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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4.06.08 :: crossover thrash
카테고리 없음 2014. 6. 9. 14:59

미국의 그 무시무시한 무범지대 할렘가에서 힙합이 시작됐다면 부에노스 아이레스 인접지역에 위치한 역시 무범지대이며 빈민촌지역을 둘레로 태어난 빈민가들의 음악이 있었으니 그 장르를 cumbia villera 라고 부른다.


단어를 쪼개보면 cumbia 란 콜롬비아에서 나온 음악의 한 장르인데 이것을 아르헨티나화 한것이 <cumbia vilera>, villero 는 단어 그대로 ‘빈민’이란 뜻으로 지지리 못살고, 사회와 격리돼있고, 마약과 도둑의 소굴을 뜻한다. 즉, cumbia villera 란 ‘빈민들의 쿰비아 음악’ 이라고도 해석될수 있다.


거리에서 폐품을 줍는 넝마주의,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것을 찾는 아이들,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거지, 좀 도둑, 소매치기, 강도, 부랑자,일용직 노동자들 등 을 아르헨티나사람들은 통틀어서 villero (빈민가의 사람들) 라고 부른다. 이것은 "거지같다, 더럽다, 무식하다" 라는 의미도 포함되는 일종의 욕으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이 villero 라는 단어를 애써 감추기는 커녕 떳떳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jjjjj


http://en.wikipedia.org/wiki/Cumbia_villera

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4. 6. 9. 14:45

서글픈 바람의 노래, 안데스 음악

태양의 도시 마추픽추는 잉카 제국의 최후의 요새였으며,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있어 그 존재를 모르다가 1911년에 발견되었다.

남미 대륙의 서부를 종단하면서 북으로는 카리브해까지, 남쪽으로는 남극 바다와 닿아있는 안데스 산맥. 안데스 음악은 이 고원의 척박한 땅에 문명을 일구었던 인디오들의 음악이다.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이 안데스 국가에 속한다.

한 나라나 민족, 지역, 또는 하나의 문화가 지켜온 음악 전통이 담겨 있는 월드 뮤직의 대부분은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 그 정서적 특징이 만들어진다. 특히 다른 문화에게 정복당한 역사를 경험한 지역의 음악은 그 ‘한(恨)의 정서’로 인해 음악적 감동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신대륙 발견의 선봉에 섰던 스페인에게 찬란했던 잉카 문명을 정복당하고 고난의 역사를 살아야만 했던 인디오들의 슬픔이 짙게 배어있는 안데스 음악 역시 그중의 하나로 세계 음악팬들에게 감동을 전해왔다.

No.아티스트 & 연주 
1Los Incas / El Condor Pasa(콘도르가 나네) / Voyages Autour du Monde
2Los Chacos / Polonaise(폴로네이즈) / Flute Indienne
3Mercedes Sosa / Misa Criolla(미사 크리올라) 중 ‘Gloria’ / Misa Criolla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 유니버설 뮤직

안데스 음악 속에 담긴 잉카의 번영과 몰락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 지역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

‘하늘까지 이어지는 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안데스에는 잉카 문명 이전에도 수 천 년에 이르는 그들만의 역사가 있었다. 기원전 페루의 고지대에 이루어졌던 차빈(Chavin) 문명이나 기하학적인 그림의 신비로움으로 유명한 나스카(Nazca) 문명 등이 안데스 지역의 역사 속에 존재했으며, 잉카(Inca) 문명은 12세기 경 현재의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티티카카(Titicaca) 호수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데스의 험준한 고원 지대에 꽃피웠던 이 문명들은 다른 지역의 문명과 마찬가지로 제국과 도시를 건설하고 여러 가지 신화를 남기기도 했고, 그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민속 음악의 특징들이 안데스 음악의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안데스 음악의 배경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잉카 문명이다. 안데스 지역에 이루어진 마지막 원주민 문명이기도 하거니와,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안데스 음악의 근간을 바로 잉카 제국의 번영과 몰락의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잉카 문명이 이루어졌던 곳은 페루와 볼리비아, 그리고 에콰도르 정도이다. 잉카 제국의 옛 수도인 쿠스코(Cusco)는 인구가 이십만이 넘는 큰 도시였고, 15세기경부터는 본격적인 정복 사업을 시작해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북부 지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대제국을 건설했다.

‘잉카’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가파른 고원에 계단식 밭을 일구고 살았던 인디오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대지를 위대한 어머니로 여겨 파차마마(Pachamama)라는 대지의 여신을 섬기며 살았다. 안데스의 인디오들은 특정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음악은 가장 중요한 감성 표현의 도구였고,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중요한 기록의 수단이기도 했다. 원래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이어서 누구나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았다고 하며, 씨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공동경작을 했기에 음악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안데스 인디오들에게 음악은 그들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와 삶의 모습이 담긴 음악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픈 정서를 보듬게 된다.

영토의 확장과 함께 번성을 누리던 잉카 문명은 스페인으로부터 온 이방인에 의해 허무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스페인의 군인이자 남미 대륙 원정의 선봉에 있었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라는 인물은 이 지역에 황금이 가득하다는 말을 듣고 1532년 200여 명에 불과한 군대를 이끌고 ‘쿠스코’로 들어갔다. 당시 잉카 제국을 다스리던 왕은 아타왈파(Atahualpa)였다. 피사로의 계략과 인디오들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유럽의 무기는 근위병 수천 명을 순식간에 제압했고, 사로잡힌 아타왈파 왕은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을 피사로에게 몸값으로 주었지만 끝내 살해당하고 말았다. 스페인이 안데스 사람들의 영혼에 준 지울 수 없는 상처는 그렇게 어이없이 시작되었다.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 초상화.

스페인 군사들에게 붙잡히는 잉카제국의 아타왈파 왕

이어 정복자들은 꼭두각시 왕을 내세워 민심을 수습하려 했지만, 잉카의 혈통임을 자각한 그 왕은 안데스 깊숙이 도주해 스페인에 대항했다. 스페인의 횡포에 시달리던 많은 잉카인들이 힘을 모았지만, 물리적으로 스페인의 군대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결국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삭사이와망(Saqsaywaman)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수많은 잉카인의 피로 대지를 물들이며 ‘쿠스코’를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피사로가 황금을 찾아 잉카의 대지에 들어 온지 40년이 되는 1572년, 마지막 왕인 투팍 아마루(Tupac Amaru)가 처형당하면서 제국의 역사는 끝이 나고 말았다.

지금은 관광지가 된 삭사이와망. 과거 잉카인들은 이곳에서 스페인 군대에게 대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안데스 음악에 배어 있는 한 맺힌 슬픔은 이때부터 드리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오만과 야욕에 찬 스페인은 수많은 인디오들을 광산으로 몰았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데려온 흑인들까지 동원해 약탈해 간 금과 은, 그리고 천연자원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을 것이다. 볼리비아를 비롯한 일부 안데스 지역에는 강제 노동의 역사에 이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탄광의 노동자로 일하는 인디오들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며 미래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복자들은 또한 잉카의 후예들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종용했고, 문화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안데스 사람들의 영혼이나 다름없는 음악을 ‘악마의 음악’으로 규정하고 그 전통을 지우려 했다. 음악가들이 탄압을 받고, 페루의 한 지역에서는 모든 전통악기들을 수거해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노골적인 침략과 수탈로 이어지는 뼈아픈 역사를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인디오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들만이 지녔던 문화의 명맥을 유지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광산의 어두운 지하에 그들이 믿었던 토속 신앙의 신을 모셔두었고, 안데스 대자연의 정기가 담긴 음악 역시 잊지 않았다. 오히려 스페인으로부터 들어 온 서구의 음악어법을 자신들의 음악 속에 포용하고, 기타와 하프를 차랑고(charango)와 아르파(arpa)라는 악기로 개량해 안데스의 정서를 불어넣기도 했다.

안데스의 음악에는 정복당한 역사의 한이 서려있으면서 원래 이 땅의 주인이였던 인디오들의 꿈과 그리움이 담겨있다.

굴곡진 역사 탓에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안데스 음악들은 잉카 시대 음악의 원형과는 달리 서구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데스 고원의 바람소리를 닮은 전통악기들의 합주를 통해 피워 올리는 안데스 음악 고유의 향취 속에는 자연과 호흡하며 살았던 이 땅의 원래 주인인 인디오들의 질박한 감성이 분명히 담겨 있다. 또한 화려했던 잉카문명의 옛 영광을 반추하며 자신들이 겪었던 슬픈 역사를 한 서린 감성으로 표현하는 음악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서글픈 한을 쌓으며 살아남은 잉카인들의 음악은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이 출몰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 속에서 들풀처럼 일어서는 저항정신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음악의 대모, 메르세데스 소사앨범 정보 보기

라틴 아메리카 민속음악의 발굴에 평생을 바쳤던 아르헨티나의 아타왈파 유팡키(Atahualpa Yupanqui)와 칠레 민속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비올레타 파라(Violeta Para)의 음악 속에 안데스 인디오들의 숨결이 담겨 있었고, 노래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던 아르헨티나 음악의 대모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와 음악으로 잘못된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을 지녔던 칠레의 저항 시인 빅토르 하라(Victor Jara)의 음악 속에도 안데스의 음악 전통이 그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이들의 노래는 음악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던 누에바 칸씨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이라는 노래 운동으로 확산되며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기도 했다.

안데스 음악은 전통악기들의 선율과 깊은 울림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안데스 인디오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음악이다. 안데스 고원 대자연 속에서의 삶, 유럽 문화와 대면하며 겪었던 아픈 역사,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그들의 팍팍한 현실까지도.

로스 잉카스와 ‘El Condor Pasa’

팝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이 노래했던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는 세기의 팝 명곡 이전에 잉카 문명 몰락의 서글픈 전설이 담겨 있는 곡이다. 18세기 중엽 잉카의 마지막 왕이었던 투팍 아마루의 후손인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Jose Gabriel Condorcanqui)라는 인물은 자신의 이름을 ‘투팍 아마루 2세’로 바꾸고 스페인의 포악한 식민 통치에 대해 무력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스페인 군대에 붙잡혀 지독한 고문과 함께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El Condor Pasa’는 죽은 그가 안데스를 상징하는 새인 콘도르로 환생해 안데스 창공을 날아다니며 인디오들을 보호한다는 이야기가 바탕에 깔린 안데스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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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콘도르 파사의 주인공 투팍 아마루 2세 초상화. 그의 저항정신은 20세기 후반까지도 남아메리카의 해방 운동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인디오들에게는 투팍 아마루 2세가 콘도르 새로 환생하여 그들을 보호한다는 전설이 있다.

‘El Condor Pasa’는 ‘콘도르가 난다’라는 뜻의 제목이며, 인디오들 사이에 전해오던 원래 노래는 콘도르에게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갈망과 향수를 토로하는 노랫말을 지니고 있다. 아픈 역사를 보듬고 살아 온 인디오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이 곡은 1950년대 유럽에서 ‘로스 잉카스(Los Incas)’라는 안데스 음악 그룹에 의해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엘 콘도르 파사’를 팝의 명곡으로 만든 사이먼 앤 가펑클앨범 정보 보러가기

‘El Condor Pasa’를 연주하는 이들의 공연 무대에 감동을 받은 폴 사이먼이 그룹의 도움을 얻어 영어 가사를 붙인 곡으로 발표해 불후의 팝 명곡으로 남게 된 것이다. 주로 케나(quena)의 구슬픈 음색으로 연주되는 주선율과 후반부에 등장하는 빠른 템포의 변주를 담은 안데스 음악 그룹들의 연주는 Simon & Garfunkel의 노래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감흥과 함께 잉카인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더욱 날 선 아픔으로 느낄 수 있다. 안데스 음악의 전설로 회자되는 로스 잉카스는 19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안데스 지역 출신 뮤지션들로 결성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당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안데스 음악이 커다란 화두로 떠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멤버 전원이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로스 차코스(Los Chacos)’ 역시 그 영향으로 생긴 그룹이다. 이들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2번 B단조 BWV 1067] 중 제5곡 ‘Polonaise(폴로네이즈)’를 안데스 음악의 전통으로 연주하며 음악팬들에게 안데스 음악의 인상적인 면모를 각인시켰다.

볼리비아의 힘, 카르카스

원곡이 안데스 음악인 유명한 곡으로 ‘카오마의 람바다’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댄스곡이지만, 원곡은 ‘Llorando se Fue(울면서 그녀는 떠나갔네)’라는 제목의 안데스 명곡이다. 볼리비아의 세계적인 안데스 그룹 카르카스(K’jarkas)가 직접 만들어서 발표했던 곡으로 많은 안데스 그룹들이 리코딩을 남기고 있다.

