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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6.08 :: cretan 크레타 음악
- 2014.06.08 :: Cowpunk
- 2014.06.08 :: Coupé-Décalé
- 2014.06.08 :: Country pop
- 2014.06.08 :: Country rock
- 2014.06.08 :: Country rap
- 2014.06.08 :: contry music
- 2014.06.07 :: Country blues
- 2014.06.07 :: Corrido 꼬리도
- 2014.06.07 :: Cool jazz
크레타 섬의 주민들이 연주했고 연주하는 그리스 포크 음악의
한 형태
크레타<사투리> 도 있대용
- Greek folk music performed by inhabitants of the island of Crete
Cowpunk 또는 Country punk 라 불리는 이것은
1970년대 후반 ~ 1980년 초반 UK 와 캘리포니아에서
펑크락 또는 뉴웨이브가 컨트리 , 포크 그리고 블루스와 함께 소리
주제 태도 스타일을 연결시켜 만든것
Cowpunk | |
---|---|
Stylistic origins | Punk rock,[1] new wave,[1]southern rock, roots rock,country, country rock |
Cultural origins | Late 1970s United Kingdom and early 1980s Los Angeles |
Typical instruments | Vocals, electric guitar, bass,drums |
Derivative forms | Alternative country |
Fusion genres | |
Psychobilly - Gothabilly - Southern metal |
fffffffffff
ㅓㅓㅓㅓㅓㅓㅓㅓㅓCoupé-Décal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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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istic origins | Zouglou, Zouk, Techno, Tribal house, bouyon music |
Cultural origins | early 2000s, Côte d'Ivoire; Paris,France |
Typical instruments | PC, Turntables, Drum machine,Vocal |
1960년대에 프로듀서 Chet Atkins등이 내슈빌사운드를 만들어내었을 때 컨트리음악은 컨트리차트는 물론 팝차트에도 오를 수있는 잠재력을 보여줬고,그 결과 내슈빌사운드는 컨트리음악을 거대한 산업으로 바꾸어 놓게 되었다.하지만 복고주의적인 Bakersfield Sound와 자율을 강조하는 outlaw country의 저항을 받으며 내슈빌사운드는 오래 버티질 못했다.
그러다가 70년대에 와서 다시 컨트리팝이 부활하기 시작하였는데, 컨트리아티스트들이 팝음악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던 것이 내슈빌사운드라고 한다면, 컨트리팝은 팝아티스트들이 컨트리음악을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있다.즉 Anne Murray,Glen Campbell, John Denver, Olivia Newton-John등 팝아티스트들이 컨트리 성향의 팝음악을 내어놓으면서컨트리팝은 부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표곡으로는 I Fall To Pieces(Patsy Cline),D-I-V-O-R-C-E(Tammy Wynette),The end of the world(Skeeter Davis),Last Date(Floyd Cramer),Make The World Go Away(Eddy Arnold),Country Girl(Dottie West),Funny Way of Laughin'(Burl Ives)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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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 Invasion(미국 챠트를 휩쓸게 되는 Beatles등 영국 뮤지션들의 대거 유입)이후인 1960년대 말 미국에는 Elvis시대의 초기 Rock n' Roll에 대한 향수가 짙어져 가면서 내슈빌이 만들어 내는 컨트리음악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는데,Rock스타일의 컨트리음악은 이러한 상황하에서 출현하게 되었다.
한 장르에 대한 기원을 한,두개의 앨범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파악하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지만,Gram Parsons가 그의 "International Submarine Band"와 함께 발표한 앨범"Safe At Home(1968년)"을 컨트리록의 효시로 보고 있다.
이어서 파슨스의 컨트리음악적 취향과 그룹 "The Byrds"(역시 파슨스가 소속된 그룹임)의 포크록 성향이 융합된 앨범"Sweetheart of the Rodeo"가 출시되었고,다음 해인 1969년에는 파슨스의 밴드"Flying Burrito Brothers"가 앨범"The Gilded Palace of Sin"을 발표하여 컨트리록의 전통을 이어갔다.
그리고 Eagles, Poco,Commander Cody, Allman Brothers, The Marshall Tucker Band 역시 컨트리록 성향의 음악을 발표하였으며 Rolling Stones의 곡 "Wild Horses" 및 "Honky Tonk Women"등 또한 컨트리록으로 분류된다.
