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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5.05 :: Bush ballad
  3. 2013.05.05 :: Brukdown 벨리즈 음악 북아메리카
  4. 2013.05.05 :: Brown-eyed soul 브라운 아이드 소울
  5. 2013.05.05 :: British Invasion 브리티쉬 인베이전
  6. 2013.05.01 :: 어디까지 어디? 어디왔어 했어요 끝ㅇ
  7. 2013.04.29 :: 싸일런트 에너미 , 마쿰바
  8. 2013.04.28 :: d
  9. 2013.04.28 :: Chillwave 칠웨이브
  10. 2013.04.28 :: Electroacoustic Music
카테고리 없음 2013. 5. 5. 15:17


Ca tru 는 민족 악기들와 결합해서 부르는 베트남 북부지방의 전통예술이다. 15 세기부터 궁전에서 유행한 공연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귀족들과 학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2009년 10월 1일에, UNESCO의 무형 문화재 보호 협정 연정부 위원회의 제4차 회의( 2009/9/28-10/2)에서 까쭈가 긴급 보존해야할 무형문화재로 인정되었다.

 

Ca Tru 음악 공연 구성

공연은 세 부분으로 나눈다:

1) 여가수 한 명은 리듬을 치기위해 “bộ phách” 을 사용한다. .

2) 남자 기악 연주가가 여가수의 노래에 따라 “đàn đáy- 단 다이” ( 긴 목,끈 3개 있는 악기)를 친다.

3) 감상하는 분은 ("quan viên- 관 비엔”라고 부르고 보통 작곡가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곡과 가사를 연결해주는 표현으로 북을 친다.

Ca Tru 음악은 실내 음악 예술이라서 까쭈를 공연하는 공간

 범위는 상당히 작다. 여자 가수는 돗자리 중심에 앉고 남자 기악 연주가와 감상하는 분은 양 쪽에 앉는다. 가사를 작곡하면서 바로바로 공연하는 것은 "tức tịch- 뚝딱”라고 부르게된다 (즉석 작곡 노래라는 뜻이다.)

 

작품

까쭈는 다양한 형태가 있으나 가장 대중적인 문학적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는 형태이다. "Hồng hồng, tuyết tuyết” ( 작가: Dương Khuê), Hương Sơn 풍경( 작가: Chu Mạnh Trinh), "Gặp xuân"( 봄 만남) ( 작가: Tản Đà) 등은 유명한 가곡이다.

이 외에도 낭만, 편지 보내기 등이 있다.

 

오늘날의 Ca Tru 음악

Ca Tru는 베트남의 영화 음악으로 많이 발전 하였다. Ca Tru를 Mê thảo thời vang bóng라는 영화와 Một nét ca trù ngày xuân라는 노래(작가:Nguyễn Cường)에서 들을 수 있다.

오늘날에, Ca tru 예술은 Hà Nội, Hải Phòng, Hải Dương, Hà Nam, Nam Định, Ninh Bình, Nghệ An 과 Hà Tĩnh 등 북쪽에 위치한 지방에서 많이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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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5. 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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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오래 전에...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무렵인것 같다.컬러 티비 사고 얼마 안되었을 때니까.
호주에서 만든 비밀의 계곡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광대한 호주를 배경으로 이리저리 뛰어놀고 탐정처럼 사건을 해결하고
우정을 나누고... 대충 뭐 그런 내용이었던듯.


자세한 내용은 거의 기억에 없지만 주제곡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이 난다.
'저 푸른 언덕 흐르는 냇물, 그 속에 뛰놀던 친구들아.
 보고파도 볼 수 없는 친구들 내 노래소리를 들어라.'
이렇게. 아동극 주제가라 하기엔 다소 무겁고 아련한 감이 있지만.