한편 페루와 함께 잉카의 중심 지역이었던 볼리비아의 안데스 음악은 다른 안데스 국가의 음악들에 비해 뛰어난 연주력을 바탕으로 강렬한 색채감을 전한다. 카르카스를 비롯해 인티 라이미(Inti Raymi), 루미야흐타(Rumillajta), 하차 마이쿠(Jacha Mallku) 등의 그룹들이 특히 뛰어난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중 카르카스의 활약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다. 남미를 비롯한 미주 지역은 물론 유럽 전역과 이웃 일본에서도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안데스 그룹으로 손꼽히는 이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그들만의 개성으로 음악팬들을 사로잡았다. 전통악기들의 밀도 높은 합주와 풍성한 멜로디, 그리고 남성미 넘치는 시원스러운 보컬은 카르카스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견고한 바탕이 되었다. 대표곡인 ‘El Amor y la Libertad(사랑과 자유)’와 ‘Llorando Se Fue’ 는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일찍이 로스 잉카스가 유럽에 남미 민속음악에 대한 붐을 일으키며 안데스 음악을 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카르카스의 음악성은 로스 잉카스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 사실이다. 카르카스의 등장 이후 안데스 음악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이다.

안데스 인디오들의 말인 ‘케추아어’로 ‘힘’이라는 의미를 지닌 카르카스를 그룹명으로 한 이들은 71년, 곤살로 에르모사 곤살레스(Gonzalo Hermosa Gonzalez)를 중심으로 삼형제가 주축을 이루어 그룹을 시작했다. 92년과 2008년에 나머지 두 명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곤살로 에르모사의 아들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을 멤버로 충원해 가면서 40년을 뛰어넘는 음악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안데스의 전통 악기

처음에 안데스의 많은 악기들은 흙과 돌, 동물의 뼈,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또한 잉카 시대까지만 해도 관악기와 타악기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라나 고동으로 만든 나팔, 오카리나, 북 등과 함께 지금도 대표적인 악기로 사용되고 있는 관악기인 케나와 시쿠 정도였다. 현재 안데스 음악에 쓰이는 가장 대표적인 악기로는 케나(Quena)와 시쿠(Siku), 차랑고, 봄보 정도를 들 수 있으며, 여기에 기타나 하프를 개량한 아르파(Arpa) 등이 사용된다.

케나(Quena)

케나는 안데스의 피리로 많은 곡에서 주역을 맡고 있는 안데스를 대표하는 민족 악기다. 기원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악기로 현재는 목재가 주로 쓰이지만 오랜 옛날에는 동물이나 사람의 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안데스의 장례는 주로 풍장(風葬)이었는데, 에콰도르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뼈를 깎아 만든 케나를 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취주부가 U자 형태로 파여 있는 종적으로 앞면에 여섯 개, 뒷면에 한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우리나라의 단소나 일본의 사쿠하치와 비교할 만한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만든 사람에 따라, 또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그 소리가 다르게 표현된다고 한다. 주로 라마를 보살피는 목동들이 만들어 불었다고 전해지는 이 악기는 안데스의 가장 보편적인 악기로 사랑받았으며, 전통 의식과 축제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케나는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 다른 모양의 비슷한 악기로 사용되어 왔다. 쓸쓸하면서도 깊은 음색을 지닌 케나는 수 천 년 전부터 대자연과 호흡하며 살아 온 안데스 사람들의 소박한 정서와 애환을 구성진 선율에 담아내는 악기로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시인들과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루 전통복장 입고 케나를 연주하고 있다.

케나는 악기 입구가 U자로 파여있고, 앞쪽에 6개, 뒷면에 1개의 구멍이 있다.

시쿠(Siku)

시쿠 악기는 관의 윗부분을 불어 연주한다.

시쿠는 케나와 함께 안데스 음악에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관악기로 팬파이프형의 모양이다. 스페인어로 삼포냐(Zampoña)라고 불리기도 하며, 잉카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티티카카 호수 주변 지역에서 비롯된 악기이다. 케나보다 투박한 바람 소리가 더 많이 들어 있어 안데스 음악 속의 여러 소리들 가운데 특별한 매력을 전한다.

보통 7-8개에 이르는 여러 개의 관을 두 열로 겹쳐 만들고, 관의 머리를 불어서 연주한다. 역시 지역과 음역, 생김새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종류가 있다. 특히 저역을 연주하는 긴 길이의 시쿠는 겹쳐져 있는 한 쌍의 관 열을 두 개로 나누어 두 사람이 한 음씩 번갈아 연주하는 호켓방식으로 연주한다.

차랑고(Charango)

안데스 음악의 사운드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악기인 차랑고는 스페인에서 전해진 기타를 모방해서 만든 현악기다. 일반적으로 다섯 쌍의 현을 가지고 있으며, 현의 길이가 짧고 울림통의 두께가 얇아서 대단히 선명하고 찰랑거리는 음색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울림통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원래는 안데스에 서식하는 포유류인 아르마딜로(Armadillo)라는 동물의 가죽으로 울림통의 뒷부분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악기를 “노래하는 작은 동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케나와 시쿠 등 관악기가 없는 부분의 연주에서 안데스 음악임을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안데스 음악의 감초 같은 악기이다. 주로 리듬을 담당했던 악기지만, 새로운 연주 스타일이 생겨나면서 독주악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 차랑고는 잉카의 전통이 담긴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남미 곳곳의 포크 음악에서 다양하고 폭넓게 사용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영혼을 담아내는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노래하는 작은 동물’ 이라고 불리는 안데스 기타

차랑고는 기타를 모방하여 만들었지만 기타에 비해 사이즈가 작아 소리가 선명하고 찰랑거린다.

봄보(Bombo)

안테스 전통 타악기, 봄보

봄보는 안데스의 전통 타악기를 대표하는 오래된 북이다. 지름이 큰 편은 아니지만 키가 큰 악기여서 울림이 깊고 소리가 멀리 가는 악기이다. 안데스 지역에 서식하는 라마의 가죽을 씌워서 만들며 안데스 음악 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타악기로 손꼽힌다.

봄보 외에도 다양한 타악기들이 사용된다. 봄보보다 크기가 작은 티니아(Tinya)나 카하(Caja) 등의 북이 있고, 동물의 발톱을 연결해 흔들어 소리를 내는 차차스(Chachas)도 안데스의 여러 음악에서 사용되는 악기이다.

추천앨범

  • Voyages Autour du Monde
    아티스트
    Los Incas
    발매일
    2000

1963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로스 잉카스 전성기 시절의 앨범. 아픈 역사의 한이 담긴 명곡 ‘El Condor Pasa’를 힘 있는 합주와 질박한 감성으로 표현한 이들의 연주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안데스 지역의 다양한 양식을 지닌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 El Ultimo
    아티스트
    Los Incas
    발매일
    2002

2002년에 새롭게 녹음한 곡들과 이전의 음원들을 모아 발표한 앨범으로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해진 원숙한 연주력과 음악 이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여성 보컬과 첼로가 가세한 새 레코딩곡들이 긴 여운을 남긴다. Simon & Garfunkel이 ‘Mary was an only child’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던 페루의 민요 ‘El Eco(메아리)’는 앨범의 감동적인 백미다.

  • El Amor y el Libertad
    아티스트
    K'jarkas
    발매일
    1985

안데스 전통악기들의 고유한 음색을 밀도 높은 연주에 담은 카르카스의 중반기 걸작 앨범. 타이틀 곡 ‘El Amor y el Libertad(사랑과 자유)’를 비롯한 모든 수록곡들에서 안데스 대자연의 힘찬 기상과 카르카스만의 남성적인 매력을 만날 수 있다.

  • Inca Quena
    아티스트
    Inti Raymi
    발매일
    1996

매년 6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태양에게 감사를 드리는 잉카 전통의식인 인티 라이미를 그룹명으로 한 볼리비아 안데스 음악의 대표적인 그룹이다. 쓸쓸하면서도 깊은 음색의 케나 솔로 연주곡 ‘Llaqui Phuyo(슬픈 구름)’은 안데스의 고원, 그 대자연 속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의 외로움과 애환을 긴 여운이 남는 감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 Pilgrimage to the Andes
    아티스트
    Quimantu
    발매일
    2000

칠레의 안데스 그룹 키만투의 역작 앨범. ‘Misa de los Mineros(광부들을 위한 미사)’라는 제목에 ‘Plegaria del Pueblo(민중의 기도)’라는 부제가 붙은 총 일곱 곡으로 구성된 작품을 담고 있다. 눈 쌓인 산을 오르는 인디오들의 모습이 담긴 앨범 커버처럼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담긴 듯한 리듬과 바이올린의 애절한 선율이 진한 감동으로 다가 온다.




http://en.wikipedia.org/wiki/Andean_music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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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9. 14:04

꿈비아(Cumbia)


꿈비아(Cumbia)는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지역에서 유래된 음악 스타일이고,

전통적인 꿈비아 음악과 춤은 콜롬비아의 상징이다.

 

 

꿈비아는 아프리카 노예 사이에서 시작됐으며, 유럽의 악기와 음악 형식을 받아들여 혼합해 현재의 형태를 띄게 됐고, 꿈비아는 1980년대까지 중남미 지역에서 살사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으며, 기본 박자는 4/4이다.


 

중남미 라틴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함께 가장 중요한 국가가 콜롬비아다.
콜롬비아에선 
쿰비아, 바예나토, 포로스, 야네라, 안데스 음악,
아프로-콜롬비안 등 여러 음악이 발생했지만, 
역시 쿰비아와 바예나토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삼바와 비슷한 시기에 발생된 쿰비아는
중남미 라틴음악의 커다란 뿌리를 이루고 있다. 
라틴 팝 가수 리키 마틴의 음악에서도 
쿰비아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쿰비아는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전통타악기 리듬과
유럽인들의 멜로디, 
그리고 
인디오음악이 혼합돼 완벽하게 재탄생된 음악이다.
초기의 쿰비아는 보컬과 퍼커션으로만 구성돼 있었지만,
트럼펫과 트롬본, 색소폰 같은 관악기와 키보드 등 
여러 현대악기들이 보태어져 대편성으로 발전한다. 
특이한 점은
인디오들이 서양악기를 자신들에게 맞게 개조해 거친 소리를 내는 
`플라우토 데 미요'란 클라리넷과,
`가이타'란 날카롭고 높은 소리를 내는 피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1940년대 들어 쿰비아는 
콜롬비아 도시중산층과 상류층의 대중적인 댄스 음악이 되었고, 
이 시기에 클라리넷 연주자 루초 베르무데스(1912-1994)에 의해서 쿰비아는 
미국의 빅 밴드재즈음악과 쿠바의 맘보가 혼합된 음악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도시중산층을 위한 세련된 음악을 만들다보니
단순하고 부드러운 쿰비아의 원형이 파괴된 리듬을 만들어 냈다. 

70년대 접어들어 쿰비아는 
살사리듬과 합쳐져 다시 한번 새롭게 변모했다. 
이 때의 쿰비아는 초기에 들을 수 있던 전통적인 엇박자 리듬 대신에 
리드미컬한 피아노 반주를 반복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쿰비아와 살사의 혼합은 호에 아로요 같은 뮤지션에 의해 보다 대중화됐다.
쿰비아의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여가수 토토 라 몸포시나가 꼽힌다. 
그는 자신의 밴드를 구성해서 쿰비아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MIX GRANDES CUMBIAS DEL PERU 2013 DJ EL CUERVO - CORAZON 

 

 

 

 

 

 

Amazing Cumbia Dance by Rosie & Israel Coronado

 

 

 

 

 

 

 

 Line Dance -Cumbia Semana ( July 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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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음악 <인디오 음악>

(Inti Illimani)

안데스음악 잉카의 후예인 인디오들의 음악
안데스산맥은 페루, 볼리비아, 에쿠아도르, 칠레, 콜롬비아 남부,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까지 광대한 지역에 뻗어 있다. 
17세기 초 스페인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의 서부해안에 도착했을 때, 고도로 발달된 잉카 문명을 만났다. 그들은 또 안데스산맥을 따라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전통 음악을 발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엔 잉카음악의 전통악기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더욱이 잉카문명은 제대로 된 그들만의 문자가 없었기에 그 추측조차 힘든 형편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악기가 변천됐고, 그러면서 잊혀진 전통악기도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안데스음악의 중심엔 팬파이프가 있고, 스페인의 영향으로 어쿠스틱기타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안데스음악인들 특히, 거리의 뮤지션은 대다수가 시각장애인이며, 또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이다. 그래서 공연을 할 때면 노래마다 자리를 바꿔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점은 축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축제에선 아마추어, 전문음악인 구분없이 서로 다른 노래를 자신 있고 우렁차게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음악소리가 작아지면서, 어디선가 한 명이 특정한 노래를 연주하면 모든 사람이 따라 한다. 그렇지만 연주인마다 조성도 다르고 템포도 제각각이다. 재미있는 건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모든 연주인은 같은 템포와 조성을 맞추어 나가면서, 흡사 잘 연습된 관현악단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낸다. 