70년대를 통하여 플로리다주의 잭슨빌에서 결성되었던 "Lynyrd Skynyrd"와 "Molly Hatchet"
같은 Southern Rock 밴드들이 그들의 블루스와 비음이 섞인 컨트리를 혼합함으로써 컨트리록을 이어갔으며,Alabama, Hank Williams, Jr., Keith Urban, Shania Twain, Garth Brooks, Dwight
Yoakam, Steve Earle, Rosanne Cash 및 Linda Ronstadt등 역시 컨트리음악에 대하여 Rock성향을 강화시켰다.
앨범Sweetheart Of The Rodeo - "You Ain't Going Nowhere", "Life In Prison","Lazy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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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wikipedia.org/wiki/Country_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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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테입도 있고 트위터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고
..
country music
미국 백인 민요라고 할 컨트리 음악은 과거 70년대
국내 가요에 주종을 이룰 만큼
당시에는 커다란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컨트리 뮤직은 촌사람들의 음악, 시골음악이란 뜻이지만
대중음악분야에서는 구체적으로 미국 백인들의 전통음악을 말한다.
20세기 100년 동안 미국 백인들이 주도한 음악으로는 '스탠더드 팝'과
본래는 흑인 연주음악이나 백인들이 더 강세를 보인 '재즈'가 있다.
하지만 두 음악은 결코 민초들의 구전(口傳)에 의한 음악
이를테면 민요라고 할 수 없다.
스탠더드 팝과 재즈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후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 이주민들 가운데서
공식적으로 음악교육을 받았거나 클래식 음악의
연주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반면 컨트리 뮤직은 백인 이주민들 가운데
하층계급이나 민초들에 의해
미국이란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정착된 것이다.
말하자면 백인민요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컨트리 뮤직은 미국 흑인민요인
블루스와 인종적으로 정반대에 위치한다.
18세기에 스코트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그리고
영국 등지에서 이주해온 궁핍한 백인들은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동부의 대도시로 정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들은 주로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 주변에 모여 살았고
따라서 컨트리는 처음에는 유럽에서 그들이 불렀던 것과 유사하다고 해서
'친숙한 노래'(familiar tunes) 또는
산(山)지역사람들의 노래라고 해서
'마운틴 뮤직'(mountain music)으로 통했다.
이 용어는 19세기 말에 와서 힐빌리(hill-billy)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때까지는 아직 매스 미디어와 대량복제기술(음반)이 가해지지 않은
전형적인 민요의 상태였다.
그러나 1920년대 들어서는 마침내 미국 전역에 라디오와 음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음악으로 변모했다.
이 무렵 랄프 피어(Ralph Peer)라는 이름의 음반제작자는
'민요 컨트리'가 '대중음악 컨트리'로 탈바꿈하는데
누구보다도 크게 기여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블루 요들'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지미 로저스(Jimmie Rodgers)와
미국형의 새로운 컨트리를 연주한 카터 패밀리(Carter Family) 등
컨트리 음악의 전설을 발굴했다.
여기서 요들(yodel)이란 용어가 말해주듯
유럽의 민초들이 즐겨 불렀던 요들이
미국으로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현악(string)밴드의 성격이 강했던 컨트리의 주요악기가
피들, 하프, 루트(옛 기타)등 아일랜드와 스코트랜드의 토속악기라는 것도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나중에는 여기에 밴조, 도브로(기타의 일종), 만돌린, 그리고 스틸 기타가 더해져
오늘날의 특징적인 컨트리 음악 사운드가 만들어졌다.
민초들의 바이올린이라고 할 수 있는 피들(fiddle)은
빠르게 줄을 켜면서 컨트리 특유의 흥을 내며,
역기 컨트리 음악에서 자주 들리는 '우는 듯한' 기타소리는
앉아서 연주하는 좌판형의 스틸 기타(steel guitar)의 몫이다.
'두 악기가 없다면 컨트리도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피들과 스틸 기타는
요즘에도 컨트리 사운드의 색깔을 띠는데 필수적인 악기로 통한다.
1930년대 후반에 컨트리라는 용어가 정착되었고 음악의 종류도 많아졌다.