 

그 멜로디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비공식 국가라고도 하는 Waltzing Matilda.
이런 호주의 아련한 멜로디를 bush ballad라고 한단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슬림 더스티도 불렀고
패럴림픽 개막식에선 카일리미노그가 불렀던, 명실상부한 호주의 노래.
여러 영화에도 나왔고.. 주로 흑백의 '전우' 유사한 영화들..
전쟁터의 군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두고온 애인을 생각하는 밤에 흥얼거리는
그런 장면이었던 것 같음.

 

Waltzing Matild는 짐을 짊어지고 떠돌아다니는 도보 여행자라는 뜻이고
가사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다. 
떠돌이 일꾼이 풀숲 어린 연못가(빌라봉~) 옆에서 쉬며 차를 마시다 잡아먹으려고 양을 잡았는데
양 주인이 경찰을 데려와 체포하려하자 물속에 투신했다는... 좀... 멜로디보단 다소 과격하지만.. ^^


이 동영상은 2004년 호주 멜버른 공연에서 지휘자 앙드레 류가 바이올린 앙코르로 화답한 연주.
요즘 바이올린을 다시 배워볼라 기쓰는 중이라..^^
뭐하나 제대로 하는 건 없이 이것저것 관심만.



 민요


가사도 여러가지이지만 그 중 젤 많이 나오는 걸로...

 

Oh there once was a swagman camped in a billabong
Under the shade of the coolibah tree
And he sang as he looked at his old billy boiling
Who'll come a waltzing Matilda with me?
Chorus: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my darli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Waltzing Matilda and leading a water ba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Down came a jumbuck to drink at the water hole
Up jumped the swagman and grabbed him with glee
And he sang as he stowed him away in his tucker bag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Chorus)
Down came the squatter a'riding his thoroughbred
Down came policemen one two three
Whose is the jumbuck you've got in your tucker bag?
You'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Chorus)
But the swagman he up and he jumped in the water hole
Drowning himself by the coolibah tree
And his ghost may be heard as it sings in the billabong
Who'll come a'waltzing Matilda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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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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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5. 5. 14:38

벨리즈의 음악 


북아메리카 남쪽에 있는 입헌군주국. [개관] 멕시코의 남쪽 및 과테말라 동쪽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길이가 386㎞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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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kdown
Stylistic originskaiso, and Call and response
Cultural origins19th century Kriol musicWest African musicEnglish and Scottish folk music
Typical instrumentsaccordiondrumsbanjo,guitarbass guitar, dingalingbell, donkey's jawbone played by running a stick up and down the teeth, graterBoom Drumturtleshell snare,
Derivative formsburu, mentokai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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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Fmv3HFwNttE


아프리칸 카리브 음악의 대표 칼립소, 계속 진화하여 소카로 발전

 

 아프로 카리비안 음악, 즉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아 카리브 지역에서 만들어진 음악 형식의 대표적인 것이 칼립소(Calypso)라는 것인데, 이것은 서부 아프리카에서 전해온 것이다.     칼립소(Calypso)는 아프리카 민속 노래의 혼합이고 서부 아프리카에서 Kaiso 라고 불린 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카이소는 먼저 노예가 된 아프리카 사람들이 불렀고 이들이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농장에서 생활할 때 단결하는, 한 마음이 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 카이소 음악이었다. 과야나에서는 역시 아프리카의 민속노래인 샨티(Shanty, 오두막이라는 뜻)가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에 의해 불렸다. 이 노래를 통해서 그들의 주인들에 대해 이야기(조롱)를 하려 했던 것이다.

 트리니다드에서 불린 초기의 칼립소는 프랑스어와 다른 언어가 뒤섞인 프렌치 빠디오(프랑스적 방언)로 불렸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많은 프랑스인 이민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영어와 다른 언어들이 섞여서 불려지면서 잉글리쉬 빠디오(영국적 방언)로 불렸다고 말한다.

 이런 칼립소 음악이 최초로 녹음이 된 것은 1914년의 일이다. 1930년대에는 Atilla the Hun (야만인 아틸라), Lord Invader (침략 귀족) 그리고 the Roaring Lion(어슬렁거리는 사자) 등과 같은 칼립소 음악가들이 있었고, 1940년대의 Lord Kitchener는 1970년대까지 칼립소 음악의 황제였다. 

