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키델릭 록에 영향을 준 요소로는 우선 약물에 의한 환각 체험이 있고, 그 외 인도 명상 사상이나 중국, 티벳등 불교의 선 사상 같은 동양의 신비주의 종교 사상(사실 신비롭다는건 서양인들만 느끼는 감정이겠지만), 현대 클래식 음악에서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등 전위적인 음악가들이 시도한 백워드 마스킹이나 신디사이저 등등의 새로운 음향 실험, 와우와우 주법등 일렉트릭 기타의 새로운 주법과 음향효과 개발 등등이 있다. 그리고 베트남전 때문에 젊은이들이 가지게 된 현실도피주의,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히피 무브먼트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최초의 사이키델릭 록이 언제 등장했는지는 명확치 않고, 이미 프리재즈나 아방가르드 재즈 쪽에서 록에 관심이 있는 일부 똘끼있는 재즈 연주자들이나 언더그라운드 록 씬에서 프랭크 자파같은 사람들이 은근히 실험을 하고있었긴 하지만,[1] 그래도 대충 비틀즈의 러버 소울과 리볼버 앨범 무렵부터 사이키델릭 록의 초창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Rain, I'm Only Sleeping, Tomorrow Never Knows 같은 곡들이 그런 대표적인 곡이다.). 그리고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테잎 역회전과 속도 변형 등의 실험적인 스튜디오 녹음 기법 및 인도음악과 동양 명상적 요소 등을 대중음악에 최초로 도입한 것 역시 비틀즈이다. 이런 1965~6년경의 사이키델릭 태동기를 거쳐서, 드디어 1967년에 사이키델릭 록이 본격적으로 만개하는데, 이 해엔 비틀즈의 페퍼상사, 도어즈와 지미 헨드릭스의 데뷔앨범 등 사이키델릭 록의 중요한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사이키델릭 록의 탄생에는, 포크와 록음악이 섞이면서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형성된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도 일조를 했다. 또 한편으론 상당수 사이키델릭 록 뮤지션들의 음악적 뿌리가 블루스였고, 심지어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경우 "우리는 그냥 평소에 하던대로 블루스를 연주했는데 어느순간 싸이키델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무슨 마약하셨길래 이런 음악을 했어요?
6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사이키델릭 장르는 차차 쇠퇴하고 프로그레시브 록(해당 항목 참고) 음악이 그 뒤를 이어받게 된다. 장르의 계보를 한 마디로 재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겠지만, 70년대 양대 주류인 프로그레시브 록은 사이키델릭 록에서, 하드 록은 R&B에서 그 영향을 받았다고 일단은 간단히 말할 수 있겠다. 일단 표현은 저렇지만, 사이키델릭 록은 하드록과 헤비메탈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개발한 엄청 둔중한 베이스라인이나 찢어지는 듯이 굉음을 내는 일렉트릭 기타에서의 와우와우 주법, 환각에 빠지게 하기위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짧고 굵은 기타 리프, 듣는 사람의 감정을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날카롭게 찌르는 하이톤 보컬이나 취한 듯 웅얼대는 보컬 등등. 하드록의 방향을 제시한 크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등등은 사실 '하드록' 밴드라기 보단 '사이키델릭 록' 밴드이며, 본격적인 하드록 밴드들인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블랙 사바스 등등도 초기의 음악 성향은 사이키델릭 록에 가까웠다. 순수한 사이키델릭 록 밴드로 분류되는 아이언 버터플라이[2]와 바닐라 퍼지도 하드록에 엄청난 영향을 준 밴드이다.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 멤버들이 그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헤비록의 선구자로 존경한다고 분명히 고백할 정도이니. 아니 딥 퍼플의 경우는 초창기는 사실상 바닐라 퍼지의 카피 밴드에 가까웠다.
지금도 '몽환적인 분위기의(=사이키델릭한)' 음악은 많이 있지만,[3] 사이키델릭 록 자체로 뭔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없다고 할 수 있을 듯.
이렇게만 설명하면 너무 장황한 설명이긴 하지만 이 장르를 거쳐간 60년대의 밴드란 것들이 록 음악 역사에 어마어마한 족적을 남긴 양반들이라...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실 60년대 후반은 록 음악 전체를 사이키델릭 록이 지배하는 양상이었으며 헤비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선조격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후 드림팝 같은 1980년대 이후의 주요한 인디락의 진보적인 장르들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1990년대 인디 밴드들이 싸이키델릭적인 요소를 즐겨 차용하며 약간의 부흥기를 맞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MGMT, 애니멀 콜렉티브, 테임 임팔라처럼 사이키델릭함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디 그룹들이 부쩍 늘어났으며 이들은 사이키델릭 '록'이라기보다는 사이키델릭 '팝'에 가까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는 네오 싸이키델리아 하는 식으로 하위 장르로 나뉘기도 한다. [4]
★는 여러 매체에서 특히 사이키델릭 록 밴드로 불리는 일이 많은 밴드에 기재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비틀즈같은 밴드는 워낙 다양한 장르에 영향력이 걸쳐 있기 때문에, '사이키델릭 록 밴드'라는 특정한 한 가지 장르에 속하는 밴드라고 분류하기엔 적절치 않기 때문에 별표를 붙이지 않는다.
※ 가나다 순.
국카스텐 - 국카스텐이란 밴드명의 뜻이 만화경을 뜻하듯이 사이키델릭 락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좀 더 폭넓은 장르를 수용한 음악을 들려준다.
Wicked Lady - 60년대 인디 밴드로 최근 재조명되어 헤비 메탈의 초석을 닦은 밴드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앨범을 한정판 밖에 발매하자 않았고 주로 연주하던 공간이 폭주족들이나 트럭 운전사들의 쉼터 같은 곳이라 널리 알려지지 못한 신비한 밴드로 남고 말았다. (일설에 의하면 밴드의 리더가 앨범 계약을 하러 온 레코드회사 담당자의 머리를 기타로(!)내리쳤다고 한다.)
http://mirror.enha.kr/wiki/%ED%94%84%EB%A1%9C%EA%B7%B8%EB%A0%88%EC%8B%9C%EB%B8%8C%20%EB%A1%9D1.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
2. 프로그레시브 록의 특징 3. 프로그레시브 록의 발전 4. 브리티쉬 아트 록 대표 앨범 5. 하위 장르 및 대표 앨범 5.1. Symphonic 5.2. Classical 5.3. Psychedelic 5.4. Space 5.5. Electronics 5.6. Folk 5.7. Jazz 5.8. Theatrical 5.9. Canterbury, Chamber (RIO) 5.10. Neo-Progressive 6. 새로운 시대,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록의 모습
*이 글은 '98년 7월호 GMV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프로그레시브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인데 이 분야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네요.
SUPERNATURAL FAIRYTALES -THE ERA OF ART ROCK-
록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지도 한 세대가 흘 렀다. 그 동안 대중음악계에서는 무수히 많은 시도와 실험이 행해졌고, 나름대로의 훌륭한 성과와 실패 그리 고 진보와 퇴보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과거의 음악 은 새로운 이름과 형식으로 현대에 다시 태어나 또 다 른 진화의 길을 걷는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모습과 색깔을 지닌 음악들 중에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생활 의 동반자로서 역할하는 류가 있는가 하면, 사랑은커녕 그 존재에 대한 인지(認知)조차 불투명하여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는) 음악도 있다. 아래에 장황하게 소개될 아트 록(Art Rock) 또는 프로그레시브 록 (Progressive Rock)에 포함되는 음악은 분명 후자에 속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과연, 이 음악에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 또는 느낌에 역행하는 어떤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일 까? 그렇다면 그 맥이 끊이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그 음악은 어떤 음악이길래?
1.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
우리가 흔히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어떠한 장르를 얘 기할 때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 악 또는 아티스트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물론 이는 개 인의 취향과 음악적 경험에 따른 차이를 가진다. 예컨 대 누군가에게 "헤비 메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헤비 메탈을 듣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메탈 리카를 떠올릴 것이고 좀 더 나이가 든 계층은 주다스 프리스트나 아이언 메이든을 생각할 것이다. 또는 그보 다 더 위의 세대라면 딥 퍼플이나 그랜드 펑크의 음악 을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물론 남들보다 많이 듣는 매 니아라면 생각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질 수도 있지만, 대체로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경우란 선구자격의 역할 을 했던 특출한 몇몇에 한정되기 때문에 결국 범위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그럼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이 거론될 때 사람들은 누구를 먼저 떠올릴까? 이 분 야의 음악을 많이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어느 정도 음 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프로그레시브와 연계하여 손 에 꼽히는 몇 개의 밴드명을 생각해낸다: 핑크 플로이 드(Pink Floyd), 킹 크림슨(King Crimson), 예스(Yes), 제네시스(Genesis),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등등. 그리고 이 이름들에 담긴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프로그레시브 매니아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정석과 같이 되어 있는 이 등식은 요즘에 는 공신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말 을 놓고 요즈음 음악을 '듣는' 이들은 위의 밴드들이 아 니라 드림 씨어터(Dream Theater)나 퀸스라이크 (Queensr che)를 생각한다. "프로그레시브에 푹 빠져 있답니다. 어디 드림 씨어터같은 밴드 있으면 좀 추천 해주세요." 이런 질문이 PC 통신의 음악 동호회에 수시 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런 건 프로그레시브가 아니다, 왜 아니냐, 그 이상 진보적인 음악 하는 밴드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하는 식의 말싸움이 벌어진다. 그런 논쟁은 대부분 에너지 낭비로 끝나게 된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 이다. 많은 음악들 중 유독 프로그레시브라는 장르에서 만 늘 이런 류의 논쟁이 그치지 않는 까닭은 장르 자체 의 광범위성 탓이다. 이는 용어의 의미에 대한 뚜렷한 개념 정의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끝날 수가 없는 싸움이 다. 그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데에 있었다. 우선, 프로그 레시브 록에 대해 말하며 단어의 뜻대로 고스란히 직역 을 하여 '진보적인 록'으로 번역한 데에서 논쟁은 생겨 날 수밖에 없었다. 록이 발전하던 시기에, 전에 없던 시 도를 행했다거나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시기에 정말로 동시대의 감각과 사유(思惟)를 앞선 듯 보이는 그 음악들에 프로그레시브라는 말이 붙은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진보의 기 준은 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대상에 대해 '진보'라는 수식어가 시대와 시간의 흐름에 관계 없이 통용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물론 지금 들어도 여전히 진보적으로 생각되는 사운드가 분 명 있긴 하지만-. 그러므로 용어가 지니는 발생론적 차 원에서의 의미는 장르의 토대가 형성된 이래 보통명사 가 아닌 고유명사로서 역할한다고 보아야 한다(따라서 어떤 음악에 대해 '프로그레시브하다'라고 한다면 그건 '진보적이다'라는 뜻이라기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분위기이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이 젠 더 이상 메이슨(Mason)이란 성씨들이 모두 석공(石工)이 아니고 커틀러(Cutler) 가문이 칼붙이 장수가 아 니듯이 말이다. 아트 록이라는 용어 또한 마찬가지이다. '예술적인 록'이라는 해석은 애매하기 짝이 없다. '예술' 에 대한 납득할만한 정의도 구체화되어 있지 않을뿐더 러 용어의 생성 자체가 의미론적이라기보다는 형태론적 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용어는 당시 '진보적인' 시도를 행했던 많은 아티스트들이 대부분 '아트 스쿨(Art School)'의 학생이었던 탓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아트 록이라 일컬었던 데에서 연유한다. 이후 유럽과 (특히) 일본의 평론가들은 이 두 용어를 즐겨 사용했고 일부에서는 둘 중 하나를 더 상위 개념으로 간주하여 구분을 짓기도 하였다. 여기에서는 두 용어에 대한 특 별한 구분을 두지 않겠다. 단, 일반적인 장르 구분상 '록'의 범주에 넣기엔 무리가 따르는 음악들, 즉 전자음 악, 민속음악, 포크, 챔버음악 등에 대한 상위 장르로서 아트 록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임을 밝힌다.
2. 프로그레시브 록의 특징
프로그레시브 록이란 그 범주에 포함되는 하나의 흐 름 또는 분위기이다. 록을 기본으로 하여 출발했지만 재즈, 클래식, 블루스, 하드 록, 포크 등 타 장르와의 경 계를 허물어 어떤 정형(定型)을 가지지 않으며 때로는 록을 넘어서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느 장르 보다도 포괄하는 범위가 넓지만, 모든 음악들을 아우르 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장르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짙은 색깔이 채색되어 있다. 그것은 연주면에서의 기교 적인 부분일수도 있고, 기술을 요하는 첨단의 악기 또 는 장치의 사용일수도 있고, 극단적인 미학에의 추구일 수도 있고, 장르간의 적절한 크로스오버일수도 있으며 또 지역색의 반영이나 과거-르네상스 시대, 중세 또는 그 이전-로의 회귀(回歸)일수도 있다. 가장 화려한 모 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 지극히 단순한 울림의 연속 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 사이에 집중적으로 쏟아 져 나온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록 작품들에 담긴 사운드 는 각 앨범들마다 너무도 다른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뭉뚱그려 한두 마디의 말로 표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외형적인 일정한 형식 과 명쾌한 스타일의 곡 전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라 도, 장르를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사운드와 분위기는 분 명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모든 음악과의 크로스오버 아트 록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사운드는 크로스오버, 즉 록과 서로 다른 장르의 접목으로부터 생겨났다. 물 론 이는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류의 단순한 일차원 적인 시도나 효과와는 다르다. 그것은 화학반응이다. 일 정한 조(調)와 비트(beat)의 유지에서 벗어나 재즈의 즉 흥연주(improvisation)나 클래식의 조곡(suite)의 형식을 도입한다거나 단순한 음률이 주가 되는 민속음악의 선 율을 차용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표현을 위한 수단 과 방식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이 지나 쳐 '음악'이 아닌 '의미 없는 음(音)의 나열' 정도로 인 식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여러 실험들의 결과는 장르의 눈부신 발전과 급속한 쇠퇴에 큰 영향을 끼쳤다.
② 키보드, 그리고 멜로트론의 효과적인 사용 음향 합성 장치인 신서사이저가 개발되고 발전하던 때에 그 '악기'를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데 커다 란 역할을 했던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뮤지션들이었다. 기존의 악기가 낼 수 없는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냄으로 써 아티스트의 표현 영역은 극대화될 수 있었다. 그래 서 키보드, 특히 하몬드 오르간과 무그 신서사이저는 초기 아트 록에서 빠질 수 없는 악기로서 기능했는데, 이 장르와 거의 동격으로 여겨지는 장치인 멜로트론 (mellotron)의 등장은 곧 아트 록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각각의 건반에 연결된 릴테입으로부터 흘러나 오는 소리는 가장 신비롭고 웅장한 사운드를 만들어냈 으며 이후의 어떤 악기나 장치도 이 사운드를 대신할 수 없었다. 70년대 초, 중반에 발표된 무수한 팝, 록 앨 범들에 이 장치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역시 아 트 록에서 가장 활발하고 효과적인 사용이 이루어졌다. 이후 아트 록이 쇠퇴함에 따라 록 신에서 이 장치의 사 용 또한 현저히 줄어들었다.