안데스음악이 세계화된 건 '치차'음악이 발전하면서부터였다. 60년대초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나타난 치차는 안데스 산 속의 전통음악인 '우아이노', 콜롬비아의 '쿰비아', 그리고 록음악이 결합된, 일렉트릭 기타를 앞세운 편성이었다. 치차는 안데스지역의 가장 서민적인 술이다. 바꿔 생각하면 치차는 술의 기능을 넘어선, 이곳 사람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치차 음악 또한, 안데스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안식처이다. 치차 음악의 명칭은 치차 음악의 첫번째 히트곡인 '치체라(치차 파는 사람)'에서 나왔다. 
Una Ramos-El Condor Pasa(우나 라모스-엘 꼰도르 빠사)

안데스음악을 생각할 때 아무래도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노래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철새는 날아가고)>다. 안데스음악의 곱고 섬세한 원형을 담은 이 노래는 마치, 고대 잉카제국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듯한 애잔함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는 인더스 잉카음악들은 예전에 386세대들에 굼베이 댄스나 로스잉카스의 엘콘도르 파사(철새는 날아가고-사이먼엔 가펑클이 리메이크했던곡.), 우루밤바에 의해 연주되는 곡들 최근에는 독일에서 결성된 뉴에이지밴드 쿠스코라는 그룹의 음악 정도가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라틴음악중에서 칠레의 잉카문명에서 파생된 인디오 음악의 계승자 3인방의 Inti Illimani(인띠이이마니-이이마니산의 태양) /Quilapayun(뀔라빠윤-수염 기른 세 남자) / Illapu(야뿌-천둥)이라는 그룹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nti illimani - Sambalando(인띠이이마니그룹-삼발란도)
방금 소개했던 인띠이이마니라는 그룹은 께추아어로 '이이마니山의 태양'이란 뜻을 지니고있는데 칠레의 대학생들로 결성하여 군부독재시절 고국을 떠나 주로 이태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15년간 전세계를 돌며 음악, 민속, 시와 이데올로기를 결합하여 칠레의 부활을 위한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앨범 중에는 오랜 동안 그들의 음악을 존경해 오던 클래식 기타리스트 '존 윌리암스'가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라틴 음악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그룹입니다.
다음에 소개할 뀔라빠윤 역시 이러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망명해서 활동한 그룹입니다.

음악적 특징
세 그룹 모두 안데스 악기를 새노래 운동에 접목시켜 독특한 음향효과를 내었고, 때때로 다른 지역의 악기와 결합하여 새로운 음악을 실험하였다는 점에서, 실험정신이 강한 인디헤니스따(indigenista) 음악가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1960년대 후반의 "새노래 운동"(Nueva Cancion)라는 음악운동을 통해 독재 권력과 암울한 시대에 대항하는 음악을 합니다.

quilapayun - Vamos mujer(뀔라빠윤- 바모스 무헤르)
칠레 새노래 운동의 제2 세대에서 가장 정치화된 노래를 부른 그룹을 들라면 단연 낄라빠윤을 들 수 있다. 낄라빠윤(Quilapayun)은 마뿌체어로 "세 명의 털보"란 뜻이다. 이들은 모두 공청(Juventud Comunista) 출신의 대학생들로 196?년에 그룹을 결성했다. 철학교수인 에두아르도 까라스꼬가 예술감독을 맡아 많은 곡을 작곡했고, 오늘날까지도 이들의 음악활동을 지도한다. 검은 색의 와이셔츠, 바지, 뽄초(노동자 의상)를 입은 이 그룹은 당시 중간계급을 대상으로 음악을 연주하던 그룹들이 상용하던 솜브레로는 착용하지 않는 등 의상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검은 색조는 바로 저항과 침착함을 상징한다고 함.

인띠나 야뿌처럼 안데스 민속음악(와이노, 야라비 등)을 복원하고 재해석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지만, 다른 그룹과 확연히 구별되는 차이점은 정치적 노래(cancion politica)를 많이 불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이 부른 정치적 노래의 내용은 주로 민중의 투쟁사를 담은 역사적 기억에 대한 것이 많기 때문에, 팜플렛/선전 음악으로서도 그 깊이를 잃지 않고 있다. 이들의 노래들이 과도하게 정치화되었다고 해도 그 생명이 짧지 않은 것은, 그것이 주로 집단의 역사적 기억을 회복하여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칠레'(Chile real y historico)를 그리는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에바칸치온이라는 운동
라틴음악을 이해하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되는데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운동에 가담한 예술인들의 노래운동인 '새노래 운동'(Nueva Cancion)의 가장 대표적인 음악인은 아르헨티나의 유빤끼 그리고 빅토르 하라(Victor Jarra) 비올레따 빠라(Violeta Parra)인데 민속적 전통을 살리면서 음악을 통해 군부독재에 항거하던 음악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나중에 쿠바의 신음유시 운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무튼 이들 세그룹의 음악은 인디오의 5음계/ 2박자 계통의 안데스 음악에 하모니와 3~6박자의 유럽 음악의 영향을 받은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일반적인 음악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서정과 민중의 삶에 대한 애환 그리고 사회비판을 뛰어넘어 체제변혁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로서, 그것은 zamba(삼바), vidala(비달라), huayno(와이뇨) 등의 민속적 리듬에 실어 부르고 있습니다.

illapu -Vuelvo para vivir(야뿌-부엘보 빠라 비비르),
야뿌는 께추아어로 "번개불"이란 뜻이다. 번개불은 메소아메리카 인디오들이 태양과 달 다음으로 숭배하는 신이다. 야뿌 그룹은 1971년에 칠레 북부도시 안또파가스따에서 마르께스 형제들이 중심이 되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13세부터 20세 사이의 고등학생 내지 대학 초년생들로 결성된 이 그룹의 음악은 어떤 평론가가 평한 것처럼 "용암의 분출"(erupcion volcanica)처럼 자연스럽고, 수월하면서도, 힘차다(Padilla 1985b: 55). 1973년에 첫 음반을 낸 야뿌는 무엇보다. 북부 도시 안또파가스따 출신답게 당시 중부와 남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안데스 민속음악을 산띠아고로, 칠레 전역으로 전파하는데 최대의 공을 세웠다고 말할 있다. 이들은 산띠아고에서 안데스 음악을 '도시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연주하는 사람들과 달리 아주 오래 전부터 익숙한 음악처럼 다룬다.

께냐, 삼뽀냐, 차랑고, 봄보 등 30여종의 악기를 연주하는 이 그룹의 연주에서 우리는 인띠와 마찬가지로 현란한 악기연주와 음역을 넘나드는 노래 솜씨로 새노래 운동의 절정을 보는 듯하다. 이들이 연주하는 기악곡을 들으면 우리는 안데스 산중의 한 자락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De sueno y esperanza). 누가 듣더라도 야뿌의 음악은 낄라빠윤이나 인띠-이이마니보다 기악연주나, 화성적 기교 면에서 한 단계 위로 친다.

이들은 1973년 이후 좁아진 문화적 공간에서도 계속 열심히 노래를 불렀고 1975-77년에 새음반을 내면서 칠레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악그룹으로 부상하였다. 그리하여 각종 페스티발이나 텔레비젼, 라디오에 초대를 받아 음악활동을 확대해나가자 곧 군정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 탄압을 받게 된다. 일체의 매체활동을 금지당한 후 야뿌는 노조, 학교, 노동자 거주지, 카톨릭 교회(연대사목회), 실종자 가족 모임, 인권단체 모임 등에서 노래를 부르며 군정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며 민주화 운동을 측면지원하였다. 야뿌의 음악은 이제 군정에 반대하는 사람을 모으는 은밀한 상징의 구심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군정은 탄압도 보다 노골적으로 변해 갔다. 

1978년 유럽 공연에서 호평을 받은 뒤 야뿌 그룹은 1980년에 다시 1년간 세계 공연을 다니나 1981년 군정이 귀국을 거부함으로써 타의로 망명객의 신분이 된다. 이들은 파리를 거쳐 멕시코에 정착하였는데 1988년 귀국할 때까지 7년간 해외에서 음악 활동을 하였다.

야뿌 그룹 역시 유럽과 멕시코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음악적 지평을 크게 넓혔다. 이들은 안데스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아프로페루아노(afroperuano) 음악, 베네수엘라 음악, 영국의 팝 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표현의 자원을 다양화하였다. 그러나 그들 고유의 음색을 잃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 


SISAY-Achakachi(시사이-아차카치)
SISAY는 남아메리카 잉카문명의 후손들로서 안데스의 음악과 문화를 소개하고자 세계적으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그룹이다. SISAY는 1984년 에콰도르에서 오타발로(Otavalo)의 젊은이들로 결성되었다. 북아메리카 및 유럽 각지에서 순회공연을 한 후 1994년도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에서 연주활동을 시작했으며, 한국과 싱가포르에서는 1998년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 외에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행사와 콘서트 등 여러 형태의 공연을 통해서 안데스 민속음악을 많이 알리고 있는 그룹이다. 현재 대부분의 안데스 폴크로레 뮤지션들이 대중성 확보라는 문제로 인해 많든 적든 자신들의 음악에 퓨전을 담고 있음에도, 시사이는 에콰도르 특유의 강렬한 리듬인 산후아니토에 기반한 안데스의 전통 음악을 강인하게 고수하면서 조상들의 애환과 안데스인의 긍지를 들려 주고 있다. 'SISAY'라는 말은 에콰도르 인디오들의 언어인 케츄아어로 'Spiritual Blossom'(꽃이 피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Los Chacos - Polonaise(로스 차꼬스-폴로네이즈)

                      안데스의 악기  께나 (QUENA)   
산 속의 밤   께나가 깊은 향수에 젖어 우네 길은 알고 있으리 인디오의 피리를 부는 아가씨의 이름을·생애 내내 눈을 뜨고 귀를 곧추 세운 방랑자였던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음유 시인 아따우알빠 유빵끼(Atahualpa Yupanqui)가 1929년에 쓴 처녀작 「인디오의 오솔길(Camino Del Indio).의 한 구절이다.
유빵끼가 노래했듯이 안데스의 고산 지대에 살고 있는 인디오들은 그들의 피리인 께나의 쓸쓸하면서도 깊은 음색에 하루하루의 애환을 담아 왔다. 대자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적인 외로움을, 또 칠흑처럼 검은 눈동자에 별의 신비함을 담고 있는 아가씨들을 향한 사랑을‥‥‥‥ 
예전에 인간이 풀과 돌, 물, 별과 함께 내면 깊숙이 하나가 되었던 과거의 추억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이 소박하면서도 티 없이 맑고 고운 소리는 마치 인간성의 고향으로부터 들려오는 노래처럼, 뭍에서 벌어지는 현대 생활의 아귀다툼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께나가 서구인들의 귀에 첫 음들을 속삭여 준 것은 1956년 호르헤 밀치버그를 리더로 한 폴끌로레 그룹 로스 잉까스(Los Incas)가 파리에 나타났을 때였다. 그들의 음악은 온통 경이로움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이 파리에 처음으로 소개한 악기들은 께나, 씨꾸, 차랑고, 삔꾸요, 봄보등 서구인들이 처음듣는 신비스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었다. 서구의 음악 애호가들은 로스 잉까스에 의해 새로운 각도의 눈을 떴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로스 잉까스의 성공은 안데스의 악기로 바흐나 모짜르트를 연주하는 프랑스인들만의 그룹 로스 차꼬스(Los Chacos)를 뒤따르게 했고, 1972년에는 로스 잉까스 자체에서도 리더 호르헤 밀치버그가 독립하여 우루밤바(Urubamba)라는 새로운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피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관악기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피리는 대나무, 갈대, 진흙, 동물의 뼈, 도자기, 때로는 황금으로도 만들고 심지어 께나처림 사람의 뼈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다. 신대륙발견 이전에 안데스의 인디오들은 사람이나 꼰도르의 뼈로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던 한 청년이 연인의 무덤에서 정강이뼈를 찾아 그것으로 께나를 만들어 불면서 슬픔을 달랬다는 것이다.
 피리는 어느문화권에서나 신비한 힘을 소유한 악기로 여겨져 왔다. 『삼국유사』에는 피리를 연주하니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폭풍과 물결이 잠잠해졌다는 만파식적의 설화가 전해 온다. 피리 소리로 마을의 쥐를 쫓고 결국에는 아이들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다는 독일 하멜린의 전설 '하멜린의 피리부는사나이' 도 피리에 얽힌 영력을 잘 말해 준다.
 이슬람의 전통에 의하면 피리는 '신이 창조한 첫 번째의 것' 이다. 피리는 인간의 복제품으로 둘은 모두 가슴에 상처를 입고 인연으로 둘러싸여 있다. 둘은 모두 속이 비어 있고 메말라 있다. 그들은 모두 상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없다. 피리는 노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즉 연주자의 입술에서만이 생을 되찾을 수 있을 뿐이다. 피리가 갖는 보편성은 이렇듯이 온갖 신화와 전설을 통해 더욱 확실해지는 것이다.
  안데스의 피리 께나는 까냐라고 불리는 갈대의 일종으로 만드는 가로 피리로, 취주부분은 U 자형태로 파여 있다. 그 음색은 일본의 사쿠하찌나 우리나라의 단소와 흡사하지만 애수를 머금은 소박한 멜로디와 풍부한 표현력을 갖추고 있어서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시인들과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해 왔다.
                                    씨꾸 SICU
  안데스의 아이마라 부족은 음악의 정령이 물 속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풍요를 주는 대지, 곧 위대한 어머니인 빠차마마에게 코카잎과 술을 바치는 성스런 예식을 치르기 전날 밤에 악사들은 께나며 씨꾸 같은 악기들을 물가에 놓아 두어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듣고  악기가 대지의 어머니에게 바칠 음악을 배우도록 한다.
씨꾸는 안데스의 인디오들이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팬파이프로 안데스 일대에는 관의 수나 배열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그 명칭도 다양하다.
씨꾸는 아이마라어이며 께추아어로는 안따라(Antara), 에스파냐어로는 론다도르(Rondadrdor) 또는 쌈뽀냐 라고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씨꾸는 보통 두 명의 연주자에 의해 연주되는데 음반의 경우 스테레오 음향이 아니라면 두 명의 연주자가 연주한다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다. 따라서 음악적 변화가 두 악기 사이에서 완벽하다고 할수 있다.
                                     에르께 ERKE
 갈대로 만든 긴 피리로 때로는 6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유럽의 알프스 일대에서 널리 사용되는 알프호른(Alphorn)을 닮았다.
                                    삔꾸요 PINKULLO
께나와 비슷한 음색을 가진 갈대로 만든 가로 피리로, 구멍이 3개인 에콰도르 삔꾸요로부터 구멍이 7개인 칠레와 아르헨티나 삔꾸요까지, 길이가 30cm인 것 에서부터 50cm에 이르는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칠레와 볼리비아에는 삔꾸요와 흡사한 따르까(Tarka)라는 가로 피리가 있는데 갈대가 아닌 석류나무나 오렌지나무 등 나무를 도려내서 만든다. 관의 내벽이 갈대처럼 매끄럽지 않아서인지 음색은 약간 탁하고 소박한 소리를 낸다 
                                   봄보 BOMBO
 안데스 일대에서 널리 사용되는 큰 북으로 지름이 50~60cm로 큰 편은 아니지만높이가 높아 울림이 깊다. 이 북의 표면은 라마가죽 혹은 염소가죽으로 덮여 있으며 그 소리의 풍부함은 북표면의 가운데나 가장자리 혹은 테두리 등에서 두드리는 소리의 조합에서 나온다. 까하(Caja)라고 불리는 소형 북도 있다.
                                  아르빠 ARPA
에스파냐어로 하프를 의미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아르빠는 영어로는 '인디언 하프 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것은 인디오 고유의 악기는 아니고 유럽의 하프를 받아들인 것이다. 멕시코, 베네수엘라등 각국에 폭 넓게 분포한다. 그 중에서도 파라과이에서는 1801년경에 개량되고 주법이 확립되어 이 나라의 대표적인 민속 악기가 되었다.
아르빠는 클래식 하프와는 달리 페달이 붙어 있지 않으며 현의 수는36~40현 정도로, 그 음색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크기가 작은 아르빠는 아르삔(Arpin)이라고도 불린다 
                                 차랑고 CHARANGO
 안데스 전역에서 발견되는 가장 인디오적인 기타이다. 차랑고의 공명통은 아마존 유역에서 서식하는 갑각류의 일종인 아르마딜로의 등껍질로 만드는데, 이것을 물에 적시고 햇빛에 말려 기타모양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말하자면 유럽의 기타가 인디오에 의해 토속적으로 변형된 셈이다.
보통 복현 5쌍의 금속현(현재는나일론줄을 많이 쓴다. )을 갖고 있다. 공명통에 아르마딜로의 털이 그대로 붙어 있어 보기에 좀 흉하지만 야취(野趣)가 풍부한, 밝고 경쾌하면서도 사랑스런 소리를 낸다. 안데스의 음악가들은 차랑고를 사용해서 잘디잔 리듬을 만들며 춤곡 와이뇨나 까르나발리또 등을 연주한다.
때때로 나무로 만든 것도 있으며 공명통이 화려하고 멋진 인디오의 토속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예술적인 가치도 높다.