 카리브에서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변해갔다. 소울음악과 칼립소가 혼합되면서 소카(Soca)라는 음악이 태어나게 된다. 아프리카적인 칼립소와 동인도적 리듬이 혼합되면서 두 분화가 음악에 녹아버린 것이다. 이 소카는 1973년 카필드 블랙맨(Garfield Blackman)이 칼립소와 인도적 리듬을 혼합하면서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소카 음악에서 아프로 카리브적인 색채가 가장 절대적이었다. 사용하는 단어도 크레올 파티오(남아메리카에서 태어난 프랑스-스페인계 백인 혼합 방언의 뜻)가 주였고 힌두어는 단 몇 개만 사용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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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and response


메인 보컬과 백그라운드 보컬, 각 악기 등이 ’상호 연주’로서(연주에 서로 호응하는 형태로) 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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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izean Creole 


크리올 사람(특히 서인도 제도에 사는, 유럽인과 흑인의 혼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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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th century Krio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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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 African music,


서아프리카에서는 관형(管型) · 용기형(容器型)의 플루트(가로피리가 많다), 호른, 트럼펫(상아 · 뿔 · 나무 등), 하프족 · 류트족 · 찌터족의 현악기(아라비아가 기원인 것도 있다), 통 모양의 큰북, 그리고 방울, 갈라진 큰북 등이 있다. 아프리카 중부에서는 던더 스틱(thunder stick), 세로피리, 가로피리, 파이프, 오보에, 트럼펫 등의 관악기와 리라, 여러 가지의 큰북이 현저하다. 특히 큰북은 일상회화에서의 선율적인 억양이 있는 언어를 모방해서, 이른바 talking drum으로서 사용되고, 재판이나 그 밖의 의지 전달을 위해 사용되는 중요한 악기이다. 동아프리카의 악기 종류는 서아프리카와 거의 같지만, 서아시아적인 요소가 어딘가 확실히 느껴진다. 아프리카 남부에서는 다른 지역과 공통의 악기 외에 취주(吹奏) 현악기인 고라(gora)가 진기하다. 또 목금이나 악궁(樂弓)이 특히 다양한 형태로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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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2회에 걸쳐 영국과 아일랜드 음악이 미국대중 음악 형성과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았다. 이번 회를 통해서는, 19세기 무렵의 스코틀랜드 음악이 미국의 대중음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자.

19세기 초반, 그 어떤 유럽 국가의 포크 음악도 스코틀랜드의 민요보다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 했다. 따라서 영국의 가장 중심인 잉글랜드에서는 물론, 심지어 미국 언론들조차, 스코틀랜드의 전통음악을 높게 평가했다.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한 예를 든다면, 바로 하이든과 베토벤 같은 고전 음악의 대가들조차도 스코틀랜드의 전통 음악을 새롭게 편곡하여 연주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전통 음악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국인들로 부터는 그리 인기를 얻지 못 했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던 아일랜드의 전통음악만큼, 스코틀랜드의 포크음악은 미국 대중음악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주지 못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이 된다.

먼저, 스코틀랜드의 전통 음악은 인쇄된 매체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널리 소개되지를 못 했다. 아일랜드의 음악이 '아이리시 멜로디스(Irish Melodies)'란 책을 통해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것과는 달리, 스코틀랜드 전통 음악을 담은 로버트 번즈의 책 '스콧츠 뮤지컬 뮤지움(Scots Musical Museum)'은 홍보 부족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 했다. 이것은 광고와 더불어 그 당시 음악을 알리는데 본격적으로 쓰였던 악보가 널리 퍼지지 못 했다는 뜻으로서, 구전으로 전해진 전통 음악의 한계를 넘지 못 한 결과를 가져왔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스코틀랜드 음악은 너무 스코틀랜드의 민족적인 색깔을 강하게 풍겼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노래들이 대부분 고향에 대한 향수를 나타내었기에 다른 이민족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던 반면, 스코틀랜드의 전통음악은 스코틀랜드 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노래는 스코틀랜드 지역의 방언으로 쓰였기에, 다른 민족들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다.