③ 고전, 민속악기의 적극적인 도입 아트 록에서 유달리 많이 등장하는 악기는 바이올린 을 비롯한 고전 현악기이다. 오케스트레이션의 사용은 록의 기본 편성-기타, 베이스, 드럼-에서 창출되는 직 선적인 사운드를 더욱 아름답고 화려하고 섬세하게 만 드는 역할을 했다. 류트, 쳄발로, 덜시머를 비롯한 옛 민속악기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④ 주제의 다양성 다루는 주제에 있어 장르가 포괄하는 범위는 먼 미래 에서 태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내부에서 무한한 우주 에 이르기까지, 눈앞의 현실에서 잊혀진 신화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이 음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주제에 걸맞는 사운드를 위해서 아트 록적인 분위기는 가장 적절한 것 으로 여겨진다. 유달리 이 장르에 컨셉트 앨범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3. 프로그레시브 록의 발전
앞서 언급했다시피 '프로그레시브'라는 말에 연상되는 이름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른바 '수퍼 밴드'로 불리 우는 그룹들인데, 특이하게도 그들이 록의 역사에서 지 니는 가치라는 것은 놀랄만한 창조가 만들어내는 그 흐 름의 영속성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지 극히 배타적인 속성을 띠는 개별성 속에 있다고 보여진 다. 아무리 뛰어나다 인정되는 그룹들이라 할지라도 극 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록의 역사 속에서의 그들의 위상 은 높이 자리매김되지 않는다. 즉 영향력이라는 측면에 서 비틀즈의 부재와 핑크 플로이드의 부재는 차원이 다 르게 생각된다는 말이다. 대중성의 결여, 이는 아트 록 또는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장르의 음악이 지니는 가 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히틀러의 말마따나 '머리가 없는 괴물'과 같은 성격을 가지는 대중은 그들의 머리 로서 역할할 수 있는 조건을 꽤나 까다롭게 따진다. 그 리고 그 대중들이 살고 부딪는 '현실'이라는 조건을 담 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은 결코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음 악을 포함한 문화 예술 제분야에서 대중들이 원하는 현 실성이라는 것은 사회 참여적인 성향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의식(意識)보다는 감각에 더 가까이 접근해 있는 무엇이다. 쓴약이 몸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 혀 끝에 달콤한 맛을 전해주는 사탕 을 먹으려 한다. 꿈을 꾸고 은은한 향을 음미하기보다 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을 원한다. 꿈꾸기 에 좋은 음악인 프로그레시브 록이 간혹 상업적인 성과 를 거두었을지언정 대중적이 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 나는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이 태동했던 시기는 60년대 말, 록이 가장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던 때이다. 물론 그 시작과 본격적인 발전이 있던 곳은 영국이다. 시대의 여러 상 황들은 젊은이들의 이상(理想)에 대한 갈망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고, 그 정신적 영역의 많은 부분들은 그들의 예술적 창의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로큰롤에서 발전된 록 음악은 여러 선구자들에 의해 뚜렷한 모습으로 성장 하고 있었다. 이후의 대중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 게 되는 비틀즈(Beatles)는 단순한 로큰롤에 민속악기 를 도입하는가 하면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적인 시도로 전에 없던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해냈다. 또한 약물의 사용에서 비롯되는 환각을 담아내었던 롤링 스톤즈 (Rolling Stones), 하나의 이야기 구조 위에 오페라 또 는 뮤지컬의 형태를 차용했던 후(The Who)와 킹크스 (Kinks), 본격적인 록의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던 야드 버즈(Yardbirds)와 크림(Cream) 등 위대한 그룹들에 의 해 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미국 의 서부에서 건너온 싸이키델릭 문화의 영향은 대중음 악에 현저하게 반영되어 당시의 거의 모든 아티스트들 이 음악을 통해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음악들과 더불어 이 후 아트 록 또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고전으로 남게 될 작품들이 등장한다. 프로그레시브 록계에서 수퍼 밴드 로 인정되는 그룹들의 음악은 제각기 고유의 사운드와 분위기를 가진다. 때문에 그들의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이라는 말 외에 다른 카테고리에 넣어 분류하려면 몇 개의 다른 용어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초기 아트 록의 형태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그룹들 은 대부분 미국의 싸이키델릭에서 영향을 받은 사운드 를 구사하였다. 그 범위는 무브(Move), 나이스(The Nice), 패밀리(Family) 등 수퍼 그룹들의 전신(前身) 밴 드나 클럽 등지에서 활동하던 로컬 밴드들에서부터 비 틀즈, 에릭 버든(Eric Burdon), 도노반(Donovan), 아써 브라운(Arthur Brown), 트래픽(Traffic), 크림 등 록사 (史)에 획을 그은 아티스트와 밴드에 이른다. 하지만 본격적인 발전은 몇몇 밴드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실 험과 그 결과물의 상업적 성공에 기인한다. 클래식 오 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비롯하여 주음원으로서의 멜로트 론의 본격적인 사용, 변박에 의한 일정한 리듬과 비트 의 파괴, 제한을 두지 않는 곡 길이 등, 이전에 없던 이 러한 시도들은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이루기에 충분했 으며 그 신비로운 영역으로의 항해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큰 전성기를 맞이한다. 영국에서의 이러한 커다란 움직임은 곧 유럽 전역으 로 퍼지게 되는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영국에 버금가 는 프로그레시브 강국(强國)은 이태리, 독일, 프랑스이 다. 각 나라들은 기존의 그룹들이 닦아 놓은 토대 위에 자국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덧입히고 다듬어 그들의 정 체성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당시 록에 있어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이 나라들에서 아트 록의 영향력이 란 일반적인 생각보다 더 큰 것이어서, 지금까지도 이 탤리언 록, 저먼 록, 프렌치 록이라 하면 흔히 아트 록 계열의 음악을 일컫는 말로 되어 있다. 이들은 각각 나 름대로의 확연한 특색을 지닌다.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가 보다 소박하고 텁텁하며 스케일 큰 아름다움을 가지 고 있다면, 이태리의 것은 아기자기함과 서정미 넘치는 선율적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한다. 환각 문화에 보다 큰 영향을 받은 독일은 싸이키델릭과 차가운 전자음악 으로 대표되며, 연극적인 요소의 도입과 프리 재즈의 강한 영향을 드러내는 프랑스의 아트 록 역시 언어가 주는 독특한 뉘앙스와 함께 유러피안 록의 한 계보를 이룬다. 이들 나라들을 주축으로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는 아트 록 밴드가 활발히 활동을 했었다. 그들을 모두 이 지면에 일일이 거론하기란 불가능하다. 아래에 소개 되는 앨범들은 장르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운 드를 담고 있으며 이미 많은 팬들에게 걸작으로 인정되 는 작품들이다. 프로그레시브라는, 말할 수 없이 방대한 바닷속에서의 한 모금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 맛과 향 과 빛깔이 어떠한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 다. 아래의 앨범들을 통해 각 밴드들이 지향한 사운드 와 그것으로 대표되는 (하위) 장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장르의 선구자격인 밴드들의 음악들은 그것 자 체로 하나의 하위 장르 또는 계파(系派)로 이어지는데, 애초부터 크로스오버적인 성격이 강한 장르이니만큼 분 류되는 영역 역시 매우 광범위하다. 앞으로 얘기하게 될 여러 장르들 또는 그 장르에 의한 구분은 다분히 개 인적인 느낌과 관점에서이다. 때문에 이들 중에는 다른 여러 장르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그룹, 아티스트 또 는 앨범들이 있을 수도 있음을 밝힌다.)
4. 브리티쉬 아트 록 대표 앨범
위대한 브리튼(Great Britain), 적어도 록 음악을 좋 아하는 이들에게 영국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신비로움 을 간직한 나라로 기억된다. 웨일즈와 잉글랜드, 스코틀 랜드와 아일랜드는 각각 짙은 지역색을 띤 채 서로 배 타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적어도 음악이라는 범위 내 에서 그것은 '영국'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겨진다. 비 단 아트 록에만 국한되지 않은 브리티쉬 록에는 다른 나라의 음악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푸른 초원을 뒤덮는 따사로운 햇살, 황량하고 거대한 바위산으로부터 불어 오는 서늘한 바람, 음습한 대지 위에 피어오르는 희뿌연 안개, 스톤 헨지의 거석 (巨石)들 사이에서 아련히 스멀거리며 솟아 오르는 신 비로움과 주술적인 공포,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축적 된 꿈들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6,70년대 영국 음악의 가 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 특색을 고스란히 간직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를 얘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 마어마하고 방대한 작업이다. 정말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프로그레시브 앨범들이 존재하지만, 사실상 그 전 형과 그들이 표방하는 음악은 소수의 밴드들로부터 완 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등장하게 될 온갖 종류의 아트 록은 이미 영국에서 그 싹을 틔우고 있었으며 또 완벽한 계보를 형성했다. 물론 이들의 파급력은 자국뿐 아니라 프로그레시브가 존재하는 모든 나라와 대부분의 그룹, 아티스트들에 미친다. 수퍼 그룹들은 제각기 다른 음악 성향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 핵심 인물 들이 모두 남다른 재능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기에 이 들의 사운드는 각각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KING CRIMSON /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69, Island) 단 한 번만 봐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이 인상적인 앨 범 커버는 음악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앨 범이 발표되었을 당시 이 음악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아마도 프로그레시브 또는 아트 록을 표방하는 그룹들, 아니 록 그룹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보적인' 집단으 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밴드 킹 크림슨은 데뷔작을 통해 프로그레시브라는 장르가 가게 될 모든 방향에 대 한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리그의 조곡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앨범 타이틀은 물론이거니와 사운드에서의 강렬함 -<21st Century Schizoid Man>-과 서정성-<I Talk To The Wind>, <Epitaph>-, 그리고 신비로움 -<Moonchild>-을 담고 있는 각 곡들의 구성, 시적인 가사는 앨범을 프로그레시브 최고의 걸작 중의 하나로 자리하게 한다. 마이클 자일스(Michael Giles)의 절제된 드러밍과 이안 맥도날드(Ian McDonald)의 몽환적인 멜 로트론 연주는 이후 수많은 그룹들에 의해 반복되는 스 타일의 전형을 이루며, 그렉 레이크(Greg Lake)의 깊은 보컬은 이들의 환상에 가장 적절한 음색을 지닌다. 각 곡들에서 느껴지는 회화적(繪畵的)인 분위기 또한 초기 킹 크림슨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밴드의 모 든 것을 지휘하고 그려내는 로버트 프립(Robert Fripp) 의 천재성은 이 앨범을 통해 이미 그 극점에 올라 있 다.
MOODY BLUES / Days Of Future Passed ('67, Decca) 같은 해에 발매되었던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도어스의 『The Doors』,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urrealistic Pillow』, 핑크 플 로이드의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등 록사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앨범들이 짙은 싸 이키델릭의 영향권 아래 있었지만, 무디 블루스는 플라 워 무브먼트나 환각 등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이들 은 시대의 조류와는 관계 없이, 각자가 멀티 플레이어 인 멤버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악기들로부터의 자유로 운 사운드 조합을 특징으로 하는 서정적인 음악을 행했 던 밴드이다. 또한 킹 크림슨의 로버트 프립과 더불어 멜로트론의 음향을 가장 효과적으로 즐겨 사용했던 마 이크 핀더(Mike Pinder)에 의한 '우주적'인 사운드 역시 무디 블루스라는 색깔을 이루는 요소이다. 하지만 여타 심포닉 밴드들의 작품에서 들을 수 있는 멜로트론과 이 들의 사운드는 커다란 느낌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 들은 스케일 큰 웅장함이 아닌 벨벳과 같은 부드러움과 포근함, 소박함을 담아낸다. 밴드의 실질적인 데뷔작이 라 할 수 있는 이 앨범에서부터 그러한 요소는 어김없 이 드러난다. 많은 프로그레시브 팬들이 최초의 '프로그 레시브적' 시도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 앨범을 꼽는 이유는 단순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라는 외형적 요소 때문만은 아니다. 특별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지는 않지 만 '하루'라는 주된 컨셉트는 아침, 점심, 저녁의 시간순 으로 배치되어 일정한 질서를 따르고 있으며 각 파트에 있어서의 사운드 역시 정연하게 배치되어 부담없이 들 을 수 있는 구성을 이룬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신세 계>에서 차용한 주제는 오케스트레이션과 멜로트론으 로 재해석이 되었고, 이들만의 독특한 서정으로 표출이 된다.
BARCLAY JAMES HARVEST / Once Again ('71, Harvest) 이른바 '목가적' 또는 '전원적'인 사운드를 구사했던 바클리 제임스 하베스트는 중후반기의 보다 록적인 사 운드로 전환하기 이전까지는 영국적인 향취를 듬뿍 담 은 전형적인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 밴드였다. EMI 산 하의 프로그레시브 전문 레이블인 하베스트(Harvest) 소속 시절의 앨범들에서는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나 있 는데,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과 관악기, 그리고 멜로트 론의 사운드는 밴드 초기의 트레이드마크를 이루던 요 소들이었다. 하지만 여타 서정파 심포닉 그룹들과의 명 확한 차이점은, 이들의 음악에는 마치 포근한 봄날의 아침 안개와 같은 기운이 서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건 분명 햇살 가득한 한낮도 별빛 반짝이는 밤도 아니 다. 멤버들의 개인기는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정도이지만 그들의 어우러짐은 가장 은은한 아름다움이 되어 퍼진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인 이 작품에서 그러 한 요소들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후에 에니드(The Enid)를 결성하는 로버트 존 갓프리(Robert John Godfrey)가 앨범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했으며, 여덟 곡의 수록곡들이 지니는 서정성의 농도는 이루 말할 수 가 없을 정도이다. 이들의 초기 걸작인 대곡 <She Said>의 멜로트론 사운드와 수백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명곡 <Mocking Bird>에서의 브라스, 스트링, 기 타, 드럼의 급박한 질주가 빚어내는 카타르시스의 양은 무한으로 치닫는다.
GENESIS / Nursery Cryme ('71, Charisma) 후배 그룹들-특히 네오 프로그레시브 계열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밴드 중 하나인 제네시스는 일찌 기 무대에서의 연극적인 장치와 분장을 사용한 공연 즉 씨어트리컬 록(Theatrical Rock or Rock Th tre)의 형 태를 발전시켜 왔다. 물론 그것의 완성은 더블 컨셉트 앨범인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74) 에서 이루어졌다고 여겨지지만 그 시작은 통산 세 번째 작품인 이 앨범에서이다. 이들에게는 늘 (특히 르네상 스 시기의) 귀족과 같은 고상한 기품이 배어 있는 듯하 다는 인상을 가지는데 그것은 아마도 커버의 영향이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꼭 빅토리아 여왕 통치시대 의 상류층의 모습을 그린 일련의 커버 아트워크들-『 Nursery Cryme』, 『Foxtrot』('72), 『Selling England By The Pound』('73), 『A Trick Of The Tail』('76)-이 아니더라도 이들의 음악에는 영국 특유 의 전통적인 멋이 어려 있다. 그건 고요함 속의 역동성 이며 명쾌하게 떠오르는 옛 꿈과 같은 그런 것이다.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과 밴드의 창의력이 최고 조에 달해 있던 시기에 발표된 이 걸작은 제네시스의 본령(本領)을 담고 있는 앨범으로, <The Musical Box>와 <Seven Stones>, 그리고 특히 <The Fountain Of Salmacis>에서의 멜로트론의 사용이라든 지 곡 전개에 있어서의 완급 조절 등은 이후 이태리의 PFM이 자신들의 모델로 삼은 스타일이기도 하다. 다분 히 신화와 동화적인 내용의 가사와 완전한 형식의 확립 이 돋보인다.
PINK FLOYD / The Dark Side Of The Moon ('73, Harvest) 이 앨범이 아트 록 뿐만 아니라 록사(史)에서 차지하 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없 다. 빌보드지의 앨범 차트에 얼마나 오랜 기간 올라 있 었다느니 판매량이 얼마나 된다느니 하는 것은 중요하 지 않다. 프로그레시브라는 카테고리에 있으며 이토록 오랜 기간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요 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발매된 지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꾸준히 팔려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앨범의 사운드에 시대를 초월하는 감성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밴드의 다른 앨범들, 즉 『The Wall』('79)이나 『Wish You Were Here』('75), 『Animals』('77) 등과 같은 앨범이 지니 는 위상 또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좀 다르다. 우선 이 앨범을 통해 이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완벽한 멤버들간의 조화를 이루었다 고 평가되며 이는 정신적으로 가장 원숙한 시기의 안정 성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여진다. 닉(Nick Mason)과 릭(Rick Wright), 로저(Roger Waters)와 데이빗(David Gilmour) 각자의 이토록 확실한 역할 분담과 화합은 이후에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컨셉트 앨범 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앨범의 가치는 더해진다. 일반적 인 개념으로서의 '음악' 이외의 소리에 대한 밴드-특히 로저-의 관심은 내면의 광기, 소외, 죽음, 영속(永續)이 라는 내용에서의 컨셉트와 더불어 사운드에서의 컨셉트 를 이루어냈다. 심장의 박동소리, 기분 나쁜 웃음소리, 호흡소리, 발자국소리, 금전등록기의 소리 등, 이 일련 의 비트(beat)들은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결국 음악과 소음의 경계는 의미를 잃게 된다. 각 멤버들이 사용한 첨단 악기와 장치들에 실린 재능은 알란 파슨스의 멋진 솜씨로 혼합되고 다듬 어져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꿈으로 재창조되었다.
YES / Close To The Edge ('72, Atlantic) 예스는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뛰어난 연주인들의 집 단이다. 각 멤버들의 개인기는 이들의 모든 앨범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며, 가장 단순한 밴드명과는 달리 가장 복잡한 사운드 구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이들 또한 많 은 멤버 교체를 겪으며 사운드의 변화를 이루었는데, 존 앤더슨(Jon Anderson)과 스티브 하우(Steve Howe), 크리스 스콰이어(Chris Squire), 빌 브루포드(Bill Bruford), 릭 웨이크만(Rick Wakeman)이라는 최상의 라인업으로 활동했던 2기 시절-이 앨범을 비롯하여 전 작인 『Fragile』('71)과 『Yessongs』('73)까지-은 그 야말로 최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였다. 짜임새 있는 구성 과 빈틈없는 연주, 그리고 곡들의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이들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되는 앨범은 『Fragile』이 라 할 수 있지만, 더욱 드라마틱한 전개와 선율적인 아 름다움이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은 전작을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최초의 한 면짜리 대곡인 타이틀곡에 서의 각 파트별 진행은 독립적인 사운드들의 완벽한 조 화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으며 <And You And I>의 화려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멜로트론 사운드는 가 장 '예스적인' 서정미를 보여준다. 예스를 얘기하며 빠 질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커버 아트이다. 전작 에 이어 로저 딘(Roger Dean)이 표현한 또 하나의 환 상은 '떠 있는 섬(Floating Island)'이다. 재킷을 펼쳤을 때 눈 앞을 가득 채우는, 구름 속의 신비로운 섬의 환 상적인 모습은 <And You And I>의 회화적 형상화인 것만 같다.
CAMEL / Moonmadness ('76, Deram) 소위 '서정파 프로그레시브 록'의 범주에 포함되는 그 룹들에 있어 그들의 사운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악 기는 바로 키보드이다. 가장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아트 록 밴드 중 하나인 카멜 역시 키보드의 사운드를 빼놓고 말할 수 없는 그룹이다. 밴드의 통산 네 번째 작품인 이 앨범에서도 어김없이 그 화려한 음(音)의 물 결은 커다란 강이 되어 흐른다. 그 주인공은 피터 바든 스(Peter Bardens)로 초, 중기 카멜 사운드의 핵심을 이룬 것은 그의 풍부한 키보드음의 향연과 앤디 레이티 머(Andy Latimer)의 여성적이고 깔끔한 기타 사운드였 다. 물론 오랜 기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모든 앨범에는 부드러운 멜로디와 포근함이 공존하며 듣는 이를 편안한 감정으로 이끌지만, 이들의 후기작들에서 늘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역동성의 부재'라는 점이다. 그래서 피터 바든스 재적 시절의 작품들에 담긴 넘치는 활력은 초기작들을 후기작들과 구별시켜주는 가장 큰 특징을 이루고 있다. 대곡 지향의 구조와 록적인 사운 드로 사랑받았던 『Mirage』('74)와 클래시컬하고 짜임 새 있는 『Snowgoose』('75)와 더불어 이들의 최고작 이라 할 수 있는 이 앨범은, 수려한 곡의 진행과 탄탄 한 멜로디 라인에 실린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를 특징 으로 하는 작품이다. <Lady Fantasy>와 함께 가장 사 랑받는 초기 명곡 <Song Within A Song>의 서정성은 최고의 감흥을 전해주며, <Chord Change>의 중반부에 서 들을 수 있는 앤디의 아름다운 기타와 피터의 하몬 드 오르간, 키보드가 이루어내는 감미로운 분위기 또한 일품이다. 리듬 파트 역시 강약의 적절한 조절로 멜로 디를 탄탄히 뒷받침해준다. 또 하나, 앤디 레이티머의 잔잔한 플루트와 쏟아지는 멜로트론, 아름다운 기타와 보컬 머신을 사용한 몽롱한 보컬이 혼연일체가 되는 <Air Born>에 이르면 그 짙은 향내가 온 방안에 가득 퍼져 공간을 채운다.