빌 몬로를 선조로 하는 전기 증폭음 이전의
남부지역의 블루그래스(Bluegrass),
스윙재즈와 결합한 스타일로
캐나다 남부 아카디아 지방사람들의 웨스턴 스윙(Western swing),
남부 루이지애나의 프랑스어를 구사한 사람들에 의해 정착된 케이준(Cajun),
'컨트리 앤 웨스턴'이란 말을 낳으며
1940년대 영화까지 석권한 카우보이 송(Cowboy song)
술집과 무도장에서 유행한 일렉트릭 기타 주도의
빠른 홍키통크(honky-tonk) 등
지역과 풍속에 따라 여러 갈래를 치며 대중들에게 파고들었다.
이들 컨트리 음악 중에서 서부개척을 상징하는
말달리는 카우보이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도
컨트리 뮤직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용어이다.
컨트리의 본향(本鄕)이라고 할 내시빌 지역의 방송국인 WSM의 프로그램으로
주말이면 컨트리 가수가 다수 출연하는 공개방송무대를 갖는다.
1925년에 시작되어 카터 패밀리, 어네스트 텁, 행크 윌리암스 등 컨트리의 역사를
수놓은 모든 스타들이 이 프로를 거쳐간 명실상부한 컨트리 스타의 산실이다.
공연 분위기는 우리의 '가요무대'를 연상하면 된다.
그랜드 올 오프리는 방송혜택이 전무했던 블루스와 달리
백인음악이란 덕분에 컨트리가 미디어를 통해
일찍이 대중화 상업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부언하면 그랜드 올 오프리에 의해 컨트리는
시골의 민요에서 벗어나 도시의 대중음악으로 뻗어간 것이다.
아울러 그랜드 올 오프리를 컨트리와 동격으로 만들어낸
내시빌에 대한 지역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 곳에는 컨트리의 명예전당, 공연장, 전문 레코드사,
스튜디오, 음악협회 등 컨트리의 모든 것이 집결해 있다.
내시빌 현지에서 만난 컨트리음악협회의 홍보이사 제프 그린은
컨트리 음악에서 내시빌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도시 중에서 바로 음악을 연상시키는 도시가 어디 있습니까?
뉴욕이나 시카고도 역사적으로 음악이 강한 도시지만
사람들은 먼저 거대도시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계인 누구에게도 내시빌하면 '아, 컨트리 음악!'하며
바로 컨트리를 떠올리지요.
내시빌과 컨트리는 이제 같은 말이 됐습니다."
내시빌을 중심으로 확산된 컨트리 음악은
1950년대 등장한 로큰롤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지만
폭발적인 로큰롤의 기세에 눌려 한때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재빨리 로큰롤과 팝의 요소들을 받아들이면서 추세를 따라잡아
대중음악 전선에서 퇴각을 당한 적은 없다.
1970년대에는 로레타 린, 태미 와이네트, 멀 해거드 등
불세출의 컨트리 스타들이 나와
대중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으며
1980년대 초반에도 케니 로저스,돌리 파튼, 에디 래비트, 알라바마 등이
활약하여 다시 전성기를 누렸다.
근래에도 '컨트리의 마이클 잭슨'이라는 가스 브룩스,
'컨트리의 스파이스 걸'격인 딕시 칙스,
백스트리트 보이스보다도 더 많은 앨범 판매고를 수립한 샤니아 트웨인 등
슈퍼스타가 잇따라 출현해
또다시 중흥기를 맞고 있다.
백인의 전통음악이라는 유리함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잊혀질 때면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나 위력을 뽐내고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컨트리는 어떠한가. 지금은 컨트리 색채가 있는 음악을
좀처럼 듣지 않으려고 하지만
과거에는 가요의 맹주역할을 했다.
그만큼 컨트리는 국내 가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포크시대였다는 1970년대에도 통기타로 연주되었을 뿐
실은 포크보다도 컨트리 스타일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조영남이 불러 유명한 '내 고향 충청도',
윤항기의 '노래하는 곳에',서수남 하청일의 '서울 구경'은
모두 미국 컨트리 송을 번안해 부른 노래였다.
트위스트로 알려진 1961년 한명숙의 '노란 셔츠의 사나이'의 전주도
피들이 주도하는 컨트리음악 형식을 취하고 있을 정도다.