위 사실들은 단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이 분리되는 그 과정에 있어 어떤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근거이자 흥미로운 부분이다. 




영국 Folk

포크하면 미국 포크를 떠올리기 쉬운데 미국 포크의 뿌리 역시 영국에서 기인한 것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포크 뮤지션 도노반(Donovan)의 음악을 감상해보면

미국 포크의 저항적 색채를 느낄 수 없을 정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색감이나

때론 사이키델릭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마저를 느끼게 되는데,

이런 면이 미국 포크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브리티시 포크에 음악적,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켈틱 문화이다.

켈틱풍하면 일반적으로 신비스러운 리드나 피리의 단조로운 소리를 연상하게 된다.

그럼 켈틱송, 켈틱풍, 켈틱족 등 켈틱이란 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우선 영국의 역사를 간단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영국 역사에 최초 등장하는 고대민족이 켈트족인데 켈트족은

'게일족'과 '브리튼족'으로 다시 나뉜다.

게일족은 현재의 '아이리쉬'와 '스코티쉬'의 선조이며,

브리튼족은 영국 '웨일즈'의 선조이다.

이때 쓰여진 브리튼이 현재 영국이름의 어원이다.

 
그리고 영국 귀족하면 흔히 '앵글로 섹슨족'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들의 영국내 유입은 게르만족 대이동에 의한 것으로 로마 멸망 후

게르만계의 '앵글로족'과 지금 독일의 작센 지방의 '색슨족'들이

영국으로 들어가 켈트족을 험산한 산악지역과 주변 섬과

아일랜드로 내몰아 버리고 지금의 영국 본토의 주인이 된다.

잉글랜드의 어원은 '앵글로족의 땅(Angle land)'에서 기인한 것이다.

내몰린 자의 저항 속에 담긴 슬픔과 비애의 질긴 명맥은

지금의 포크로 계속 이어져 오게된 것이다.


포크 뮤직은 사실 영국에서 영향 받아 미국에서 화려하게 꽃 피운 음악이다.

미국의 영국에 대한 콤플렉스는 포크에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최초 미국으로 이주해온 잉글랜드와 스코트랜드의 이주민들의

종교적(애팔레치아 포크)이고, 민속적(초기 청교도인들의 음악에서 많이 나타난다)인

음악적 바탕에 당시 지배자였던 영국에 대한 저항의지를 담아 노래한 데서 출발한다.

바로 포크의 정체성은 부조리한 기득권에 대한 억압받는

민중의 저항의지가 녹아든 음악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밥 딜런이 꽃 피운 미국 포크는 포크의 본질적인 사상을

순도 높게 계승했다는 면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딜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좌파 성향의 뮤지션이었던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와 피트 시거(Pete Seeger)는

모던 포크의 선각자로 뽑히는 인물로 밥 딜런의

사상적인 뿌리는 우디 거스리에 닿아 있다.


포크는 시대상을 거짓없이 노래한 '정통 포크'와 선율을 통해 개혁과 선동,

비판 등의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프로테스트 포크',

그리고 대중적으로 영합한 '상업적 포크'로 나뉘는데

'상업적 포크'를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폄하할 수만은 없다.

정통과 프로테스트가 상업적인 포크로 인해 보다 많은 세력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통 포크는 프로테스트 포크와

상업적 포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불기 시작한 포크의 열풍은 영국으로 건너가 더욱 꽃을 활짝 피웠다.
피트 시거와 우디 거스리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영국 포크계의

아버지 이안 맥콜과 알랙스 캠블의 등장이었다.