EMERSON LAKE & PALMER / Trilogy ('72, Island) 록 음악에 있어서 무그와 피아노 등 키보드 신서사이 저의 본격적인 도입과 정착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 들 중 결코 빠질 수 없는 이는 키스 에머슨(Keith Emerson)이다. 그리고 그의 모든 재능을 유감없이 쏟 았던 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등장은 여러 면에 서 큰 의의를 지닌다. 크림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 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 등에 의해 완전히 정 립된 '3인조'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록 밴드'는 이후 키보드를 중심으로 하는 아트 록 밴드들의 전범(典範)이 되었는데, 이태리 의 라떼 에 미엘레나 오르메, 트립, 독일의 트리움비라 트, 네덜란드의 트레이스 등이 모두 EL&P로부터 큰 영 향을 받았던 것이다. 나이스, 킹 크림슨, 어토믹 루스터 (Atomic Rooster) 등 이들의 화려한 전적을 굳이 말하 지 않더라도 이 3인의 재능은 각 앨범들을 통해 충분히 드러나고 있으며 그 정점에 위치하는 앨범이 바로 『 Trilogy』이다. 역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전작 『Pictures At An Exhibition』('71)에서 보여주었던 다 소 '과도한' 실험과 즉흥성은 이 앨범에 이르러 완전히 안정된 상태로 접어들었고, 각 개인기의 멋진 조화 역 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The Endless Enigma> 의 2부작이라든지 <Trilogy>에서의 완벽한 소리의 구 축미는 이들이 수퍼 그룹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타당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듯한 차가운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의 음울한 울림, 가 벼운 타악기 리듬과 어두움을 증폭시키는 신서사이저의 하나됨: <From The Beginning>은 과연 명곡으로 불 릴만하다. 이 앨범에서 '빈틈'이란 찾아볼 수 없다.
RENAISSANCE / Scheherazade And Other Stories ('75, BTM) 꽤나 독특한 역사를 가지는 르네상스는 최초 밴드명 이 사용된 이래 약 30년 동안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성 보컬리스트를 내세운 세 개의 그룹으로 맥을 이어 왔 다.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인 키스 렐프(Keith Relf)와 드러머 짐 맥카티(Jim McCarty)에 의해 결성된 1기 르 네상스가 시도했던 클래식과의 접목은 거의 완벽한 새 로운 음악의 탄생을 가능케 했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이름은 클래시컬 아트 록의 대명사로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애니 해슬럼(Annie Haslam)으로 대표되는 2기 르네상스는 1기의 클래시컬한 전통을 그대로 이어 수많 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발표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헤라자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변주곡인 이 앨범 은 2기 르네상스의 네 번째 작품으로, 전작들과 마찬가 지로 그들의 고전적인 감수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 다. 국내에서는 이들의 대표곡으로서 많이 알려진 <Ocean Gypsy>가 사랑받았지만 앨범에서 가장 주목 되는 곡은 24분여의 조곡 <Scheherazade>라 할 수 있 다. 앨범의 성격을 극명히 드러내는 이 곡은 총 아홉 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과 긴박감 넘치는 구성이 애니의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 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서사적인 작품이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구조를 지니는 이야기라는 <천일야화>를 표현 한 작품답게 뛰어난 양식미를 자랑한다. 1기의 제인 렐 프(Jane Relf)가 지닌 소박함과 3기의 스테파니 아들링 턴(Stephanie Adlington)의 파퓰러한 감각의 장점을 고 루 갖춘 애니 해슬럼의 하늘을 나는 듯한 목소리가 귓 가를 맴돈다.
5. 하위 장르 및 대표 앨범
5.1. Symphonic
적어도 지금과 같이 다양한 음악이 본격적으로 발굴 되고 소개되기 이전에 프로그레시브 록은 심포닉 록과 동일시되어 있었다. 비교적 잘 알려진 대부분의 초기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의 음악 양식이 웅장하고 스케일 큰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그레시브 의 많은 하위 장르 중에서도 심포닉으로 분류할 수 있 는 밴드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이 음악은 고전음악, 그 중에서도 교향곡의 형식과 내용의 충실한 계승으로부터 출발되었다. 앞서 언급된 무디 블루스의 교향악적 시도처럼 본격적인 오 케스트라를 도입하는가 하면, 다양한 키보드군(群)이 이 루어내는 풍성한 소리를 특징으로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장르에서 가장 중시되는 악기는 키보드 파트이다. 전형적인 교향곡이나 조곡, 협주곡 또는 소나타의 형태 를 취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현란한 악곡의 전개와 멤버 들의 개인기를 중시하는 경우 또한 흔하게 볼 수 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초기 제네시스나 킹 크림슨, 무디 블루스, 예스, 카멜 등 대부분의 수퍼 그룹들을 이 범주 에 넣을 수 있는데, 수많은 이태리의 수퍼 밴드들과 유 럽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던 밴드들, 그리고 미 국과 일본의 여러 밴드들이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범 주에 포함되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METAMORFOSI / Inferno ('73, Italy, Vedette) 프로그레시브 록 또는 아트 록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의 키보드의 중요성은 앞에서도 수차례 언급되었다. 키 보드 연주가 주(主)가 되는 무수한 프로그레시브 걸작 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탈리안 프로그레시 브 록 신에서 최고의 심포닉 앨범을 꼽으라 할 때 많은 팬들은 메타모르포시의 2집이자 마지막 작품인 이 앨범 을 치켜든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현대 사회 라는 시점에서 각색하여 음악화한 컨셉트 앨범이며 동 시에 완벽한 한 편의 록 오페라이다. 건반 주자 엔리코 올리비에리(Enrico Olivieri)의 다양한 키보드군(群), 즉 피아노, 무그, 하몬드 오르간, 교회 오르간과 멜로트론 의 화려한 사운드들이 시종일관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이는 방코나 라떼 에 미엘레, 무제오 로젠바하 등이 들 려준 심포닉 사운드를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기복 없이 텁텁하게 전개되는 지미 스피탈레리(Jimmy Spitaleri)의 투박한 보컬이 지닌 약점-물론 그것이 이 태리 밴드들의 매력일 수도 있지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현란하게 펼쳐지는 각종 키보드와 드럼의 어우러 짐에 귀를 맡기고 있노라면 40분이라는 시간은 단숨에 몸으로 녹아든다.
MUSEO ROSENBACH / Zarathustra ('73, Italy, Ricordi) 두말할 나위 없는 걸작인 이 앨범의 타이틀 조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놀라움과 흥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프로그레시브가 뭔지도 몰랐고 그룹 이름도 무 슨무슨 바하였다는 기억만을 가지고 레코드 숍을 헤맸 다. 당연히 있을 리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나고 한 중고 가게에서 이 앨범을 발견했다. 심장은 요동하기 시작했 고 호흡까지 가빠지는 듯했다. 조심스레 집어 들고 주 인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거 얼마예요?" 눈을 치켜 뜨 며 흘끗 쳐다본 주인이 되묻는다. "살거야?" "예..." "10 만원 있어?" "..." 조용히 내려 놓고 가게 문을 나선 나 는 이 나라를 원망했다... 음악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학생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던 이 앨범에는 단 한 번 재능을 불살랐던 밴드의 음악적 혼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니체의 초인(超人) 사상을 음악화한 이 조 곡의 빈틈없는 구성과 하드 록적인 전개, 심포닉한 분 위기는 그야말로 최상급의 카타르시스를 전해주며, 무 엇도 대신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준다. 쉴새없이 난타 하는 드럼, 하몬드 오르간과 멜로트론의 완벽한 조화는 가장 돋보이는 부분인데, 놀랍게도 이 곡은 원래 플루 트와 색소폰만을 위해 작곡되었던 것이라 한다. 아마도 니체가 살아서 이 곡을 들었다면 그는 바그너보다는 무 제오 로젠바하라는 밴드에 더 매료되었을지도 모를 일 이다.
PULSAR / Halloween ('77, France, CBS) 얼마 전 미국에서 실시된 대중음악에 관한 설문조사 중 '기억에 남는 후렴구나 리프'에 대한 항목이 있었다. 가장 많이 답해진 곡은 놀랍게도 데렉 앤 더 도미노스 (Derek & The Dominos)의 <Layla>였다. 그럼 아트 록 팬들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떤 곡들이 등장할까? 아마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잔잔히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스캣 <Halloween Song>이 아련히 떠 오를지도 모른다. 1분이 갓 넘는 짧은 부분이지만 이 곡이 남기는 여운은 무엇보다도 강렬하기만 하다. 프랑 스의 서정파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밴드 펄사의 세 번째 앨범은 커버의 음울한 색채와 캐릭터의 표정에서 드러 나듯 가을 저녁의 쓸쓸한 감상(感傷)과 같은 분위기로 가득하다. 각각 네 개와 다섯 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조곡은 프랑스식의 뒤틀린 (듯이 느껴지는) 감 성과는 거리가 멀다. 영어로 불리워지는 가사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사운드 자체는 매우 영국적이다. 하지만 어두움, 공포, 환상 등의 이미지로 가득함에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이나 세련되어 있다. 자끄 로망 (Jacques Roman)의 키보드와 멜로트론은 격한 감정과 고즈넉한 슬픔 사이에 위치한다. 도입부의 <Halloween Song>은 실비아 엑스트룀(Sylvia Ekstr m)이라는 소 녀에 의해 불리워졌고 그 원곡은 북아일랜드의 민요인 <Londonberry Song>이라 한다.
TRIANA / Triana ('75, Spain, Movie Play Gong) '플라멩코 록(Flamenco Rock)'으로 통칭되는 스페인 프로그레시브 록의 한 분파는 트리아나와 그라나다로 대표된다 할 수 있지만, 이들은 전통적인 요소를 보다 더 내포하여 완벽한 융합을 이룬 그룹으로 평가된다. 원래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 지방에 기원을 두는 집시 무곡의 일종인데, 이 민속 춤곡의 요소를 록에 접목시 킨 결과로서 탄생된 트리아나의 데뷔작은 이들의 모든 앨범들 중 가장 '정열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다. 퓨전 재즈계의 명 기타리스트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를 사사(師事)한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Eduardo Rodriguez)가 들려주는 플라멩코 기타의 명징한 울림과 예수 델라 로자(Jesus De La Rosa)의 멜로트론, 무그 를 비롯한 짙은 키보드군, 그리고 후앙 호세 팔라치오 스(Juan Jose Palacios)의 타악 리듬의 어울림은 여타 유러피안 아트 록 앨범들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 위기를 이루어낸다. 국내에서도 사랑받았던 9분여의 대 곡 <Abre La Puerta>를 비롯한 모든 곡들은 전형적인 심포닉으로 채색되어 있다. 보다 록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이는 이후의 작품들과 비교할 때, 역시 남국(南國)의 열정과 이국적인 분위기로 일관하는 이 데뷔작에 가장 많은 손이 가게 된다.
IL BALLETTO DI BRONZO / YS ('72, Italy, Polydor) 이 앨범을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는 것은 좀 무리인 듯도 싶다. 전형적인 서정미와 유연 한 멜로디의 전개가 아닌 극도의 긴장감과 전위적인 불 협화음이 주가 되는 이 앨범은 하지만 가장 '프로그레 시브한' 앨범 중의 하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도 의 긴장 상태와 극적인 진행을 이루는 작품은 흔치 않 다. 시종일관 숨이 가쁠 정도로 내달리는 키보드와 베 이스, 드럼의 혼연일체된 사운드는 듣는 이의 넋을 빼 앗아버리며 마침내 마약과 같은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밴드의 두 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작품인 이 앨범의 컨 셉트를 이루는 것은 '사랑의 여신(YS)'이지만, 사운드면 에서 그 이름만으로 연상되는 일말의 낭만성이나 부드 러움 따위는 애초부터 끼어들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울한 베이스의 울림과 코러스, 신비로운 멜로 트론의 소리가 전하는 것은 혼돈과 공포이다. 이는 다 분히 키보디스트인 지안니 레오네(Gianni Leone)의 영 향으로 보이는데, 그의 어두운 면은 마우로 펠로시 (Mauro Pelosi)의 앨범이나 그의 솔로 앨범에서도 확연 히 드러난다. 여하튼 앨범은 흠잡을 데라곤 없을 정도 의 완벽한 구성을 보이며 11분의 대곡인 <Epilogo>에 서 온 몸을 훑는 전율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STEVE HACKETT / Voyage Of The Acolyte ('75, UK, Charisma) 피터 가브리엘과 함께 제네시스 사운드의 핵을 이루 었던 스티브 해킷은 밴드 활동을 하며 자신의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하였다. 수퍼 그룹 출신 멤버들의 솔로 앨 범들은 대부분 '덜' 프로그레시브한 경향이 많지만, 이 앨범은 여느 어정쩡한 아트 록 밴드들의 음악을 뛰어넘 는 완성도를 지닌 걸작이다. 음악적 동료인 제네시스의 두 멤버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마이크 러더포드 (Mike Rutherford)가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며,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의 누이 샐리 올드필드(Sally Oldfield)도 참여하였다. 이후 스티브 해킷의 모든 앨범 커버를 도맡게 되는 킴 푸어(Kim Poor)의 신비롭고 몽 환적인 그림은 앨범의 분위기를 적절히 잘 표현해내고 있다. 각각의 곡들이 지니는 이미지는 모두 타로 (Tarot) 카드로부터 차용한 듯하다. 유대교의 여제사장: <Hands Of The Priestess>, 그리스 비교(秘敎)의 사 제: <Shadow Of The Hierophant>, 연인: <The Lovers>, 은둔자: <The Hermit>, 탑: <A Tower Struck Down>, 별: <Stars Of Sirius>, 마법 지팡이의 에이스: <Ace Of Wands> 등 모두가 타로 카드에 등 장하는 캐릭터들로서, 그의 상상력이 빚어낸 사운드로 채색되어 있다. 샐리 올드필드의 아름다운 보컬이 감동 을 주는, 브리티쉬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인 <The Lovers>와 <Shadow Of The Hierophant>의 접속곡만으로도 앨범의 가치는 빛난다.
KLAATU / Hope ('77, Canada, Capitol) 테리 드레이퍼(Terry Draper), 디 롱(Dee Long), 존 월로셕(John Woloshuck)이라는 3인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비틀즈의 멤버들이 결성한 밴드라는 소문이 무 성했던 캐나다 출신의 그룹, 클라투의 두 번째 앨범이 다. 실제로 이들의 데뷔작에서의 몇몇 곡들은 그러한 가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완벽한' 비틀즈 스타일의 연주 를 담고 있었으며, 두 번째 앨범의 첫곡 <We're Off You Know>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 다. 하지만 전작에 비해 더욱 프로그레시브한 면모를 보이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들의 스타일을 확고히 하고 있다. 초반부의 두 곡에서 전작에 이은 록적인 성향이 드러난다면 <Around The Universe In Eighty Days> 에서의 웅장한 요소와 A면의 끝곡인 대곡이자 명곡 <Long Live Politzania>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은 이 앨범을 충분히 심포닉 프로그레시 브의 대열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이 앨범의 진짜 매력은 B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The Loneliest Of Creatures>와 <Prelude>의 접속곡을 통 해 들려지는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멜로디의 진행과 클 래식 소품을 연상케 하는 간주 부분, 그리고 다양한 코 러스의 사용과 완벽한 곡 구성 등은 음악 듣는 즐거움 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국내에서 사랑받 았던 타이틀곡의 서정성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가장 손 이 많이 가는 앨범들 중의 하나이다.
5.2. Classical
사실상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와 '클래시컬 아트 록'에 대한 장르의 명확한 구분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하지만 여기서 프로그레시브와 아트 록이라는, 두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차이와 단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이 둘 사이에서는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많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뉘앙스와 분위기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데, 보다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느낌이 드는 음악을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에 포함시킨다면 클래시컬 프로그레시브는 기존의 클래식 악곡의 변주나 보다 서 정적이고 섬세한 감성을 드러내는 음악 또는 바하나 베 토벤, 비발디 등의 스타일을 융합한 음악이라 할 수 있 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분위기'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 니다. 클래식 연주가들의 연주에서 볼 수 있는 기교나 클래식의 방법론을 차용한 작품들도 이에 포함된다. 후 자의 경우에는 나이스로부터 비롯된, 키보드 주자가 주 축이 되는 3인조의 형태를 취하는 밴드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로 1, 2기의 르네상스, 에니 드를 비롯하여 이태리의 많은 서정파 그룹들, 네덜란드 의 트레이스(Trace)나 엑셉션(Ekseption), 코다(Coda), 그리고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등을 꼽을 수 있다.
LOS CANARIOS / Ciclos ('74, Spain, Ariola) 재화 가치로서 음악을 바라보았던 이들에게 이 앨범 은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물론 이 지면에 소개되는 많은 앨범들이 예전에 음반 중개상들의 주머니를 꽤나 불려 주었을 터인데, 이 작품은 부르는 게 값이던 그 시절에 도 잘 눈에 띄지 않던 앨범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 유가 있었겠지만, 음반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뒤틀린 시장 구조하에서의 그러한 상황은 지금 생각하면 쓴웃 음이 지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 앨범이 외국에서도 고가에 거래되었던 까닭은 앨범 자체의 희귀성이라는 요인 외에 뛰어난 음악 자체에 그 원인이 있었다. 커브 드 에어, 스카이(Sky), 앙그라(Angra), 그리고 국내 가 수 이현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뮤지션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음악적 모티브로 사용했던 바로크 시대의 명 곡인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다. 작품을 완전히 재해석하여 한 편의 록 오페라로 만들어 놓은 이 앨범으로 까나리오스 는 자국인 스페인은 물론 전세계의 아트 록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지루하다는 느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주 훌륭한 아트 록 앨범이라 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주제 선율의 변주와 록적인 즉 흥 연주, 적절한 보컬과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이루 는 심포닉한 분위기 등에 매료된 이들에게는 오히려 무 지치(I Musici)의 연주보다 더 정감 있게 느껴질 수 있 기 때문이다.