가요관계자들은
"포크는 단순한 가사의 나열로
멜로디가 부각되지 않는 반면
컨트리는 경쾌하고 낭만적인 선율패턴과 리듬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훨씬 한국인의 정서에 맞았다"고 설명하고있다.
[출처] country music의 어원|작성자 무무
블루스는 전통과 개인적 표현에 관한 것이다. 블루스의 핵심은 지금까지도 이전과 똑같이 남아있는데, 블루스가 시작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블루스의 특징은 간단한 -대개 3코드-진행, 그리고 끝없는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간단한 구조들이다. 즉흥연주는 서정적이며 음악적이다. 블루스는 아프리카 정서와 노동요에서 나왔다. 1800년대 후반, 남 아프리카-아메리카인들은 노래를 구전했고, 이 노래들은 아팔라치인들의 미국 포크-컨트리 음악과 결합했다. 각 분야에서 새로운 혼합물들이 각기의 분야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녹음된 블루스는 1900년대 초반이며, 간단한 시골 풍의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로 이전과 구분된다. 2차대전 이후에, 블루스는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어쿠스틱 기타의 전통을 갖고 있는 뮤지션들이 있었고, 다른 뮤지션들은 좀 더 재지한 영역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블루스맨들은 머디 워터스를 선봉으로 일렉기타를 연주했다. 이 시기부터, 블루스는 일렉기타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던가, 어쿠스틱 기타의 전통을 지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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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리 블루스라는 용어는, 처음 등장한 기타 위주의 블루스(솔로, 듀오나 현악 밴드 연주자가 있는 경우를 포함) 이후에 등장하는 모든 용어의 깊이와 너비를 포함한다. 이 용어는 또한 여러 지역적인 스타일과 변형을 대표해서 말하기에 편리한 용어다. (피에드몬트, 애틀란타, 멤피스, 텍사스, 어쿠스틱 시카고, 델타, 래그타임, 포크, 송스터 등) 이는 어쿠스틱 기타의 다수 주법들, 정교한 핑거피킹에서 초기 스라이드주법까지 다수 포함하는 주요 장르다. (하지만 독점적으로 컨트리 블루스에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닝홉킨스나 존 리 후커같은 몇몇 컨트리 블루스 연주자들은 나중에 일렉 기타로 바꾸며 급격한 변화나 스타일의 변화가 없었다
http://en.wikipedia.org/wiki/Country_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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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olkways.si.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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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hecountryblues.com/
http://www.bluesprofiles.com/
Traditional - http://www.worldca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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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I. 서언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corrido는 진정 의미있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즉, 문맹인들에게는 듣는 신문이 되어주었고, 매스미디어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겐 뉴스(소식통)가 되어주었다. Corrido는 당대의 사건에 대한 대중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행상인들은 희대의 사건들을 노래하며 시장에서 시장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전국을 떠돌았고, 이것이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기록되고 노래로 불리게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노래와 이야기로 전해진 사건들의 증인이었기도 했으며 그 담화에 짜임새와 흥미를 더욱 가미하기도 했다. 멕시코corrido는 거침없고 경쾌하다는 점에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로망스나 안달루시아 corrido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옛 corrido는 늘 로망스와 함께 하던 스페인인들이 멕시코 해안에 도착한 것과 관련이 깊으며, 스페인인들의 이러한 시(민요)와 노래들은 주로 정복된 땅에서의 삶을 다루는 내용이었고 이는 멕시코인들의 사고와 취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초기의 corrido는 전쟁 중 혹은 전쟁 직후에 생긴 연유로 구두로 전해져왔다. Corrido의 공연은 대략 10분정도 였으며, 공연이 끝나면 관중들은 대부분 수고료를 주지 않기 위해 흩어지듯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 때문에 역사를 이야기해주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의 수고료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인쇄하여 1센트에 팔기도 하였다. 종이에는 corrido의 내용과 함께 엉성하게나마 그림을 넣었다. 내용은 간단한 산문으로 쓰여졌는데 처음에는 화자에 따라 독자적이었으나 후에는 8음절 10행시나 8음절 4행시로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corrido 형태를 갖게 되었다.전반적으로, 지면에는 인쇄소의 주소는 기재되어있었으나 지은이의 이름은 기재되지 않았다. 이렇게 corrido를 보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멕시코의 전통을 계승 전파하며 비판, 충고해 주면서 교훈을 재확인하는 대중적인 표현이 된것이다.