이 두 사람은 영국 포크 음악을 집대성시켰고,

유럽 전역에 포크 음악 열풍을 몰고 왔다. 

이렇게 시작된 영국 포크 음악은 60년대 도노반이

등장하면서부터 미국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둔다.
도노반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5살 때인 1961년 영국 팝계에 데뷔했다.

그는 1965년 를 히트시키며 영국의 밥 딜런이란 칭송을 들으며

영국 포크 음악계를 주도했다. 

미국의 밥 딜런의 노래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그밖에 마리안느 페이스풀, 매리 홉킨, 더스티 스프링필드,

캣 스티븐스, 알 스튜어트 등도 6·70년대

영국 포크 음악계에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들이다.

출처:김기덕의 골든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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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5. 5. 14:05

Brown-eyed Soul
Stylistic originsSoul musicdoo-wopblues,rhythm and bluesLatin music,rock and roll
Cultural origins1960s United States mainly byLatinos
Typical instrumentsGuitarbasskeyboarddrums,horn section, vocals
Derivative formsFunkLatin rapcontemporary R&B
Other topics
Soul music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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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wn eyed 동양인 

Latinos 미국에 사는 라틴계인이 

 흑인음악인 소울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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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5. 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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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 서구음악의 흐름과 미국의 높은 벽

현재 팝음악 시장은 세계적으로 미국과 영국이 거의 양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한때 WWE와 wCw가 레슬링계를 양분하였듯이..) 일본,스웨덴을 필두로한 북유럽, 호주, 독일을 필두로한 중남부유럽, 캐나다,남미 등이 음악사에 끼친 영향을 절대 무시할수는 없겠지만 미국과 영국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메이져 대열에 들어오기는 다소 힘에 부치는 현실이죠.

그러나 1950년대만 하더라도 영국의 음악은 자기들 동네에서나 흥하고 망하고를 반복했지 미국의 높은문을 두드리기엔 속된말로 택도 없었죠. 그만큼 당시 미국의 음악은 흑인들의 리듬 & 블루스를 시작으로 해서 락 앤 롤까지 미국의 정서를 대변해주는 음악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타 국가들의 음악에 대해선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성공하는 가수나 밴드는 타국가에서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영국/유럽 내에서 최고의 그룹이라도 미국에 진출하게 되면 말그대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높은 미국의 벽에 고개를 절래절래 휘두를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시장 진출성공 = 세계적으로 성공할수 있는 보증수표" 라는 등식이 성립되기에 무던히도 많은 그룹들이 꿈을 안고 도전하고 좌절하고를 반복하였습니다. 미국은 그들의 침략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고 그들만의 아성을 더욱더 견고히 쌓아갈 뿐이었습니다. "서구권 음악 = 미국음악이었죠."


- 2부 : 제 1차 브리티쉬 인베이전 (1st British Invasion )

1964년 2월 7일 영국출신의 더벅머리 네 남자가 미국의 카네기 공항에 내리는 순간 지금까지의 세계의 음악역사는 송두리채 바뀌게 됩니다. 바로 "비틀즈"의 미국 입성입니다. 이 사건은 팝음악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지금까지의 음악의 중심이었던 기성세대 즉, 어른취향의 음악들이 피끓는 젊은이들의 음악으로 세대교체를 하게 됩니다.


- 케네디공항을 통해서 미국땅을 밟은 비틀즈 -

이로써 미국의 견고했던 방어막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비틀즈"를 필두로 "더 후", "애니멀스", "롤링스톤즈"등의 그룹들이 미국을 침공했고 미국은 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렇게 영국은 총,칼이 아닌 음악으로써 미국 침략에 성공을 했고 이 사건을 가르켜 "British Invasion" 즉, 영국의 침공이라고 일컬어 집니다.