LATTE E MIELE / Passio Secundum Mattheum ('72, Italy, Polydor) 아직도 많은 아트 록 팬들은 이 앨범이 국내에 발매 되었을 때의 그 흥분과 가슴 설렘을 잊지 못할 것이다. 90년대 초반, 프로그레시브 록의 물결이 국내의 음악 팬들에게 밀려 닥쳤을 때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이태리의 신비롭고 이국적인 음악들이었고 그 중 최상위에 위치해 있던 앨범이 라떼 에 미엘레의 데 뷔작이었다. 이탤리안 프로그레시브를 얘기하며 결코 빠질 수 없는 작품 중 하나인 이 앨범을 들으면,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아련한 감동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 터 아스라히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국내 발매 당시 놀라운 판매고를 기록했던 이 앨범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작품으 로, 치밀한 구성과 흠잡을 데 없는 연주, 그리고 오케스 트레이션과 코러스 등이 완벽하게 조화된 걸작이다. 음 악의 형태는 약간의 프리 재즈와 하드 록의 요소가 포 함된 전형적인 클래시컬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인데, 놀 라운 것은 이 방대한 스케일을 이루는 모든 것이 단 세 명의 멤버들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며 더군다나 이들이 당시 10대의 소년들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앨 범의 어디에서도 미숙한 구석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종교적인 경건함과 숙연함에서 오는 감동은 바하의 <마태 수난곡>에 버금갈 정도이다. 최후의 만찬과 유 다의 배신, 체포와 골고다 언덕으로의 오름, 절망과 부 활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고행(苦行)이 때론 격한 감정 으로 때론 한없이 슬픈 눈물로 형상화되어 음악에 실린 다. <Il Calvario>와 <Il Dono Della Vita>로 이어지는 종장(終章)은 아트 록을 듣는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주 고 있다.
5.3. Psychedelic
'플라워 파워(flower power)'의 영향은 영국에서 프로 그레시브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60년대 말에 등장했던 많은 그룹과 아티스트들의 음악에는 이 싸이키델릭의 향취가 배어나는데, 발생지인 미국의 것 과는 달리 보다 짙은 몽롱함을 담고 있었다. 핑크 플로 이드의 데뷔작에서 들을 수 있는 극도의 환각은 제퍼슨 에어플레인(Jefferson Airplane)이나 그레이트풀 데드 (Grateful Dead)의 '스며드는 듯한 은근함'과는 다른 것 이었고, 블루스적인 감성을 담은 에릭 버든이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의 실험성 역시 영국만의 독특 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싸이키델릭의 영향을 극명하게 드러냈으며 그것이 새로운 형태로서의 록의 주류로 등장했던 나라는 바로 독일이다. 아트 록 신에 서 독일의 음악은 아래 소개될 전자음악과 더불어 싸이 키델릭으로 대표된다 할 수 있다(이 두 장르는 물론 서 로 커다란 영향을 주고 받고 있으며 많은 부분에서 공 통분모를 지닌다). 그래서 우리에게 알려지거나 그렇지 않은 많은 독일 밴드들은 싸이키델릭의 영향권에서 벗 어나지 않았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환 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음악을 들라면 아래의 앨범들 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GROBSCHNITT / Ballermann ('73, Germany, Brain) '...안녕하시오, 친애하는 친구들! 여기 내가 다시 음 악을 가지고 왔소. 자, 이 매우 멋진 앨범을 가지고 여 러분께 얘기할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오...' 혀를 돌돌 굴리며 초등학교 1학년생이 교과서를 읽듯 또박또박(혹은 장난스레) 말하는 에록(Eroc)의 막걸리 트림같은 목소리로 앨범은 시작된다. 가장 '독일적인' 사운드와 음악 스타일을 들려주는 밴드 그롭슈니트는 실험정신과 정통성, 완고함과 유머를 동시에 갖춘, 전형 적인 싸이키델릭과 심포닉한 면모를 동시에 가지는, 차 가운 전자악기로 따스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 악 집단이다. 독일 록계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나 높다고 할 수 있지만 국내에는 이 앨범에 수록된 <Nickel-Odeon>과 이후의 작품인 <Anywhere> 정도 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밴드는 독일 북부의 작센 지 방에서 결성되었으며 1차 대전 당시의 베스트팔렌 군악 대의 명칭을 그대로 밴드명으로 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이 앨범은 독일 록사상 손꼽히는 걸작의 하나로 인정된 다. 독일 싸이키델릭의 산실인 브레인(Brain) 레이블을 통해 두 장의 LP로 발표되었으며 음울한 환각미와 서 정성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두 번째 LP의 앞뒷면을 가 득 채우는 대작 <Solar-Music>만으로도 그 가치가 인 정되고 있다. 후에 록 떼아트르의 형식으로 공연되었던 실황은 『Solar Music-Live』('78)로 발표되는데, 이 앨범의 라이브 버전이나 원곡이나 모두 지독히 싸이키 델릭하다. 그것은 가슴 속의 짜증을 단번에 씻어주는 그런 환각이다.
AMON DUUL II / Wolf City ('72, Germany, United Artists) 독일의 아트 록은 단순히 음악만을 담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아트 록이라는 형태는 수많은 '표현 방 식'들 중의 하나이며, 그것을 통해 방대한 양의 사상을 표출하기도 하고 개인 또는 집단 의식을 숨김없이 드러 내기도 한다. 애초에 뮌헨에 근거를 둔 음악 공동체로 출발했던 아몬 뒬은 집단 내부의 사상적 차이로 두 개 의 그룹으로 분열이 되었다. 사회 참여적인, 정치적 노 선을 견지했던 아몬 뒬 I(Eins)와 순수 음악을 지향하 려는 II(Zwei)로 나뉘어진 이들은 (당연한 일이지만) 음 악적 방향 역시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I가 보다 급진 적인 형태-싸이키델릭과 즉흥성에 바탕을 둔-의 음악 을 행했다면 II는 더 환상적이고 주술적인 분위기에 가 까운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물론 재즈적인 즉흥성과 무 정부적 혼돈은 두 팀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기도 하다. II의 여섯 번째 앨범은 그룹의 음악적 변화가 가장 확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밴드가 지향하 는 사운드의 보다 구체화된 모습은 이전의 몽환과 혼돈 에서 서정과 질서로의 전이(轉移)를 이루었고, 그것은 전작들에 비해 더욱 쉽게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 라인을 통해 확고해진다. 여성 싱어 레나테 크뢰텐슈반츠 크나 우프(Renate "Kr tenschwanz" Knaup)의 히스테릭한 보컬이 빛을 발하는 <Surrounded By The Star>의 아 름다움과 한 편의 환상을 보는 듯한 몽롱한 연주곡 <Wie Der Wind Am Ende Einer Stra e>, 심포닉한 면모를 보이는 <Deutsch Nepal>, 그리고 전형적인 싸 이키델릭 곡 <Wolf City> 등 독일적인 감성을 충분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OSANNA / Palepoli ('73, Italy, Fonit Cetra) 수많은 이태리 출신의 밴드들 중에서도 이들만큼 다 양하고 폭넓은 음악적 실험을 행했던 그룹은 드물다. 치타 프론탈레(Citta' Frontale)와 우노(Uno), 그리고 노 바(Nova)의 세 팀으로 분열되기 이전에 이들이 발표했 던 네 장의 앨범들에는 각 작품들마다 서로 다른 색깔 이 채색되어 있다. 데뷔작 『L'uomo』('71)에서의 퓨전 적 감성에 실린 폭발적인 에너지와 『Milano Calibro 9 』('72)의 고전적 아름다움, 『Landscape Of Life』 ('74)에서의 하드 록적인 감수성이 그것이다. 물론 세 번째 작품인 이 앨범 『Palepoli』에서도 다른 앨범들과 구별되는 강렬함이 생생히 전개된다. 무대에서의 분장 과 의상, 연극적인 요소 등 씨어트리컬 록을 표방했던 이들의 사운드에 분명 심포닉한 분위기는 포함되어 있 지 않다. 엘리오 다나(Elio D'anna)의 거친 플루트 연 주는 제스로 툴의 이안 앤더슨의 그것에 비해 훨씬 섬 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표출해내며 다닐로 루스티치 (Danilo Rustici)의 기타는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열 정적인 힘을 내뿜는다. '옛 도시'라는 의미의 타이틀은 이들의 출신지인 나폴리(Napoli; 새로운 도시)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 라도 하듯 <Oro Caldo>와 <Stanza Citta>에서 외쳐대 는 가사는 나폴리의 토속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 다. 앨범에는 단 세 곡이 담겨 있지만 곡의 수는 그다 지 중요하지 않다. 민속적인 색깔과 강한 록적인 요소 와 전위적인 진행, 변박과 조바뀜 등의 다양성은 곡의 구분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수많은 대 립과 모순들, 즉 토속적인 리듬과 극히 진보적인(전위 적인) 선율, 마치 불협화음과도 같이 진행되는 여러 악 기들의 울림과 평온함을 전해주는 멜로트론의 향기, 그 리고 모든 것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주술적인 분위기는 이 앨범을 아트 록계의 가장 독특한 작품의 대열에 위 치시킨다.
5.4. Space
저 먼 우주를 유영하는 듯, 아름다운 환상과 지독한 환각의 경계에 서있는 듯한 음악이 스페이스 록이다. 초기 스페이스 록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 핑크 플로이드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A Saucerful Of Secrets>를 통해 우리는 스페이스 록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을 수 있다. 혼돈과 질서의 혼재(混在), 무의 식과 의식의 충돌, 꿈과 현실의 교차, 그리고 점차 흐릿 해지는 명징(明徵)한 사고(思考)...
ARTHUR BROWN'S KINGDOM COME / Journey ('73, UK, Polydor) 그의 초기 밴드인 크레이지 월드 오브 아써 브라운 (Crazy World Of Arthur Brown)이라는 그룹명에서부 터 어느 정도 짐작이 되지만, 아써 브라운이라는 인물 은 영국의 록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기인(奇人) 이다. 초기의 히트 싱글 <Fire>의 프로모션을 위해 불 이 붙은 헬멧을 쓰고 TV에 출연할 정도였으니 당시 그가 불러일으켰을 충격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의 기괴한 무대 분장과 행위들은 이후 씨어트리컬 록으 로 분류되는 장르의 효시를 이루었으며 일부에서는 그 를 쇼크 록(Shock Rock)의 창시자로 간주하기도 한다. 블루스에 기반한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들려줬던 첫 밴 드의 해산 후 결성했던 킹덤 컴은 이전에 비해 키보드 의 영향력이 더욱 강조된 하드한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 는 음악을 선보였다. 세 번째 앨범이자 최고작으로 평 가되는 『Journey』는 전형적인 스페이스 록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SF적 상상력과 효과음의 연속, 그리고 넓은 공간을 비행하는 듯한 우주적 구성의 탁월함은 이 앨범을 여타 스페이스 록 작품들과의 확연한 구분을 이 루었다. 한때 국내 심야 방송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그래서 (썰렁한 자켓의) 해적 라이센스로도 발매되었던 작품으로 명곡 <Time Captives>와 <Superficial Roadblocks>가 담겨 있다.
5.5. Electronics
독일의 록 음악에 공통적으로 배어 있는 요소는 '차 가움'이다. 이것은 그들 특유의 민족성과 기계공업의 강 국이라는 음악 외적인 요소의 반영이기도 하다. 70년대 의 독일 록 음악을 일컫는 '크라우트 록(Kraut Rock)' 이라는 별칭에는 독일만의 그러한 특색이 잘 드러난다. 전자악기의 기계적인 사운드로 따스한 감정을 표출했던 반젤리스나 장 미셸 자르와는 달리, 독일의 전자음악가 들은 당시 서구사회에 유행처럼 번지던 신비주의와 명 상의 요소를 음악에 실어 마치 '의식의 흐름'과도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결코 선율적이지 않으며 극적인 구성을 가지지 않는다. 언뜻 지루한 효과음의 끊임없는 나열처럼만 보이는 초기 그룹들의 사운드는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나 칸(Can) 등의 혁신자들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클라우스 슐츠(Klaus Schulze)나 탠저린 드림, 초기 포폴 부 등의 음악이 우 주적이고 종교적인, 보다 정신적인 영역을 다룬다고 한 다면 이들은 거기에 '감성'을 담아내었다. 하지만 그 감 성은 인간의 것이 아닌 인격화된 기계의 것으로 생각된 다. 기계문명 사회에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진보의 결 과에 대한 답을 미리 제시하려는 듯. 2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이들은 테크노와 포스트 펑크 성향을 따르는 아티스트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또는 그 장르의 선구격 으로서 현대에 와서 다시금 재조명을 받고 있다.
ASH RA TEMPEL / Ash Ra Tempel ('71, Germany, Ohr) 혼돈(Chaos). 질서(Cosmos)가 있기 이전에, 생명과 빛과 물질과 의식(意識)이 있기 이전에 존재하던 유일 한 형태(또는 상태)는 혼돈이었다. 태초의 혼돈에 대해 서 완벽하게 무지(無知)한 인간은 모든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던 중에 혼돈의 흔적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이성(理性)과 논리의 영역과는 전 혀 별개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느끼고 또 그 모습 을 그려내기 위해,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유일 한 통로는 무의식과 감성과 꿈의 영역의 확장이었다. 논리적 사고(思考)에 익숙해지기 이전의 인간들이 가졌 던 우주관, 고대인들의 신앙에는 놀라운 꿈이 담겨져 있다. 무한(無限)에의 갈망과 유한성의 인정이라는 모 순된 두 명제의 공존과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 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가능성을 구체적인 개념 으로 정립하기에 이른다. 모든 존재의 본질은, 사물과 현상의 궁극적 지향점은 분명 거기에 있을 터였다. (음 악이라는) 가장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여 '그곳'에 다가 서려는 노력이 한 세대 전 독일이라는 땅에서 일련의 음악인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 선두에 선 이들, 하르 트무트 엔케(Hartmut Enke), 마누엘 괴칭(Manuel G tsching), 그리고 클라우스 슐츠의 3인이 표출해내는 혼돈으로의 대항해. 현재가 과거 속으로 질주하고 의식 은 무의식과 교감하며 질서의 우주가 원시의 혼돈으로 역진화한다. 비트는 파괴되고 선율은 해체되며, 남은 것 은 태초의 혼돈과 정적 뿐이다. 환각의 정도와 그 양은 이루 말할 수 없다.
5.6. Folk
60년대, 대중음악계에서 포크의 위상은 다른 어느 장 르보다도 더 높이 자리하고 있었다. 피트 시거를 위시 하여 우디 거스리, 존 바에즈, 밥 딜런으로 이어지는 반 체제적인 가수들은 통기타를 둘러매고 하모니카를 불며 사회에 대한 항변을 토로했고 대중들은 그들에 열광했 다. 그리고 그 단순한 형태에 록이 덧붙여졌을 때 포크 음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미국에서 밥 딜런 과 버즈, 버팔로 스프링필드와 닐 영 등이 포크에 기반 한 새로운 록 음악을 선보이고 있을 때 영국에서는 포 크가 전혀 다른 모양의 옷을 입고 있었다. 도노반은 신 조류인 싸이키델릭 문화에 매료되어 신비주의적이고 환 각적인 분위기와 사운드를 지향했으며 알 스튜어트와 캣 스티븐스 역시 어떠한 '메시지'보다는 음악미학적인 소리의 '구축'에 더 열중했다. 온갖 실험을 마다하지 않 던 영국의 포크 뮤지션들과 밴드들이 그들의 음악에 프 로그레시브적인 요소를 담아내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시기이다. 조곡의 형태를 도입하는가 하면 고유의 민속 적인 선율에 즉흥성을 가미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이때 유행처럼 등장했던 밴드의 형태는 바로 바이올린과 여 성 보컬의 본격적인 참여이다. 많은 포크 밴드들은 청 아한 목소리를 지닌 여성 싱어를 전면에 내세워 아름다 움을 강조했고 심지어는 록 밴드들의 전유물로 여겨졌 던 멜로트론을 이용하여 아련한 꿈과 같은 사운드를 만 들어내기도 하였다. 정통성을 강조한 영국의 포크와는 달리 독일, 프랑스, 북유럽 등지의 포크 밴드들은 자국 의 특성을 담아 더욱 프로그레시브에 가까운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SPIROGYRA / Bells Boots And Shambles ('73, UK, Polydor) 예술가들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육체적인 힘이 나 권력에 비견할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의 장(場)을 지배하며 제어하는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힘이다. 그것 은 신으로부터 전해지는 천부의 재능이요 노력으로 이 룰 수 없는 위대한 선물, 즉 카리스마(Charisma)이다. 카리스마를 표출하는 예술가의 작품은 그래서 보는 이 를, 듣는 이를 압도한다. 아트 록계에서도 어김없이 대 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 종종 등장했다 사라지곤 한다. 포크라는 장르에 포함되지만, 하드 록보다도 강렬 하고 웅장한 심포닉 록보다도 큰 힘이 느껴지는 음악을 행했던 밴드 스파이로자이라는 마틴 칵커햄(Martin Cockerham)이라는 인물의 카리스마 아래 존재했던 팀 이다. 세 장의 앨범들을 통해 이들이 들려준 음악은 여 느 포크 밴드나 록 밴드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요소가 담겨 있었다. 바로 광기(狂氣)이다. 마틴 칵커햄이 뿜어 대는 광기의 양은 매 앨범마다 넘쳐났다. 데뷔작 『St. Radigunds』('72)에서 극에 달했던 광기는 마지막 작품 인 이 앨범에서 모양을 달리 했다. 격한 에너지의 주체 할 수 없는 듯한 질주에서 내면의 이상(理想) 혹은 꿈 으로의 침잠(沈潛), 동(動)에서 정(靜)으로의 전이, 한껏 드러내었던 외침은 침묵으로 화(化)했다. 그의 카리스 마에 압도된 옛 친구들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반려 자의 역할을 했던 여인만 덩그마니 남아 있다. 하지만 바바라 가스킨(Barbara Gaskin)의 맑은 목소리가 전하 는 포근함만은 여전히 '오래된 술'과도 같이 곁에 머무 른다. 커버에 담긴 깊은 바다빛 우울함은 <The Furthest Point>의 쓸쓸한 관악기 사운드를 통해 드러 나고, 모든 아련한 기억들과 꿈들은 <Old Boot Wine> 에 잠긴다.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 <In The Western World>를 끝으로 신은 선물을 거두었다.