현재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어 corrido의 인기는 상업적 판매에 있어서 두드러지고 있다. 음반사는 TV나 라디오를 비롯해서 corrido 작곡가 그리고 음악 그룹들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II. Corrido의 운율과 구성
Caterine Hav에 의하면 corrido는 모든 나라의 구술문화로 특징지어지는 설화체-음악 장르에 속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구체적이면서도 대범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뒷받침하고 소박하고 간결하게 늘어놓은 서사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로망스-corrido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20세기에 이르러 멕시코 서정시에 가장 중요한 장르로 바뀌며 더욱 확실하고 아름답고 여유롭게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Vicente Mendoza는 1800-1850년 사이에 8음절 4행시로된 민요가 무수히 작곡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corrido의 서술시나 서사시풍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풍자적이거나 탐색적 혹은 종교적 민요였다. 그리고 이는 마데리스따(Maderista) 혁명 전쟁시 사실상 독립적 형태를 갖고 발전하며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Mendoza, 1954: XIV-XV) 그러나 멕시코의 corrido는 단지 멕시코의 음악 문화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Corrido가 비록 글로 되어있지 않고 어떤 부분은 상상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이것은 문학이며 우리 국민적 정체성의 작용과 특성에 대한 내용이므로 얼버무려 버릴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corrido에서 우리의 역사와 관습은 물론, 우리 토착어의 관용구도 찾아 볼 수 있다.
Vicente T. Mendoza가 corrido에 대해서 corrido는 스페인 로망스에서 직접적으로 전승되었을뿐만 아니라, 우리 땅으로 옮겨 전해지면서 더욱 발전된 것이다?라고 말한것과 반대로 우리는 이것이 우리만의 목소리이자 메스띠조 문화의 한 장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연출 방식이나 그 내용 자체에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멕시코의 corrido는 서정시-서사시-설화체의 한 장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멕시코 혁명이 일어난 당시 발생된 커다란 사실들을 문맹인들에게 전해주는 유일한 원천지 역할을 하였다. 또한 corrido는 romance, ejemplo, maani_ tas, 역사, 추억, 비극, 시와 민요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분되었다. 이토록 형태는 음악 형식에서만 파생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내용을 다루었느냐에 의해서 구분되었던 것이다.
Corrido는 완전히 대중적인 장르이며 국민들의 감정을 나타내었다. 그 실례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관중들에게 역사를 노래해 주기 위에 허락을 요청.
노래를 부르기 전에 먼저 허락을 부탁합니다;
여러분, Benjamin Argumedo의 마냐나스 입니다.
(De Benjamin Argumedo, 발췌)
특정 정보를 사용하여 이야기의 진실성을 전한다.
6월14일
여러분, 귀 기울여 주세요.
과달라하라에서 아주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De la catastrofe de Oblatos, 발췌)
주인공에 대한 묘사
매우 예뻤던 Cuquita,
꺽고 싶은 한송이 장미와 같았고 줄기도 길어서 꺽기도 좋겠네.
매우 예뻤던 Cuquita,
천사같은 얼굴을 하고서 아무에게나 준다네, 식은죽 손으로 퍼주듯.
(De Cuca Mendoza, 발췌)
성모 마리아에게 하는 기도
나의 어머니 과달루뻬 성모여!
저를 지켜 주세요, 죽거나 이길때까지 무기를 들지 않게 해주세요.
(De Demetrio Juregui, 발췌)
도덕적 격언
소녀들이여, 너희에게 부탁 할 때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왜냐하면 Juanita Alvarado의 목숨이 위험해지니까요.
(De Juanita Alvarado, 발췌)
많은 경우 시로 시작되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작별부분
날아라, 비둘기야 날아라. 저는 여기서 물러납니다,
전쟁에 대한 기억이었으며 De Santurnino La Perra는 여기서 끝이 납니다.
(De Santuario La Perra, 발췌)
날아라, 비둘기야 날아라, 저 묘지로 날아가거라.
Micalita가 사랑하는 Simn과 함께 있는 곳으로.
(De Micaila, 발췌)
어느 말 한마리에 대해서
잘 생겼던 나의 말 가장 충실한 나의 친구였고 시원스런 빛줄기 같았던 아주 훌륭한 말이었다.