[ Beatles - I want to hold your hand ]



-3부 : 제 2차 브리티쉬 인베이전 (2nd British Invasion)

비틀즈,롤링스톤즈,더후를 필두로 여러 밴드들이 미국을 침공하여 세계적인 성공을 이룩해 냈지만 모든 그룹들이 미국진출에 성공했던건 아니었습니다. 성공한 그룹들은 대박행진으로 이어졌지만 실패한 그룹들은 그렇지 못했죠. 하지만 한번의 침공에 의해서 열려졌던 문은 쉽사리 닫히기 힘들었고 수많은 영국밴드들이 미국에 성공적인 진출을 합니다.

야드버즈, 레드제플린, 딥퍼플, 퀸, 핑크플로이드, 아이언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 블랙사바스, 레인보우등이 바로 그들이죠. 

1차 침공과 시기적으로 큰 차이는 나지않지만 1차 침공 당시의 그룹들은 비틀즈류의 음악 혹은 거기서 조금 변형된 음악을 들고 온데 반해 2차 침공의 밴드들은 블루스에 기반을 둔 전통 하드락을 근본으로 해서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등 다양한 장르로 미국을 유린하였습니다. 영국의 음악이 미국에 완연하게 자리잡게 된 시기라고 생각되어집니다.


[ Queen - Bohemian Rhapsody ]



- 4부 : 제 3차 브리티쉬 인베이젼 (3rd British invasion)

1,2차 침공을 통해 주도권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넘어간건 아니지만 전 세계가 영국이란 섬나라의 음악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 결과 영국밴드들은 세계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게 되는 밴드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계속될줄 알았던 대영제국의 음악이 난항을 맞이하게 되니..이번의 불씨는 미국의 씨애틀에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얼터너티브의 폭풍이었습니다. 영국의 음악뿐만 아니라 당시 음악의 판도를 바꾸어 버린 또하나의 중요한 사건이지요. 이 핵폭탄급의 도화선은 다들 아시다시피 "너바나"입니다. 그때까지 침공에 성공했던 그룹도 음악적 흐름에 의해 실패를 맛보는 그룹도 있고 여전히 자신들만의 아성을 구축하여 흐름에 상관없이 꾸준히 롱런하는 밴드도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영국의 침공은 다소 주춤했고 특별히 대박그룹은 나오지 않는 상태 였습니다.

이에 영국은 "브릿팝"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미국을 침공할 뉴페이스를 물색하였으며 "오아시스"와 "블러"가 국가대표로 낙점 되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진출한 블러는 반미(反美)성향의 음악적 이데올로기를 탈피하지 못하고 그저 자국내에서 폭탄급 태풍을 일으키고 사그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남은 "오아시스"가 선택한 전략은 바로 다름아닌 [비틀즈]였습니다. 미국인들의 귀에익은 사운드로 미국의 침공을 시도하였지요. 그 결과는..대성공이었습니다. 비틀즈의 신화를 기억하고 있던 미국인들은 비틀즈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들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지요. 제 3차 브리티쉬 인베이전이 이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아시스가 비틀즈를 내세운 "브릿팝"이라고 칭해지는 장르로 닦아놓은 길위에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 뮤즈, 트래비스등의 그룹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 ]


- 5부 : 결론

지금까지 간략하게나마 브리티쉬 인베이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영국밴드들의 미국내 성공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비틀즈부터 오아시스까지 수많은 밴드들이 활약을 보여주었고 영국의 음악을 만방에 알리는데 혁혁한 공훈을 세웠습니다. 앞으로도 영국 뮤지션들의 건승을 기원하고 좋은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길 바래봅니다.


※ 여기까지 스킵 안하고 쭉 읽어주신 분들이 있다면 그 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복받으실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ㅋ 긴 글 읽어주시느라 고생하셨고 이 글이 음악을 좋아하시는 회원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첫 발걸음 비틀즈.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브리티시인베이젼에 대한 간단한 설명부터 하고자 한다. 영어 뜻 그대로 british invasion, 영국의 침략이다.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로큰롤은 바다를 건너 영국에 도달했다. 그리고 영국은 다시 영국만의 로큰롤로 미국 음악시장을 침략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다.