EMTIDI / Saat ('72, Germany, Pilz) 독일의 뮤지션들이 유달리 신비주의(Occultism)를 위 시하여 인간의 정신적 영역으로의 접근에 관심을 쏟았 던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에서 발전을 이룬 싸이키델릭 과 전자음악, 그리고 이들, 엠티디를 비롯한 브뢰셀마신 (Br selmaschine), 횔덜린(H lderlin), 비튀저 운트 베스 트룹(Witth ser & Westrupp) 등이 들려준 신비주의 계 열의 포크는 모두 인간의 내면-꿈, 환상, 환각-이나 우 주를 향한 형이상학적인 관심을 (조금씩이나마) 드러내 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천상의 선율을 만들어낸 바하 로부터, 밤을 찬미하던 낭만시인 노발리스나 괴테로부 터 전해져 내려온 전통인지도 모른다. 아트 록 계열의 포크 밴드들 중 가장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 껏 담아내는 그룹 엠티디의 음악에도 어김없이 우주가 담겨 있다. 신비롭기 그지없는, 은은히 빛을 내뿜으며 하늘거리는 저 우주화(宇宙花)는 귓가에 들리는 이 아 름다운 음악의 창조 주체인 것만 같다. 소리의 풍성함 과는 달리 이들은 대규모 그룹이 아닌 혼성 듀오이다. 마이크 허쉬펠트(Mike Hirschfeldt)의 어쿠스틱 기타와 나즈막한 보컬, 그리고 캐나다인 여성 싱어인 달리 홈 즈(Dolly Holmes)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멜로트론, 키보 드 연주가 이루는 분위기는 무한한 고요와 같은 신비로 운 시정(詩情) 또는 꿈결같은 한없는 부드러움 그 자체 이다.
5.7. Jazz
이미 재즈에서의 실험적인 경향은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등 몇몇 '전 위적인'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 시도된 바 있다. 이후 프 로그레시브 또는 아트 록계에서 볼 수 있는 재즈의 영 향은 바로 즉흥연주라 할 수 있다.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 들리는 코드의 반복과 변환, 그리고 예측 불허의 곡 진행이 그것이다. 일정한 멜로디나 화음은 아예 존재하 지 않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많은 밴드들이 자 신들의 음악에서 재즈적인 즉흥 연주를 포함하고 있지 만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여러 장르들, 즉 심포닉, 싸이 키델릭과 민속음악 등에 이르는 요소들을 담고 있다. 사실상 소프트 머신 등과 같은 캔터베리 계열의 밴드나 여타 '실험적인' 경향의 모든 아티스트 및 밴드들의 음 악에는 재즈의 영향 및 요소가 드러난다.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의 혁신적인 시도 이래 그런 경향은 하나의 필수요건처럼 되어버린 듯.
5.8. Theatrical
프랑스의 프로그레시브 록은 듣기에 가장 껄끄러운 구성을 보인다. 우선 언어 자체의 특징이랄 수 있는 강 한 콧소리와 각 음절마다의 절제된 울림, 그리고 특유 의 억양은 록 음악에 적절하지 않은 듯하며, 그들 고유 의 정서가 담긴 멜로디는 커다란 호소력을 전해주지 않 는다. 그래서 이 나라 출신의 수많은 아트 록 밴드들 중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그룹은 이태리나 독일에 비 해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몇몇 서정파 심포닉 밴드 들과 아래 소개되는 씨어트리컬 록 밴드들의 경우는 다 른 어느 그룹들보다도 더 뛰어난 음악을 들려준다. 연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록, 즉 록 떼아트르(Rock Th tre)로 불리는 이 장르는 이미 아써 브라운에 의해 시도되었고 제네시스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오잔나, 그 롭슈니트 등도 시도했던 음악이다. 프랑스에서 본격적 으로 활성화를 이룬 그룹은 바로 앙쥐와 모나 리자 (Mona Lisa)인데, 이는 공연 무대에서의 의상, 분장, 행 위 등에 의한 분류이기 때문에 음악 자체가 다른 장르 와의 커다란 차이점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심 포닉 록의 스타일을 따른다.
ANGE / Au Del Du D lire ('74, France, Philips) 망상의 저 너머... 다분히 '프랑스적'인 타이틀에서부 터, 그리고 어딘지 모를 불안과 불균형으로 가득한 커 버에서부터 앨범의 성격은 드러난다. 프랑스 아트 록의 수준을 높이 끌어올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그룹 앙쥐의 세 번째 앨범은 프랑스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전형을 제시했음은 물론 동시에 록 떼아트르의 걸작으 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모든 곡들에서 이들 특유 의 (뒤틀린 듯한) 감성이 드러나는데, 앨범의 극적인 분 위기를 주도하는 악기는 바로 기타와 키보드 파트이다. 특히 언어상의 특색으로 인해 다소 거북하게 들릴 수 있는 크리스티앙 드깡(Christian Decamps)의 힘찬 보컬 라인에 어우러지는 멜로트론의 풍부한 음향은 앨범의 전체적인 짙은 향기를 보기 좋게 채색하는 역할을 한 다. 초반부부터 듣는 이를 휘어 잡는 <Godevin Le Vilain>과 전형적인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형식을 따 르는 <Exode>에서의 화려하고 강한 전개도 멋지지만, 역시 앨범의 하일라이트를 이루는 부분은 그야말로 쏟 아지는 멜로트론의 물결에 귀를 내맡길 수 있는 <Fils De Lumi re>와 가장 아름답고 또 드라마틱한 멜로디 라인이 돋보이는 대곡 <Au Del Du D lire>의 접속곡 이다. 정말로 뮤지컬을 보는 듯한, 크리스티앙의 읊조리 듯 '열연하는' 보컬과 후반부의 급작스런 반복 후렴구의 등장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5.9. Canterbury, Chamber (RIO)
샌 프란시스코의 싸이키델릭이나 LA의 메탈, 씨애틀 의 그런지 등 지역을 대표하는 음악을 일컬을 때 그대 로 지역명이 붙듯, 캔터베리 역시 60년대 말 발생한 한 계파의 음악을 지칭하는 장르명이다. 영국의 동남쪽 켄 트주의 한 도시인 캔터베리 출신의 일련의 아티스트들 에 의해 탄생된 이 음악은 아마도 가장 '영국적인' 사운 드를 표출해내는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짙은 영 국식의 발음과 때론 아기자기하고 장난스럽게, 또 때론 난해하게 전개되는 음악들이 지니는 향기는 이들만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여겨진다. 와일드 플라워스(Wild Flowers), 소프트 머신과 매칭 몰(Matching Mole)을 이끌었던 로버트 와이어트(Robert Wyatt)를 위시하여 케빈 에이어스(Kevin Ayers), 리차드 싱클레어(Richard Sinclair) 등이 그 핵심에 있던 인물들이다. 챔버 록은 소규모 실내악단의 규모와 유사한 편성으로 붙게 된 이 름이지만, 클래시컬해 보이는 장르명과는 달리 음악 자 체는 오히려 20세기 초반의 현대음악이나 아방 가르드, 프리 재즈를 연상케 하는 구조와 스타일을 따른다. 이 장르에 속해 있는 밴드들의 음악에는 '감성'이라든지 '서정' 하는 따위의 말들은 들어설 자리가 없는 듯하다. 사실상 헨리 카우나 아트 베어스 같은 그룹들은 캔터베 리 신에서도 대표격인 밴드들로 인정되는데, 이는 두 영역이 지니는 공통 분모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후 일 련의 사회 운동 또는 체제에 반(反)하는 성향을 띠는 이들 집단들의 모임은 록을 통한 저항 운동이라 할 수 있는 RIO, 즉 'Rock In Opposition'으로 형상화를 이룬 다. 헨리 카우 패밀리-프레드 프리스(Fred Frith), 크리 스 커틀러(Chris Cutler) 등을 비롯한 슬랩 해피(Slapp Happy)의 다그마 크라우제(Dagmar Krause), 아트 베 어스 등-를 비롯, 프랑스의 아르 즈와(Art Zoyd), 벨기 에의 위니베르 제로, 프레장(Present), 스웨덴의 잠라 맘마스 만나(Samla Mammas Manna) 등으로 대표되 며, 지극히 '전위적'인 사운드를 통해 표출되는 이들의 음악은 마치 음(音)으로 이루어진 추상화나 복잡한 건 축물과도 같다.
CARAVAN / In The Land Of Grey And Pink ('71, UK, Deram) 이걸 과연 '프로그레시브'라 할 수 있을까? 핑크빛 가 득한 앨범 커버가 주는 이미지처럼, 이 앨범은 밝고 화 사하고 또 꾸밈없이 소박한 사운드를 담고 있다. 이건 그다지 특별하지도 뛰어나 보이지도 않는다. 참 서정적 이고 목가적이며 물 흐르듯 부담없는 소리들이 부드럽 게 흐르지만, 너무 싱겁다. 그러나 캔터베리 음악의 매 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비록 소프트 머신의 난해한 재 즈 지향성의 음악이나 헨리 카우의 전위적인 스타일이 들려질 때의 부담감이란 건 있지만, 적어도 카라반의 음악은 누구라도 쉽게 들을 수 있다(물론 '쉽게'라는 말 은 '귀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는 뜻이지 단숨에 쏙 들 어온다는 뜻은 아니다. 캔터베리 음악에서 '아름다운 멜 로디'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비교적 파퓰러한 성향을 띤 캔터베리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작 품은 밴드의 통산 세 번째 앨범이다. 보통 이들의 최고 작으로 꼽히는 작품인데, 애수어린 선율이나 극적인 구 조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팬들에게는 작품의 완성도나 평가에 비해 그다지 높은 반응을 얻고 있지는 않다. 듣 기 쉬운 네 곡의 중, 단편들과 LP 한 면을 가득 채우는 22분여의 조곡 <Nine Feet Underground>로 이루어져 있다. 아기자기한 관악 사운드와 기복 없는 선율은 앨 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지만, <Nine Feet Underground>의 끝부분을 수놓는 싸이키델릭한 분위 기와 '무덤덤한' 멜로트론의 진행은 매우 인상적이다.
5.10. Neo-Progressive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프로그레시브 록은 새로운 사회의 조류와 대중들의 기호의 변화, 그리고 아티스트 들의 창작력의 고갈로 쇠퇴기를 맞는다. 그리고 80년대, 대중음악계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헤비 메탈이 새 로운 시대를 맞이했으며 뉴 웨이브와 댄스 음악이 득세 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프로그레시브는 그 생명력을 다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일련의 밴드들에 의해 이 장 르의 음악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선배 밴드들 의 음악을 듣고 자라온 후배들은 그들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사운드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말 그대로 세대 교체를 의미하는 이 신 조류는 (비록 많은 팬들이 마뜩찮게 생각하기는 했지 만) 당당히 성공을 거두며 한 시대를 장식하기에 이른 다. 펜드래곤(Pendragon), 트웰브스 나이트(Twelfth Night), 아이큐(IQ), 팔라스(Pallas), 그리고 마릴리온 (Marillion) 등이 그 자리에 위치한다. 연주 실력이나 작곡 능력과는 별개로, 이들이 과거의 '전설'들과 같은 평가를 못 얻었던 까닭은 완벽한 환상을 창조해내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한 또 하 나의 결론이 내려질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테크 닉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6. 새로운 시대, 새로운 프로그레시브 록의 모습
80년대의 네오 프로그레시브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골 수 팬들의 외면을 받고 스스로 도태되어 더 이상의 가 능성을 보이지 않고 90년대를 맞았다. 그런데 복고 또 는 과거로의 회귀(回歸)라는 시대의 경향은 아트 록에 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이태리와 스웨덴 등을 중 심으로 속속 등장한 몇몇 밴드들이 들려준 음악에는 한 세대 전의 향취가 그대로 묻어 있었고 정통 프로그레시 브의 팬들은 환호했다. 프로그페스트(ProgFest)와 같은 행사가 매년 개최되어 실력 있는 신인들의 등용문 역할 을 하기도 했고, 80년대에는 들을 수 없었던 멜로트론 이 다시 등장했으며 가볍고 밝은 분위기로 일관하던 음 악 스타일은 다시 옛 무게를 되찾았다. 과거로의 완전 한 회귀를 이룬 것이다. 이는 한편으론 이 음악의 한계 를 단정적으로 보여준 현상이기도 하다. 결국 이 시대 에도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것은 과거의 음악인 것이 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음악 이 여전히 듣는 이들의 꿈을 자극하고 환상을 키워주며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만 한다면 용어니 시대 구분이니 하는 것들은 저 멀리 치워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DEVIL DOLL / Sacrilegium ('92, Italy, Hurdy Gurdy) 90년대에 등장한 아트 록 밴드들 중 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사랑받았던 그룹이 바로 데빌 달-데뷔작이 비록 '89년에 발표되었지만-이다. 밴드의 실체라 할 수 있는 미스터 닥터(Mr. Doctor)라는 인물 은 결코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며 신비감을 증폭 시켰고, 발표하는 앨범들마다 각기 다른 형태의 커버와 변형 자켓 등을 한정 제작함으로써 화제를 모으기도 했 다. 물론 그러한 음악 외적인 요소들은 음악 자체가 뒷 받침되지 않는 한 말할 거리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정통 프로그레시브와의 직접적인 연계 성을 가지지 않는다. 적어도 이런 류의 '사악한' 느낌을 주었던 음악은 야쿨라(Jacula)나 고블린(Goblin), 그리고 아트 베어스를 위시한 몇몇 챔버 록 밴드들의 것이었지 만 이들과는 성향 자체를 달리 하기 때문에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데빌 달이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창 조했다고도 보이지 않는 이유 또한 명백하다. 각 사운 드들의 조합은 기존에 있던 형태의 차용이기 때문이다. 통산 세 번째 앨범인 『Sacrilegium』 역시 사운드와 스타일 모두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미스 터 닥터의 악마적인 보컬과 웅장한 교회 오르간, 피아 노와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스케일 큰 사운드를 담고 있다. 메탈풍의 강한 기타 리프의 삽입은 진행을 지루 하지 않게 하며, 그가 애용하는 서커스 음악은 전작에 이어 다시 등장하여 그로테스크한 정취를 불러 일으킨 다. 여러 가지 비판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이 앨범은 의심할 여지 없이 90년대의 걸작 중 하나이다. 이미 『Dies Irae』('96)에서 그 전조를 보이기 시작한 매너리즘 또는 한계를 뛰어 넘는다면 앞으로 가장 기대 되는 밴드가 바로 데빌 달이기도 하다.
SPOCK'S BEARD / Beware Of Darkness ('96, USA, Radiant) 프로그레시브 록의 불모지로 일컬어지던 미국에서, 90년대에 새로이 프로그레시브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다. 하지만 '90년대의 새로운 프로그 레시브'를 표방하는 밴드들-섀도우 갤러리(Shadow Gallery)과 마젤란(Magellan), 심포니 엑스(Symphony X) 등-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정통 프로그레시브가 아 닌 헤비 메탈의 범주에 포함되는 음악들이다. 오히려 레이저스 엣지(Laser's Edge), 키네시스(Kinesis), 신포 닉(Syn-Phonic) 등의 마이너 레이블을 통해 등장한 그 룹들의 음악에서 간혹 옛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밴드가 캘리포니아 출신의 스팍 스 비어드이다. 프로그레시브의 부흥을 열망하는 팬들 의 연례 행사인 프로그페스트에도 매년 참가하여 호평 을 받고 있는 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정통성의 완전한 회복'이다. 복잡하고 강한 텐션이 돋보이는 곡들 의 구성은 예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데, 특히 곡의 중 간 중간 살짝 등장했다 뒤로 숨는 멜로트론 사운드는 『Fragile』과 『Close To The Edge』 시절의 릭 웨 이크만을 연상케 한다. 물론 곳곳에서는 비틀즈에서 핑 크 플로이드, EL&P, 뉴 트롤즈에 이르는 많은 영향이 느껴지지만 단순한 카피 밴드와는 차원을 달리 하는 정 체성을 지닌다. 밴드의 멤버들은 모두 유명 아티스트들 과 함께 활동했던 경력을 지닌 스튜디오 뮤지션들이며, 때문에 각 파트별 연주의 안정성과 전개의 유연성은 여 타 네오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에게서 볼 수 없는 요소이 다. 앞으로의 활동이 가장 주목되는 신세대 밴드이다.
Electronic Rock. 1960년대 이후 락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장르 자체로써 다양한 변화를 꾀하게 된다. 앰비언트와 싸이키델릭 뮤직같은 기존 락 음악의 형식 파괴와 더불어 기술적으로도 신디사이저와 같은 새로운 악기의 등장으로 인해 변화가 이루어진다. 일렉트로닉 락은 신디사이저의 발명과 미디 음악의 등장으로 생겨난 새로운 형식이며 이후 일렉트로클래쉬, 댄스 펑크 (Dance Punk), 뉴 레이브, 신스팝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위 장르
크라우트락
1960년대 후반 독일에서 생겨난 새로운 음악 경향. 클래식 음악과 당시의 프로그레시브 락 등에 영향을 받아 신디사이저의 새로운 사용 등의 실험적 방식을 행했으며 전통적인 영국식 락앤롤, 블루스에서 탈피하여 이후 형식을 파괴한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예고하였다. 특히 유명한 크래프트워크의 음악도 이 장르에 포함시키기도 하며, 텐저린 드림, 파우스트, 애쉬 라 템플 등이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장르명에 대한 논쟁으로, 몇몇 사람들 (특히 독일 출신의 음악가들)은 'kraut'라는 속어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독일의 대표적인 음식인 Sauerkraut에 빗대 음악을 비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일 출신의 음악가들은 대체언어로 'kosmich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베를린 스쿨
크라우트락의 부산물로써, 초기의 많은 실험 뮤지션들이 독일 베를린 출신인 사실 때문에 만들어진 단어. 후에 뉴에이지와 앰비언트, 트랜스 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얼터너티브 댄스
인디 댄스 (indie dance)라 불리기도 한다. 프로디지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다. 올뮤직은 이 장르를 일컬어 멜로디가 있는 곡의 원료에 얼터너티브/인디 락과 일렉트로닉 비트를 섞은 장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콜드웨이브
포스트 펑크 (Post Punk)가 프랑스로 건너가 변형된 형태.