 

 

안데스산맥을 여행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안데스음악의 정서적 교감이 다가오는듯하다, 또는 일종의 데자부(어디서 본듯한 형상을 데자부현상)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이제 순수 안데스 원주민은 멸족된 상태다. 잉카의 후예는 혼혈인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피의 순수함보다 영혼의 순수함으로 그들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안데스인들이 존재한다. 비록 문자도 없이 구전으로 전수 받은 민요들이지만 전 세계 어느 지역보다 독창적이고 영원히 이어나갈 값진 인류의 자산인 것이다

[출처] 안데스 음악|작성자 시아







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4. 6. 9. 10:14

칠레의 춤, 꾸에까(Cueca)

 

꾸에까란?

 

꾸에까(Cueca)는 칠레의 대표적인 민속춤이자 음악으로, 수탉이 암탉을 쫓아다니며 구애하고, 암탉은 그 구애를 받아들이는 것을 형상화한 커플 춤이다. 남녀가 다 흰 손수건을 들고 추며, 공식적인 경우에는 남녀가 우아소1)-치나 복장을 갖춰 입는다. 매년 9월 18일과 19일, 칠레의 가장 큰 국경일인 ‘애국 축제’(Las Fiestas Patrias)를 전후로 해서 칠레 전역에 꾸에까 리듬이 지겨울 만큼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걸 들을 수 있다.

꾸에까는 칠레 전역에서 향유되는 춤이지만 칠레 중부 지역의 꾸에까가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칠레의 영토는 엄청나게 긴데 흔히 바예 센뜨랄(Valle Central)이라고 불리는 중부 지방에 스페인 문화의 이식이 가장 안정적으로 일어났고, 농업을 바탕으로 한 칠레의 민속 문화가 수 세기동안 균질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칠레 남부로 가면 칠로에 섬의 ‘꾸에까 칠로따’(Cueca Chilota: 칠로에 꾸에까)가 특징적이며, 북부에는 꾸에까 노르띠나(Cueca nortina: 북부 꾸에까)가 있다. 북부의 경우 칠레가 페루·볼리비아와 치른 태평양 전쟁 이후 칠레 영토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칠레 문화와 영토로서의 연속성이 떨어지며 아이마라 등 안데스 원주민 문화의 영향이 강해서 중부 지방의 전형적인 꾸에까와 차별된다.

춤의 기원

스페인 어권 아메리카의 모든 나라들의 민속은 원주민 문화의 바탕에 스페인 문화와 언어, 춤이 강하게 이식되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칠레의 꾸에까에는 좀 더 직접적인 기원이 있는데, 그것은 페루의 사마꾸에까(Zamacueca)라는 춤이다. 페루의 사마꾸에까는 페루 부왕령2) 시기, 리마에 살던 집시들과 흑인(혹은 물라또3))사이의 음악적·문화적 혼혈에서 나온 것으로, 그 기원은 16세기에서 17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페루의 사마꾸에까가 19세기 초 칠레에 소개되어 사마꾸에까 칠레나(Zamacueca chilena)로 불리다 그 이름이 꾸에까로 줄여졌고, 춤도, 음악도 점점 칠레화되어 갔다. 부왕령이었던 페루에는 흑인 노예들이 많이 유입되어 흑인의 춤과 리듬이 사마꾸에까를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지만, 흑인 인구가 미미하고 칠레 문화 형성에 거의 기여하지 않은 칠레에서는 사마꾸에까에 담긴 흑인 문화의 특징이 시간을 두고 거의 지워졌다.

문화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하는 것임을 사마꾸에까의 다양한 버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사마꾸에까를 기원으로 한 칠레의 꾸에까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로 소개되어 변형·토착화되었고, 이후 페루로 역수출되어 페루에서 칠레나(Chilena)로 알려졌다. 태평양 전쟁 이후 칠레에 영토를 뺏긴 페루는 칠레나라는 이름을 페루 해군을 기념해서 마리네라(Marinera)로 바꿨다. 페루의 사마꾸에까가 원형이 되어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도 꾸에까가 존재하게 되었지만, 칠레만큼 꾸에까가 살아남아서 진화를 거듭해가고, 국가의 공식 춤으로 지정될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된 나라는 없다.

전통 꾸에까

지역적 구분 외에, 현재 시점에서 꾸에까는 전통 꾸에까(혹은 농촌 꾸에까)와 도시 꾸에까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950년대부터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이라는 맥락속에서 도시의 변두리, 선술집, 사창가를 중심으로 ‘도시 꾸에까’(Cueca Urbana)로 진화해나갔기 때문이다.

19세기에 형성된 꾸에까는 대체로 농촌에 정착해서 농촌의 춤과 음악으로 굳어져갔다. 농촌에서 토착화되며 발전해간 이 꾸에까를 전통 꾸에까라고 하며, 기타, 하프, 까혼4), 빤데로5) 등의 악기를 사용해서 연주한다.

1920년대 경 꾸에까는 칠레 상류층들에 의해 살롱으로 진출한다. 칠레 상류층은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전형적인 상징들을 찾았으며, 도시의 성장과 사회 갈등이 붉어지는 현상 앞에서 우아소를 등장시키고, 시골에서의 삶을 이상화했다. 그때 꾸에까는 살롱 춤에 걸맞게 되기 위해서 좀 더 우아해지고, 정제되어갔다. SP레코드에 녹음되며 3분을 채우기 위해 도입과 소개부가 첨가되면서 ‘전통 꾸에까’의 모습이 확립되었다. 당시 꾸에까를 부르고 녹음한 가수들은 Dúo Rey-Silva, Los Hermanos Campos, Fiesta Linda, Silvia Infantas y los Cóndores 등이 있다.

하지만 상류층에 의한 시골 문화의 이상화는 농촌 민속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1927년 ‘로스 꽈뜨로스 우아소스’(Los Cuatro Huasos: 네 명의 우아소)같은 남성 중창 그룹이 결성되어, 칠레의 문화 대사로서 칠레 ‘전통 음악’을 외국에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도시 출신에 상류층 출신이었던 멤버들은 칠레의 농촌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나 연구를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전통을 소재로 가져와서 스타일화된 민요풍의 곡들을 불렀고, 노래 가사 역시 칠레의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하는 등 실제 농촌 생활이나 정서와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1950년대에 농촌의 삶과 민속에 깊숙이 들어가서 민요를 채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창작한 비올레따 빠라의 음악과 비교해보면 그들의 음악은 사실 칠레 민요라고 말하기도 무색할 정도이다. 어쨌든 이 그룹은 우아소라는 인물을 전형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고, 현재도 축제나 쇼 등에서 보여지기 위한 꾸에까에는 전형적인 복장을 한 우아소-치나 커플이 춤을 춘다.

꾸에까의 진화: 도시 꾸에까의 출현

1950년대에 도시의 변두리에서 도시 주변부의 삶과 정서를 담은 ‘도시 꾸에까’(Cueca urbana)가 생겨난다. 특히 수도 산티아고와 항구 도시 발빠라이소의 유흥가, 사창가, 뒷골목이 중심이 되었다. 사실 도시 꾸에까는 1930년대부터 그 움직임이 있었지만, 주류 문화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풍기문란이라는 이유로 도시 꾸에까를 연주하는 음악인들은 경찰의 단속을 받을 정도였다.

도시 꾸에까의 대표자로서는 로베르또 빠라 (Roberto Parra: 1921-1995)와 ‘로스 칠레네로스’(Los chileneros) 그룹이 있다. 도시 꾸에까는 이 두 대표 아티스트들이 각각 유포시킨 이름을 따서 꾸에까 초라(Cueca Chora), 꾸에까 브라바(Cueca Brava) 등으로 불리지만 이는 동일한 것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도시 꾸에까는 꾸에까의 변형으로서 존재하며 음반, 라디오로 유포되던 농촌풍의 꾸에까를 대체하지는 못했지만, 주목을 받을 때든 그렇지 않을 때든 도시 대중 문화의 상수로서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도시 꾸에까의 경우 피아노, 빤데로아코디언, 기타, 베이스, 심벌즈, 드럼, 색소폰, 전자 기타 등의 악기가 사용되며, 가사는 전원적인 테마와는 완전히 거리가 멀고 범죄, 뒷골목 인생 등을 적나라하게 다루며, 시장, 사창가, 감옥, 길거리 등에서 불려졌다. 가사는 제도권 바깥의 거친 삶을 한없이 비극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유머와 악동 기질을 담고 있다.

연극 <라 네그라 에스떼르>와 도시 꾸에까의 재조명

로베르또 빠라는 빠라 형제 중 한 명으로(칠레의 시인 니까노르 빠라, 음악가 비올레따 빠라의 동생이다) 60년대와 70년대 초에 일련의 도시 꾸에까 음반을 냈다. 70년도에 조카 앙헬 빠라와 같이 만든 음반 <로베르또 삼촌의 꾸에까(Las Cuecas del Tío Roberto)>로 로베르또 빠라 식 도시 꾸에까는 ‘꾸에까 초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70년대에 락 음악 등 다른 대중 음악에 가려서 사라지는 듯 했던 도시 꾸에까는 88년 연극 <라 네그라 에스떼르(La negra Ester)>’의 성공으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로베르또 빠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시집 《네그라 에스테르의 데시마스(Las décimas de la Negra Ester)》가 연극의 원작이 되었으며, 이 시집은 그가 산 안토니오 항구의 술집에서 알게 된 에스테르라는 창녀와 나눈 사랑 이야기를 칠레 전통 민속 시 형식 10연시, 즉 데시마(Décima) 형식으로 쓴 것이었다. 시집은 80년도에 출간되었으며, 이를 88년에 극단 Gran Circo Teatro가 안드레스 뻬레스(Andrés Pérez) 감독의 연출로 연극으로 옮겼다. 이 연극의 성공으로 평생 술에 빠져 도시의 뒷골목에서 무명 악사나 다름없이 살아가던 로베르또 빠라는 일순간 칠레의 도시 폴크로레(folklore)의 상징으로 떠올랐으며, 그가 평생 가꾸어 온 음악 꾸에까 초라, 재즈 과차까(Jazz Guachaca)는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다. <라 네그라 에스떼르>의 명성 이후 로베르또 빠라는 93년부터 젊은 예술가들과 다양한 작업을 했으나, 95년 암으로 사망했다.