(El cantador)
농촌 문제에 대한 비평과 장난기
저 한 귀퉁이의 땅 느슨해진 소를 몰고 씨를 뿌렸다; 멍에 고리는 부러졌어도 소들은 그냥 걸어가네.
(El Barzon)
카우보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과 같은 일상 생활의 오락
북아메리카의 불모지에서 총구로 서로 맞섰다.
경찰과 도둑들 Tom Mix, Buck Jones, Bill Boyd, Tim McCoy.
(Dos horas de balazos)
남매간의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
그들은 남매임을 알지 못했네. 사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사랑을 나누는 남매는 없는 법
그것은 그의 운명이었고 운이었으니....
(La hija de nadie)
아버지의 저주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방금 네가 한 말 때문에 해가 뜨기 전에 너의 삶은 끊어질 것이다.
(El hijo desobediente )
Corrido는 1인칭이나 3인칭에 대해 이야기하며 거의 항상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목격자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담화자에 의해 유창하게 전개된다. 대화가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할 경우에는 로망스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인칭 :
내 상세히 말해주리다. 내게 일어났던 일들을 그들은 나를 잡아 감옥에 넣었다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오.
(De Cananea, 발췌)
대부분이 3인칭 :
그의 장군이 병영 문에서 그에게 말하기를 Macario, 너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 쓸모없는 여자 때문에.
(De Macario Romero, 발췌)
전반적으로 corrido는 4행으로 연을 구성한다. 음절은 매우 다양하여 스페인 로망스의 경우에는 5음절에서 20음절까지 있다. 그리고 연 수도 다양하다. "Toma de Zacatecas"의 corrido는 78연으로서 312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Jos Alfredo Jimnez의 백마의 corrido에서는 12음절로 이루어진 4행시를 볼 수 있다.
Es-te es -el co-rri-do -del -ca-ba-llo -blan-co, (12) que un -d-a -do-min-go -fe-liz -a-rran-ca-ra; (12) i-ba -con -la -mi-ra -de -lle-gar -al -nor-te, (12) ha-bien-do -sa-li-do -de Gua-da-la-ja-ra. (12)
Corrido의 문학적 형태는 항상 4행이나 6행 또는 8행 등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가장 흔한 것을 스페인 로망스처럼 8음절의 4행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Corrido 음악은 거의 장조로 이루어져 장난스러우면서 흥겹고 들떠있고 생동감 있어 끊임없이 흐르듯 노래한다.
비극적이고 열정적인 corrido는 멕시코인들의 남성우월주의, 공격성, 여성 경멸, 삶과 죽음에 대한 무관심 등 심적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Corrido는 여러 책에서 다루는 내용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구분되어지는데 그 중 한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역사에 관한 corrido 혁명에 관한 corrido Cristera 혁명에 관한 corrido 농민파 운동에 관한 corrido 정치에 관한 corrido 서정적 corrido 총살에 관한 corrido 용감한 혁명가에 관한 corrido 악당에 관한 corrido 감옥에 관한 corrido 학대, 암살에 관한 corrido 저주에 관한 corrido 불운에 관한corrido 열정적인 비극에 관한 corrido 사건과 참패에 관한 corrido 말에 관한 corrido 투우사에 관한 corrido 여러 도시에 관한 corrido
III. 꼬리도의 역사
멕시코의 corrido는 20세기 초 20년간에 걸쳐 절정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멕시코 국민들이 생각하는 혁명의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드러낸corrido에 의해 이뤄진 것이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corrido 자체, Francisco I. Madero, Emiliano Zapata, Pancho Villa, Venustiano Carranza, Catalino Maravillas, ( Benito Canales, Felipe ngeles 등이 있으며, 이를 비롯한 다른 혁명가들로는 Ignacio Bernal , Panfilo Natera , Lucio Vazquez 등이 있다. 또한 두드러진 사건의 내용은 모두 위에 열거한 인물들의 멕시코 혁명에 관한 것들이었다 : Los Combates de Celaya , la Toma de Zacatecas , Guerra Cristera (Plutarco Elias Calles와 Lazaro Cardenas를 대표로하여 기독교 신앙을 보존하려한 카톨릭 천주교 운동가들은 모임을 갖고 1917년 (De Tepatitlan a. y b.)에 만들어진 헌법을 지켜나아가던 운동), Cristeros와 농민파 (106), Dulces Nombres습격, 30년대의 corrido는 무장한 단체들의 사상과 입장을 알려나가는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또한,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이 시기에 corrido가 황금시대를 마지막으로 장식했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혁명가들의 말을 노래한 corrido가 있는데 그중에는 El Caballo Blanco, El Leguas, Caballo Alazan Lucero, La Yegua Colorada가 있었다. 또 다른 corrido는 전투를 노래한 것이었는데 : ( 쎌라야 전투, 사까떼까스 점령과 장군이나 용감한 군인들과 관계를 갖는 여자 ; 전투를 하는 군인들과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고 믿으며 그들의 corrido에 커다란 도움을 기대했으며 그 중에는 La Adelita, La Valentina, Modesta Ayala , La Guera Chabela 가 있다. 그들이 운반하던 기계에 대한 corrido가 있으며 (, 마을이나 멕시코 주에 대한 칭찬 , San Luis Potosi, corrido de Mazatlan , ¡Que lindo es Michoacan! 등이 있다.