댄스-펑크
Dance-Punk. 뉴웨이브 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No Wave Movement와 포스트 펑크(Post Punk)가 결합된 음악. 디스코, 하우스 등의댄스 뮤직에 영향을 받았다.
다크 웨이브
뉴웨이브와 포스트 펑크 (Post Punk)의 결합 형태. 좀 더 어둡고 내성적인 성향이 부각되었다.
일렉트로닉 코어
포스트 하드코어와 일렉트로닉 음악이 결합한 형태.
이터리얼 웨이브
다크 웨이브의 하위 장르로써 고딕 락과 결합한 형태.
인디트로니카
인디 음악, 일렉트로니카, 락, 팝 뮤직 등이 결합한 형태.
뉴 레이브
일렉트로닉 음악, 뉴웨이브, 테크노, 브레이크비트 하드코어가 뒤섞인 형태. NME 매거진에 의해 2006년에 재조명되어 유행되었으나 2008년 급속도로 시들어버린다.
누-게이즈
얼터너티브 락과 슈게이징이 합친 형태.
스페이스 락
1970년 영국 지역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레시브 혹은 싸이키델릭 뮤지션들에 의해 탄생한 장르.
신스팝
1980년 생겨난 음악 장르. 프로그레시브 락, 일렉트로닉 아트 락, 그리고 크라우트 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자 음악 기계, 혹은 전자 음악 기술을 사용하여 만들어낸 음악들의 통칭. 넓은 범위로 보자면 전자음을 사용하는 모든 음악장르를 일컫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의미로는 1960년대 서양 실험주의, 사운드 아트, 무지크 콩크리트 등에서 탄생한 새로운 음악의 경향과 그것에서 뻗어나간 다양한 분파의 음악 ; 테크노, 다운템포, 하우스, 트랜스, 드럼 앤 베이스, 하드코어 테크노등의 장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1980년대 팝 음악과 락의 크로스오버를 거치며 주류 문화로 급부상하여 애시드 붐과 레이브를 만들어내고, 1990년대부터 미국 주류 음악에 진입하며 전세계적으로 EDM과 페스티벌 부흥 등의 문화 현상을 발생시킨다.
춤을 위해 만들어진 댄스 뮤직은 따로 Electronic Dance Music (EDM) 이라 칭하기도 한다. DJ는 이러한 오락 행위의 장소에서 흥이 끊기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음악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며 이렇게 만들어진 연속적인 댄스 뮤직 세트를 믹스셋이라고 칭한다.
전자 음악의 역사는 음악 기술의 발전, 즉 전자 악기와 컴퓨터 등이 발전하여온 역사와 맥락을 같이한다. 즉 기술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신디사이저의 개발로 인해 작곡가들은 개인 스튜디오와 같은 작업실에서 연주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으며, 샘플링과 루프 기술에 의해 전자 음악 특유의 패턴을 가지게 되고, 창조적인 음악가들에 의해 형식은 보다 다채롭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한편 일렉트로닉 음악 자체가 특유의 확장성과 크로스오버 때문에 종종 다른 방식과 형태로의 변환을 꾀하는 편이며, 이를 통해 앰비언트, 정글, EDM과 같은 새로운 음악장르가 탄생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 미니무그의 등장과 함께 전자 악기를 획기적으로 사용한 크라프트베르크, 텐저린 드림, 파우스트, 브라이언 이노 등에 의해 크라우트락이 탄생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에는 뉴 오더, 디페쉬 모드 등의 뮤지션과 뉴 웨이브 운동에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에이펙스 트윈과 오테커(Autechre)에 의해 인텔리전트 댄스 뮤직, 매시브 어택, 트리키, 포티쉐드 등에 의해 트립 합, 크루더 & 돌프마이스터 (Kruder & Dorfmeister)에 의해 다운템포 음악의 새로운 형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 모비의 앨범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마돈나(와 프로듀서 윌리엄 오빗)의 앨범 'Ray of Light', 뷔욕의 앨범 'Post', 'Homogenic' 에 의해 일렉트로닉 음악이 주류 문화에도 공개되며 수많은 아티스트가 대규모 공연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는 프로디지, 케미컬 브라더스, 팻 보이 슬림, 언더월드, 모비, 크리스탈 메소드, 페이스리스, 다프트 펑크 등을 꼽는다. 한편 1997년 빌보드 기사가 조명하듯이 클럽 커뮤니티와 독립 레이블에 의해 실험적인 시도 또한 계속해서 연구되어왔는데, 이는 곧 주요 대형 레이블과 MTV에 의해 발견되고 상업화되면서 주류 음악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next big thing'이 되기 위한 높은 투자가 이루어졌다.
15년 뒤인 2011년을 기점으로 각종 화려한 페스티벌과 아티스트가 생겨난 지금에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미디어는 이들을 new rave generation이라 칭하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는 EDM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이기도 하다. 현대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데이비드 게타, 스크릴렉스, 아비치 등이 거론된다.
오랜 역사와 장르 자체의 성격상 다른 음악과의 교류가 빈번한 편이다. 락 음악에서는 뉴 오더와 같이 일렉트로닉 음악의 성격을 흡수하기도 하고, 반대로 펜듈럼처럼 기존 일렉트로닉 음악을 락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도 한다. 힙합 또한 당연하게도 연관이 깊으며 음악 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문화적 환경까지도 공유하기도 한다.
팝 음악또한 이들을 언제나 주목하고 있으며, 일렉트로닉 음악의 댄서블한 구조와 새로운 모습을 자주 차용한다. 가장 최근에는 데이비드 게타의 등장과 슈퍼DJ들의 영향으로 EDM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적 발전과 음향 장비의 영향
음악 기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장르라고 한 만큼 테크놀로지에 가장 민감한 장르이기도 하다. 앰비언트와 크라우트락은 신디사이저의 새로운 활용법 중 하나였으며, TR-808은 디트로이트 테크노와 초기 하우스의 기초를, TB-303은 애시드 하우스를 만들어내는데 상당한 공헌을 했다. 그 이외에도 MIDI 신호의 개발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발전은 곧 아티스트의 다양한 시도와 직결되었다. 새로운 장비와 기술이 나온다는 것은 곧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DAW와 VST를 비롯한 다양한 가상 악기와 장비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환경에 따라 음악 스타일이 변하기도 한다. 가령 음향 시설이 받쳐주는 곳에서의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음악은 그만큼 풍부한 베이스 영역대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에 따르면 스크릴렉스의 덥스텝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자주 듣는 환경에서, 원래의 덥스텝이 가지는 우블 베이스의 저음을 듣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미드레인지까지 올렸다고 하기도 한다.
디제잉 문화와 라이브 공연
믹스셋이라는 존재 때문에 디제이의 비중 또한 높은 편이다. 일렉트로닉 음악에서의 DJ는 일련의 곡 구성을 짜고 이를 순차에 맞게 배열함으로써 하나의 모음집을 만드는 콜렉터에 가깝다. 수많은 일렉트로닉 아티스트가 디제이를 겸업하거나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셋 리스트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일렉트로닉 아티스트의 라이브 공연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라이브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보통 음악가들의 라이브가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일렉트로닉 음악의 경우 연주를 기계로 담당하는 대신 즉석에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거나 음악을 합성, 샘플링, 매쉬 업하는 등의 즉흥적인 프로듀싱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물론 기존의 라이브와 같이 신디사이저나 악기를 이용해서 연주 또한 선보일 수 있다.
패션과 유행
유행에 민감한 일렉트로닉 음악은 패션과도 관계가 깊다. 세련되고 개성있다는 인식때문인지 패션쇼를 비롯한 트렌드 아이템으로 자주 쓰이는 편이며, 테크토닉과 같이 특유의 패션 양식을 가지기도 한다. 무대 장치를 통해 보여지는 것도 많기 때문에 다른 장르에 비해서 비주얼에 신경을 많이 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리스너와 아티스트는 화려한 치장보다는 편하되 자신의 개성을 가지는 것을 우선한다. 이것은 특정한 틀이 없는 일렉트로닉의 성격상, 자유롭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며 그것을 타인이 간섭하지 않는 성격과 연관되는 것 같다.
섹스와 엑스터시
일렉트로닉 음악이 소비되는 위치와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일렉트로닉 음악이 성적인 코드와 환각을 비롯한 유흥문화에 엮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직접적으로 연관성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가령 놀이문화 전반에서 요구하는 욕구들, 음주가무 문화 전반에서 드러나는 몇가지 요소들이 일렉트로닉 음악과 결부되며 특이성을 띄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애시드 하우스나 싸이키델릭 뮤직처럼 일부 음악이 환각과 황홀감을 묘사하는 것에 대해 마약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감정과 성격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좀 더 직관적이고 추상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이 환각작용과 유사하여 연관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일렉트로닉 음악은 단지 인간이 가지는 여러 느낌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다른 음악장르에 비해 좀 더 추상적이고 상징적으로 그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만 알아두자.
1984년 발매된 Industrial Records의 컴필레이션 The Industrial Records Story
실험적 전자음악의 한 종류. 1978년 스로빙 그릴스의 등장과 그들이 설립한 레이블 Industrial Records, 슬로건 “industrial music for industrial people”이란 말에 의해 탄생했다. 장르는 락과 아방가르드한 전자음악, 노이즈, 무지크 콩크리트의 융합된 형태이며 거칠고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많다. 급진주의와 뉴웨이브 운동, 다다이즘 퍼포먼스 등에 영향을 받아 종합 예술 등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최초의 인더스트리얼은 노이즈와 파시즘, 연쇄살인, 오컬트 등의 사회적 논쟁거리를 음악적, 시각적으로 나타내려 하는 시도가 많았으며 아티스트들은 음악만이 아니라 메일 아트, 퍼포먼스, 설치 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적 실험을 행하였다. 또한 음악가들은 당대의 음악가들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외에도 미국의 작가 윌리엄 S. 버로스, 철학가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이런 극단적 해체주의에 기반한 인더스트리얼 뮤직을 올드스쿨 인더스트리얼이라고 부른다. 이후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운동과 함께 스키니퍼피가 고딕적인 컨셉을 선보였고 이는 기존의 극단적 해체주의와 달리 대중적으로 더 잘 받아들여지는 컨셉이였다. 이후 인더스트리얼씬은 고스키드들이 많이 유입되었으며 지금 인더스트리얼의 주류는 고스라고 할수있다. 덕분에 인더스트리얼씬도 덥스텝씬처럼 신구갈등이 존재한다.
최초의 인더스트리얼 음악가들은 다양한 아티스트에 영감을 얻었다. 그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음악가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조이 디비전, 마틴 데니 등이 있으며, 스로빙 그릴스의 멤버인 Genesis P-Orridge는 1979년 인터뷰를 통해 The Doors, Pearls Before Swine, The Fugs, Captain Beefheart, Frank Zappa 등의 1960년대 락 음악의 공을 치하했고 다른 멤버인 Chris Carter는 Pink Floyd와 Tangerine Dream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Boyd Rice는 Lesley Gore와 ABBA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고, Z'EV는 Christopher Tree (Spontaneous Sound), John Coltrane, Miles Davis, Tim Buckley, Jimi Hendrix, Captain Beefheart 등의 음악과 함께 티베트, 발리, 자바, 인도, 아프리카 음악 등이 자신의 예술적 삶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였다. 카바레 볼테르는 Roxy Music과 Kraftwerk의 Trans-Europe Express, 또한 무지크 콩크리트를 연상시키는 초기의 실험작품이나 Morton Subotnick 등의 현대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Nurse with Wound는 그들이 추천하는 즉흥연주(free improvisation)와 크라우트락의 긴 목록을 인용하기도 하였으며, 23 Skidoo는 아프로비트 뮤지션 Fela Kuti와 마일즈 데이비스의 On the Corner를 차용한 음악을 만들었다. Einstürzende Neubauten를 포함한 많은 인더스트리얼 뮤지션들이 월드뮤직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초기 인더스트리얼 음악가들은 작가 혹은 사상가의 개념을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초기 스로빙 그릴스는 자신들의 음악적 영감을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에서 받았고, SPK는 장 뒤뷔페,, 마르셀 뒤샹, 장 보드리야르, 미셸 푸코,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프리드리히 니체, 질 들뢰즈와 같은 사상가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카바레 볼테르는 윌리엄 S. 버로스, J. G. 발라드, 트리스탕 차라 등의 문인들에게서 사상의 개념을 차용하기도 했으며 Whitehouse와 Nurse with Wound는 그들의 작품 일부를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에게 바치기도 하였다. 전자음악 비평가인 사이먼 레이날드는 이를 들어 “스로빙 그릴스의 팬이 되는 것은 과격한 문화의 대학과정에 등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초기 (~1980, Industrial Music for Industrial People)
스로빙 그릴스의 1976년 Prostitution 전시회 포스터
장르의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한 슬로건 “Industrial Music for Industrial People”은 원래 미국 출신의 인더스트리얼 음악가 Monte Cazazza에 의해 만들어진 표현이었다고 한다. 이후 슬로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Industrial Records를 바탕으로, 런던의 스로빙 그릴스, 셰필드의 카바레 볼테르, 미국의 보니 라이드 a.k.a NON에 의해 인더스트리얼 운동이 일어난다.
초기 인더스트리얼은 여러 전위음악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영국의 작가 Alexei Monroe는 최초의 전자음악가 중 한명인 크라프트베르크를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를 비학문적 전자음악으로 표현하는데 성공한 최초의 아티스트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초의 인더스트리얼 뮤직은 산업 기계와 전자기기를 이용한 소리가 대부분이었으며, 신디사이저, 샘플러, 전자 퍼커션 등의 악기가 사용된 것은 이후의 일이었다. 또한 그는 인더스트리얼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자살'을 언급하기도 했다. 초기 인더스트리얼에 영향을 준 또다른 음악은 Lou Reed의 Metal Machine Music이다. 기타의 피드백 사운드로 구성된 이 앨범은 피치포크에 의해 “현대의 많은 아방가르드, 특히 노이즈 음악에 영향을 준 음악”으로 언급되었으며 이후 인더스트리얼 뮤직의 비 음악적 소리를 예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로빙 그릴스의 전신은 영국의 아트/퍼포먼스 그룹 COUM Transmissions이다. P-Orridge, Cosey Fanni Tutti에 의해 1972년 결성된 COUM은 처음에는 싸이키델릭 록 그룹으로 시작되었으나 영국의 예술위원회에서 보조금을 얻기 위해 그들의 작품을 퍼포먼스 아트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후 Peter Christopherson, Chris Carter의 합류와 함께 그룹명을 스로빙 그릴스로 바꾼 이들은 1976년 10월 Prostitution (매춘)이라는 이름의 첫번째 전시회를 열었으며, 이 전시회에는 멤버 Tutti의 포르노그래피 사진과 그녀가 사용한 탐폰 등이 전시되어있었다. 전시회는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에 취소되었으며, 당시 보수 정치인이었던 Nicholas Fairbairn는 “공적 자금이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파괴하기 위해 여기에 낭비되고있다”고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스로빙 그릴스에 대해서는 “문명 약탈자”라는 거센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스로빙 그릴스는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1981년 P-Orridge의 “미션은 끝났다” (the mission is terminated.) 란 말과 함께 그룹은 잠시 해체된다.
이후 Clock DVA, Nocturnal Emissions, Whitehouse, Nurse with Wound, SPK와 같은 그룹이 등장하여 인더스트리얼의 계보를 잇는다. Whitehouse는 자신들의 음악을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극단적인 음악”이라 주장하였으며 이는 결국 파워 일렉트로닉스로 분화된다. Steven Stapleton는 Whitehouse의 초기 동업자로써, 1978년 Nurse with Wound를 만들고 노이즈와 사운드 콜라주 음악을 실험하게 된다. Clock DVA는 자신의 목표를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 (Surrealist automatism)의 개념과 함께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펑크 (Punk)와 바디 뮤직에서 비롯된 강렬한 에너지, 당신을 움찔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 23 Skidoo는 Clock DVA와 마찬가지로 인더스트리얼 뮤직과 아프리칸-아메리칸 댄스 뮤직을 융합시킨 것 뿐만 아니라 1982년 월드 뮤직을 주제로 한 WOMAD Festival에서 자신들을 인도네시아의 합주 악기 가믈란에 비유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스웨덴의 그룹 Leather Nun은 1978년 Industrial Records와 계약하며 스로빙 그릴스와 Monte Cazazza를 제외한 Industrial Records의 첫 아티스트가 되었다.
한편 대서양을 건너서도 이와 유사한 실험이 일어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Monte Cazazza를 필두로 Boyd Rice는 기타의 드론음과 테이프 루프를 이용해 반복적인 소리의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노이즈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보스턴의 Sleep Chamber와 Inner-X-Musick은 초기 형태의 EBM과 파워 노이즈의 혼합을 실험하였으며 1980년 이탈리아의 Maurizio Bianchi는 이러한 인더스트리얼의 미학을 공유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Einstürzende Neubauten가 등장하여 금속 타악기, 기타, 그리고 각종 기상천외한 도구 (착암기나 뼈 등)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벌여 그들의 공연장소를 망가뜨리곤 했다. 그룹의 멤버인 Blixa Bargeld는 프랑스의 시인 Antonin Artaud와 암페타민에 대한 열광에서 영감을 얻어 Die Genialen Dilettanten이라는 이름의 예술운동을 전개한 적도 있다.
중기 (인더스트리얼의 성장 및 EBM, 일렉트로-인더스트리얼 등의 분화)
인더스트리얼의 첫번째 중요한 시기는 1980~1984년이었다. 비록 1981년 스로빙 그릴스의 해체가 있었지만 장르쪽에서는 EBM과 노이즈코어 등의 분화가 생겨났으며, 수많은 인더스트리얼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발매한 것이 이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의 인더스트리얼은 펑크 (Punk)와 메탈, 고스 등의 장르와 연관되었으며 더욱 거친 전자음 사운드를 연마하기 시작한다.
