 그리고 Alegrías는 정형화된 틀에 따라 구성

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Salida (살리다, 도입부) 2. Paseo/Paseillos (빠세오/

빠쎄이요스, 스텝을 밟으며 거니는 파트) 3. Silencio (시렌시오, 발레의 Adagio와

 같은 느린 파트) 4. Castellana (까스떼야나, 춤의 상승 파트) 5. Zapateado (싸빠

떼아도, 발장단) 6. Bulerías (불레리아스) 그 가운데 'Silencio'와 zapateado를 포

함하는 'Escobillas(에스꼬비야스)'가 Alegrías의 중요한 특징을 이룹니다. 또한 

Alegrías의 노래를 들어보면 가수가 'tirititrán(띠리띠뜨란)'을 반복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플라멩고 가수 Ignacio 

Espeleta(이그나시오 에스뻴레따)가 파티에 참석해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가사를 까먹으면서 tirititrán을 반복했는데, 이것이 Alegrías 노래의 전형으로 굳

어졌다는 것입니다. Alegrías는 Cantiña(깐띠냐, 민속노래)의 일종으로 분류되며,

 Caracoles(까라꼴레스), Mirabrás(미라브라스), romeras(로메라스) 등이 Cantiña에 속하는 플라멩고 장르입니다.






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3. 5. 11. 23:54


1. 한국에서 녹음되는 해외 애니 음악을 써칭하고프다

http://anidb.net


http://kvpa.kr/



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3. 5. 7. 00:13

http://vocaloid.wikia.com/wiki/Vocaloid_Wiki

http://www.nicovideo.jp/tag/Vocaloid

 http://www.nicovideo.jp/   나루토 

일본 사이트니 번역기 필수고요, 회원가입 안하시면 이용 불가능 합니다.


크리크루 : http://www.crecrew.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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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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