<라 네그라 에스테르>가 성공한 뒤 도시 꾸에까에 대한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이 늘어났고, 특히 인기있는 칠레의 락 그룹 로스 뜨레스(Los Tres)는 1996년 언플러그드 음반에서 로베르또 빠라의 곡 세 개를 부르고, 98년 만든 음반 <Peineta>에서 그의 꾸에까 곡들을 연주함으로써 새로운 젊은 세대가 꾸에까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음악가인 마리오 로하스는 1999년 로스 칠레네로스의 멤버인 나노 누녜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나노 누녜스의 꾸에까 브라바(La cueca brava del Nano Núñez)>를 만들었고, 이러한 재조명 이후 로스 칠레네로스는 68년에 마지막 음반을 낸 뒤 33년이 지난 2001년, 라이브 음반을 내기도 했다.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꾸에까 그룹 Los Santiaguinos, Los Paleteados del Puerto, Los Afuerinos, Las Capitalinas, Los Tricolores 등도 새로이 등장했다.

79년 군부는 꾸에까를 칠레의 공식 춤으로 선포했지만, 군부의 이러한 행위는 꾸에까의 가장 진부하고 보수적인 전통으로서의 의미만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식 행사에서 추는 전형적인 꾸에까는 사실 몇 곡 이상 듣고 보게 되면 조금 지겨워진다. 공식 영역으로부터의 인정보다는 꾸에까는 농촌 문화 속에서 살아있는 꾸에까는 채록한 비올레따 빠라와 도시의 뒷골목에서 도시 꾸에까를 가꿔나간 로베르또 빠라의 존재, 그리고 새로운 세대들이 전통을 질료로 그것을 새로이 해석해나가고 다른 장르의 음악과 섞는 실험을 지속하는 가운데 생명력을 얻어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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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아소(huaso)는 칠레 중부 지방의 전형적인 남성 인물형으로, 말을 타고 농장과 가축을 돌보는 존재이며 뽄초를 입고, 신발에는 화려한 박차를 달고 있다. 춤의 짝이 되는 여자는 치나(china)라고 하는데, 께추아 어에서 기원한 단어로 신에게 봉사하는 여자란 뜻을 지니고 있다. 우아소의 화려한 옷차림에 비해서 수수한 원피스에 앞치마까지 두르고 있는 치나는 대조적이다.

2) 스페인이 아메리카의 식민지를 통치하던 단위. 스페인에 왕국이 있고, 아메리카 대륙을 네 개의 부왕령으로 나누어서 통치했다.

3) 흑인과 백인 혼혈.

4) 속이 텅 빈 나무 상자 타악기. 가톨릭 교회에서 흑인 노예들이 북을 치는 것과 북 자체를 금지해버리자 얼마 후 대안으로 만들어진 악기로, 19세기 페루에서 기원했다. 

5) 탬버린 보다 조금 큰, 아랍 기원의 악기.

kllllllllll



ㅏㅏㅏㅏ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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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9. 10:03


Cuarteto  꽈르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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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entinian merengue music, originating in the city of Cordoba, and influenced also by Spanish and Italian styles


 아르헨티나 메렝구  음악  , 음악은 코르도바 주의 도시로부터 유래되었다 

<아르헨티나 제2의 도시이며, 아르헨티나 중부 코르도바 주의 주도>

또한 스페인 , 이탈리안 음악 스타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꽈르테도 앙상블의 뿌리는 이탈리안 그리고 스페인 댄스 앙상블들이다

<① <함께>라는 뜻으로서, 두 사람 이상의 중창 또는 중주를 말한다. 성악에서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의 합창부(附) 또는 합창이 없는 3, 4, 5중창 등을 말한다. 기악에서는 현악기, 관악기, 피아노의 여러 가지 결합에 의한 중주를 말한다.

② 관용어로서는 「앙상블이 좋다(나쁘다)」는 식으로, 연주의 밸런스나 통일성을 말한다.

>

꽈르테도라고 지어진 이유는 


초기의     <사교 댄스 정용 홀로 사교의 장> 댄스홀은 언제나 

four-piece band <4조각으로 이루어진 밴드>

violin-piano-accordion-bass    였기 때문에 




꽈르테도는 거의 항상 낙관적이고 , rhythm range < 리듬과 음역> 이 Dominican merengue. 도미니카 메렝구와 비슷하다 


1970년에 꽈르테도는 코르도바의 문화적 정체성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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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렝게 (merengue)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춤들 중 라틴댄스를 다른 춤들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자 특징이 바로 허리와 골반의 움직임입니다. 

우리나라의 춤들은 주로 손동작이나 어깨를 으쓱거림이 기본입니다. 

그래서 처음 라틴댄스를 접하는 한국사람들은 이 골반의 움직임을 

잡지 못해 상당히 애를 먹기도 하는거죠. 


처음 라틴댄스를 접하는 분들에게 제일 힘든 것이 바로 이 움직임을 

배우는 것이고 이 움직임만 완성이 되면 바로 라틴댄스의 맛이 납니다. 

그렇다면 메렝게라는 춤은 어떤 춤일까요? 

그 기원에 대해서 나와있는 자료들을 아직 찾아보지는 못했으나 

제가 귀동냥을 한 바로는 카리브해의 작은 국가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떤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온 한 장군을 위한 댄스파티가 있었는데 

그 장군은 그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다쳐 절둑거렸고 그 이유로 해서 

그 파티에서 그 장군은 제대로 춤을 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이 장군이 흥겨운 음악에 다리를 절둑거리는 춤을 추자 그를 위해서 

혹은 그의 동작이 기본이 되어 만들어진 춤이 메렝게라고 합니다. 

즉 약간 다리를 절둑거리는 것처럼 추는 것이 메렝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허리와 골반의 움직임이 덧붙여져서 지금의 메렝게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메렝게 음악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가수들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윌프리도 바르가스와 후안 루이스 게르라 입니다. 최근에는 엘비스 끄레스뽀라는 

가수가 가장 유명합니다. 이들의 음악이 메렝게의 가장 기본이니 한 번쯔음 

들어들 보심도 좋을 것 같네요. 

메렝게에서의 허리와 골반의 움직임이 완성된 사람들은 살사와 룸바 

혹은 차차차 등 라틴댄스를 멋있게 출 수 있는 기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메렝게의 기본스텝이 완성이 되면 여러동작들을 만들어서 한곡을 춤으로 

춰봐야겠죠? 메렝게를 추는데 있어서 필요한 몇가지 동작들입니다. 


Merengue 기본동작 

1. shoulder to shoulder 

어깨를 서로 엇갈려서 2번하고 나서 세번째에 왼손어깨를 위로 올린후 

뒤로돌면서 여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낸후 남자 회전 

2. hip to hip 

여자를 왼손으로 감은후 오른쪽으로 가서 hip을 맞대고 좌우로 흔들기 

여기서 주의점은 남자가 스텝을 여자뒤편에 있을때 살짝 며느리도 모르게 

맞춰주는점입니다 

3. swing ( 3회 ) 

여자를 왼손으로 감은후 오른손으로 살짝 당겨주며 여자를 반대 편으로 

보내는데 이것을 2회 한후 세번째에 왼손으로 여자의 왼쪽어깨를 살짝 

밀어주고 다시 맞잡기로 돌아옵니다 

4. cross hands and put the right hand on the back 

맞잡기로 돌아오면서 여자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서 손을 바꾸면 됩니다 

손을 바꾼후 남자가 왼손을 위로 들고 오른손은 돌면서 본인 허리에 두고 

돌아서 여자를 돌리면 됩니다 

5. put the hands on the neck 

손이 엇갈려 있는상태로 남자가 자세를 살짝 낮추면서 여자두손을 모두 

목에 걸면서 남자두손으로 여자의 어깨부분부터 살짝 터치하는 식으로 

맞잡기로 돌아오면 됩니다 

6. Last swing and turn by turn 

3번 동작중에서 마지막 스윙을 한 후 여자가 나가는 탄력으로 남자회전 및 

여자 회전 ( 이때 반드시 서로의 위치를 바꿔줌 ) 

7. Cross hands and put the hands on behind necks 

왼손은 위로 오른손은 밑으로 하면서 여자를 시계방향으로 90도 정도 

회전시킨 후 오른손은 여자 허리에 대고 왼손은 남자목뒤에, 여자목뒤에 

교대로 한 후 왼손은 아래로 오른손은 위로 올리면서 여자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린후 목 뒤에 교대로 올려놓는다. 

8. Send the partner right and left 

손을 계속 엇 잡은 상태에서 상대를 좌우로 보내기 

9. Turn by turn 

손을 계속 엇 잡은 상태로 남자와 여자가 교대로 회전 4회전정도 반복한 후 

여자의 손을 남자의 목에 놓은 후 기본자세로 돌아감 단, 항상 상대가 

회전을 한후 본인 회전에 들어가고 남자의 중심이 중요 

10. Put the right hand of a parterner and make a turn 

기본자세에서 앞쪽으로 서너걸음정도 간 다음 손을 펴고 뒤로, 앞으로 

한 상태로 회전하면서 여자의 오른손을 등 뒤로 보내면서 여자를 회전시키고 

다시 반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면서 남자는 손을 오른손에서 왼손 다시 

오른손으로 잡는다 


메렝게의 장점 : 배우기 쉽다 
재미있다 
흥겹다 
자세교정가능 
군살빠짐 


메렝게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춤입니다 . 배우기 쉽고 음악이 흥겹다는 

장점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세게 전역에 결쳐 유행하고 있는 

음악이자 춤입니다. 현재 이러한 메렝게 음악은 ROCK 등의 다른 음악적요소와 

결합되기 시작하여 더욱 빠르고 흥겨운 음악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 

따라서 흔히 나이트 클럽에서 나오는거의 모든 음악에 이러한 메렝게 동작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정도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메렝게는 라틴 특유의 

골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메렝게를 처음배우는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것이 골반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 


먼저 사람들은 걷는 것처럼 무릎을 이용하여 혹은 좌우 허리를 이용하여 

메렝게를 시작합니다 ,.무릎을 이용하게 되면 어깨는 움직여지지 않지만 

골반이 움직여지지 않으므로 참으로 밋밋한 춤을 추게 됩니다 . 

허리를 사용하게 되면 어깨가 동시에 움직여지므로 오뚜기 처럼 춤을 춥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느낌이 별로 없더라도 무릎을 사용하여 메렝게를 시작하세요 , 

허리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다음에는 골반움직이는 법을 따로 배워서 골반움직이는 메렝게를 추게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골반 움직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 몸으로 

이해하면 쉬운데 이해하기전 까지는 어려운 것이 춤입니다. 

골반 움직이는 법을 배워서 골반 움직이는 메렝게를 추게된다음에는 

골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여 상체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체는 절대적으로 좌우로 움직여지고 골반도 좌우로 움직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체가 앞뒤로 움직여져서는 아니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무용하는 사람들 처럼 춤을 추게 됩니다 . 왜 냐 하면 아랫배를 

당기고 척추를 바로 하고 골반을 움직여야 상체가 움직여지고 춤을 추고 

난 후에도 몸을 상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 추게 되는 것이 약간 뜀뛰는 동작을 하면서 메렝게를 추게되지요. 

정말 에너지 소모량이 엄청나지요. 만일 여자분들중에서 살빼고 싶다면 약간 

뜀뛰는 듯이 메렝게를 추어보세요 , 잘 빠집니다. 

이러한 단계를 걸쳐 메렝게를 배우게되면 , 세계 어느곳에 간다 하더라도 

외국인과 더불어 춤을 못추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

http://www.kuarteto.com/la-mona-jimenez/musica/


http://www.cmtv.com.ar/biografia/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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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9. 00:06

항가리의 전통무곡 차르다쉬

 

체코 사람들의 험담을 빌리면 프라하를 좀 키워서 지저분하게 만들면 부다페스트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스트로 항가리 2중왕국 시절 오스트리아와 대등한 위치를 가졌던 헝가리인들에게 합스부르크 제국의 여러 속령 중 하나에 불과한 보헤미아와 프라하는 눈 아래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항가리는 민족적 자부심도 대단하지만 자부심에 걸맞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특히 민속음악과 무용에서 헝가리는 중부유럽의 보물창고입니다민속무용을 고등학교 정규 커리큘럼에 넣은 나라는 헝가리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비엔나에 월츠가 있고 프라하에 폴카가 있다면헝가리에는 차르다쉬(Csárdás)가 있습니다듣기에 생소한 말이지만 브람스의 헝가리무곡(21)을 들어본 분들은 차르다쉬가 무엇인지 금방 개념이 잡힐 것입니다.