스로빙 그릴스의 해체 이후, P-Orridge와 Christopherson는 Psychic TV를 설립하고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한다. 이들의 첫 음악은 이전 인더스트리얼 음악에 비해 접근하기 쉽고 멜로디가 있었으며, 음악 교육을 받은 뮤지션들을 기용하였다. 이들의 이후 작품은 초기 인더스트리얼의 사운드 콜라주와 노이즈 요소들을 포함하였다. 또한 그들은 펑크 (Funk)와 디스코 등의 요소를 차용하기도 했다. 또한 P-Orridge는 종교단체 컨셉의 비디오 아트 조직인 Thee Temple ov Psychick Youth를 설립하기도 했다. Psychic TV의 상업적 활동은 Some Bizzare records의 대표 Stevo Pearce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Stevo Pearce는 이후 Eistürzende Neubauten, Test Dept, Cabaret Voltaire를 비롯한 다양한 인더스트리얼 아티스트의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카바레 볼테르는 이후 뉴 오더와 친해지고, 댄스 음악 형태의 일렉트로팝과 유사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Christopherson은 1983년 Psychic TV를 떠나며 John Balance와 함께 Coil을 결성하고, 징(Gong)과 불로러(bullroarer : 오스트레일리아의 의식용 악기)를 통해 “화성의”, “동성애적 에너지”를 불러내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들의 친구였던 David Tibet은 Current 93을 결성한다. 두 그룹은 LSD와 암페타민에 큰 영향을 받았다. Coil의 공동 프로듀서였던 J. G. Thirlwell은 인더스트리얼에 블랙 코미디를 첨가한 장본인으로, 라운지에서 노이즈, 필름 뮤직 등의 다양한 음악을 차용하였다. 1980년대 초반 시카고의 Wax Trax!와 캐나다의 Nettwerk는 인더스트리얼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더 접근하기 쉬운 일렉트로-인더스트리얼과 인더스트리얼 락으로 만듬으로써 장르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1980년대 초반 등장한 EBM은 이내 장르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1978년 크라프트베르크의 멤버 랄프 휘터가 처음 사용한 이 단어는 Front 242의 1984년 EP No Comment를 통해 다시 등장한 것을 계기로, Nitzer Ebb 을 비롯하여 Die Krupps, à;GRUMH…, Parade Ground, A Split-Second이 그 뒤를 따르며 장르화된다. 이 시대의 그룹들은 종종 반어법적 의도를 담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을 추구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Front Line Assembly와 Ministry, Schnitt Acht같은 그룹은 전향적인 유럽 EBM을 구사하였으며, 특히 Revolting Cocks와 같은 밴드는 미국의 인더스트리얼 락과 EBM을 결합시켰으며 나인 인치 네일스의 데뷔 앨범 Pretty Hate Machine은 EBM과 인더스트리얼 락 등의 아이디어를 접목한 앨범으로써 그들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주게 된다.
Einstürzende Neubauten의 2007년 Concerto for Voice and Machinery 퍼포먼스. #
1984년 1월, Einstürzende Neubauten는 런던의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라는 곳에서 Concerto for Voice and Machinery 퍼포먼스를 통해 공연장 바닥에 드릴을 뚧었고, 결국 관객의 항의를 받아 영국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Test Dept, Laibach, Die Krupps 또한 Z'EV, SPK 등의 그룹은 인더스트리얼과 메탈의 사운드를 결합한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이 중 Test Dept는 러시아 미래주의와 1984–1985년 일어난 영국 광부 파업을 지원하는 투어 활동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 Skinny Puppy는 인더스트리얼 선조들의 다양한 음악을 받아들인 독특한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뉴욕의 포스트펑크 (Post Punk) 밴드 Swans는 스탠더드 락에 기반한, 하지만 메탈 음악의 미학을 실천하는 음악을 선보인 바도 있다. 슬로베니아의 그룹 Laibach는 스탈린주의, 나치, 티토주의, 다다이즘, 러시아 미래주의 심상 등에서 차용한 개념을 통해 유고슬라비아의 애국심과 독일의 권위주의를 융합시켰다는 점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유고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라이바흐를 옹호하며 그들과 그들의 Neue Slowenische Kunst (New Slovenian Art) 아트 그룹이 권위에 대한 과동일시(overidentification)를 시도함으로써 정부에 대해 파괴와 해방을 일으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인더스트리얼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형태의 분파가 생겨났다. 이들은 노이즈, 앰비언트, 포크, 포스트 펑크 (Post Punk)와 EDM 등의 퓨전과 변화를 포함한 것으로써, 이 경향은 북미, 유럽, 일본 등으로 확산된다.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서브장르는 다크 앰비언트, 파워 일렉트로닉스, 제팬노이즈, 네오포크, 일렉트로-인더스트리얼, EBM, 인더스트리얼 메탈/락/힙합/팝, 먀셜 인더스트리얼, 파워 노이즈, 위치 하우스 등이 있다.
EBM은 특히 유럽의 언더그라운드 클럽 씬에서 유행하였으며 이 시기의 중요한 레이블을 꼽자면 벨기에의 PIAS Recordings와 Antler-Subway, 독일의 Zoth Ommog, 북미의 Wax Trax!, 스웨덴의 Energy Rekords 등이 있으며 중요한 아티스트로는 And One, Armageddon Dildos, Bigod 20, The Neon Judgement, Attrition 등이 있다. 1990년대 이후 많은 EBM 밴드들이 해체하거나 락, 메탈 등의 요소를 차용하며 자신들의 음악 색깔을 바꿔왔으며 1991년 Front 242가 발매한 Tyranny (For You)를 끝으로 EBM은 사실상 몰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유럽의 테크노가 EBM 사운드를 차용한 음악을 개발함으로써 명맥을 이어갔으며, 특히 퓨처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으로 인해 EBM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후기/현재 (NIN, Ministry 등의 흥행과 인더스트리얼의 변화)
1990년대 중반 나인 인치 네일스의 2집 앨범 “The Downward Spiral”의 대성공으로 인더스트리얼씬의 주류는 인더스트리얼 락이 차지하게 된다. 일렉트로 인더스트리얼도 크게 두가지 장르로 분화되었는데 하나는 다크 일렉트로고 또하나는 어그로테크였다. 90년대초에 나타난 다크 일렉트로는 스키니퍼피의 음악에서 영향을 크게받은 장르로서 음산한 분위기를 강조하는게 특징이였다. “yelworC”나 “Placebo Effect”같은 밴드들이 다크 일렉트로의 대표적인 밴드였다. 90년대 중반에 트랜스의 유행과 함께 어그로테크라는 장르도 나타났다. 어그로테크는 트랜스의 슈퍼쏘우 사운드를 일렉트로 인더스트리얼과 접목시켰다. “Funker Vogt”나 “Suicide Commando”등이 어그로테크의 대표적인 뮤지션이였다. 어그로테크는 레이브 열풍과 함께 일렉트로 인더스트리얼의 주류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들속에서 수많은 인더스트리얼 뮤지션들은 인더스트리얼 록이나 어그로테크로 전향하였다. EBM씬은 테크노와 같은 타장르들과 결합해서 명목을 이어갔으며 순수한 EBM은 거의 사라졌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독일에서 안할트 EBM이 등장했다. 안할트 EBM은 80년대의 올드스쿨 EBM을 지향하는 장르였으며 독일내 언더그라운드 클럽씬에서 작지만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위 장르
초기 인더스트리얼
스로빙 그릴스나 아인슈튀어첸데 노이바우텐 그리고 SPK 등이 들려주었던 해체주의적 인더스트리얼. 딱히 명확하게 정해진 형태는 없으며 무엇이든지 악기가 될 수 있다. 노이즈 인더스트리얼도 초기 인더스트리얼의 한 경향이다.
대표적인 아티스트 : Throbbing Gristle, SPK, Einstürzende Neubauten, Esplendor Geometrico, Test Dept
마셜 인더스트리얼
라이바흐에 의해 만들어진 하위장르. 오케스트라의 적극적인 도입과 걸걸한 목소리등이 특징. 네오포크의 모태가 된 장르이다.
대표적인 아티스트 : Laibach, Von Thronstahl, Parzival
일렉트로닉 바디 뮤직
일렉트로닉 바디 뮤직, EBM (Electronic Body Music) 혹은 Industrial dance이라고도 부른다. 인더스트리얼 뮤직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신스펑크가 합쳐졌다.
대표적인 아티스트 : Front 242, D.A.F, Nitzer Ebb , A Split-Second, Aghast View, Portion Control, Leaether Strip
안할트 EBM
21세기 들어서 독일에서 생긴 장르로서 D.A.F 스타일의 올드스쿨 EBM으로서의 회귀를 지향하는 장르.
2011년 싸늘한 뉴욕의 10월 밤 백발의 한 노인이 기타를 손에 들고 맨해튼의 무대에 올랐다. 무대 주위에는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거하여 ‘월가 점령’을 외치며 몰려든 시민들로 가득했다.
그 노인은 늙고 가녀린 손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하지만 그의 노쇠한 성대는 이미 이전과 같은 강렬하고도 섬세한 진동을 밖으로 뿜어내지 못한 채, 금세 젊은이들의 노래 소리에 묻히고 만다.
그래도, 힘찬 기타의 울림만은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무대에 서겠다는 노장의 의지를 뜨겁게 전하고 있다. 그의 노래 소리는 아마도 추운 밤, 앞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투쟁에 지쳐있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온기를 전했음이 틀림없다.
이 할아버지는, 바로 며칠 전 길고 긴 인생길의 마지막을 접고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대표적 포크 가수인 피트 시거(Pete Seeger, 1919-2014)이다.
그의 길고 긴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노동운동, 공민권운동에서 베트남 반전운동, 환경운동을 거쳐 월가 점령 시위까지 현대 미국의 민중저항사는 그의 노래를 통해 기억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민요를 연구하고 이를 도시민들에게 소개하던 이 포크 가수는 왜 저항가요 운동의 상징이 되었을까. 시거에 의해서 대중화된 오랜 가스펠송 <We Shall Overcome>은 왜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20세기 초두에 미국에서 개시되었고 이후 세계 각지의 민중가요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 ‘포크 리바이벌’ 운동 즉 민요 부흥 운동이 있었다.
포크 리바이벌 운동은 본래 미국 북동부에 전해지는 영국에서 기원하는 민요 같은 전통가요를 발굴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 전통가요의 레퍼토리나 스타일을 공민권운동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과 결합시키려는 운동이었다.
운동 초기의 가수로는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1912-1967)를 들 수 있고, 1950년대 후반 이후 운동의 고양기와 상업적인 성공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는 피트 시거나 존 바에즈(Joan Baez, 1941-), 혹은 나중에 록으로 전환하여 포크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밥 딜런(Bob Dylan, 1941-) 등이 있다.
이들은 어쿠스틱 기타나 전통악기만을 사용하는 연주법을 고집하여 전자악기의 사용에 저항했으며, 민요를 발굴하고 연구하기도 했던 관계로, 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체현하는 운동으로 오해되어, 특히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꺼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애국자’의 길을 걷지 않았으며, 그들의 운동도 민족이나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 형성을 목표로 ‘포클로어’(Folklore)에 주목한 19세기식 국민적 낭만주의 열풍과는 상당히 달랐다.
우선 그들이 주로 소개한 민요들은 체제가 주목하지 않거나 혹은 체제가 억압했던, 정치적 권위에 저항하고 전쟁을 비판하고, 농촌의 피폐상을 노래한 곡들이었다. 그들은 권력에 대한 민중 저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림으로써 새로운 정치운동의 기점을 마련해 갔으며, 계급적 시각의 노동운동과도 연계하여 사회변혁운동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급진적 노동운동 조직으로 유명한 세계산업노동조합(IWW)의 운동가요집 Little Red Songbook 수록곡들은 그들이 애창했던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IWW 노래모음집의 표지
이렇게 민요의 주체로서 민중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전통성 못지않게 정치성을 부활시켰다는 점은, 이전의 국수주의적인 민요부흥운동과 이들의 음악운동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피트 시거 자신도 40년대에 미국공산당(CPUSA)의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로 인해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에 소환되기도 하여 오랫동안 미디어의 기피대상이 되었으며, 평생 반공세력으로부터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국수주의적 민요부흥운동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레퍼토리에 왕성하게 추가되었던 것이 미국이나 영국 태생의 곡 못지않게 타문화권의 전통가요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2009년의 인터뷰에서 시거가 “내 직업은,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많이 있고 그것이 잘 활용된다면 세상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민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그들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 약자나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노래로 대변함으로써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존 바에즈가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도나 도나(Donna Donna)>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의 운명을 노래한 동구 유대인들의 이디쉬(Yiddish) 노래에서 기원한 곡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시거가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민요에는 쿠바의 농민가요인 <관타나메라(Guantanamera)>가 있다. 이것은 시인이자 쿠바 독립운동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의 시를 대입하여 호세이토 페르난데스(Joseíto Fernández, 1908-1979)가 편곡한 버전이다.
가사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con los pobres de la tierra) 나는 나의 운명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다.
시거가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1963년은 마침 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 직후였으며,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이 쿠바혁명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간섭에 대항하여 일체감을 추구하던 당시 지식인들의 지향은 마르티의 사상과 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거는 쿠바의 민중가요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적극적으로 추가하면서 반제, 반전평화 운동을 노래로써 확산시켰던 것이다.
혹은 시거의 대표곡이자 대표적인 반전가라고 할 수 있는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1961)는, 소련 작가 숄로호프(Mikhail Sholokhov, 1905-1984)의 소설 [고요한 돈강]에 인용된 코사크 민요 “꽃은 다 어디로 갔나? 소녀들이 다 꺾었지/ 그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녀들은 다 결혼했지/ 그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들은 다 군대에 갔지”라는 가사에 촉발되어 만들어 진 것이다. 마침 베트남 전쟁이 확대되어 “언제쯤이면 그들은, 우리들은 (전쟁의 어리석음을) 깨달을까”라는 메시지를 가진 반전가로 세계적으로 퍼져갔다.
특히 독일어 버전이 유명했으며, 피트 시거의 영향은 독일의 68년 ‘성난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된 포크 리바이벌 운동에도 미쳤다. 피트 시거 자신도 동서독을 오가면서 음악가들과 교류했으며, 나치의 양심수 수용소에서 만들어진 저항가인 <늪지의 병사들(Die Moorsoldaten)>을 불러 국제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그런데 특히 한국에서 피트 시거하면, <아리랑(Ariran)>(1953 혹은 1954)을 부른 서구의 가수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미국의 포크가수가 <아리랑>을 불렀다는 사실에만 경탄하고 의미부여를 하지만, 정작 그가 부른 그 <아리랑>이 어떤 <아리랑>이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아니다. 그것은 3.1운동 직후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공산당의 혁명운동과 조선 민족해방운동을 결합시키고자 진력하다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처형당한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이 님 웨일즈와 함께 작성한 자신의 회고록 [아리랑: 조선이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1941)의 서두에서 소개한 그 <아리랑>이다.
시거는 이 책에 기초하여 <아리랑>이 조선 왕조의 폭정이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죽음으로써 저항하는 희생정신의 노래라는 걸 소개하며 분단의 역사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김산의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김산과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 한국에서는 오래도록 금서로 있다가 1984년에 비로소 번역소개된 것을 떠올리면, 시거가 저항가요로서의 <아리랑>을 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일부 국내 언론이 시거가 한국전쟁 참전시에 <아리랑>을 들었다고 한 것은 오보이다).
이렇게 보면, 그가 추구한 ‘포크 리바이벌’이라는 것은, 다양성과 정치성을 추구하며 위로부터의 전통에 저항하는 ‘민중의 전통’ 구축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반제, 반전, 반자본적 계급 지향성이 뚜렷했으며, 시거는 “모든 해방운동과 함께했던 노래”를 민중운동 속에서 계승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권력과의 긴장관계이며, 그것이 느슨해지는 순간, 그는 하염없이 ‘애국자’의 길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시거가 만년에 국가로부터의 각종 표창을 받고 오바마 대통령 취임 콘서트에서 노래했을 때, 그는 허드슨 강의 정화운동에 헌신하고 전통을 사랑하고 전쟁을 미워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에 항거한 ‘진정한 미국인’으로서 기억될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를 국민의 역사 속으로 회수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가 포크 리바이벌 운동을 탈환하고자 한다면, 시거가 일관되게 견지했던 탈국가적 계급 지향성을 다시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환경적 정의는 경제적 정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 환경주의자 시거의 “말”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가 부른 <이 땅은 당신의 땅(This Land Is Your Land)>이 조국 찬미의 노래가 아니라 경제적 평등을 읊은 곡이었다는 그의 “노래 정신”이 묻히지 않도록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결국에 믿었던 것은 “노래는 모든 해방운동과 함께 했다”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 20century 60's 초
포우크 송에는 작자불명의 옛 민요*와, 그 소박한 가곡형식과 정신을 근거로 삼은 현대의 포우크 송이 있으며, 여기서는 미국의 후자, 이른바 모던 포우크 송, 컨템퍼러리 포우크를 가리킨다. 신대륙으로의 이민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이 나라에는 영국을 주로 한 유럽 각국 민요의 가사를 바꾼 발라드나 흑인이 비참한 생활을 호소한 것 등이 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레코드의 보급과 함께 흑인의 블루스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취입이 매출되는 동시에 존 및 앨런 로맥스 등에 의한 조사 채집도 실시되고, 거기에 자극받아 민요연구가 · 가수의 소박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피트 시거는 흑인 포우크 블루스 가수 레드베리와 불황시대의 미국을 노래한 우디 거슬리 등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자작곡에 의해 우경화(右傾化) 해 온 미국정부며 인종차별에의 저항,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박해를 받았지만 포우크 운동에 정진, 196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항의나 시민권운동과도 결부된 포우크 운동의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존 바에즈를 비롯, 로크 이디엄을 살린 봅 딜런은 그 대표적인 가수, 싱거=송 라이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포크 송 [folk song] (파퓰러음악용어사전, 클래식음악용어사전, 2002.1.28, 삼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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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s's 초
모던 포크음악의 선구자, 피터 폴 & 메리
맑은 멜로디와 날카로운 진보적 성향의 가사로 인기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미국 포크음악의 대중적 효시라고 불리는 피터 폴 & 메리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입술에 닿기만 해도 절로 녹아내리는 달콤한 솜사탕처럼, 그들의 노래는 한 편의 동화이자 할머니가 손자를 재우면서 불러 주시는 자장가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 포크음악계를 석권했던 당시의 시대를 돌아보면 사정이 동화처럼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피터 폴 & 메리는 미국 전역에서 반전과 저항이라는 홍역을 앓던 60~70년대에 대중성과 저항성의 경계에서 모두를 아우르는 백인 취향의 깨끗하고 맑은 멜로디와 날카로운 진보적 성향의 가사로 미국 모던 포크의 중심에 서있던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들은 베트남전, 흑인민권운동, 히피문제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미국사회의 양심과 아픔을 아름답고도 애잔한 선율로 표현했던 그룹이다.