1930년부터 70년대의 corrido는 꾸며지고 날조되어져 시원스러움과 독창성을 잃거나 성공하지 못한 혁명에 대한 것을 모방했으며, 정치인들과 조작된 애국투사들을 찬양하는데 쓰여졌다. 그리고 7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밀입국자 및 미국과의 국경지역의 마약밀매와 같은 범죄행위들을 주제로 하는 corrido가 형성되는데,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상황과 업적을 다루기도 하고 또 이민자들의 무덤, 또 다른 멕시코, 미국의 남부지역 주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마피아들의 위업을 다루기도 하였다. 여기서 마약밀매와 배신에 대한 corrido가 만들어지게 되며 그 중에는 빨간 차의 악당? (18-222), 밀매와 배신? (19-97)과 새로운 밀매? (21- )가 있다. 등장인물들은 항상 멕시코인들이나 치까노들로서, 법을 지키지 않으며 다른 corrido에서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이상적인 혁명가들이나 착한 도적들?을 제쳐놓는 인물들이다.
"Emilio Varela", "Camelia La Texana"? 또는 "Lino Quintana"?는 널리 알려진 허구의 밀매업자?들의 이름들로써 corrido의 새시대에 해당된다. 이러한 새로운 주제의 노래는 격언으로써 혹은 이야기로써 이 장르에 변화를 주었다. 현재의 corrido는 거의 대부분이 불법 마약 밀매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narcocorrido라고 부르게 되었다.
Narcocorrido는 옛날에 corridos de gavilleros를 현대적인 해석으로이 착한 밀매업자?를 다룬것이며 단, 현재의 등장 인물들은 불법 마약 거래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이렇게 밀수업자들과 그에 관련된 corrido가 영웅적인 혁명가들의 자리를 가로채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narcocorrido가 corrido에 포함되었을까? 어떻게 밀매업자들이 그들의 용기로 인해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일까? 끈질기고도 격렬한 개인사를 묵인해 주는 듯 그들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Narcocorrido가 범죄에 대한 표본임에도 불구하고 노래와 춤으로 사교모임에 등장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Narcorrido는 삶의 방식과 관습, 철학, 의상, 남자다움에 대한 열광 그리고 마약 밀매인들의 윤리를 노래한다. 또 화제가 되었던 노래 가사의 또 다른 것은 배신자, 무기, 짐을 실은 여행?에 대한 모험, 법에 대한 조롱, 카르텔이나 비즈니스와 공무원들의 연류 등에 있다.
나는 법에서 벗어나,
밀매업을 하는데,
나는 가난하게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며
게으르지도 않다.
나는 나의 운을 떠보고 싶었고
이미 그것을 입증해주었다.
이 곡은 의심할 여지 없이 마약 밀매업자들을 주제로하여 대중 음악과 민속 음악 사이에서 히트가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치카나 (멕시코계 미국인) 교민 사회에서 narcocorrido가 musica grupera(그룹음악)"와 "Tex-Mex"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Los Tigres del Norte (북쪽 호랑이)?라는 북부지역 음악 그룹에 의해 "마약밀매와 배신, 빨간차의 악당?과 같은 마약밀매자들에 관한 corrido가 탄생된 것임을 되새겨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