 

옥스퍼드 컴패년 투 뮤직에 차르다쉬는 “19세기 헝가리 볼룸댄스


<사교춤’이라는 뜻이다. 사교적인 즐거움을 위해 2명 내지 그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추는 춤을 말한다. 왈츠(waltz), 탱고(tango), 차차차(cha cha cha) 등을 비롯해 블루스(blues), 부기우기(boogie woogie), 트위스트(twist) 등도 볼룸댄스이다.>

로서주점(csárda)에서 행해지던 시골무곡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185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특히 유행했다고 적혀있습니다.

 

메랑콜릭한 느린 템포와 폭발하는 듯한 격정의 템포 사이를 번갈아 오가는 것이 차르다쉬의 특징입니다.

 

리스트도 19개 헝가리 광시곡에서 차르다쉬 형식을 많이 사용했습니다유명한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의 맨 끝 부분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는 바로 차르다쉬의 리듬을 다른 것입니다.

 

주점에서 음악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주로 집시들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집시음악과 헝가리 민속음악의 자연스러운 접합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집시 음악인들의 바이얼린 다루는 솜씨는 그야말로 神技의 경지입니다.

 

이런 차르다쉬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린 작품 중 하나가 이탈리아 작곡가 Vittorio Monti가 작곡한 차르다쉬입니다이 곡은 지금도 모든 집시 악단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집시 바이얼린의 고수들이 모여 만든 부다페스트 집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이 곡을 들어보세요.

http://youtu.be/yqvsBA9UKjI

 

 

브람스가 피아노를 위하여 편곡한 헝가리 무곡은 당시 신흥 부르좌지 계층의 피아노 구입 붐에 힘입어 악보가 매우 잘 팔려서 브람스는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것이 5번인데이 곡은 민요를 채보한 것이 아니라 슬로바키아 출신 작곡가 Béla Kéler(1820-1882)의 차르다스 작품 “Bartfeld의 추억”(op.31)을 표절한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그러나Kéler도 이 곡을 민요에서 채보한 것일 수 있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6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영화 여로”(율 브린너데보라 카 주연)에도 전형적인 헝가리 주점에서 집시악단이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연주로 들어보세요.

http://youtu.be/6Z0gYhRkR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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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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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미국의 아마존( http://www.amazon.com )

9.프랑스의 아마존( http://www.amazon.fr ) 
http://www.hottracks.co.kr 

http://www.artsjournal.com/music.shtml



클래식음악은 

일반 듣기 , 녹음 


라디오 녹음은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는다  
 .


http://www.ebu.ch 
http://dic.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kdic&sm=tab_nmr&query=broadcasting+union&site=&ie=utf8
http://dir.naver.com/News/Organizations/ .

http://en.wikipedia.org/w/index.php?title=Special%3ASearch&search=List+of+radio+station

super internet tv 
http://www.topradiofree.com/
d http://www.streamingthe.net
http://radios-stations.com 
http://listenonline24.com/ 
http://onlineradio2.com/listen/CBS_Radio_2_981 
accuradio.com 


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4. 6. 8. 19:54

Crust punk
Stylistic originsAnarcho-punkextreme metal,[1] hardcore punk,[1] d-beat[2]
Cultural originsMid 1980s, England
Typical instrumentsElectric guitarbassdrums,vocals
Derivative formsGrindcore


Crust punk는 (crustie라고 부르기도 한다.) Hardcore punk의 과격한 진화


이다. 신중히 생각하고 신중히 듯고, anarcho-punk와 grindcore를 빠르게


 하기에 같이 생겨나고, 때론 생기 없는 나른한 멜로디로 표현된다. 이는


 stenchcore를 기초로 한다. 비록 다른 형식일찌라도 crust는 anarcho-


punk, grindcore, thrashcore, d-beat와 일맥상통한다. 노래에 드러나는 가


사의 표현은 무식하게 어둡고, 주변을 근거로한 정치/사회문제를 바탕으


로하여 현재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감정과 정치/사회문제의 해결-파괴-


환경보호문제-인간 평등-딱딱한 정서의 반기-대외적으로 큰 문제-


sexism에 대한 대항-동물의 권리를 이야기 한다.


 veganism/vegetarianism, 그리고 anarchism도 공통된다. crust는 punk의


 극을 행해왔다. 또한 punk중에서도 적은수임을 인식할수있다. crust 


anarcho-punk 를 찾아보면 대명사로 불리우는 Profane Existence


, Mortarhate Records, Havoc Records, & Life is Abuse Records 등이 있다


. 그중에서도 crust band 'Amebix '는 갓파더 정도라 해두자. 이러한것을


 행하는 punk를 crustie라 부른다.



crust bands 소개-
Abraham Cross 
Against Empire 
Amebix 
Anarchoi 
Another Oppressive System 
Anti Cimex 
Antiproduct 
Antischism (later Initial State & .Fuckingcom) 
Antisect 
Antisystem 
Argue Damnation 
Atrocious Madness 
Axegrinder 
Axiom 
Battle of Disarm 
Behead The Prophet, No Lord Shall Live 
Black Kronstadt 
Blownapart Bastards 
Born/Dead 
Boycot 
Caveat Emptor 
Crocodile Skink 
Death Valley Meth Lab 
Defector 
Destroy 
Detestation 
The Detested 
Detrimental Greed 
Deviated Instinct

Discharge 
Disrupt 
Doom 
Dropdead 
Dystopia 
Extinction of Mankind 
Extreme Noise Terror 
Fleas and Lice 
Filth 
Filth of Mankind 
Gloom 
Grimple 
Hellkrusher 
Hellshock 
Hiatus 
Hibernation 
His Hero is Gone 
Holokaust 
Homomilitia 
Human Greed 
Human Waste 
Initial Detonation 
Jobbykrust 
Lightning War 
Masskontroll 
Misery 
Nausea 
Power of Idea 
React 
Remains of the Day 
Resist and Exist 
Room101 
Sacrilege 
scum noise 
Severed Head of State 
Skitsystem 
State of Fear 
Thin The Herd 
Tragedy 
The Skuds 
Warcollapse 
World Burns to Death 
Zero Hour 

[출처] 크러스트 펑크|작성자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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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크러스트 펑크는 1980년대 초기 영국의 아나코 펑크 운동에서 발전했다. 그 운동의 가운데에서는 Amebix와 Antisect라는 두밴드를 찾을수 있고, 각각 Arise LP와 Out From The Void Single 이 두앨범을 기초해 발전하였다. 크러스트 펑크는 그때 존재하였던 펑크장르들과 익스트림 메탈사운드와 융합되고, 초기 피스 펑크밴드들의 초점에 맞춰 이동해나갔다. 낙천적인 것과는 가깝지 않았고, Crass같은 밴드들의 이상적인 가사였으며, 크러스트 펑크는 음산하며, 비관/염세적인 가사와 종종 핵전쟁의 여파로 황량해진 그 이후에대해 두려워하는듯한 가사를 썼다. 크러스트 펑크 전형적인 요소들은 발전하는 피스 펑크 운동 속에서 보여져왔다. 크러스트 펑크는 Icons Of Filth의 아트웍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아 끌어내졌고, 많은 가사의 방향들은 Discharge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크러스트 펑크 속에서는 대결하는 듯한 남/녀 보컬을 비롯해 몇 보컬이 오랫동안 부르는 것과같은 특징을 가지고있는데 그것은 아나코 펑크속에서 찾을수있다. Amebix의 느리고 질척한 사운드와 많은 펑크들의 주구장창 달리는 스래쉬 스타일의 속도가 배제되면서 음악적 기초가 창조되었다. 하지만, Extreme Noise Terror는 크러스트 펑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들은 많은 밴드들이 빨리 연주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Hellbastard의 1986년 Ripper Crust 데모로부터 크러스트의 기원이 새로운 턴을 맞이했다. 이 하위장르의 시점까지는 "Stenchcore"라고 널리 알려졌다. 거의 틀림없이, 미국 뉴욕의 Nausea로부터 많은 크러스트 펑크 밴드들은 영향을 받았다. Disrupt는 처음으로 Grindcore 사운드와 함께 크러스트 펑크의 도화선이 된 밴드이며(팬들든 그것을 "Crustgrind"라고 불렀다) 최근 몇년간 유행처럼 성장하고 있다. 

 삶의 형태와 패션 


크러스트 펑크는 Amebix나 Antisect가 이끈 라이프 스타일과 거의 함께 시작되었고, 그후에 다른 여러 크러스트펑쓰들의 영향을 받아왔다. 이러한 밴드들은 그들의 많은 알콜과 마약 소비량을 알고있었다. 이것은 크러스트 펑크 라이프스타일의 한부분이며, 넓은 의미의 펑크와 아나키스트 운동으로부터 큰 비판중 하나가 되었다. 크러스트 펑크는 그들의 사회와 일반적인 삶에 심각한 정치적 전망을 알고있었다. 버림받은 빌딩들 속에서 많은 스퀏들이 이루어졌고, 정규직을 찾지 않았다. 이것은 Murray Bookchin이 "아나키즘적인 삶의 형태"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하다고 할수 있다. 혹시, 위생인식이 부족하게 사는 방식이 고정관념적인것들과 수치스러운것의 한면이라 생각 하였다면, 많은 크러스트 펑크들은 겉으로만 목욕하는 것과 몸단장 하는것을 피했을것이다. 많은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다른 다른 곳의 머리칼, 털등을 면도하길 피한다.(아마도 남자에 대해서인듯...) 드레드락 머리스타일 또한 보편적이다. 그것들은 행동을 포함하는 것을 위한 몇몇의 상태가 이유이지만, 한계는 없고, 성의 단면을 사회적으로 규정지어 용인하는 것을 경멸한다. 많은 사람의 위생 제품에서 독소와 화학적으로 자유롭게 남길 바라며, 샴푸나 바디워시 같은 것들중 기업의 상품을 사길 거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숙박시설을 벗어나 스쿼터의 삶의 형태로 간단하게 살길 바란다. 이 믿음들은 반드시 사회 생태학과 환경 여성주의를 밑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과 무척 가까운 것이다. 많은 크러스트 펑크들은 아나코펑크의 쌔까만 색의 밀리터리 옷들을 채용했다. 그들의 일반적인 옷들은 위장용으로 좋기는 물론, 중고옷들임을 알수있다. 그들은 미래를 보아 DIY윤리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 종종 다른 기업들의 옷을 사길 거절하며, 실크스크린 프린팅으로 팻치를 만들고, 재봉된 옷을 재봉하는 곳으로부터 찾아내며, 정확히 말하자면 펑크 커뮤니티의 다른 멤버로부터 사기도 하거나 그들의 로컬 커뮤니티와 '작은' 소비협동조합/기업으로부터 사기도 한다. 많은 크러스트 펑크들은 어떤 밴드들을 포함하여, 패치들을 직접 재봉하며, 옷에 붙이는 것을 위해 치과용 실을 사용한다. 자연히 대마로 만들어진 쥬얼리 같은 것들을 가끔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은 Disorder Punk 밴드가 살았던 극단적인 삶이였으며, Amebix와 함께 막지막을 멋지게 나누었다. 크러스트 펑크를 묘사하는 음악을 절대 연주하지는 않았다지만, 크러스트 펑크로서 살아야할 것을 매번 숙고하고 있었다. 


 이데올로기

 아나코 펑크의 메인 기고글을 봐라. 크러스트 펑크의 이데올로기(거나 혹은 좀더명확하게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말하자면)는 아나코 펑크 이데올로기에서의 좀더 과격한 버젼이다. 크러스트 펑크는 아나키즘의 삶으로서 완벽히 사는 것을 시도했고, 아나키스트 스쿼터 커뮤니티들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사회속에서 완벽하게 사는 부분을 피하려 노력했다. 크러스트 펑크는 그들의 가사에서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관해 가장 잘 볼수있다. 공통적으로 포함하는 테마는: 아나키즘, 압박반대, 유동적인 이벤트, 재정적/감정적 의기소침, 환경주의, 인종차별반대, 스쿼팅, 불복종, 여성주의를 따랐고, 성차별폐지, 동물권리, 완전채식주의/부분적채식주의, 종교적 통제, 핵제거들이 공통된 테마였다. 비록 이것들이 공통된 것들일지라도,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믿거나 그들을 따라하지 않는 것이었다. 크러스트 펑크는 (Peace Punk와 함께하기전에, 그러나 혹시라도 넓은 의미에서)모던 아나키즘과 함께 하는 방향쪽으로 사회적현상의 하나중 창조적인 것을 할수 있었다. 크러스트 펑크는 그들의 Anarcho Punk의 선봉에서보다 한층 더 종교적인 교전에 반대했다. 많은 크러스트 펑크들은 무신론자이며, "신도 없고, 주인도 없다"라는 구호를 이상으로 삼아 영향 받았다.(이 아나키스트들의 슬로건은 Amebix에 의해 대중적이 되었다.) 어찌됐건, 어떤 크러스트들은 이교도 영성으로 정당하게 자연과 지구에 접촉하는 걸 채용했다. 그리고, 환경, 북미인들의 자연영성과 크러스트 펑크들의 문화속에서 공통적으로 더 어울렸다. 여행자/뉴에이지 운동은 상당한 영향을 모던 크러스트 펑크 운동에서 받았다. 히피 반문화 또한 아나코펑크를 통해서 지나 대중적으로 영향받아 발표된것이다. 