1961년 미국 ‘그리니치 빌리지’라는 마을에 살던 피터 야로우, 노엘 폴 스투키, 그리고 메리 트레버스 세 사람의 만남은 포크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귀중한 것이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연예활동을 하며 포크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 셋은 혼성 트리오를 만드는 일에 합의해 그룹 이름을 멤버 각자의 이름에서 고유명사를 하나씩 합친 ‘피터 폴 & 메리’가 탄생하게 된다.
홍일점인 메리가 리드보컬을, 나머지 둘은 백 보컬을 맡았는데, 데뷔 초기에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면서 점차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해 나가던 중 우연한 기회에 포크음악의 대가 밥 딜런의 매니저였던 앨버트 그로스먼이 이들의 공연을 보게 되면서 그들이 목표했던 메이저 무대 진출에 청신호가 켜진다.
그로스먼의 후원으로 1962년 첫 앨범 ‘Peter Paul & Mary’가 발표되는데, 이 앨범에 들어있는 ‘If I Had a Hammer’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망치로 위험을 제거하고 종을 울리며 모든 동포를 위해 노래를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당시 저명한 가수 피트 시거에 의해 작곡된 이 작품은 빌보드 싱글차트 10위로 상승하면서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그 유명한 올드 포크 넘버인 ‘레몬 트리’도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고 이 역시 차트 12위에 오르면서 그들만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나갔다.
데뷔 앨범의 성공에 탄력을 받은 그들은 두 번째 앨범 ‘Moving’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포크의 영원한 명곡인 ‘(Puff)The Magic Dragon’이 탄생했는데, 동화적인 분위기를 절로 연상케 하는 더없이 감미로운 이 곡은 당시 ‘Puff’라는 단어가 마리화나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Puff’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은 세 번째 앨범인‘In the wind’에서는 밥 딜런이 작곡한 포크의 명작‘Blowin' In The Wind’를 그들만의 하모니로 리메이크함으로써 가공할 만한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된다. 자칫했으면 포크의 역사에서 묻혀버릴 뻔 했던 피트 시거의 If I Had a Hammer나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으며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결과적으로 피터 폴 앤 메리에 의해서였다.
그들이 리메이크한 포크의 숨겨진 고전들은 모두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피터 폴 & 메리의 모던 포크의 재해석 능력은 대단한 파급력을 가져왔다. Lemon Tree, 500Miles, Puff, The Magic Dragon, Gone the Rainbow, Blowin' In The Wind, 존 덴버의 곡 Leavin On A Jetplane 등 수많은 자작곡과 리메이크 곡들을 차례로 히트시키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혼성 트리오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피터 폴 & 메리는 음악적 성공에 머무르며 결코 안일한 스타의 삶을 영위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민권 운동에 참가하여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섰고, 월남전 반대 시위에도 그들은 기타와 목소리를 가지고 반전과 평화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로 인해 피트 시거의 곡 If I Had A Hammer는 시민운동의 성가로 각지의 집회에서 불려 지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도 피터 폴 앤 메리는 사회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반전과 평화와 자유를 외치는 아름다운 하모니의 아티스트로써 그들의 유명세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공연 활동과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살아있는 포크의 전설로, 지난 2003년에는 나이가 많이 들어 백발과 주름진 얼굴을 한 그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모습을 표지로 한 앨범 ‘In These Times’를 선보였다.
피터 폴 & 메리는 196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결성되어 1970년 해체되고 재결성되어 오늘에 이르는 동안 지금까지 불리어지는 수많은 포크 명곡을 양산해낸 밴드로 팝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밴드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2011년 싸늘한 뉴욕의 10월 밤 백발의 한 노인이 기타를 손에 들고 맨해튼의 무대에 올랐다. 무대 주위에는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거하여 ‘월가 점령’을 외치며 몰려든 시민들로 가득했다.
그 노인은 늙고 가녀린 손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하지만 그의 노쇠한 성대는 이미 이전과 같은 강렬하고도 섬세한 진동을 밖으로 뿜어내지 못한 채, 금세 젊은이들의 노래 소리에 묻히고 만다.
그래도, 힘찬 기타의 울림만은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무대에 서겠다는 노장의 의지를 뜨겁게 전하고 있다. 그의 노래 소리는 아마도 추운 밤, 앞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투쟁에 지쳐있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온기를 전했음이 틀림없다.
이 할아버지는, 바로 며칠 전 길고 긴 인생길의 마지막을 접고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대표적 포크 가수인 피트 시거(Pete Seeger, 1919-2014)이다.
그의 길고 긴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노동운동, 공민권운동에서 베트남 반전운동, 환경운동을 거쳐 월가 점령 시위까지 현대 미국의 민중저항사는 그의 노래를 통해 기억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민요를 연구하고 이를 도시민들에게 소개하던 이 포크 가수는 왜 저항가요 운동의 상징이 되었을까. 시거에 의해서 대중화된 오랜 가스펠송 <We Shall Overcome>은 왜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20세기 초두에 미국에서 개시되었고 이후 세계 각지의 민중가요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 ‘포크 리바이벌’ 운동 즉 민요 부흥 운동이 있었다.
포크 리바이벌 운동은 본래 미국 북동부에 전해지는 영국에서 기원하는 민요 같은 전통가요를 발굴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그 전통가요의 레퍼토리나 스타일을 공민권운동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진보적 사회운동과 결합시키려는 운동이었다.
운동 초기의 가수로는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1912-1967)를 들 수 있고, 1950년대 후반 이후 운동의 고양기와 상업적인 성공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는 피트 시거나 존 바에즈(Joan Baez, 1941-), 혹은 나중에 록으로 전환하여 포크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밥 딜런(Bob Dylan, 1941-) 등이 있다.
이들은 어쿠스틱 기타나 전통악기만을 사용하는 연주법을 고집하여 전자악기의 사용에 저항했으며, 민요를 발굴하고 연구하기도 했던 관계로, 국수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체현하는 운동으로 오해되어, 특히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꺼려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애국자’의 길을 걷지 않았으며, 그들의 운동도 민족이나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 형성을 목표로 ‘포클로어’(Folklore)에 주목한 19세기식 국민적 낭만주의 열풍과는 상당히 달랐다.
우선 그들이 주로 소개한 민요들은 체제가 주목하지 않거나 혹은 체제가 억압했던, 정치적 권위에 저항하고 전쟁을 비판하고, 농촌의 피폐상을 노래한 곡들이었다. 그들은 권력에 대한 민중 저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알림으로써 새로운 정치운동의 기점을 마련해 갔으며, 계급적 시각의 노동운동과도 연계하여 사회변혁운동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급진적 노동운동 조직으로 유명한 세계산업노동조합(IWW)의 운동가요집 Little Red Songbook 수록곡들은 그들이 애창했던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IWW 노래모음집의 표지
이렇게 민요의 주체로서 민중을 계급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전통성 못지않게 정치성을 부활시켰다는 점은, 이전의 국수주의적인 민요부흥운동과 이들의 음악운동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피트 시거 자신도 40년대에 미국공산당(CPUSA)의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그로 인해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에 소환되기도 하여 오랫동안 미디어의 기피대상이 되었으며, 평생 반공세력으로부터의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국수주의적 민요부흥운동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레퍼토리에 왕성하게 추가되었던 것이 미국이나 영국 태생의 곡 못지않게 타문화권의 전통가요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2009년의 인터뷰에서 시거가 “내 직업은,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많이 있고 그것이 잘 활용된다면 세상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민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언급했듯이, 그들은 민족과 국가를 넘어 약자나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노래로 대변함으로써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존 바에즈가 불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도나 도나(Donna Donna)>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의 운명을 노래한 동구 유대인들의 이디쉬(Yiddish) 노래에서 기원한 곡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시거가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민요에는 쿠바의 농민가요인 <관타나메라(Guantanamera)>가 있다. 이것은 시인이자 쿠바 독립운동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의 시를 대입하여 호세이토 페르난데스(Joseíto Fernández, 1908-1979)가 편곡한 버전이다.
가사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con los pobres de la tierra) 나는 나의 운명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다.
시거가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 1963년은 마침 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 직후였으며,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이 쿠바혁명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간섭에 대항하여 일체감을 추구하던 당시 지식인들의 지향은 마르티의 사상과 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거는 쿠바의 민중가요를 자신의 레퍼토리에 적극적으로 추가하면서 반제, 반전평화 운동을 노래로써 확산시켰던 것이다.
혹은 시거의 대표곡이자 대표적인 반전가라고 할 수 있는 <꽃들은 다 어디로 갔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1961)는, 소련 작가 숄로호프(Mikhail Sholokhov, 1905-1984)의 소설 [고요한 돈강]에 인용된 코사크 민요 “꽃은 다 어디로 갔나? 소녀들이 다 꺾었지/ 그 소녀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녀들은 다 결혼했지/ 그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들은 다 군대에 갔지”라는 가사에 촉발되어 만들어 진 것이다. 마침 베트남 전쟁이 확대되어 “언제쯤이면 그들은, 우리들은 (전쟁의 어리석음을) 깨달을까”라는 메시지를 가진 반전가로 세계적으로 퍼져갔다.
특히 독일어 버전이 유명했으며, 피트 시거의 영향은 독일의 68년 ‘성난 젊은이들’에 의해 주도된 포크 리바이벌 운동에도 미쳤다. 피트 시거 자신도 동서독을 오가면서 음악가들과 교류했으며, 나치의 양심수 수용소에서 만들어진 저항가인 <늪지의 병사들(Die Moorsoldaten)>을 불러 국제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그런데 특히 한국에서 피트 시거하면, <아리랑(Ariran)>(1953 혹은 1954)을 부른 서구의 가수로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미국의 포크가수가 <아리랑>을 불렀다는 사실에만 경탄하고 의미부여를 하지만, 정작 그가 부른 그 <아리랑>이 어떤 <아리랑>이었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아니다. 그것은 3.1운동 직후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공산당의 혁명운동과 조선 민족해방운동을 결합시키고자 진력하다가 ‘트로츠키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처형당한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이 님 웨일즈와 함께 작성한 자신의 회고록 [아리랑: 조선이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1941)의 서두에서 소개한 그 <아리랑>이다.
시거는 이 책에 기초하여 <아리랑>이 조선 왕조의 폭정이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죽음으로써 저항하는 희생정신의 노래라는 걸 소개하며 분단의 역사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김산의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김산과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 한국에서는 오래도록 금서로 있다가 1984년에 비로소 번역소개된 것을 떠올리면, 시거가 저항가요로서의 <아리랑>을 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일부 국내 언론이 시거가 한국전쟁 참전시에 <아리랑>을 들었다고 한 것은 오보이다).
이렇게 보면, 그가 추구한 ‘포크 리바이벌’이라는 것은, 다양성과 정치성을 추구하며 위로부터의 전통에 저항하는 ‘민중의 전통’ 구축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반제, 반전, 반자본적 계급 지향성이 뚜렷했으며, 시거는 “모든 해방운동과 함께했던 노래”를 민중운동 속에서 계승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권력과의 긴장관계이며, 그것이 느슨해지는 순간, 그는 하염없이 ‘애국자’의 길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시거가 만년에 국가로부터의 각종 표창을 받고 오바마 대통령 취임 콘서트에서 노래했을 때, 그는 허드슨 강의 정화운동에 헌신하고 전통을 사랑하고 전쟁을 미워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불의에 항거한 ‘진정한 미국인’으로서 기억될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를 국민의 역사 속으로 회수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우리가 포크 리바이벌 운동을 탈환하고자 한다면, 시거가 일관되게 견지했던 탈국가적 계급 지향성을 다시금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환경적 정의는 경제적 정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 환경주의자 시거의 “말”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가 부른 <이 땅은 당신의 땅(This Land Is Your Land)>이 조국 찬미의 노래가 아니라 경제적 평등을 읊은 곡이었다는 그의 “노래 정신”이 묻히지 않도록 말이다. 왜냐하면 그가 결국에 믿었던 것은 “노래는 모든 해방운동과 함께 했다”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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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우크 송에는 작자불명의 옛 민요*와, 그 소박한 가곡형식과 정신을 근거로 삼은 현대의 포우크 송이 있으며, 여기서는 미국의 후자, 이른바 모던 포우크 송, 컨템퍼러리 포우크를 가리킨다. 신대륙으로의 이민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이 나라에는 영국을 주로 한 유럽 각국 민요의 가사를 바꾼 발라드나 흑인이 비참한 생활을 호소한 것 등이 있으며, 20세기에 들어와 레코드의 보급과 함께 흑인의 블루스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취입이 매출되는 동시에 존 및 앨런 로맥스 등에 의한 조사 채집도 실시되고, 거기에 자극받아 민요연구가 · 가수의 소박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피트 시거는 흑인 포우크 블루스 가수 레드베리와 불황시대의 미국을 노래한 우디 거슬리 등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자작곡에 의해 우경화(右傾化) 해 온 미국정부며 인종차별에의 저항,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박해를 받았지만 포우크 운동에 정진, 196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항의나 시민권운동과도 결부된 포우크 운동의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존 바에즈를 비롯, 로크 이디엄을 살린 봅 딜런은 그 대표적인 가수, 싱거=송 라이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포크 송 [folk song] (파퓰러음악용어사전, 클래식음악용어사전, 2002.1.28, 삼호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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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포크음악의 선구자, 피터 폴 & 메리
맑은 멜로디와 날카로운 진보적 성향의 가사로 인기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미국 포크음악의 대중적 효시라고 불리는 피터 폴 & 메리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입술에 닿기만 해도 절로 녹아내리는 달콤한 솜사탕처럼, 그들의 노래는 한 편의 동화이자 할머니가 손자를 재우면서 불러 주시는 자장가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 포크음악계를 석권했던 당시의 시대를 돌아보면 사정이 동화처럼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피터 폴 & 메리는 미국 전역에서 반전과 저항이라는 홍역을 앓던 60~70년대에 대중성과 저항성의 경계에서 모두를 아우르는 백인 취향의 깨끗하고 맑은 멜로디와 날카로운 진보적 성향의 가사로 미국 모던 포크의 중심에 서있던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들은 베트남전, 흑인민권운동, 히피문제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미국사회의 양심과 아픔을 아름답고도 애잔한 선율로 표현했던 그룹이다.
1961년 미국 ‘그리니치 빌리지’라는 마을에 살던 피터 야로우, 노엘 폴 스투키, 그리고 메리 트레버스 세 사람의 만남은 포크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귀중한 것이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연예활동을 하며 포크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 셋은 혼성 트리오를 만드는 일에 합의해 그룹 이름을 멤버 각자의 이름에서 고유명사를 하나씩 합친 ‘피터 폴 & 메리’가 탄생하게 된다.
홍일점인 메리가 리드보컬을, 나머지 둘은 백 보컬을 맡았는데, 데뷔 초기에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면서 점차 자신들의 입지를 구축해 나가던 중 우연한 기회에 포크음악의 대가 밥 딜런의 매니저였던 앨버트 그로스먼이 이들의 공연을 보게 되면서 그들이 목표했던 메이저 무대 진출에 청신호가 켜진다.
그로스먼의 후원으로 1962년 첫 앨범 ‘Peter Paul & Mary’가 발표되는데, 이 앨범에 들어있는 ‘If I Had a Hammer’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망치로 위험을 제거하고 종을 울리며 모든 동포를 위해 노래를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당시 저명한 가수 피트 시거에 의해 작곡된 이 작품은 빌보드 싱글차트 10위로 상승하면서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그 유명한 올드 포크 넘버인 ‘레몬 트리’도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고 이 역시 차트 12위에 오르면서 그들만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나갔다.
데뷔 앨범의 성공에 탄력을 받은 그들은 두 번째 앨범 ‘Moving’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포크의 영원한 명곡인 ‘(Puff)The Magic Dragon’이 탄생했는데, 동화적인 분위기를 절로 연상케 하는 더없이 감미로운 이 곡은 당시 ‘Puff’라는 단어가 마리화나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묶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Puff’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들은 세 번째 앨범인‘In the wind’에서는 밥 딜런이 작곡한 포크의 명작‘Blowin' In The Wind’를 그들만의 하모니로 리메이크함으로써 가공할 만한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된다. 자칫했으면 포크의 역사에서 묻혀버릴 뻔 했던 피트 시거의 If I Had a Hammer나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으며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결과적으로 피터 폴 앤 메리에 의해서였다.
그들이 리메이크한 포크의 숨겨진 고전들은 모두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피터 폴 & 메리의 모던 포크의 재해석 능력은 대단한 파급력을 가져왔다. Lemon Tree, 500Miles, Puff, The Magic Dragon, Gone the Rainbow, Blowin' In The Wind, 존 덴버의 곡 Leavin On A Jetplane 등 수많은 자작곡과 리메이크 곡들을 차례로 히트시키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혼성 트리오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피터 폴 & 메리는 음악적 성공에 머무르며 결코 안일한 스타의 삶을 영위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민권 운동에 참가하여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섰고, 월남전 반대 시위에도 그들은 기타와 목소리를 가지고 반전과 평화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로 인해 피트 시거의 곡 If I Had A Hammer는 시민운동의 성가로 각지의 집회에서 불려 지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도 피터 폴 앤 메리는 사회 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반전과 평화와 자유를 외치는 아름다운 하모니의 아티스트로써 그들의 유명세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공연 활동과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살아있는 포크의 전설로, 지난 2003년에는 나이가 많이 들어 백발과 주름진 얼굴을 한 그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모습을 표지로 한 앨범 ‘In These Times’를 선보였다.
피터 폴 & 메리는 1961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결성되어 1970년 해체되고 재결성되어 오늘에 이르는 동안 지금까지 불리어지는 수많은 포크 명곡을 양산해낸 밴드로 팝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밴드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