 

 

이 용어의 시발점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대 초반, 사람들에게 슬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밴드 비틀즈가 british invasion 의 첫 출발이었다. 클럽등의 곳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인지도를 쌓은 비틀즈는 브라이언 앱스타인을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큰 레코드 회사의 사장이었고, 비틀즈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비틀즈와 매니저 계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1963년 비틀즈는 그들의 첫번째 앨범 <please pleas me>를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앨범의 'love me do'와 'pleas please me'는 영국차트 정상을 석권한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비틀즈는 미국에서도 엄청난인기를 누리게 된다. 영국뿐만아닌 미국에서도 차트정상을 석권하게 된 비틀즈는 미국으로 진출하기로 마음먹는다.(아마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전략이었을 것이다.)

 

비틀즈가 미국으로 발을 내딛는 시점.. 이 시기가 바로 브리티시인베이젼의 첫 출발점이다. 당시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던 비틀즈의 미국 진출로 인해 그들의 인기는 폭발했다. 'I want to hold your hand'의 빌보드 차트 정상 기록을 선두로 해서 발표하는 곡들마다 차트 1위를 석권하고 때때로는 자신들의 곡들이 차드 상위권을 모조리 싹쓸이해버리는 그런 이변도 일어났다. (한번은 차트 1위에서 5위가 모두 비틀즈의 곡이었던 적도 있다. 비틀즈의 인기를 알려주는 지표이다.) 미국에서의 기록뿐만아니라 영국에서도 엄청난 앨범 판매량, 정상을 휩쓰는 차트성적을 보여주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뛰어난 작곡 능력을 선두로 그들은 전 세계 로큰롤 음악시장을 평정하게 된다. (엄청난 인기에 많은 팬을 거느렸기에 일부에서는 보이밴드라며 비판하는 시선도 많았다) 어찌되엇든 그들의 인기가 엄청났던 것은 사실이고 비틀즈의 미국진출은 단순한 성공이 아닌 대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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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차트에서 1위기록을 안겨주었던 i want to hold your hand이다. 첫번째 앨범의 곡들보다 좀 더 매력있게 다가오는 건 내 개인 취향이겠지만, 오래 전 노래임에도 지금까지 비틀즈의 명곡 하면 바로 떠오르는 노래 중 한곡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비틀즈의 성공적인 미국진출은 영국본토의 다른 밴드들 또한 미국으로 진출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험난한 길의 첫 개척자가 되었던 셈이다. 비틀즈로 인해 브리티시 락은 큰 인기를 얻게 되고, the who, animals, yardbirds, rolling stones, cream 등의 다른 영국 밴드들도 미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영국의 로큰롤은 미국시장을 장악해 낸다. 이것을 바로 british invasion, 영국의 침략이라 칭하는 것이다.

 

비틀즈는 britisih invasion의 시초이고, 당시 로큰롤의 반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엄청난 인기와 기록을 가졌던 밴드이다. 영국 로큰롤의 미국시장에서의 성공, 그 발판이 되어주었던 밴드가 바로 비틀즈 였기에, 1편의 대부분을 비틀즈로 꾸몄다. 그들의 장대한 활동들을 내가 이 글속에 고작 몇곡으로 고작 몇글자로 모두 담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인 브리티시 인베이젼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비틀즈였기에 , 짧은 글 속에나마 이렇게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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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미국상륙


이전까지 영국가수가 로큰롤의 본고장 미국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영국에서의 비틀즈 신드롬이 미국에 전해지자 미국 공연이 주선되고 드디어 뉴욕 JKF공항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이른바 British Inavasion으로 불리우는 영국음악의 미국진출 신호탄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공항에 운집한 수 많은 미국팬들은 신선한 영국의 더벅머리 젊은이들을
맞이했고 그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I want to hold your hand"는 미국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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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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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5. 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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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4.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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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4. 2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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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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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4. 28. 11:34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pqP2-w6AWS4


그의 음악은 Chillwave라는 장르로 구분되는데,

 

그럼 Chillwave는 도대체 뭐하는 장르인가...