DIY 윤리


 DIY 윤리 크러스트 펑크 밴드는 DIY윤리를 알고 가져오게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너 스스로 해라"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레코딩과 유통적 구조를피하는것 길로, "공테잎과 자기주소를 봉투에담는것"과 같은 것이 더 자주 교환이 될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아나코 펑크와 크러스트 펑크 운동은 펑크 커뮤니티 안의 뉴스 유포, 아이디어, 펑크 커뮤니티의 아트웍들을 위한 잡지 네트워크(흔히 팬진이라고 말한다.)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그것들은 엄청나게 'DIY' 일거리였고, 1000개보다 오히려 100개의 생산들(많은 경우들에서), 사진복사기거나 복사기에서 출력하고, 공연이나 모임에서 손으로 나눠주곤 한다. 


펑크 문화


 DIY 윤리는 펑크 이데올로기와 반소비주의를 느슨하게 묶어 주었는데, 이것은 항상 다른사람에게 하나하나 구매해야한다는 생각을 거부한것이다. DIY 펑크 윤리는 다른 그룹이나 개인이 DIY 정치에 서서 매일의 생활을 특별하게하고 그들이 시설에 기부하는 것을 피하고 착취되어가는것 같은것을 봐왔기 때문에 확산될수 잇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차가 바이오디젤연료나, 채소에서 얻은 기름으로 달리게하고, 자전거수리와 옷 재봉/수선/수정하도록 하는 것, 정원을 만드는것, 쓰레기통 뒤지기(재활용을 위해), 기타등등을 변화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다. 어느정도, DIY는 간단한 문제를 간단히 풀기위한 특별하게 쉬운길이다. 만약 그렇지않으면 재산이나 기업을 지원하는 것과 함께 보편적으로 풀어야했다.


 인터넷에서 


기술은 최근 10년간 예술가가 프로페셔널 스튜디오를 거치지않고, 창조적이며 높은 질의 작업을 그들 스스로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을 더 가능하게 하도록 나아갔다. 미디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빠른 인터넷의 확산은 모든 연령대의 예술가에게 주어졌고, 그들의 필름, 레코드를 스스로 만들수 있도록 하거나 컨텐트, 유통을 더 쉽게 할수 있도록 기회를 주며 나아갔다. 이러한 작업은 대개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는데, 입소문을 통하거나 체인레터(스팸메일)를 통해 인기를 얻어갔다.(우리는 바이러스가 담긴 이메일 유통을 알고있다.) Newgrounds와 Deviant Art같은 사이트는 유저들이 그들의 예술을 포스팅하는 것을 허락했고, 커뮤니티로 비평을 받고 있다. 새로운 세대들의 사이트는 Slip a Buck같은 함께하는 공동체 예술 사이트인데, Deviant Art, Punkrockdomestics등이 섞인 듯했다. 그리고, DIY Punk 윤리는 DIY를 하는 사람들 그들의 작업을 스스로 전시를 할수 있도록 장소를 대준다. 인터넷 또한 DIY 커뮤니티를 이용했으며, 이벤트 프로모션을 위한 도구가 되고 있다. diyconvention.com이나 seattlediy.com에서 그러한것들을 볼수있다. 


 하위장르 


초기 크러스트 펑크는 Deviated Instint의 "Terminal Filth Stenchcore" 데모에 의해 종종 Stenchcore로 알려져왔었다. Stenchcore의 고전적인 예로는 Deviated Instinct, Extinction Of Mankind, Hellbastard, Bolt Thrower같은 밴드들이었다. 최근에는 어둡고, 무거운 크러스트 밴드들이 그들 스스로를 "Neo-Crust"라고 부르고 있다(Ekkaia, The Fall Of Efrafa, Down To Agony, Protestant, Madame Germen). "Crasher Crust"는 일본에서 지저분하고 종종 만취한 크러스트 펑크들에 인기가 많다. Gloom은 Crasher Crust에서 큰 영향을 받은 밴드중 하나며, 장르에서 결정적으로 정의하는 밴드이다. 


 Amebix에 따르는 크러스트 


그들은 간단히 말해 펑크로서의 태도와 함께 무거운 음악을 연주하는 둘도 없는 밴드이다. 우리는 블랙 새버스속에 뚤러싸여잇음에 불구하고, 우리의 음악은 음악적으로 무식하고, 모터헤드를 일어나게했고, 베이스는 파워코드 리프를 연주한다." -amebix의 공식적 myspace에서 발췌 


 바깥의 영향 


Grindcore은 종종 극단적인 톤에 영향을 줬고, Grindcore의 잔인한 본성은 크러스트의 그것들과 비슷하게 할수있다. 크러스트는 몇몇의 초기 블랙메탈밴드로부터 더 영향을 받은 밴드들과 함께 1990년대 속에서 두번째 계기를 통해 영향을 받았다; Iskra가 그 예이다. 아마도, 더 명백한 것은 블랙메탈이 크러스트에 영향을 끼쳤었다는게 현대적 예인것 같다. Iskra는 그들의 것을 "Blackened Crust"라고 말을 바꿔 이 새로운 스타일을 묘사했다. 초기의 샘플들은 Black Kronstadt에서 찾을수 있었다(특히 "Free Spirit"LP판에서.). Blackened Crust는 블랙메탈의 팬들에게 어떻게든 일반적인 것을 생각해야했었는데, 그들은 종종 말다툼을 만들었기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치적인 것은 블랙메탈이 아니다 라는 보편적인 생각들이었다. 물론, 그건 왜냐하면, Crust Punk는 블랙메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밴드들은 Blackened Crust 사운드는 Iskra와 Order OfTthe Vulture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크러스트 펑크들은 어쿠어스틱 기타와 함께 "Outlaw Country"에서 영감을 받아, 1960년대와 70년대의 Folk 음악을 배워가는중이다. 큰 영향은 Woody Guthrie에게 전통적인 Irish 음악으로부터 받았다. 이 크러스트의 혼합과 Folk는 공통적으로 Folk Punk로 다시 불렸다. 이것은 "train-hopping"속에서 더욱 일반적으로 정리되었다. 1990년대 초반, 크러스트/그라인드코어 밴드 Disrupt의 멤버들은 Grief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Grief의 펑크와 둠메탈은 Sludge Metal이라는 장르가 싹트도록 영감을 줬다. Dystopia와 Eye Hate God이 그러한 밴드들이다. 다른 각주로 초기의 크러스트 펑크는 1977년부터 1980년까지의 Thrash Metal 밴드들이 인기를 누리는것과 함께 영향받았다고 알려져있다. 


 크러스티를 쓰는 영국. 


다른 영국에서는 조금 다른 크러스트의 관습이있다. It applies to pop-oriented bands that achieved a small level of success at about the same time as the crust punk bands. These bands were labelled crusty, the strictly correct term being grebo, because of their image and its similarity to the aforementioned crust punks. 많은 밴드들이 지저분했고, 초라한 머리(대게 드레드락) 그리고, 질척한 옷이나, 종종 빨지 않는 옷을 입었다. 삶에 있어서, 그들은 연기자는 아니었으며, 그대신에 그들의 공연에서의 퀄리티를 위해 집중했다. 이러한 길은 같은 시대의 Shoegazing 밴드들과도 비슷한 길이었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운송용 밴으로 투어를 했으며, 글자 그대로 1년에 백여개의 공연을 했지만, 희귀한 top 20 힛트 싱글로부터 몇몇 레코드에서 팔리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Pop Will Eat Itself gave the term "grebo" its first widespread airing with their single "Grebo Guru". Pop Will Eat Itself는 Grebo에게 기한을 주었다. 그것은 그들의 싱글 'Grebo Guru'와 함께 처음으로 널리 방송되었다. Other crusty bands included Zodiac Mindwarp, who shared certain image elements with the parallel Filthcore, death metal and Industrial scene. 다른 크러스트 밴드는 Zodiac Mindwarp을 포함하고 있고, 누구는 확실히 Filthcore와 Death Metal과 Industrial씬과 함께 평행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The Crusty scene also found fertile expression in the dance scene, with such bands as the Thee Psychick Warriors ov Gaia and clubs such as Planet Dog, whose zenith was market by the release of the Feed Your Head compilation. Both strands of crusty achieved a brief period of chart success during the very early '90s. The crust punk bands achieved their success mainly because of their devoted following. However, the success of the crusty bands like Senseless Things was mainly due to much coverage (some would say hype) in the NME and the Melody Maker. Due to the crusty scene and the shoegazing scene emerging at almost exactly the same time, the Melody Maker referred to both scenes as "The Scene That Celebrates Itself", typified by bands such shoe-gazers as Lush, Slowdive and Ride. This is because many of the London based shoegazing and crusty bands (as well as London based proto Brit-pop bands like Blur) went to each other's gigs leading to cross fertilisation. 크러스티들은 하위문화와 반문화를 기본으로 DIY 윤리와 아나키즘그리고, Freetekno와 크러스트 펑크 음악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전형적으로 단정치 못하거나 더러운 옷과 머리였고, 종종 드레드락, scullets, mullets, 닭머리거나 다른것과 결합하고, 진부하고 평범한 일은 안했다. 그것은 또한 Galway United supporters를 위한다는 닉네임이었다. 크러스티들은 또한 군용 장비들을 썼고, 중고 옷을 입는 경향이 있었다. 크러스티들은 뭔가를 만들거나 그들의 생각을 옷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치과용 치실을 이용해서 바느질을 하거나, 직접 종종 정치적, 아나키스트거나 밴드 로고들을 패치로 만들어서 그들의 옷에 붙여 입었다. 영국의 기원의 기한과 대부분의 많은 펑크, 메탈들은 스쾃씬에 있었다. The term comes from Hellbastard a crust punk band, although Amebix an earlier British band is commonly believed to have started the music style that became crust by mixing elements of early black metal with Anarcho-punk, 이들은 Crass와 Venom, Black Sabbath와 Motorhead로부터 영향을 받아갔다. 많은 크러스티들이나 크러스트 펑크들은 이러한 것들을에 흥미를 갖거나 주로 이야기를 했다; 채식주의/완전채식주의, 동물권리, 자치권,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스쿼팅, 압력/압박반대에 대한 연습, 페미니즘, 헤비메탈, 그라인드코어, 아나코펑크, 스래쉬코어, 디빗트, 집회/시위, 인종차별반대, 동성애문화, 소비주의반대, 반자본주의. 크러스티는 다들 같지 않다. 그러나, 많이들 같이 활동하는 부분이 있거나, 완전히 이러한 그룹들을 따라갔다: 아나키스트들, 아나코펑크들, 하층민펑크들, 히피들. 



Crust punk


http://en.wikipedia.org/wiki/Crust_punk


http://www.crustpunk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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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
카테고리 없음 2014. 6. 8. 18:48

펑크  + 일렉트로니카 + 댄스 + 크렁크  = 크렁크코어 


Crunkcore
Stylistic originsCrunkscreamosynthpop,techno
Cultural originsLate-2000s, Western andSouthern United States
Typical instrumentsVocalsprogramming,synthesizers


Crunkcore (also called crunk punk,[1] screamo crunkcrunk rock,[2] and scrunk[3]) is a musical genre that combines crunk with the vocal style of screamo


ㅓㅓㅓㅓㅓㅓㅓ


Crunkcore  


http://en.wikipedia.org/wiki/Crunkcore



https://twitter.com/hashtag/Crunk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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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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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8. 17:26
(Hook)이란 짧은 후렴구에 반복된 가사로 청자에게 흥겨움을 주는 음악을 말한다. 용어는 일반적으로 대중 음악록 음악힙합댄스 음악에서 주로 사용된다.


남부 힙합의 뿌리: Crunk (크렁크)


Crunk는 남부힙합의 갈래 중 하나다정확 히 말하자면 현재의 남부 힙합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다. Crunk의 어원은 Crazy(미친) Drunk(취한)의 합성어다실제로 Crunk 음악을 들어보면 마약과 술에 취한 듯 흐느적거림과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는 음악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훅이 매우 중독적이고 이를 여러번 반족하는 경향이 있다. 단지 발성 스타일뿐만 아니라비 트에도 개성이 있는데전자음을 많이 사용하고작 곡할 때 808드럼 머신을 주로 쓴다는 것이 그것이다. 808 머신 뿐만 아니라 909 머신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이 음악은 90년대 초중반부터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당시에는 웨스트 코스트와 이스트 코스트 힙합이 주류음악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러다 2003년도부터 Crunk는 대중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했다대표적인 곡이라면 Lil Jon & East Side Boyz "Get Low"가 있다나는 당시 이 음악으로 Crunk를 입문했다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강한 전자 비트와 중독성 있는 훅은 당시 유행하던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었다이후에도 Ying Yang Twins <The United States of Atlanta>같은 Crunk 앨범이 히트를 치며 큰 인기몰이를 했다.