 

 

신디사이저나 샘플링을 사용하여 반복적인 멜로디를 갖추고 있으며

 

보컬의 목소리에 큰 효과를 주어 재밌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샘플은 주로 80년대의 음악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들어보면 음악속에 옛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ㅏㅏㅏㅏㅏ

칠웨이브란 '글로-파이'라고도 불리우며, 이펙트 프로세싱, 신디사이저, 루핑, 샘플링을 사용하여 헤비하게 필터링 된 보컬과 심플한 멜로디가 주를 이루는 음악이다. 이 장르는 80's 레트로 인디 음악과 앰비언트 사운드, 모던 팝이 2000년대 트렌드와 결합한 음악이다. 일렉트로 팝,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싸이키포크, 드림팝, 누게이즈, 위치하우스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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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fychillwave.com/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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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3. 4. 28. 10:41

http://en.wikipedia.org/wiki/Category:Electroacoustic_music_composers


http://www.youtube.com/watch?v=3XfeWp2y1Lk





google


amazon.com

Discogs


cdbaby


cduniverse


youtube.com


http://music-releases.com








생활소음의 발견 : Electroacoustic Music I

 

최초의 전자음악
1948년 프랑스의 방송국 기사인 피에르 쉐페흐(Pierre Schaeffer)는 철도의 소리나 동물의 소리 등 
자연계의 음이나 악기의 음 등을 녹음하여 이를 기계적, 전기적으로 조작하여 변질시키거나 겹치기도 하여 
음악작품을 만들었고 이를 구체 음악(具體音樂), 구상 음악, 또는 뮤직 콩크레트(Musique concrete)라 
불리었다. 현재는 최초의 전자 음악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의 한 장르이다.


Electroacoustic의 하위 장르로는
ㆍ구체 음악(Musique concrete)
ㆍ라이브 일렉트로닉(Live electronic)

ㆍ실험주의 음악 (Musique expérimentale) 
ㆍ사운드 아트 (Sound art)
      ㆍ
      ㆍ
..등이 있으며 전자음과 소년의 노랫소리를 소재로한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의 
'소년의 노래(1956)'가 성공한 이후 이러한 종류의 작품이 많이 나타났다.

 

Electroacoustic Music
Electroacoustic Music은 컴퓨터 및 녹음기술을 이용해 만든 음악을 말한다.
Electroacoustic Music은 우리와 일상소리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수 있다. 
필드 레코딩(Field Recording)을 통하여 청중은 그냥 지나칠수 있는 주위의 소리들을 다른 관점으로 들어보고 
그 사물을 확대 시키거나 새로운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를 녹음 
했다고 하면 그것을 눈으로 관찰했을 때와 녹음된 사운드를 들었을 때 느끼고 받아들이는 데엔 큰 차이가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눈으로 관찰하면 소리보다 보이는 정보에 취중하게 되어 많은 소리들이 삭제되어
뇌에 전달된다. 하지만 그것을 소리로만 관찰하면 뛰노는 아이들 소리뿐 아니라 바람소리, 그네소리,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복합적인 소리의 패턴들이 숨어 있지만 백과사전에 개미를 확대한

사진처럼 흙장난을 하며 두꺼비집을 다독이는 아이들의 손동작까지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왼쪽에서 들리는

새소리의 높낮이와 움직임을 통해 새가 날고 있는지 나무에 앉아 있는지 까지 유추하게 된다. 소리를 상황으로

받아들이거나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면 스스로가 소리의 존재에 대해 다양하게 해석하고 분석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정서적인 면과 부합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 놀이터가 자신이

잘 아는 집 앞의 놀이터라면 어느 방향으로 앉아 녹음했을꺼라는 것까지 추측이 가능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철저히 다른 관점에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건 Electroacoustic /

Field Recording이 가지는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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