 

 

 

Ying Yang Twins - Drop

 

 

또한 2004, Lil Jon이 참여한 Usher의 슈퍼히트곡 <Yeah!>을 선두로 앨범 <Confession>을 천만장을 팔아버리며 Crunk의 인기는 끝없이 솟아올라갔다이 곡은 R&B에 Crunk를 접목시키며 당시 흑인음악계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그렇게 2005년도까지 큰 인기를 끌었지만이후 많이 주춤해진 것이 사실이다그렇기에 사람들은Crunk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Lil Jon이나 Ying Yang Twins같 은 Crunk의 대부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runk은 끝나지 않았다. Crunk 스 타는 없지만아직까지 많은 남부의 아티스트들은 이를 하고 있다느꼈을지 모르지만, T.I. "Big Shits Poppin'"이나 SouljaBoy "Turn My Swag On" 모두 Crunk곡 이다또한이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Yo Gotti 또한 Crunk의 기반을 둔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있다.이뿐만이 아니다힙합은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훅 메이커 T-Pain 또 한 Crunk의 영향을 받았다그의 대다수의 참여곡에서 느낄 수 있지만대표적으로 Flo Rida "Low"의 훅을 들어보면 느껴질 것이다.

 

 

 

Soulja Boy - Turn My Swag On

 

 

Crunk의 전성기 때와 현재의 Crunk는 다소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Crunk는 죽지 않았다나 같은 Crunk 팬들을 위해서라도 Crunk 스타들과 남부 랩퍼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Three 6 Mafia - Lolli Lolli


http://en.wikipedia.org/wiki/Crunk


http://rapgenius.com/verified-artists


http://www.reverbnation.com/



http://www.hiphopdx.com/


www.discogs.com


http://www.cdbaby.com/


youtube.com




http://music-releas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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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erbnation.com


http://www.studioleaks.info/forums/f15/


http://1994hiphop.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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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xtapetorrent.com/


http://hiphopisdream.com/


http://euro-rap.com/forum


http://www.undergroundhiphop.com/


http://www.hiphopdx.com



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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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4. 6. 8. 16:19

fusion of thrash metal and hardcore punk


펑크에 대해

 

펑크라는 말은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속어로는 사람의 체취, 예측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나 태도 등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음악적으로는 힘찬 싱커페이션이 들어간 베이스 선율과 드럼 박자에 맞춰 악기의 리듬을 강조하는 춤곡을 가리키며 솔뮤직과 이후에 발전한 힙합을 연결해 주는 역할 을 했다.

펑크 또는 펑키라는 말은 1950년대 재즈의 즉흥연주를 뜻하는 말에서 발전하였는데 흑인들의 열정적인 연주 스타일로서 음악적 측면뿐만 아니라 흑인들의 좌절과 인종간 갈등 등 불안정하면서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인다.

1960년대 말에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밴드는 전통적인 리듬이나 블루스가 백비트(둘째와 넷째 박자)를 강조하는 데 반해서 싱커페이션이 많고 리듬에 활기가 있으며 마디의 첫째 음표에 강박을 넣어 연주하는 '펑크 비트(funk beat)'를 확립하였다. 펑크 리듬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브라운과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 등은 노랫말의 주제로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다루었다.

1970년대 초에 들어 펑크는 오하이오 플레이어스(Ohio Players), 쿨 앤드 더 갱(Kool and the Gang), 템프테이션스(the Temptations),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등의 기본 음악이 되었으며, 힘찬 박자와 풍부한 멜로디 반주, 설득력 있고 사색적인 가사를 특징으로 하였다. 팔러먼트 펑크델릭(Parliament-Funkadelic)을 비롯한 여러 밴드들이 펑크를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으며,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나 허비 행콕(Herbie Hancock) 같은 재즈 음악가들도 펑크를 채용하고 그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1970년대 말의 디스코 음악은 펑크의 리듬과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발전했으며 1980년대의 릭 제임스(Rick James)나 프린스(Prince) 등은 외설적 표현을 강조하여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 들어 펑크 비트는 흑인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리듬으로 자리잡았으며 하드록과 다른 여러 실험적인 음악과 섞이면서 다른 음악 스타일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랩 음악은 1970년대의 펑크곡을 '샘플링'하여 발전한 장르이며 힙합 문화에서도 펑크의 존재와 의미가 증대되었다. 이후 펑크는 미국 대중음악과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힙합의 일부로서 춤곡 리듬의 밑거름이 되었다.

 


펑크는 7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음악 장르입니다.
Sex pistols 라는 밴드가 대표적이죠.
(그들이 최초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이 최초로 유명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당시 락은 작곡과 연주 실력 등 음악적 기교가 중시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타고난 재능과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뮤지션이 될 수 있었죠.
하지만 보는 이에 따라서는, 락의 정신인 '자유'와 '저항'이 퇴색되었다고도 볼 수 있죠...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이 펑크입니다.

펑크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 그냥 동네의 패거리 '양아치' 소년들이 차고나 지하실 같은 데 모여서 연주하는 음악으로 출발합니다.
기교, 실력, 다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음악이죠.
펑크는 3코드 시스템을 이용한 장르라고들 합니다. 잘 작곡된 락 음악이라면 코드가 아주 많이 사용되게 마련인데, 펑크는 코드를 딱 3개만 사용합니다. 한 마디로 같은 소절만 계속 반복된다는 얘기죠.
가사도 아주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하는 것이 많구요.

스타일에 있어서도 펑크족들은 다른 락커들과 다릅니다.
가운데만 세우고 양옆을 밀어버리는 소위 '펑크스타일'이라든지, 삐죽삐죽하게 세우는 스타일이라든지, 아무튼 괴상한 모양을 하고 형형색색으로 염색을 하죠.

펑크족들은 사상적으로 무정부주의를 지지합니다.
가장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이죠...
Sex pistols의 대표곡 'Anarchy in the UK'가 무정부주의를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노 브레인이라는 밴드가 유명하구요.
(2000년에 안티 서태지 콘서트로, 2001년에 일장기 찢은 사건으로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나왔던 밴드입니다.)
보다 대중적인 밴드로 레이지 본과, 유명한 크라잉너트가 있죠.

'펑크를 펑크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이미 펑크가 아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펑크는 규정된 형식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도전과 파괴를 지향한다는 이야기겠죠

 




하드코어 펑크

일단 하드코어(hard core)라는 용어 자체는 음악의 한 장르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거칠고 직설화법적인 표현이 사용된 영화나 문학, 음악을 일컫는데 H.O.T.의 랩에 하드코어적인 요소가 소개된 후로 음악의 한 요소로서의 하드코어가 대중들에게 좀더 쉽게 다가가게 되었다. 그럼 간단하게나마 음악에 있어서의 하드코어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하드코어를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정의 할순 없지만 하드코어란 장르를 간단히 말하자면, 펑크에서 갈라져나온 한 갈래이다. 초창기 펑크의 저항의식을 그대로 가진채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음악을 표현하는 단어일 것이다. 하드코어 음악은 기존의 락과 흑인의 랩을 혼용하는 경우가 많고 가사가 상당히 직설적인 편이다.

하드코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그리고 하드코어를 하나의 장르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깊이 탐구하려면 턱없이 모자라겠으나 H.O.T. 음악에 있어서 하드코어적인 요소는 극히 일부분이므로 약간의 설명으로 그 개념을 파악하는 것으로 일단락 짓기로 하자. 아래에 이어지는 글은 유니텔 음악동아리에서 하드코어에 대한 설명을 퍼온 것으로 나름대로 필요한부분만을 발췌하여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HARDCORE MUSIC -하드코어란 단어가 음악용어로 태동된시기는 1979년경이다. 영국의 펑크무브먼트가 한풀꺾이고, 이에 영향받은 많은 미국의 청소년들이 펑크에 강한 임팩트를 심은 음악을 하면서부터 "하드코어"라불리워졌다. 

워싱턴 DC의 흑인전사들 Bad Brain, Straight Edge 라는 펑크의 타락적성향에 강한 반발을 보이는 도덕적인 메시지를 부르짖는 Minor Threat 같은 팀은 장차 아메리칸 아니, 전세계의 하드코어를 이끌 토양을 만들었다. 1분~~2분대 위주의 정신없이 달리고, 선동적인 코러스 파트가 주메뉴인 이 DC 하드코어는, 이웃한 예술과 자유청년정신의 도시 뉴욕에 이르러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고 지금의 씬을 어느정도 형성하게된다.

N.Y.H.C-New York HardCore 라 흔히 일컫어지는 씬은 유서깊은 CBGB'S 선데이 마티니(매주 일요일 벌어지던 뉴욕 하드코어팀들의 하드코어 난장)에서 많은 스타들을 발굴해 냈으며, 이들의 기본적 Attitude는 영국펑크와 Oi! 뮤직,혹은 공산주의 스킨헤드 사조,히스페닉 갱조직,Straight Edge 등 매우 밑바닥, 노동자 계층의 이야기와 그들역시 노동자,반역도들이 전부였다. 레이건 치하의 파씨스트,유태인중심 산업에 실업과 박해로 거리로 내몰린 많은 유색인종, 노동자 백인 젊은이들은 "하드코어"를 통해 세상과 맞설 무기를 갖춘다..그들 자신들을 하나의 신념과 투쟁으로 다져진 형제로 묶고, 자존심과 그들이 살아갈 목적의식 고취, 그러기에 그들의 음악은 매우 거칠고, 선동적이고, 피를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가사와 사운드로 이루어지게 된다.

어떤이들이 하드코어를 폭력 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사실 알고보면 그들의 가사 대부분은 눈물겨운 밑바닥들의 자존심회복을 위한 발버둥일뿐이다.

하드코어는 약20여년전 이런식으로 뿌리를내렸다.Oldschool 로 통칭되는 이시대의 뉴욕,보스턴, 뉴져지 혹은 약간의 캘리포니아지역 밴드들 (캘리포니아는 사실 지역적으로 이러한 반역적 하드코어가 뿌리내리기 그다지 쉽지않타. 알다시피 동부와 다른기후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쪽 밴드들도 동부에 비해 엄청나게 팝적이고, 대중적이고 나태한 경우가 많다.)

쿠바에서 이주한 2세대들과 히스페닉 들로 구성된 스킨헤드 사조를 네세웠던 "Agnostic Front" ,워싱턴 DC에서 태동된 Straight Edge 운동을 성공적으로 계승한"Youth of Today"뉴욕 하드코어 -정통 Old School 하드코어를 대중적으로 인정해 보인 대단한팀 "Sick of It ALL"--이들은 아직도 끈임없이 세월이 흐르건,어떠한 유행이 팝음악계를 판치건 그들의 스타일을 고집하여, 그에 영향받은새로운 노동자 계층 하드코어 전사들을 계속 양산해내는 밑거름이 되어준 든든한 고참들이다.

이들 뉴욕하드코어-Old school 아니, 전통적인 의미의 하드코어 밴드들은 기본적으로 반상업주의, 자본의 침투 거부를 기본 신조로 삼는다. 지폐쪼가리를 얻어먹는다는 것은 양팔을 잘라내고,눈알을 뽑아버려야할 수치스런 배신행위이다.- 이런식으로 그들은 메이져, 자본중심 음반업계와 대적할만한 그들 만의 배급망과 메일오더망을 구축, 생각한대로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지않는, 자본과의 더러운 결탁을 부정하는 "하류층 청년정신"의 자존심을 제 1 신조로 언제나 삼고 있다.

이 컴필레션에 수록된 팀들은 철처한 반상업적 노선으로 20여년간 끈이지 않는 투쟁을 펼치는 뉴욕 하드코어,올드스쿨,Straight Edge 팀들을 중심으로 선곡한 것으로,메이져 사운드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거부감을 줄만큼, 모양을 내지않코, 남성적이고, 직선적이고, 극단적이기 짝이 없는 이 노래들은 현제 미국과 일본,유럽 등등하드코어, 록뮤직 선진국 언더그라운드 마이너 반상업 하드코어 씬의 스타급들인, 퀄리티와 작곡,개성에서 뛰어난 밴드들을 선곡했다.

"HARDCORE"는 부수기위한 음악이 아니라,
" 울분으로 바닥을 내려치더라도 그곳엔 언제나 희망이 있음을 가르쳐주는 음악"이다.



Hardcore Punk 


하드코어 펑크는 펑크적인 사운드에 빠른 스피드와 하드코어적인 보컬이 가미된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대표적인 밴드에는 7 Seconds, Born against, Union13, Dead kennedy, Misfits, Crucifixion, Profax 등이 있다


스래쉬 메탈 


스래쉬 메탈은 1980년대에 언더그라운드에서 만들어진 장르인데요.

빠른 스피드를 주로 공격적이고 과격한 사운드와 가사 내용으로 곡 구성이 주로 되어 있습니다.

 

 

메탈음악의 기본속성인 금속 사운드가 크게 부각되고 강려한 기타 리프가

메인을 이루며 현란한 기타솔로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스래쉬 메탈은 1990년대에 넘어가면서 얼터너티브 록, 펑 크록의

시대가 열려지면서 스래쉬 메탈 시장체제도 서서히 주춤 했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 따라 스래쉬 메탈의 음악적 특색도 많이 잃게 되었습니다.

 

특히 블랙 사바스라는 그룹은 이 장르 탄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래쉬 메탈 밴드로 가장 유명한 밴드로서는

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랙스 등이 있는데요.

 

흔히 이 그룹들은 '스래쉬 메탈 4인방'이라고도 불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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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人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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